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한인타운 홍취안루의 서울플라자. ⓒphoto 백춘미
상하이의 한인타운 홍취안루의 서울플라자. ⓒphoto 백춘미

상하이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곳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으로 윤봉길 의거 등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이런 연고로 1992년 한·중수교 직후 노태우 대통령을 필두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모두 재임 중 상하이를 찾았다. 상하이 황푸구 마당루(馬當路)에 있는 상하이임시정부 청사에는 역대 대통령의 방명록이 걸려 있다.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역시 상하이를 찾아 방명록을 남길 것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지난 8월 15일, 광복 73주년이자 정부 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광복절 경축행사는 정작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하이에서 열리지 못했다. 박선원 전 상하이 총영사가 부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국정원장 상근특보를 맡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하이에서 광복절이면 총영사관 주최 경축행사가 열려 교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삼창했다. 정부 경축행사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광복절에는 주중 재외공관 중 상하이를 제외한 베이징, 광저우, 시안, 칭다오에서만 경축행사가 열렸다. ‘건국 100주년’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강조해온 정권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이다.

박선원 전 총영사는 지난 1월 취임 첫날, 한복 두루마기를 걸치고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의거 현장인 루쉰공원(옛 훙커우공원)을 찾았다. 당시 상하이 교민들은 내심 대선캠프 출신의 실세 총영사가 적어도 역대 총영사의 평균 임기 2년은 넘길 것으로 기대했다. 전임자인 변영태 전 총영사가 대통령 탄핵에 이은 정권교체로 8개월 만에 물러난 터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8개월 만에 갈린 총영사(변영태)의 뒤를 이은 총영사(박선원)마저 6개월 만에 자리를 비우고 나가자 사실상 상하이 교민들은 ‘멘붕’ 상태다. 6개월 총영사는 1993년 총영사관 개설 이래 최단명이다. ‘관시(關係)’의 나라 중국에서 잦은 인사 교체는 곧 신뢰의 위기다.

상하이를 비롯 장쑤성, 저장성, 안후이성 등 화동(華東)지방을 관할하는 상하이 총영사관은 잠시라도 비워둘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수도이자 제2 외교전선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상하이시 외사(外事)판공실에 따르면, 76개 국가가 상하이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1954년 폴란드가 처음으로 상하이에 총영사관을 개설한 이래 일본이 1975년, 미국이 1980년 상하이에 총영사관을 열었다. 이어 프랑스, 독일,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이 뒤를 이었고 한국은 1993년 15번째로 상하이에 총영사관을 개설했다. 늦었던 한·중수교(1992년)에 비하면 상하이 총영사관 개설은 상당히 빨랐던 셈이다.

박선원 전 상하이 총영사 ⓒphoto 뉴시스
박선원 전 상하이 총영사 ⓒphoto 뉴시스

외곽으로 밀려나는 한인타운

하지만 상하이에서 한국과 한인(韓人)들의 위상은 당시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한국 교민들과 중국 국적 조선족 동포들을 포함한 상하이의 전체 한인 숫자는 2013년 한때 9만여명을 넘었던 것이 지난해 7만8000여명으로 줄었다. 교민 3만2000여명을 비롯해 중국 국적 조선족 동포 4만5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는 한인 거주지만 봐도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하이 한인 사회의 현주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상하이는 크게 내환, 중환, 외환이라는 순환고속도로가 도시를 양파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다. 상하이의 지역 구분과 임대료는 대략 순환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안팎으로 나뉜다. 1993년 상하이 총영사관 개설 초기 형성된 한인타운은 내환 바깥쪽, 중환 안쪽에 있는 ‘구베이(古北)’란 지역이었다. 한국과 일본 등 영사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구베이는 상하이에서 첫 번째로 형성된 소위 ‘국제구역’이다. 지금도 상하이의 고급 주거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총영사관 개설 초기 한인들은 구베이에 오래전에 둥지를 튼 일본인들과 함께 1등 외국인 지위를 누렸다.

이후 집값과 임대료 부담에 한인타운은 중환 바깥쪽, 외환 안쪽의 ‘롱바이(龍柏)’란 지역으로 점차 옮겨갔다. 특히 롱바이 남쪽의 홍취안루(虹泉路) 양옆으로는 대규모 한인타운이 형성됐다. 서울플라자란 건물을 중심으로 한국 식당과 한국 마트를 비롯해 학원, 찜질방, 미용실, 당구장, 포장마차까지 들어서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교민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한국 대표팀 경기 때 거리응원전이 펼쳐진 곳도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부담에 한인들은 홍취안루에서도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지금은 외환 바깥쪽 ‘지우팅(九亭)’이란 지역에 새로운 한인타운이 형성됐다. 외곽이라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하고,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한 도심 출퇴근이 편하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변두리인 칭푸(靑浦), 자딩(嘉定)까지 한인들이 출몰하고 있다. 지난 주말 자딩을 찾았다가 한 슈퍼마켓 간판에 ‘한국 소주 맥주’라고 한글로 적힌 것을 보고 “여기까지 밀려왔나”란 비애가 들기도 했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상하이의 신개발지 푸둥(浦東)에는 롄양(聯洋), 비윈(碧雲) 같은 2세대 ‘국제구역’이 조성돼 있다. 일부 한인들이 이곳에 거주 중이지만, 전체로 보면 소수에 그친다.

한국학교의 위상을 보면 더욱 초라하기 그지없다. 상하이 한국학교는 2006년 신축 이전하면서 상하이 훙차오공항 외곽의 변두리에 자리 잡았다. 기존 한인타운과도 거리가 멀어 한국 학생들이 한국학교를 외면하고 국제학교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됐다. 같은 해인 2006년 푸둥의 한복판에 교사를 신축해 일장기를 휘날리는 일본인학교를 볼 때면 부럽기 그지없다. 일본인학교는 상하이의 노른자위 땅인 구베이와 푸둥에 각각 교사를 두고 있는데 일본 학생들은 대부분 이곳에 입학한다.

상하이 총영사는 베이징의 주중 한국대사(노영민)에 이은 주중 공관의 사실상 ‘넘버2’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잘 보존하고 한·중 간 현안을 뚫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하지만 사드(THAAD) 사태 이후 상하이의 한국행 단체관광은 여전히 금지되고 있다. 베이징과 산둥성은 한국행 단체관광이 허용되는 데 비해, 중국에서 해외여행 수요가 가장 많은 상하이는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전 세계 재외공관 중 한국행 여행비자 발급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정치에 민감한 베이징에서도 풀리는 한국행 단체관광이 상하이에서 안 풀리는 것은 분명 이상 신호다.

박선원 전 총영사의 후임 총영사는 내년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부담 역시 안고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지난 19대 대선 때 쟁쟁한 전 세계 재외공관들을 모두 제치고 공관별 재외국민 투표수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한국 정치에 민감하고 거는 기대 역시 크다. 하지만 2011년 ‘상하이 스캔들’ 이후 교민들이 되레 총영사관을 걱정하는 기현상은 계속되는 중이다. 이번만큼은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낙하산 총영사가 아닌 평균 임기 2년 만이라도 채울 수 있는 일 잘하는 총영사가 왔으면 하는 것이 상하이 교민들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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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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