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살다 보면 북·중 관계의 공고함에 놀랄 때가 많다. 최근 옛 상하이역을 개조한 상하이철로박물관을 찾았다가 1975년 4월 난징(南京)의 창장(長江)대교를 함께 시찰하는 김일성과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1968년 준공한 난징의 창장대교는 중국이 최초로 자체 기술로 설계 가설한 철도로 복층식 교량이다. 해당 구간에 창장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바다만큼이나 너른 창장은 열차 페리로 건너야 했다. 뒷짐을 지고 호탕하게 웃는 김일성을 당시 부총리 덩샤오핑이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수행하는 희귀사진도 놀라웠지만, 1975년에 김일성이 평양에서 난징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김일성 역시 난징의 창장대교를 보기 위해 전용열차 편으로 베이징을 거쳐 난징까지 왔을 터였다. 1975년 당시는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북한보다 중국의 철로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다.

1975년 덩샤오핑과 난징 장강대교를 찾은 김일성. ⓒphoto 상하이철로박물관
1975년 덩샤오핑과 난징 장강대교를 찾은 김일성. ⓒphoto 상하이철로박물관

2001년 1월 상하이를 방문한 김정일. ⓒphoto 조선닷컴
2001년 1월 상하이를 방문한 김정일. ⓒphoto 조선닷컴

지난 1월 10일 방중기간 베이징 동인당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정은. ⓒphoto 노동신문
지난 1월 10일 방중기간 베이징 동인당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정은. ⓒphoto 노동신문

지난 1월 7일 전용열차로 베이징을 찾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訪中)은 집권 후 네 번째로 단행된 행사였다. 김정은은 2018년 3월 1차 방중을 통해 국제 외교무대에 첫 데뷔한 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중국을 찾았다. 김정은의 네 차례 방중 가운데 특이할 만한 점은 부인 리설주가 2차 방중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차례 방중 모두 동행한 점과 2018년 5월과 6월 단행된 2차 방중과 3차 방중 때 전용열차가 아닌 전용기를 이용한 점이다. 전용열차를 줄곧 고수했던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비해 나아진 듯 보이지만 방문 내용만 보면 과거에 비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가장 아쉬운 점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남부 경제도시의 방문이 네 차례 방중 가운데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김정은의 네 차례 방중 가운데 세 번은 모두 수도 베이징을 찾는 일정이었다. 지방도시는 2차 방중 때 랴오닝성 다롄을 찾은 것이 전부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첫 번째로 중국을 찾은 외국 정상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김일성은 중국을 40여차례나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베이징을 비롯 난징, 다롄, 하얼빈, 시안, 청두, 광저우 등 김일성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집권 전 1차례를 비롯 집권 후 8차례 등 도합 9차례 방중을 한 김정일 역시 전용열차를 타고 상하이를 비롯해 난징, 양저우, 광저우, 선전 등 중국 남부까지 내려왔다. 국제무대에 갓 데뷔한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아직 중국을 경험한 폭과 깊이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북·중 간 정상회담과 동시에 진행되는 현지 시찰도 점차 구색 맞추기 식으로 변해가는 듯한 모양새다. 김정은의 4차 방중 때 화제가 된 것은 베이징 자금성 옆 왕푸징의 특급호텔인 베이징반점에서 시진핑 주석 부부와 오찬을 갖고 유서 깊은 중의약 기업인 베이징 동인당(同仁堂) 생산공장을 시찰한 것 정도다. 김정은의 1차 방중 때는 베이징 중관촌 중국과학원을 찾았고, 3차 방중 때는 베이징 농업과학원, 궤도교통 지휘센터를 찾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중요한 곳들일지 모르나, 국제사회가 크게 의미 부여를 할 만한 곳들은 분명 아니었다. 2차 다롄 방중 때는 아예 김정은 본인의 경제시찰 일정은 없었다.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

돌이켜보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역대 방중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2001년 1월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이었다. ‘천지개벽’ 발언으로 두고두고 화제가 된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은 그야말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은 전용열차 편으로 상하이로 곧장 직행했다. 상하이의 국빈관인 서교빈관에 여장을 푼 김정일은 상하이 인민광장에 있는 도시계획전시관, 푸둥의 동방명주탑과 당시 상하이 최고층 빌딩이던 88층 진마오타워를 둘러봤다. 산업시설로는 상하이 바오산강철을 비롯 상하이GM의 뷰익자동차 생산라인, 알카텔-상하이벨의 통신장비 생산공장, 화훙(華虹)NEC의 반도체공장, 순차오(孫橋)현대농업개발구 등을 직접 찾았다. 푸둥의 증권거래소는 3박4일의 방문기간 중 이례적으로 2차례나 찾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당시 김정일이 둘러본 현장은 김정은이 둘러본 동인당 같은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큰 곳들이다. 우선 상하이 바오산구(區)에 있는 바오산강철(현 바오우강)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로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기술지원을 받아 태어난 중국 최대 철강사다. 2018년 기준 조강생산량 세계 2위 철강사다. 상하이 푸둥 진차오(金橋)수출가공구에 있는 상하이GM은 상하이차가 미국 GM과 합작으로 세운 중국 2위 자동차 회사다. 알카텔-상하이벨은 중국과 프랑스가 합작한 통신장비 제조회사다. 외국계 기술기업들이 몰려 있는 푸둥 장장(張江)고급과학기술원구(하이테크단지) 내 화훙NEC는 중·일 합작 반도체 회사이고, 순차오현대농업개발구는 중국 최초의 현대식 농업개발구다. 상하이 푸둥의 증권거래소는 1990년 문을 연 중국 최초 증권거래소이자 중국 최대 주식시장이다.

2001년 새해 벽두에 단행된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은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일정을 마련한 중국 역시 이웃국가이자 사회주의 우방인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의지가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김정일을 상하이에서 영접하고 일정을 함께한 중국 측 인사는 상하이시장, 당서기 출신으로 199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과 같은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였다. 북한의 노선 전환에 대한 기대는 김정일이 2006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할 때까지는 줄곧 유지됐다.

결론적으로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은 현장학습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아들 김정은의 방중 양태를 보면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설 일말의 의지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 역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게 한다.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북한 김정은의 후견인을 자처해 미국에 맞서는 카드의 하나로 활용하려는 태도만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조만간 열린다면 김정은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회담 결과를 중국과 공유하기 위해 다시 중국을 찾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면 김정은을 재차 베이징으로 초청하는 대신 상하이나 선전 같은 남부의 경제도시로 초청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전용기를 이용해 두 차례나 중국을 찾았으니 중국 남부 방문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의 5차 방중은 상하이행(行)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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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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