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폐장한 쓰키지시장은 쥐들에게 최적의 서식지였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6일 폐장한 쓰키지시장은 쥐들에게 최적의 서식지였다. ⓒphoto 뉴시스

“도쿄 도심을 가로지르는 스미다강을 헤엄쳐 쥐들이 집단 대탈주극을 벌일 수도 있다.” 지난 10월 15일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쥐 방역업체 전문가의 경고이다. 일본 도쿄의 최대 수산물시장인 쓰키지시장(築地市場)이 지난 10월 6일 폐장한 이후 도쿄 도심에 쥐 비상이 걸렸다. 쓰키지시장에는 1만여마리의 쥐가 서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상을 훌쩍 넘을 수도 있다.

‘도쿄의 부엌’으로 통했던 쓰키지시장은 쥐들에게도 먹이가 넘치는 부엌이었다. 시장 해체와 함께 집을 뺏긴 쥐들이 대이동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도쿄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쥐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인근에 있는 긴자, 신바시 등 음식점 밀집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시의 쥐 소탕 작전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벌써 쓰키지시장에서 수백m 떨어진 음식점 등에 쥐가 출몰한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주간현대’에 따르면 동긴자 7초메(丁目)에 있는 인도 요리 전문점 사장은 최근 긴자 7·8초메 쪽에서 작은 고양이만 한 크기의 쥐들을 수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겨울에도 따뜻한 하수도가 있고 음식점에서 나오는 잔반 등이 풍부한 긴자의 경우 쥐가 번식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쓰키지시장 폐쇄로 인해 긴자 지역으로의 대량 유입이 충분히 예상될 뿐만 아니라 인근 아카사카, 롯폰기, 마루노우치 등 번화가로의 확대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도쿄시에서 스미다강 주변에 쥐덫을 설치해 강을 통한 탈출을 막으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한 실험에 의하면 잡식성인 시궁쥐의 경우 4시간은 거뜬하게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쥐들이 스미다강을 통해 탈출을 시도할 경우 강물의 흐름을 타고 도쿄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도 있다. 도쿄시는 쓰키지시장의 출입로 등에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벽을 설치해 쥐의 탈출을 막고 있지만 이는 쥐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쥐 확산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도쿄시의 쥐 소탕작전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도쿄시는 지난 5월부터 3200만엔의 예산을 투입해 끈끈이 4만장, 쥐약 300㎏, 쥐덫 600여개를 설치했다. 쓰키지시장 주변 주민들에게도 1세대당 끈끈이 10장씩을 배포했다. 도쿄시는 9월까지 1800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2020년 쥐띠해 올림픽 어쩌나

일본 내 쥐 전문가들은 이런 구시대적 방법으로는 쥐 소탕은커녕 오히려 쥐들을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는 꼴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쓰키지에 사는 쥐는 크게 두 종류이다. 곡물, 야채를 먹는 곰쥐와 잡식성의 시궁쥐이다. 배수관, 하수도를 휘젓고 다니는 시궁쥐는 병원균을 옮기는 주범이다. 큰 것은 25㎝까지 자라고 성질이 포악하다. 땅파기에도 능숙하고 추위에 강하다. 동물성 단백질을 좋아해 먹이가 풍부한 쓰키지시장이야말로 시궁쥐에게는 최적의 서식지였다.

곰쥐도 문제다. 곰쥐는 영리하고 경계심이 많아 끈끈이나 쥐약이 안 통한다. 쥐약에도 내성이 생긴 ‘수퍼쥐’로 진화했다. 더구나 도쿄시에서 이번에 살포한 쥐약은 독성이 약한 약이다. 쥐들이 눈치채고 안 먹을 것을 예상한 것인데 곰쥐에게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쥐는 1년에 5~6번 출산을 한다. 시궁쥐는 한 번에 새끼를 10마리 전후, 곰쥐는 5마리를 낳는다. 생후 3개월이면 번식이 가능하다. 도쿄시의 작전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도쿄 시민들은 2020년 쥐띠해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이 쥐가 활보하는 올림픽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쥐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서식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 워싱턴 등 미국 대도시도 도심을 점령한 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최근 첨단기술을 도입, 서식처를 공격해 쥐 소탕에 나서고 있다. 쥐약에 발광제를 넣으면 이것을 먹은 쥐의 똥에 발광체가 섞여서 나온다. 이 발광체를 가시광선으로 추적해 서식처를 찾는다. 그 다음 쥐들이 자는 낮에 서식처에 드라이아이스를 투입하면 거기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에 의해 쥐들은 집단 질식사하게 된다. 쥐약도 곰쥐용으로 치사율이 높은 독극물을 사용하는데, 이때 체내출혈로 죽게 만들어 다른 쥐가 쥐약을 먹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경계심이 많은 곰쥐를 안심시키기 위해 냄새까지 고려해서 만든다. 이런 첨단기술을 동원하지 않는 한 도쿄 도심에서 쥐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쓰키지시장은 1935년 2월 개장했다. 당시 철도가 물류의 중심이었던 만큼 철도역이 시장 안에 설치되면서 하역 장소가 바로 수산물 경매장이 됐다. 1940년대 전시체제에는 배급할당제를 실시, 경매가 중단됐다. 1945년부터는 연합군 총사령부에 접수돼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 1950년 경매가 다시 부활됐다. 수송수단이 철도에서 트럭으로 바뀌면서 철도 수송은 1987년 1월로 끝났다.

1980년대 후반~1990년 호황 때 이곳에서 하루에 취급하는 수산물은 2800t, 하루 매출은 26억엔에 달했다. 이후 버블 붕괴와 직접 구매하는 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물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도쿄시가 시장 이전을 검토한 것은 2001년, 실제 도요스시장으로 옮기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 쓰키지시장은 그동안 시설 노후화와 위생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외벽이 없다 보니 에어컨이 있어도 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쥐뿐만 아니라 시장 안에까지 날아 들어오는 새들도 골칫거리였다. 철도 위주로 지어진 탓에 트럭 수송도 불편했다. 하루 2000여대씩 차들이 이동하면서 매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새 명물 도요스시장의 또 다른 쥐

쓰키지시장이 확장 이전한 도요스시장(豊洲市場)은 지난 10월 11일 문을 열었다. 개장 당일 아오모리현에서 잡은 214㎏짜리 참다랑어가 경매가 428만엔(4300만원)에 낙찰되면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쓰키지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600여개 수산물, 채소상들이 고토(江東)구에 있는 도요스시장으로 이사를 하는 데만 4일이 걸렸다. 도요스시장은 40만7000㎡(12만3000평) 규모로 쓰키지시장의 1.8배에 달하고 최첨단을 자랑한다.

그런데 시장 이전과 함께 쓰키지시장을 더럽히던 또 다른 ‘큰 쥐’가 도요스시장을 벌써 접수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큰 쥐는 수산물의 불법거래를 주무르고 있는 야쿠자를 뜻한다. 최근 잡지 ‘실화시대 BULL’의 편집장인 스즈키 도모히코(鈴木智彦)는 ‘사카나토 야쿠자’라는 책을 내고 그동안 금기시해온 시장의 비리를 고발하고 나섰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 전체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복의 45%인 900여t이 불법 채취된 전복으로 40억엔에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해삼, 대합까지 포함하면 불법 채취 수산물의 규모가 100억엔을 넘는다. 불법 채취된 고급 어패류의 유통 뒤에는 야쿠자가 있다는 것. 스즈키씨는 후쿠시마원전 사고 후 핵발전소와 야쿠자의 연계를 주장해 일본 내에서 화제를 불렀던 인물이다. 스즈키씨가 잠입취재를 통해 밝혀낸 검은 고리는 쓰키지시장에서 도요스로 이어지면서 야금야금 시장을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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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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