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9일 베이징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주석.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9일 베이징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주석. ⓒphoto 뉴시스

2년 전인 2016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는 뉴욕이코노미클럽 연설 때 미 대선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리 총리는 당시 “대선은 미국 국내 문제로, (누가 당선될지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가 극히 제한돼 있다”며 “누가 당선이 되든 미·중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답을 했다.

리 총리는 말을 아꼈지만 당시 중국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더 낫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클린턴 후보는 국무장관 시절 ‘아시아 재균형 정책(Pivot to Asia)’을 내세워 사사건건 중국과 마찰을 빚었다. 중국은 그런 클린턴 후보보다는 통 큰 거래가 가능한 트럼프 후보를 선호했다.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뒤집고 당선되자 중국 네티즌들은 환호했고, 트럼프를 닮은 인형이 불티나게 팔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당시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과 환율 조작으로 미국의 국부와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다”면서 “당선되면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중국이 말을 듣지 않으면 모든 무역협정과 금융약정을 파기하겠다고도 위협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공약이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냉전시대 미·소 관계와 달리 미·중 관계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중국산 값싼 제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미국 사회가 버텨낼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장사꾼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염두에 두고 호가(呼價)를 높이는 정도로 해석했다.

실제로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은 2500억달러가 넘는 경제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보잉여객기와 퀄컴칩, 쇠고기, 식료품 등 미국산 제품을 대거 수입하고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에 투자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런 선물 보따리 공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이 일방적이긴 하지만 중국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장사 잘해서 이익을 본다고 탓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러섰다.

올 3월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중국의 대처법은 비슷했다. 지난 5월 협상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한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는 미국 측에 연간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와 농산물을 구입하는 방안을 제안해 무역 협상 공동성명을 끌어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 성명 소식을 전하면서 “미·중 무역전쟁 정전”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상황은 중국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중국 고립 겨냥한 트럼프 경제 동맹

미국은 지난 7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반기 500억달러까지 합치면 추과 관세 부과 규모가 2500억달러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치에 대해 중국이 반격을 예고하자 나머지 2670억달러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5000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사실상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 9월 말 캐나다, 멕시코와 기존의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대신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합의하면서 ‘참가국 중 한 나라가 다른 비시장 경제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다른 참가국은 6개월 내에 협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중국이 캐나다, 멕시코로 우회해 미국 시장으로 접근하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난 10월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끝냈고, 유럽연합(EU)과 벌이고 있는 무역 협상도 막바지 단계이다. 일본과도 양자 무역협상 개시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EU, 일본과 맺는 무역 협정에도 중국 봉쇄 조항을 넣으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중국의 무역 기반인 세계무역기구(WTO) 무력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다자간 무역기구인 WTO 대신 개별적인 국가와 양자 무역협정을 맺고, 이런 무역협정을 통해 중국이 미국과 그 동맹국 시장에 접근하는 루트를 점차 좁혀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올 상반기만 해도 우리나라와 EU, 일본, 캐나다 등 우방국들과 전방위로 무역 갈등을 빚었다. 중국 관료들 사이에 “미국이 왜 동맹국들과 연합해 중국을 공격하는 전략을 쓰지 않을까”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캐나다, 멕시코와 무역협정을 타결한 것을 계기로 동맹국과의 무역 갈등을 정리하고 타깃을 중국으로 단일화하는 추세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펑즈웨이(彭支偉) 난카이대 국제경제무역과 교수는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중국을 고립시켜서 견제하겠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중국 “선물로 매수 가능한 인물” 오판

미국이 무역전쟁을 전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중국 국내외에서는 중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오판해 잘못된 대응 전략을 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스콧 케네디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올 연초부터 중국 관료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하나같이 미·중 무역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며 “형세를 오판해 미국이 무역전쟁에 들어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가장 큰 오판은 그가 장사꾼 출신으로 일정 정도 양보하면 매수가 가능한 인물로 봤다는 점이다. 무역전쟁에 대한 그의 위협적인 언사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연극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월 초 “중국은 오래전부터 작은 전술적인 양보를 하는 것으로 중국에 분노하는 외국인들을 달래왔는데, 시진핑 주석 역시 사석에서 아주 친근한 트럼프 대통령도 그럴 것으로 잘못 봤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시 주석과 한 측근은 올봄 베이징을 방문한 외국 지도자와 가진 만찬에서 “두 나라 모두 잃을 게 많아서 무역전쟁은 더 커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연극을 하는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 내에서 무역전쟁 대응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여름 회의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된 지난 8월 초였다. 평소 중국의 종합 국력이 미국을 이미 추월했다고 하는 등 국수주의적 주장을 펴온 후안강 칭화대 교수가 동문 1000여명으로부터 해임 요구를 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중국 최고지도부를 호도하고 미국 등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엉터리 연구로 무역전쟁을 불렀다는 것이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책사로 최고지도층인 상무위원에 오른 왕후닝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가 현격히 줄었다. 선전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시진핑의 집권 모토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구상한 인물이다. 그의 실종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오판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외에도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 미·중 관계 전문가인 진찬룽 인민대 교수, 진이난 전 국방대학 전략연구소장 등이 대미 강경파로 꼽힌다.

개인 차는 있지만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위협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연극에 불과하며,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여서 무역전쟁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전해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으로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전술적 양보를 통해 충분히 설득이 가능하다고 봤다. 설혹 무역전쟁이 불붙더라도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10% 이하여서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중국 내에서는 중국 최고위층의 자문 역할을 하는 이들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결국 무역전쟁의 전면적인 확대라는 비극을 불렀다는 시각이 적잖다.

워싱턴 정가 변화 못 읽어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7월 말 시진핑 체제의 중국 싱크탱크에 대한 압박이 미국에 대한 중국의 잘못된 판단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2013년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 당국은 강도 높은 반부패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중국 내 대학교수와 싱크탱크 연구자들의 미국 방문을 통제했다. 또 당내 규율과 사상 통제가 강화되면서 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펴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들끓고 있는 미국 내 반중 분위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무역전쟁 위협 발언도 그저 허세나 엄포 정도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미 정부 정책자문역으로 일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SCMP에 “중국 고위층과 연구자들은 워싱턴 D.C.나 뉴욕의 대중 정서가 얼마나 나빠졌는지 깨닫지 못하고 그저 트럼프가 엄포를 놓고 있다는 생각만 했고, 중간선거가 끝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봤다”며 “완전히 틀린 인식이고 상황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의 한 연구자도 “중국 측 상대역들의 미국 방문이 쉽지 않고 오더라도 1주일 이내의 짧은 방문이어서 길게 토론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중국 측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데는 이런 점이 부분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중국 측이 활용해온 전통적인 대미 소통 채널에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등과 접촉해 미국 상황을 파악해왔는데, 이들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과 만나서 의견을 듣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미·중 간 불공정 무역을 거론하면서 미·중 무역 역조 문제, 중국의 지적재산권 탈취, 시장 접근을 미끼로 한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 요구, WTO 체제의 문제 등을 다양하게 언급했고 개혁을 공언했다. 그리고 집권 후에는 예고한 대로 차곡차곡 무역전쟁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충분히 분석하고 준비를 거쳐 무역전쟁에 돌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책을 내놓는 등 무역갈등에 대해 체계적인 준비를 못 했다고 SCMP는 보도했다. 왕후이야오 중국과세계화센터 이사장은 “미·중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양국 무역 통계와 미국 국내 관련 법규, 미국 산업구조 등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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