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미들랜드카운티의 석유 굴착 시설. ⓒphoto 뉴시스
미국 텍사스 미들랜드카운티의 석유 굴착 시설. ⓒphoto 뉴시스

횡재(橫財)라는 뜻밖에 엄청난 재물을 얻게 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가 있다. 우리들은 누구라도 횡재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꿈꾼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들고 허망한 꿈을 꾸곤 한다. 그러나 그런 꿈들은 거의 잘 맞지 않는다. 미국의 여성 방송앵커가 수억달러에 해당하는 로또가 맞을 확률은 상어에 물렸는데 번개를 맞아 죽을 확률이라고 조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상어에 물릴 확률도 수백만 분의 1이 안 될 터이고 번개에 맞을 확률도 수백만 분의 1이 안 될 터인데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날 확률은 거의 0(zero)에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들이 로또에 해당하는 횡재를 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지난해 12월 하순 미국을 방문했던 어느 날 서점에서 미국이 횡재를 했다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정말 흥미 있게 읽었다. 이 글은 횡재라는 책의 내용을 필자가 그동안 연구하던 미국의 국제정치적 위상, 미국 패권의 지속성 여부라는 국제정치학적 이슈로서 해설하고 소개하는 글이다.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교수인 여류 정치학자 메간 오설리반(Meghan O’Sullivan) 박사의 원서명은 ‘Windfall: How the ew Energy Abundance Upends Global Politics and Strengthens American Power’이니 우리말로 번역하면 ‘횡재: 새로운 에너지의 풍요로움은 지구 정치를 어떻게 뒤집어놓았고 미국을 강력하게 만들었나?’이다. 미국이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함으로써 횡재 수준의 덕을 보게 되었고, 이는 미국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세계 정치를 완전히 뒤바꾸게 되었다는 내용의 책이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이 이미 한두 권이 아니지만 석유에너지가 미국에 ‘횡재’ 수준의 이득이 되고 국제정치를 통째로 바꾸어놓게 되었다는 강한 제목의 책은 오설리반 박사의 책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2014년 하반기 이후 여러 편의 논문과 다수의 강연을 통해 미국의 에너지혁명이 미국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남게 할 것이며, 우리나라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중국이 곧 세계 패권국이 되리라는 믿음은 그 근거가 척박한 것일 뿐 아니라 반미주의자, 그리고 반미주의자들의 대부분일 것이 분명한 친중 주의자들의 허망한 이념적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해왔었다.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2012년 1~2월호는 시대별로 국제정치적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주제들이 변하기 마련이라고 말하면서 10여년 전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던 주제는 ‘반테러전쟁(Anti-Terror Warfare)’, 그 다음으로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가장 많이 이야기된 이슈는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이었는데 앞으로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미국의 에너지붐(American Energy Boom)’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미국의 에너지붐이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된 지도 7년이 지났고 2014년 여름 이후 포린폴리시의 예측이 실제로 국제정치 현상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적 화두가 ‘중국의 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특히 국제정치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압도적으로 영향을 받는 한국 사람들이 국제정치의 변화를 빨리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안타깝고 답답한 일일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로서 미국은 확실히 재수가 좋은 나라인 것 같다. 개인으로 치면 로또에 해당하는 경험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당하고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은 1803년 프랑스로부터 거의 헐값에 당시 미국 영토 넓이만큼 광대한 영토를 구입했다. 루이지애나 매입이라고 불리는 이 로또와 같은 사건은 미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214만7000㎢의 루이지애나 영토를 1500만달러에 사들였던 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했던 구매’ 중 하나다. 미국이 구입한 루이지애나 영토는 남북한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땅이었고 2016년 달러화로 계산하면 2억5000만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2018년도 미국 국방예산이 7000억달러니까 그 방대한 영토를 구입하는 데 지불한 돈은 미국이 2018년 기준 약 3시간8분 동안 사용하는 국방비에 불과한 돈이다.

아마도 미국이 당첨된 두 번째 로또는 1867년의 알래스카 구입일 것이다. 그해 3월 30일 당시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윌리엄 시워드 국무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많은 미국 정치가들이 이 사건을 시워드의 멍청한 짓(Seward’s Folly)이라고 말하지만 멍청한 것들은 시워드가 아니라 ‘거대한 냉장고를 뭣하러 사느냐’며 난리쳤던 정치가들이다. 알래스카는 약 152만㎢로 남북한 전체면적의 거의 7배에 이르는 땅이며 오늘 미국 영토의 약 7분의 1에 이르는 광대한 땅이다. 그 땅값이 당시 돈으로 720만달러, 2016년 화폐 가치기준 18억달러라 하니 결국 2018년도 미국 국방비 22시간30분어치 정도 된다. 현재 가치로 단 하루치 국방비도 안 되는 돈으로 미국은 거대한 냉장고를 한 대 샀고, 그것은 엄청난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미국이 또다시 횡재를 맞이했다. 이미 세계 1위의 패권국으로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 풍요한 삶을 살고 있는 미국이 또다시 횡재를 당한 것은 2014년 이후 그 분명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셰일석유와 셰일가스 채굴을 통해서이다. 에너지는 그동안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을 정도로 국가들의 사활을 가늠하는 변수다. 1차 대전, 2차 대전 등 대규모 세계대전 모두가 에너지 장악을 위한 강대국들의 혈투였다. 1970년대 초반 이후 미국이 가장 큰 신경을 쓴 지역이 중동이었다. 중동지역의 석유가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경우 그것은 미국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다.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약한 대통령 중 하나로 인식되는 카터조차 중동의 석유가 어느 일국에 장악되어 그 흐름이 원활치 못하게 되는 것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이며 이 같은 상황의 도래를 막기 위해 미국은 언제라도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천명했다. 소위 카터 독트린은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치른 모든 전쟁의 개전 사유(開戰 事由)가 되었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울산 혹은 광양만에 이르는 긴 해로를 유조선들이 꼬리를 물고 오가면서 석유를 끊임없이 날라다주지 않으면 그날로 죽어버릴 운명에 있다. 일본도 중국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제정치학자들은 석유를 수입해 오는 바닷길을 생명선(Life Lin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에너지혁명은 미국이 더 이상 에너지 걱정을 하고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도래케 했다.

한국인은 잘 모르지만 2004년 텍사스의 중소기업 석유회사 회장인 조지 미첼(George Mitchell)에 의해 개발된 프래킹(Fracking) 공법은 미국 본토 전역에 거의 무진장 널려 있는 셰일가스 혹은 셰일석유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싼값에 채굴할 수 있게 하였다. 지질학자인 아들의 반대도 물리치고 추구했던 집요한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미국 전역 상당 부분이 5억년 전에는 바다였다. 바다였던 곳은 지금 미국 지표면에서 약 3000m 정도 깊은 곳이 두께는 얇지만 그 넓이가 방대한 암반층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암반을 셰일(Shale)이라 부른다. 한국어로는 혈암 또는 이판암이라고 한다. 5억년 전 바다였던 그 바위 속에는 분명히 물고기 등 수많은 동물의 시체가 화학변화를 일으켜 석유화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지질학자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캐낼 기술이 있느냐의 여부였고, 캐내더라도 중동석유를 사오는 것과 비교해서 채산성이 맞느냐의 여부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젤리에노플의 셰일가스 굴착기. ⓒphoto 뉴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젤리에노플의 셰일가스 굴착기. ⓒphoto 뉴시스

“횡재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

오설리반 박사는 미국의 석유혁명을 횡재라고 칭하고 있지만 미국의 석유업자들 또는 경영분석가, 정치학자 등등 미국의 셰일혁명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이를 ‘횡재’가 아니라 ‘미국 기업가 정신(American Entrepreneurship)’의 승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의 승리는 횡재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너무 많이 포함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방대하게 분포된 셰일이 모든 나라에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셰일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얼마나 많기에 횡재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인가? 아직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조차 모르는데 또 다른 석유 전문가인 스티븐 무어(Stephen Moore)와 케이틀린 화이트(Kathleen H. White)는 “미국은 지구 어느 나라보다 훨씬 많은 ‘채굴 가능’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러시아, 중국, 그리고 OPEC 국가들 모두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가 했던 말로 다시 인용한다면 “미국은 앞으로 적어도 200년을 쓸 수 있는 석유와 100년을 쓸 수 있는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조달러 정도 된다고 하니 2018년 미국 국방비 기준 71년5개월치가 된다. 루이지애나 구입비가 국방비 3시간8분어치, 알래스카 구입비가 올해 미국 국방비 하루치가 채 못 된다고 계산했던 것에 비하면 경악할 만한 로또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언젠가 미국 사람들에게 석유 이야기를 하며 “당신네들은 재수도 좋다”고 말했더니 미국 사람들 대답은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것인데 그러느냐”였다. 이번 석유혁명은 미국의 석유업자들의 일면 허망한 꿈의 집요한 추구 결과 이룩된 일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설리반 박사의 부제처럼 미국의 석유혁명은 지구정치(Global Politics)를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미국을 다시 막강하게 만들었다. 식량과 에너지 두 가지를 다 자급할 수 있는 최초의 대제국이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몇 년 전 육군대장 출신이자 경제학 박사인 웨슬리 클라크(Wesley Clark)는 2014년 가을 간행된 ‘다음 전쟁은 없다’라는 책에서 미국은 에너지 혁명(자급)을 통해 너무나 앞서 나가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나라가 없으며 그렇기에 다음번 전쟁을 기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잠재적 도전국은 중국인데, 그리고 2008년 월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몰락할 것이 분명하고 차세대 패권국은 중국이라는 설에 가슴 부풀었던 나라가 중국이었는데 미국의 석유혁명은 이 모든 것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대박을 터뜨린 곳은 노스다코타주의 베켄(Bakken)셰일인데 베켄셰일을 처음 시추한 날이 바로 월가가 붕괴되는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베켄셰일을 시추한 미국의 프래커(셰일석유 시추꾼들을 프래커라고 부른다)들은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고 자기들의 시추가 대박을 불러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세월이 지난 후 미국 사람들은 “(월스트리트가) 망하는 그날 바로 미국은 (베켄셰일에서) 부흥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노스다코타 지하의 베켄셰일은 넓이가 2만6000㎢에 이르는, 즉 대한민국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 것으로 미국 경제는 물론 노스다코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0%로 만든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 말기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초기 미국의 경제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잘나가고 있다. 오바마도 트럼프도 모두 자신이 잘해서라고 말하지만 미국 경제가 대단히 양호한 배경에는 셰일혁명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환경문제 등등으로 셰일석유 개발에 어깃장을 놓았던 오바마보다는 셰일석유 채굴을 지지했던 트럼프가 그 공을 가지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미국의 석유혁명과 국제정치

석유가 충분해진 미국은 석유로 인한 국제정치적 이익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다. 중동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지난 30년 이상 항공모함 두 척을 중동에 상시 배치하는 등 매년 약 3000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석유 확보에 쏟아부었다. 석유를 지키기 위한 돈 3000억달러에 석유를 사오는 데 드는 돈도 수천억달러가 되었다. 셰일석유 혁명은 미국이 석유 때문에 내던 적자를 일거에 해결해주게 되었다.

미국은 그동안 만약에 대비한다며 중동에서 석유를 사다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의 동굴 속에 비축해 두던 나라다. 소위 전략비축유란 것인데 석유가 모자라서 애를 태우던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손가락질받던 행동이었다. 이제 미국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미군들은 더 이상 땀띠 돋는 중동에 가서 전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 중동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자제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용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선언한 것이 그 한 예일 뿐이다.

미국의 석유혁명 때문에 애가 타는 나라들은 석유 값으로 지구정치를 좌우했던 나라들이다. 미국의 석유혁명 때문에 망조가 든 대표적인 나라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이다. 미국은 냉전시대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국제유가를 가지고 장난질을 쳤었다. 석유 가격이 오를 때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다그쳐서 석유 증산을 독려했고, 그 결과 석유가격의 하락을 초래하게 했고 그럼으로써 소련의 수입을 줄이도록 했었다. 석유가 모자랄 때도 그런 일을 감행했던 미국이 이제 석유를 벌컥벌컥 마셔야 하는 중국을 가지고 놀기는 얼마나 쉬운 일일까?

기왕의 지구정치가 뒤바뀌는(upend) 상황이 성큼 도래했다. 우리는 아직도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중국의 부상’인 줄 알고 있는데 미국의 에너지붐이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되었고 그것이 노골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은 21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패권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기본 자료들을 확보해버렸다. 게다가 21세기 패권의 인공적인 요소인 4차 혁명을 주도하는 것도 미국이다.

우리나라는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운운하며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통해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의를 벌이고 있다. 미국도 곧 천연가스를 수출할 나라가 될 터인데, 일본은 미국의 천연가스를 수입한다고 한다. 어떤 편이 더 합리적인 결정인지를 잘 생각해 보자. 국제정치의 변화에 둔감했을 때마다 나라가 흔들거리며 무너질 뻔했던 우리가 이번에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2011년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미국의 에너지붐이 될 것을 예측했던 포린폴리시의 올해 1월 8일자 인터넷판에 올라 있는 논문 중 하나의 제목은 유명한 전략가 러트 왁 박사가 작성한 것으로 ‘It’s Time to Bomb North Korea(북한을 폭격해야 할 때)’로 되어 있다.

이춘근 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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