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photo 뉴시스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5일,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예멘 내전에 참전했다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도 리야드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왕세자의 얼굴을 보고 감동한 일부 병사들은 그에게 달라붙어 껴안기도 했다. 부상 군인들과 친밀하게 스킨십을 나누는 왕세자의 모습은 방송국 카메라를 타고 사우디 전국에 퍼졌다. 사우디의 절대권력이라던 왕세자의 권위는 여전히 빛나는 듯 보였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게 10월 2일이었다. 그리고 MBS는 이 잔혹한 살인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사우디의 설명을 믿지 못하는 이들의 의문은 계속되지만 사우디 미래권력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병사와 껴안은 왕세자는 보란듯이 텔레비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교체냐 권력 분담이냐 죽음이냐

MBS의 미래는 그의 웃음처럼 앞으로도 문제 없을까. 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아보면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카슈끄지 사건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다. 카슈끄지 사건은 결국 정리될 것이고 MBS는 왕세자로 1인 권력을 유지하며 사우디의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끌고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대사를 지낸 투르키 알 파이살 왕자는 이런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 원로 정치인인 그는 “권력 승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잘못 판단했다. 왕세자에 대한 비판이 서구에서 많을수록 그는 사우디 내부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교체’다. 왕세자 자리를 다른 왕자에게 맡길 수 있다. 선례도 있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현 국왕은 2015년 1월 권좌에 오른 뒤 두 번이나 권력승계자를 해임했다. 형제 상속을 원칙으로 삼던 2015년 1월, 살만 국왕의 다음을 잇는 자는 배다른 동생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72) 왕세제였다. 하지만 3개월 뒤인 4월, 그는 자리에서 밀려났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압둘아지즈(59)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역시 2017년 6월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이때 등장해 왕세자 자리를 받은 이가 국왕의 아들인 MBS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정보관리책임자를 지낸 브루스 리델은 “많은 왕자들이 MBS 대신 다른 왕자나 가족이 그의 자리에 앉을 때가 됐다고 국왕에게 귀띔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을 설득하는 논리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MBS가 사우디 왕국에 큰 위험이 되고 있다.”

물론 교체라는 선택지가 실현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사우디 전문가인 텍사스A&M대의 그레고리 고스 교수는 “많은 사우디 내 왕족들이 MBS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막을 만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MBS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왕실 내 지배적 여론이다.

국부이자 초대 국왕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이 낳은 40여명의 자녀는 이제 수천 명 규모의 왕족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왕가의 의견을 모을 시스템이 필요했다. 2006년 현 국왕은 왕실충성위원회(Allegiance Council)를 만들었는데 35명의 고위 왕족들은 여기에서 차기 왕권 계승자를 뽑을 수 있다. MBS도 2017년 이들이 뽑았는데 당시 반대표를 던진 왕족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스 교수는 “왕족들은 MBS의 억압적인 방식에 대해서 내게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 세력의 힘을 모아 도전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MBS의 권력을 분담하는 방법이다. 고스 교수는 칼리드 알 파이살 왕자가 사우디의 외교를 담당할 수 있다고 본다. MBS와 다른 파벌에 속한 인물로 카슈끄지 사건이 벌어지자 국왕은 터키에 보낼 특사로 파이살을 선택했다. 국왕의 친동생이자 유일한 생존 형제인 아흐마드(76) 왕자가 10월 30일, 수개월 만에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사우디로 돌아온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아흐마드는 MBS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로이터통신은 “아흐마드는 2017년 MBS를 왕세자 자리에 앉힐 때 반대했던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국왕과 정치적 갈등을 빚어왔지만 왕실의 신뢰는 두터운 편으로 경험이 많은 왕족이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는 MBS가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2일 워싱턴에서 열린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추모식.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일 워싱턴에서 열린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추모식. ⓒphoto 뉴시스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세계가 알게 됐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있어서는 안 될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MBS의 죽음이다. 이미 파이살 국왕(1964~1975 재위)에게 한 번 벌어진 일로 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1965년 텔레비전 방송 송출을 시작하고, 사우디 여성을 위한 교육시설을 만들면서 개혁적 국왕으로 평가받던 파이살은 와하비즘(이슬람 복고주의) 신봉자들과 자주 충돌했다. 1975년 파이살 국왕은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총구를 겨눈 이가 개혁정책에 반발한 왕가의 일원으로 그의 조카였다.

제시한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이 현실이 될지는 모른다. 다만 ‘변화’가 동반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우디 왕가와 가까운 한 자문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사우디 왕가의 원로들이 지금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는 독단적 결정을 배제하고 그동안 사라졌던 사우디식 ‘합의’를 재등장시키면서 이뤄진다.

사우디 왕족인 사우드가에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합의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하나는 왕가의 합의, 다른 하나는 종교계와의 합의다. 그런데 MBS는 이 모든 걸 배제해왔다. 지난해 11월 초 사우디 왕자 11명 및 전·현직 장관 수십 명을 부패혐의로 체포한 ‘리츠칼튼 사태’는 왕가의 일원을 숙청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례로 왕가의 합의를 무시한 경우다. 종교계 역시 여성의 운전과 스포츠 관전을 허용하는 왕세자의 개혁 정책으로 인해 철저히 배제당했고 침묵했다. 두 축의 합의를 무시한 채 이뤄졌던 MBS식 사우디 통치는 소멸시기가 다 된 셈이다. 고스 교수는 “왕세자는 이제 1개월 전처럼 사우디를 다스릴 순 없다. 이는 결국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우디를 지지해온 미국 등 서방국가에 생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카슈끄지 사건을 계기로 개혁적인 이미지를 덧씌웠던 MBS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세계가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 권력교체기마다 왕좌의 난을 겪은 사우디는 외부의 우려 속에 변화를 꾀하며 조용히 갈등을 조정해온 경험이 있다.

김회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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