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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 통신] 대우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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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1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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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통신]대우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상하이 최고층 프로젝트는 지금?

글·사진 백춘미  통신원 

▲ 상하이 도심의 옛 대우비즈니스센터 개발 부지. 현재 홍콩의 부동산 기업이 복합개발 중이다.
상하이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한국 브랜드는 단언컨대 ‘대우’다. 상하이 푸둥(浦東)의 시내버스 대부분은 대우 브랜드를 달고 다닌다. 과거 상하이 버스시장은 스웨덴 볼보의 중국 현지 합작사인 선워(申沃)버스가 생산하는 볼보버스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볼보버스는 여전히 많지만 대우버스는 상하이 시내버스가 전기버스로 교체되는 호기를 틈타 공급을 대폭 늘렸다. 지금까지 누적공급 대수만 보급된 전기버스의 절반가량인 3000대 이상이라고 한다. 덕분에 독일 폭스바겐, 미국 GM이 꽉 잡고 있는 상하이에서 좀처럼 힘을 못 쓰는 현대기아차 대신 대우버스가 한국 대표선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매일 버스를 이용하는 상하이 시민 가운데도 ‘대우=한국’이란 인식이 제법 있다. 한때 한국 대표 기업이었던 대우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잘못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우의 브랜드 파워가 중국에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사실 상하이 대우버스는 김우중 회장의 ‘대우’와 직접 연관은 없다. 상하이 대우버스는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대우차에서 떨어져나간 대우버스의 후신인 자일대우와 상하이 현지 버스제작사인 완상(萬象)자동차의 합작회사인 ‘완상대우’가 생산한 버스다. 엄밀히 따지면 자일대우의 대주주인 영안모자가 만들어낸 버스다.
   
   하지만 상하이 대우버스 성공의 토대를 김우중 회장이 닦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김우중 회장이 한창 ‘세계경영’을 주창하던 1994년 대우는 중국 남부 광시(廣西)자치구 구이린(桂林)에 버스 생산공장을 만들었다. 영안모자는 2002년 대우버스를 인수하면서 구이린 대우버스를 함께 인수했다. 상하이 버스시장 진출을 위한 완상자동차와의 합작도 구이린대우를 내세워 합작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구이린대우가 없었다면 상하이의 대우버스 역시 불가능했다.
   
   김우중 회장이 ‘세계경영’을 주창하던 시절 대우의 위세는 중국에서도 정말 대단했다. 한국 대기업 중 중국 진출도 가장 빠르다. 1987년 푸젠성 푸저우에 냉장고 합작사를 세워 한국 기업 최초로 ‘죽(竹)의 장막’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중국의 참가를 이끌어냈고, 1992년 한·중수교를 체결하는 데도 음으로 양으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대우가 상하이 최고층 빌딩을 세울 뻔한 적도 있다. 1995년 상하이에 89층 대우비즈니스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다. 1992년 중국, 독일과 합작으로 베이징의 옌샤중심(루프트한자센터) 복합개발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 간판을 걸고 도전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옌샤중심은 지금도 대우건설이 25% 지분을 갖고 있다. 김우중 회장이 낙점한 곳은 당시 허허벌판이었지만 지금은 상하이의 유명 백화점과 쇼핑몰이 몰려 있는 쉬자후이 일대였다. 현재 쉬자후이 최대 쇼핑몰인 강후이헝롱광장 바로 뒤편이 대우가 낙점한 땅이었다.
   
   1995년에는 상하이 시내의 일본계 호텔 화원반점(오쿠라 가든호텔)에서 김우중 회장과 윤해중 초대 상하이 총영사 등 한국 측 인사와 천량위(陳良宇) 당시 상하이 부서기 등 중국 측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계약식도 체결됐다. 천량위는 당시 중국 최대 정치파벌인 ‘상하이방’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상하이 시장, 상하이시 당서기까지 올랐다가, 후진타오 총서기 집권 때 상하이시 최대 비리스캔들인 사회보장 공금유용 혐의로 숙청된 거물이다. 마침 김우중(金宇中)의 대우(大宇)와는 이름에 같은 ‘집 우(宇)’ 자가 들어간 공통점도 있었다.
   
   1995년 당시는 황푸강 동쪽의 신개발지 푸둥에 마천루가 들어서기 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던 푸둥의 88층, 높이 420m의 진마오타워도 완공(1999년) 전이었다. 일정대로 추진됐다면 대우비즈니스센터는 한동안 상하이에서 최고층 빌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 대우비즈니스센터 건립은 터파기까지 들어갔다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이은 대우그룹의 해체로 무산됐다. 결국 한동안 나대지로 방치되던 이 땅은 2005년경 다시 상하이시로 회수되기에 이르렀다.
   
   
   주인 바뀐 대우비즈니스센터
   
   상하이 도심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고 불리던 이 땅은 현재 홍콩의 부동산 재벌 순훙카이(新鴻基)그룹이 사들여 ‘국제무역센터(ITC)’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이다. 지난 1월 7일 해당 부지를 찾아가 보니 상하이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너른 부지 위에 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순훙카이 측에 따르면, 해당 부지에는 높이 370m와 220m의 초고층 빌딩 2개동을 비롯 오피스, 특급호텔, 쇼핑몰이 함께 들어선다. 황푸강 서쪽 푸시에서는 66층, 높이 320m의 바이위란(白玉蘭)광장이 최고층이었는데, 370m의 ITC가 들어서면 푸시 최고층의 자리가 바뀐다.
   
   당시 김우중 회장은 상하이에 대우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해 동아시아 지역본부로 삼으려고 계획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푸둥 개발에 참여하는 지렛대로 삼으려 한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은 이런 길을 걸었다. 당시와 지금의 상하이 땅값을 비교해보면 노른자위 땅에 복합개발을 통해 얻는 개발수익은 가히 천문학적이었을 것이다. 덩달아 한국 기업의 위상도 빌딩 높이만큼 높아졌을 것이다. 전 세계 초고층빌딩 경연장인 상하이에서 한국계 빌딩은 푸둥 황푸강변의 31층 미래에셋타워 정도가 고작이다.
   
   아쉽게도 중국 대륙 전역에 걸쳐 있던 대우와 김우중 회장의 흔적은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인 광시자치구 구이린(桂林)에 있던 대우호텔은 쉐라톤호텔로 간판이 바뀌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의 대우호텔은 다종(大宗)호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996년 개관한 옌볜대우호텔은 국내 호텔의 첫 해외진출 사례였다. 호텔 바로 옆의 ‘대우로(路)’라는 길 이름과 인근 대우화원 아파트만 대우의 흔적을 말해준다. 중국 측 백두산(장백산) 바로 아래에 있던 장백산대우호텔은 이미 헐리고 없다.
   
   산둥성 옌타이(烟台)의 대우차 엔진공장은 중국 2위 자동차 회사 ‘상하이GM’의 주요 생산거점이 됐다. 옌타이 대우중공업 건설기계공장은 두산인프라코어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여전히 대우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은 지난해 비슷한 이름의 대유그룹에 인수된 톈진(天津)의 대우전자 전자레인지 공장과,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조선해양이 투자한 옌타이 선박블록공장 정도다.
   
   최근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한때 ‘킴기즈칸’이라고 불렸던 세계적 기업가가 치매 증상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훗날 삼성, 현대차, SK, LG 등이 중국에 경쟁적으로 투자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을 보면, 당시 대우가 설정한 방향은 옳았다. 단지 남보다 시대를 앞서간 ‘선발자의 불이익’에 발목을 잡혔던 셈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치던 김우중 전 회장이 얼른 쾌차해 조금이나마 명예회복을 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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