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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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은 옛 동·서독 분단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동독 정부는 1961년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길이 155㎞, 높이 3.6m의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 이 장벽을 건설하는 데 콘크리트 200만t, 강철 70만t이 투입됐다. 당시 베를린장벽 건설의 총책임자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 중앙위원회 안보 담당 서기였다. 호네커는 동독의 최고지도자였던 발터 울브리히트 전 공산당 제1서기의 지시에 따라 베를린장벽 건설을 지휘했다.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장벽이 건설됐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으로 계속 탈출했다. 그러자 동독 정부는 국경수비대에 발포해서라도 탈주자를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베를린장벽에서만 126명의 동독 주민들이 사살됐다. 베를린장벽이 1989년 붕괴되고 통일이 된 이후 독일 정부는 발포 명령자를 찾기 위해 동독 공산당 문서를 샅샅이 뒤졌으며 1962년 9월 14일 당시 빌리 슈토프 총리와 호네커, 에리히 밀케 국가안전부 장관이 회의에서 발포 명령에 동의한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1971년 서기장으로 선출돼 동독 최고지도자가 된 호네커는 1974년 회의에서 “가차 없이 총포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성공적으로 탈주자를 저지한 국경수비대원을 치하해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도 밝혀졌다. 호네커, 밀케, 슈토프는 1961~1989년 일어난 탈출자 사살 사건과 관련해 살인교사 혐의로 1992년 5월 기소됐다.

호네커는 이처럼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서독 지도자들과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동·서독 간의 공식 정상회담은 베를린장벽 붕괴 이전까지 모두 4차례 열렸다. 첫 번째는 1970년 3월 19일 동독 에어푸르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슈토프 동독 총리, 두 번째는 1970년 5월 21일 서독 카셀에서 브란트 총리와 슈토프 총리 간의 회담이었다. 1·2차 정상회담은 상호 견해 차이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 실질적 성과가 없는 상징적인 만남에 불과했다. 하지만 양측은 실무 차원의 접촉을 계속해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평화공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양측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폴란드 노조사태,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동독 배치와 이에 맞선 나토의 중거리 핵미사일 서독 배치 등으로 인해 정상회담을 이어가지 못했다. 세 번째는 1981년 12월 11~13일 동독 동베를린 근교에서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와 호네커 간의 회담이었다. 양측은 긴장 완화와 평화를 위해 함께 기여하자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측은 이를 계기로 실무 후속협상을 통해 경제협력, 방문자 교류확대 등을 합의했다.

호네커는 1987년 9월 7일부터 11일까지 동독의 최고지도자로서 사상 처음으로 당시 서독의 수도인 본을 방문해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콜 총리와 호네커 서기장과의 만남은 가장 성과가 있는 회담으로 꼽힌다. 당시 회담은 과거와는 달리 동독이 원해서 열렸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로 동독이 재정파탄에 빠지자 호네커는 서독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콜 총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네커의 방문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콜 총리는 당시 심정에 대해 회고록에 “서독 하늘 아래 동독 국기가 게양되고 동독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독재자와 의장대를 사열하는 게 몹시 괴로웠다”고 기술했다.

콜은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연설을 동독 주민들에게 한마디도 빼지 않고 TV로 생중계할 것을 요구했다. 호네커는 “회담을 포기하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이를 허용했다. 호네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동유럽의 민주화 움직임으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데다 경제파탄에 직면했기 때문에 콜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콜은 만찬 연설을 통해 서독 최고지도자로선 처음으로 1800만 동독 동포에게 통일과 자유, 인권을 강조했다. 콜은 정상회담에서도 “동독의 인권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베를린장벽에서 무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며 호네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특히 콜은 동독과의 협상에서 철저하게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콜은 동독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해주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동독의 인도적 조치를 받아냈다. 실제로 서독 정부는 1983년과 1984년 동독 정부가 서방 은행에서 10억마르크와 9억5000만마르크를 빌리는 데 보증을 서주는 대신 동독 정부로부터 상당한 대가를 얻어냈다. 그 내용을 보면 동·서독 주민의 자유 왕래, 동독 탈출 주민에 대한 자동사격장치 5만4000개 제거,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기간 확대, 서독 서적과 레코드의 동독 유입 확대 등이다. 콜은 호네커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동독 주민의 서독 여행 확대, 동·서독 간 관광 확대와 청소년 상호방문 확대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1986년 200만명에 불과하던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이 1988년에 675만명으로 증가했고, 결국 통일의 계기가 됐다.

콜 서독 총리와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photo 독일 정부 사이트
콜 서독 총리와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photo 독일 정부 사이트

콜이 고수한 상호주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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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인권 단체들과 인권 전문가들이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를 의제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과 6·25국군포로가족회, 탈북동포회 등 30여개 북한 인권단체들은 오는 4월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문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북한 핵 위기의 본질은 북한 주민에게 쓸 돈을 핵과 미사일에 퍼부어도 주민들이 말 한마디 못하는 인권 부재에 있다”면서 “북한 인권을 외면한 북핵 문제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치범수용소 해체,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북한 주민 처벌 중지, 국군포로 생사 확인 및 송환, 전시 및 전후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송환, 이산가족 자유 왕래 등에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40개 국제인권단체가 지난 4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북한 인권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줄 것을 촉구했다.

동·서독의 정상회담과 협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권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브란트 전 총리는 1·2차 정상회담에서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1972년 12월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에 ‘인권 조항’을 삽입했다. 슈미트 전 총리도 3차 정상회담에서 동독 정부의 인권유린 문제를 언급하며 인권 문제 개선을 요구했다.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좌우파와 관계없이 동독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호네커 정권은 교류 단절을 위협하면서 내정 간섭을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콜 전 총리 등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반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의제가 된 적은 없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월 4일 “남북 대화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를 지낸 강 장관의 이런 발언은 북한 인권 문제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언급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의 압박

하지만 국제인권기구는 인권 유린을 자행해온 북한 정권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이 표결 없이 합의 형식으로 채택됐다. 특히 결의안은 북한 정권이 주민의 복지를 희생하고 자원을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전용함에 따라 북한 주민의 절반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과 핵 협상을 할 때 인권 관련 논의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의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인권단체들과 전직 관리들,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가 논의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한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미국의 대북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북한 인권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미국 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의 수잔 숄티 대표도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과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북한 정권이 반인도적 범죄를 계속해 나가도록 힘을 실어주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베르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이 관계 정상화와 제재 해제, 경제적 지원 등을 원한다면 인권에 관한 논의가 북·미 정상회담의 일부가 돼야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인권을 개선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인권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미국 의회가 제정한 북한 관련법들은 인권 개선을 제재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진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제임스 맥거번 하원의원(민주)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치범 문제들을 제기해야 하며 인권은 회담의 핵심 의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랜디 헐트그렌 하원의원(공화)도 “북한 인권 문제가 핵 문제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결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코너웨이 하원의원(공화)은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인권 개선 노력을 보여준다면 대화에 진지하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너웨이 의원은 게리 코놀리 하원의원(민주)과 함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 등의 폐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벤 카딘 상원의원(민주)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와 역할을 정상화하려면 자국민에 대한 인권 개선은 필수적”이라면서 “미국과 북한과의 합의가 오래 지속되고 성공적이기 위해선 반드시 인권 문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을 비롯해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총 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북한은 수용소에 20만명을 감금하는 등 주민들을 상대로 반복적이고 끔찍한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 공개처형 그림. ⓒphoto NK WATCH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 공개처형 그림. ⓒphoto NK WATCH

인권이 비핵화 의지의 가늠대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주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너웨이 의원은 “북한 노동교화소에서 자행된 살인, 대량 살상, 고문, 성폭행 등은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인권 유린 행위로 몸서리칠 정도”라면서 “지도자의 사진을 구긴다든지 기독교를 믿었다는 등의 이유로 개인을 교화소로 보내고 있고, 임신한 여성을 강제 낙태시키기 위해 구타하는 등 가혹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은의 말하는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를 폐쇄하거나 국제적십자위원회나 국제인권단체들이 수용소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믿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거론하면서 북한을 압박해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에 탈북자 8명을 초청해 북한인권 실태를 직접 듣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한국 국회연설과 지난 1월 29일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강력하게 규탄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것도 이런 압박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최대 약점이 인권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유린 행위를 중지해야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겠다고 압박할 경우 김정은을 당혹하게 만들 수도 있다.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이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즐길 수 없는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듯이 한반도의 진정한 봄이 오려면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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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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