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일일돌보미센터(데이케어센터)에서 취학 전 아동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일일돌보미센터(데이케어센터)에서 취학 전 아동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아기 출산으로 산모와 아버지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시청에 출생신고를 하면 매월 600마르크를 정부가 지불해 줄 거예요.”

독일 분단 시절인 1986년 11월 27일, 서독 수도인 본 보이엘(Bonn-Beuel)에 위치한 가톨릭병원에서 아내가 아들을 출산한 이후 산파 수녀로부터 우리 부부가 들은 말이다. 한 달에 600마르크면 우리돈으로 30만원 정도다. 당시 한국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유학생인 나에게 아들이 ‘효자’였다. 약 1년치를 지원받았다. 아기 우윳값으로 매월 50마르크를 지원받았다.

서독의 보수 정권인 헬무트 콜 정부는 세계 최저(最低) 출산율로 인한 인구절벽을 해결하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을 들고나왔다. 빈부 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아기를 출산하면 지원하는 카드를 뽑았다. 미혼모도 아기를 출산하면 지원해 주었다. 헬무트 콜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같이 정치적으로 보수 노선의 궤를 걸었다. 하지만 사회보장 정책만은 달랐다. 복지철폐,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식 복지정책을 강화했다. ‘가족친화적인 사회’를 주창했다. 유치원 설립을 확대하고,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출산 장려금을 대폭 늘렸다.

600마르크 어린이 지원금제도는 이후 없어졌지만, 다른 명목의 어린이 지원금이 도입됐다. ‘킨터겔트(Kindergeld)’다. 독일은 이미 1950년대부터 어린이 지원을 시작했다. 2010년 1월 다시 어린이 지원책을 강화했다. 첫째와 둘째 자녀에게 각각 184유로(약 23만원), 셋째 자녀부터는 190유로, 넷째 자녀에겐 215유로가 지급된다. 19세 성인이 될 때까지 지원한다. 호혜 조약을 맺은 한국 등 모든 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독일은 출산 부모들에 대한 휴가제도도 앞장서 실시했다. 출산 전 6주 휴가, 출산 후 8주 휴가는 모든 직장의 의무사항이다. 월급도 100%를 받는다. 2007년부터 부모휴직 및 수당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출산 후 부모휴직 기간도 3년이다. 어머니, 아버지 중 한 명이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은 직장 해고 보호규정이 적용된다. 3년간 휴직 후, 종전 업무로의 복귀도 법적으로 규정하는 사항이다.

휴직 수당은 출산 후 14개월 동안 받는다. 금액은 직종에 따라 300~1800유로까지 받는다. 출산 전 월급의 65~10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월급이 적을수록 지원 비율이 높아진다. 출산 휴직기간 동안에도 종전의 업무를 하면서 최대 주 30시간 일할 수도 있다. 다만 부모 수당이 감소된다. 반면 부부 수입이 1년에 50만유로(약 6억2700만원), 독신자는 25만유로(약 3억1300만원)가 넘어서면 수당을 받을 수 없다. 부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복지를 하고 있다.

출산 장려책으로 저소득층에게는 주택 수당을 준다. 수입과 가족 수, 주택의 크기나 설비에 따른 상세한 수당 기준표가 만들어져 있다. 공평한 룰을 적용해 집세를 보조해 주고 난방비 등 부담금의 일부를 지급한다. 필자 역시 본대학교에서 유학할 당시 외국인이지만 주택보조지원금을 받았다. 시청을 찾아가면 소득과 집세에 따라 보조해 준다. 집세 보조는 소득이 낮은 연금생활자나 학생들의 생계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보조금은 아이가 많은 노동자 가정의 경우 집세의 5분의 1 정도를 지원하기도 한다. 출산 가족에 대해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한 지원제도가 있다. 주택지원금을 말하는 ‘본겔트(Wohngeld)’란 제도다. 4인 가구에 세금을 제외한 순수 월급이 2000유로(약 250만원)인 경우에 약 200유로까지 지원을 받는다.

독일에서 주택은 투기의 대상이 아닌 철저하게 ‘사람 사는 집’이다. 정부가 앞장서 이러한 주택정책을 실시했다. 대표적인 예가 ‘쇼치얼 보눙(Sozialwohnung)’, 즉 ‘사회 공공주택’이다. 1970년대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사민당) 정부는 주택 부족 해소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가 주택 소유를 장려했다. 기존 주택의 재건축을 통해 공간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국가가 나서서 해마다 55만가구를 지었다.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주택 정책이다.

독일은 개인의 주택 마련을 위해 중·저소득층의 재형저축에 국가가 30%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불입액의 절반은 기업 부담이다. 자기 부담은 20%에 불과하다. 근로자 4명 가운데 3명이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후(戰後) 서독 정부는 ‘주택건설할증금법률’을 제정했다. 주택자금 저축에 20%에서 최고 40%까지 할증이 붙는 우대책이다. 당시에는 ‘624마르크 법률’이라 불렸다. 연간 624마르크까지의 재형저축에 투자하면 30%의 저축 보조금이 붙고, 불입금의 반액은 기업이 부담했다.

‘3無’의 나라

인플레이션이 낮기 때문에 주택의 ‘가치 감소’도 없다. 주택을 가지고 투기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주택은 사람이 살 집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독일 국민의 생각이다. 특히 출산 가족에 대한 주택융자의 혜택은 자녀 수와 가정의 수입에 따라 지원액이 다르다. 지금도 남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州)의 경우 주 은행에서 거의 무이자로 20만유로(약 2억5000만원)까지 지원한다. 혼자 양육하는 자는 10만유로(약 1억2500만원)까지 지원받는다.

물론 주(州)와 시마다 주택융자지원 정책이 다르다. 하이델베르크시(市)의 경우 새집이나 아파트를 살 경우 무이자로 8년간 융자를 지원한다. 자녀가 3명이면 박물관, 공원 등의 입장료가 무료다. 가족 친화적인 도시 및 사회를 강조하는 대목이다. 독일은 최근 ‘출산엄마 연금제도’까지 도입했다. 연금혜택으로 자녀 1명에 연금 가산점 3점을 준다. 이를 통해 한 달에 약 79유로(약 9만8000원)의 연금을 더 받는다. 이는 1992년 이후에 태어난 자녀의 부모에게만 해당된다.

독일은 게다가 ‘3무(無)’의 나라다. 대학등록금, 입시지옥, 사교육비가 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육받을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독일의 중요한 국가 운영원칙 중 하나다. 독일 외교부 웨스트벨레 장관의 말이다. “독일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기댈 곳은 인력자원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업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방정부의 임무다.”

독일에서 출산지원 및 복지제도가 잘 정착된 이유 역시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대학의 디터 되링 사회학·금융경제학 교수는 “독일의 복지정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강화되었다”고 평가한다. 이같은 출산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출산율은 1.4명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메르켈 정부는 중동 난민 80만명 수용을 선언했다.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숫자다. 새로운 이민자들로 하여금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정책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22명으로 세계 최저다. 오늘날 저출산의 원인에는 분명 정부도 한몫을 했다. 한국은 1980년대 저출산으로 곤두박질칠 때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폈다. 독일이 이미 강력한 출산장려정책을 펼칠 때였다. 한국은 세계 트렌드에 역행(逆行)했다. 이제라도 출산을 위한 과감한 정치를 기대한다.

김택환

언론인·독일 본대학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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