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서 아베 정권 퇴진과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평일 저녁이었지만 집회 참석자는 3000명에 달했다. ⓒphoto 서경리 탑클래스 기자
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서 아베 정권 퇴진과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평일 저녁이었지만 집회 참석자는 3000명에 달했다. ⓒphoto 서경리 탑클래스 기자

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나가타초(永田町). 우리로 치면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나가타초 지역에는 국회의사당, 일본 총리 관저, 의원회관, 여러 정당 본부가 모여 있다. 노을이 비치기 시작한 오후 6시, 중의원(衆議院) 제2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양원제(兩院制)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는 하원의원을 중의원이라고 부른다.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이곳 의원회관 앞에서는 일본 헌법 9조 개정을 반대하고 아베 정권의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아베 내각의 퇴진을 요구하는 ‘4·19 국회의원회관앞행동(4·19国会議員会館前行動)’이 개최하는 시위다.

보통 서울에서 오후 6시30분에 집회가 열린다고 하면 예고된 집회 시각 전부터 집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대개 집회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은 집회 장소에 미리 도착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전 주말인 4월 16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3만명의 시민이 모여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대규모 집회도 열렸다고 하니 해가 지기 전에 의원회관 앞에 도착하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러나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 기자를 만류한 것은 일본에 사는 한국 교민들이었다. “집회 크게 안 해요.” “사람들 별로 없을 걸요.” “몇십 명 모여서 몇 마디 하다가 흩어지는 게 보통이에요.”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얘기를 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도착한 제2의원회관 앞은 예상과 다른 모습이었다. 도쿄 지하철 마루노치선 아카사카미쓰케(赤坂見附)역에서 의원회관으로 걸어가려면 도쿄 한복판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히에신사(日枝神社)를 둘러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 히에신사를 지나 의원회관의 모습이 보일 무렵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중의원회관앞(衆議院会館前) 교차로에서부터 인도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비교적 넓은 인도 위에 한두 사람 다닐 정도의 공간만 남겨두고 예닐곱 줄로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이었다. 손에는 ‘아베 9조 개헌(安倍9条改憲) NO!’ ‘아베 내각은 퇴진을!(安倍內閣は退陣を)’ 같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일본 헌법 개정에 왜 반대하는지, 아베 정권의 실정(失政)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빽빽하게 적은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도 많았다.

행렬은 300m 넘게 이어졌다. 중의원회관앞 교차로에서 국회도서관앞 교차로까지 자리를 채우다가 건너편 국회도서관 앞에 자리 잡은 사람들도 많았다. 집회 주최 단체 중 하나인 ‘전쟁을 하지 않는 1000명 위원회(戦争をさせない1000人委員会)’에 따르면 이날 3000명의 사람이 모였다고 했다. “놀랍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의미인가 봐요.” 함께 집회를 보러 온 일본 거주 3년 차 전직 신문기자의 말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상황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집회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열을 맞춰 가지런하게 서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안내하기도 하는 등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개중에는 건전지로 작동되는 LED 촛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2016년과 지난해에 걸쳐 서울에서 박근혜 정권에 반대해 열린 촛불집회에서 사용했을 법한 시위 용품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자주 불렸던 노래도 한국어로 흘러나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민중가요 작곡가인 윤민석이 만든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일본 시위대가 부르고 있었다.

한글이 적힌 수첩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자니 기자에게 말을 거는 집회 참가자도 있었다. 도쿄 바로 옆 지바(千葉)에서 왔다는 하시모토 미에씨는 마치 60대처럼 보였지만 올해로 74살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어도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한국 드라마 좋아해요”라는 말을 먼저 꺼낸 하시모토씨는 “한국이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킨 것처럼 우리도 아베 총리를 퇴진시키려고 왔다”고 말했다. 하시모토씨를 둘러싼 사람들은 같은 동네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모두 70대 노인들로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다고 했지만 좀처럼 지친 기색이 없었다.

둘러보니 온통 노인들이었다. 3000명 넘는다는 집회 참가자 중 20~30대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웠다. 다섯 번씩 왕복하며 젊은 참가자를 찾아봤지만 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중 다음주에 40살 생일을 맞는다는 익명의 여성은 “친구와 문자를 하다가 와봤다”고 말했다. “모리토모학원 일이나 헌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얼마 전 있었던 후쿠다 준이치 재무성 차관의 성추행 사건에 분노해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동갑내기 친구는 연신 인터뷰를 거절하며 “잘 모릅니다”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도저도 아닌 세대

‘잘 모른다’는 것은 일본 젊은이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날 낮에 만난 7명의 일본 20대 청년들과의 대화에서는 자주 말이 끊겼다. “오늘 저녁에 나가타초에서 집회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왜 집회를 하느냐”며 반문하던 청년들이었다. 이들 중 지난 2월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제기됐던 ‘모리토모학원 특혜 의혹’에서 시작한 아베 정권의 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 청년은 두 명에 그쳤다. 관련 이슈를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려고 입을 연 23살 나가토 신이치씨는 중간중간 말문이 막히다가 결국 “잘 모르겠어”라고 대강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들에게 정치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혐한(嫌恨)이나 원전(原電)을 둘러싼 논란 같은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견을 피력하던 청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요즘의 관심사는 취미활동이나 휴식시간과 관련한 것이었다. 뒤늦게 약속에 합류한 26살 직장인 고마츠 나오키씨는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 하다 보면 별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난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야근을 무척 많이 하는데 그러려니 하고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사귄 게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라 지금은 솔로 생활에 더 익숙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외의 취미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직장인으로서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런 질문은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며 “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들의 일상도 평범했다. 학교와 집, 가끔씩 잡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빼면 한국의 대학생들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펙’ 쌓기와 여행, 취미활동 같은 경험으로 웬만한 직장인만큼 바쁜 한국의 20대 이야기를 하자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는 이케다 겐씨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에서 사는 건 무척 힘든 일 같아요. 경쟁이 심한데 열심히 해도 취직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대학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한 명 있어요. 일본어를 잘하는데 영어 공부를 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일본의 20대 역시 자기 경쟁력을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최근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3월 말에 졸업한 일본 대학졸업자 취업률은 97.6%에 달한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곳이나 취직할 수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자연히 일본의 20대에게는 ‘절실함’ ‘치열함’ 같은 단어는 흐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예 일본에서는 이런 일본의 20대를 일컫는 단어도 생겼다.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가 그것이다.

‘사토리’란 ‘깨달음’ ‘득도(得道)’를 뜻하는 일본어다. 마치 득도한 선인(仙人)처럼 현실세계의 치열함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게 특징이라 해서 사토리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본 20대는 확실히 그렇다. 각종 ‘바나레(離れ)’는 사토리 세대를 표현하는 신조어 중 하나다. 바나레란 ‘떨어지다’ ‘멀리하다’란 뜻의 하나레루(離れる)에서 비롯된 말로 ‘무언가에서 멀어지거나 하지 않는 현상’을 두고 신조어를 만들 때 접미사로 사용된다. ‘구루마바나레(車離れ)’라고 하면 자동차를 사지 않는 것, ‘테레비바나레(テレビ離れ)’라고 하면 TV를 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20대 청년들의 ‘바나레’가 사회현상으로 인식될 만큼 보편화되고 있다.

일본 내각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30세 미만 자동차 보급률은 49.2%로 60세 이상의 62.7%에 크게 못 미친다. ‘사케바나레(酒離れ)’ 현상도 눈에 띈다. 한 주류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20대 중 술을 거의 혹은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은 44.8%인데 60대는 34.6%였다. 해외여행도 별로 가지 않는다. 일본여행업협회(JATA)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체 여행객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20대 여행객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2010년 전체 여행객의 16.2%가 20대였는데 2015년에는 15.6%에 그쳤다. 한국의 경우 해외여행을 경험한 20대가 2010년 전체의 10.3%에서 2015년 12.4%로, 2016년 17.2%로 계속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수치다.

그러니까 사토리 세대는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는 욜로(YOLO)족이 아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해보고 잘 모르는 것에 관심을 갖는 힙스터(Hipster)도 아니다. 한동안 한국에서는 ‘3포 세대’니 ‘7포 세대’니 팍팍한 현실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 같은 생애 경험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삶을 표현하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사토리 세대와는 좀 다르다. 한국의 20대는 지난 정권의 탄핵과 조기 대선 과정에서 열성적으로 나서서 변화를 주도했지만 사토리 세대는 딱히 그렇지 않다. 정치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행동하는 것은 ‘남의 이야기’다. 남과 교류하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이 좋은데, 그게 딱히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일본 내각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사회의식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지금 일본 20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사회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의식이 옅은 것이 특징이다. 해마다 ‘애국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20대는 줄어들고 있다. 올해에 ‘애국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20대는 36.6%에 그쳤는데 2년 전에 비해 5.5%p나 줄어든 수치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도 확연히 낮다.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있다’고 응답한 20대 역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조금 혹은 자주 교류한다는 20대는 35.9%인데 2년 전 43.5%의 20대가 이웃과 친밀하게 지낸다고 답한 것에 비해 급격히 낮아진 수치다. 심지어 이웃 주민과 잡담은커녕 인사도 필요 없이 ‘교류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20대도 2018년 조사에서 13.8%나 나왔다.

마케팅 회사인 JR동일본기획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출퇴근과 등하교를 포함해 한 달 동안 외출하는 횟수를 따져봤을 때 20대는 평균 37.3회 외출한다고 밝혀 거동이 불편해지는 70대보다도 오히려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스스로를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은둔형 외톨이)라고 생각하는 2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4명 중 1명꼴이다. 보통 ‘하루 종일 집에 있다’고 응답한 20대도 35%로, 다른 연령대의 대다수가 외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아베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참가자의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photo 서경리 탑클래스 기자
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아베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참가자의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photo 서경리 탑클래스 기자

말하지 않는 세대

4월 19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서 있었던 집회에 20대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세대 특성 때문일 것이다. 20대는 굳이 저항하지 않는다. 나가타초를 가득 메운 60~70대 노인들과는 다르다. 1940~1950년대에 태어난 지금의 60~70대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段階) 세대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들은 1960~1970년대 일본에서 사회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를 이끌었던 세대기도 하다. 전공투(全共闘)로 대표되는 과격 학생운동 조직을 통해 공공기관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던 세대가 바로 지금의 60~70대다. 60~70대는 또한 일본의 경제 호황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1980년대 한창 호황이던 시절 산업현장 일선에 서 있던 세대가 지금의 60~70대다. 일본의 성장과 갈등, 쇠퇴까지 지켜본 이들 노인 세대가 한목소리로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고 노래하듯 구호를 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반면 지금 일본의 40~50대는 불운한 세대이기도 하다. 1960~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한창 경제활동을 할 시점에 ‘버블의 붕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긴 불황기를 겪어야 했다. 닛케이지수는 반토막이 나고 부동산 가격은 10분의 1로 떨어지는 끔찍한 불황을 겪으면서 이들은 한없는 무기력함에 빠졌다. 히키코모리나 오타쿠 같은 일본의 사회현상도 이즈음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보다 개인적이고 분절적인 일본 사회가 형성이 됐다.

지금 20대, 사토리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는 이들의 자녀들이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고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되던 시점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버블경제를 겪으면서 많은 가정이 해체됐는데 지금 사토리 세대는 이런 사회만을 겪어본 세대다. 이시다 히로시 도쿄대 교수는 2016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사토리 세대는 지난 20년간 오르지 않는 임금, 불안한 직업 안정성, 활력이 떨어진 소비활동만 보고 자랐다”면서 “부모 세대를 관찰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뤄내려고 하는 의지가 사라진 세대”라고 설명했다.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은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무엇인가를 더 이상 추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들은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방법을 배운다. 의외로 사토리 세대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인데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20대는 전체의 79.5%, 5명 중 4명에 달한다.

“아마도 무엇인가를 더 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에 유학을 갈 예정인 26살 마쓰시타 마이씨의 설명이다. “일본에 남아 있는 20대 친구들을 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생겨도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로 여기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나머지 거시적인 담론은 다른 누군가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명철(가명)씨는 이런 일본의 20대를 두고 ‘속으로 말하는 세대’라고 말했다. “20대 알바생들에게 ‘오늘 바빠서 추가 근무를 좀 해줘야겠어, 미안해’라고 말하면 표정에서는 ‘싫다’는 게 드러나는데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추가 근무를 합니다. 좀 부당한 일이 생겨도 딱히 항의하지 않고 항의할 줄 모르고 대신 SNS에 글을 올리죠. 굉장히 신경 쓰이고 눈치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말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는 일본의 미래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쓴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책에서 전 교토대 교수인 오사와 마사치의 말을 빌려 사토리 세대가 현재 삶에 만족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일본 사토리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 가능성 같은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4월 19일 중의원회관 앞에서 “일본을 위해” “미래를 위해”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헌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소리 지르던 노인들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베 총리를 퇴진시키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갑시다!” 목에 핏줄을 세우며 연설하던 정치인은 이미 노인 세대에 접어들었다. 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두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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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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