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地區)는 ‘활화산’이다. 뜸하다 싶으면 쿵 하고 터지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아궁 화산 같다. 가자 주민들은 지진·쓰나미에 통곡하며 좌절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일본인 같기도 하다.

‘가자 화산’은 얼마 전에도 어김없이 불꽃을 뿜었다. 지난 1월 6일 이스라엘 헬기가 가자지구 하마스 군사 시설 2곳을 공습한 것이다. 앞서 이날 오전 하마스가 고무풍선에 폭발장치를 장착해 날려보낸 것에 대한 보복 공격이었다. 하마스는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으로 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로 최근 시위를 벌였다.

헬기 공습을 받은 하마스는 다음 날인 7일 오전 3시18분 로켓을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해안 도시인 아슈켈론을 향해 발사했다. 캄캄한 밤하늘에 하마스 로켓 두 발이 노란 줄을 그으며 아슈켈론 시내를 향했다. 이대로 가면 인명·시설 피해는 불가피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미사일 두 발이 빠르게 날아가 하마스 로켓 두 발을 격추했다. 날아가는 돌멩이를 돌멩이로 맞혀 떨어뜨린 셈이다. 이로써 아슈켈론은 하마스 공격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아이언돔(Iron Dome)’ 덕분이었다. 아이언돔의 레이더가 날아오는 하마스 로켓의 이동 예상 경로를 분석한 뒤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자 발사대에서 요격 미사일을 쏴 격추했던 것이다. 이름대로 ‘강철지붕’ 역할을 해 적의 미사일 공격을 무력화했다. 적을 옆에 두고도 아슈켈론의 일상이 유지되는 이유다.

이스라엘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이 무기는 누구의 것일까.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첨단기술이 필요한 ‘MD 시스템’을 미국이나 러시아로부터 거액을 주고 사서 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여러 걸프 아랍국가는 미국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수입하고 있다. 예멘 반군 ‘후티’나 이란의 공습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사드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도 미사일 막아내는 ‘강철지붕’

이스라엘 골란고원에 배치된 아이언돔. ⓒphoto 뉴시스
이스라엘 골란고원에 배치된 아이언돔. ⓒphoto 뉴시스

이스라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이언돔’이 자기네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 800만명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이 무기를 독자 개발했다. 누가 어쩌다 어떻게 이걸 만든 걸까.

때는 불과 15년 전인 2004년, 이스라엘 국방부에 인사가 났다. 다니엘 골드 준장이 조사개발국 국장이 됐다. 그는 수학박사였다.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그는 MD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수개월간 야근을 밥 먹듯 하며 개발 초안을 짰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섰다. 2005년 3월 그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의 최고책임자 일란 비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란, 단거리 MD 시스템을 같이 만듭시다.”

비란으로선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무기를 개발하자는 제안을 조사개발국장으로부터 직접 받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연히 국방부 내 결재 라인을 거쳐야 할 사안이었다. 골드는 이런 절차를 건너뛰고 방산업체에 본인 마음대로 접촉해 무기 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골드도 이런 규정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규정대로 절차를 다 거쳤다간 MD 개발은 시작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MD는 개발하는 기간이 길고 비용도 비싸다. 웬만한 나라들이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유다. 수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세금도 아끼고, 도입한 즉시 실전 배치할 수 있다. 운용 기술만 배우면 된다.

골드는 라파엘 설득 작업에 나섰다. “일단 해봅시다. 가능성을 만들어놓고 장관, 총리께 말씀드립시다. 우리만의 MD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무기 한번 들이면 영영 그것만 써야 합니다. 로켓 맞을 걱정 없이 우리 애들 살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라파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아이언돔’이란 이름이 될 이스라엘의 단거리 MD 시스템의 개발 프로젝트가 ‘잉태’되는 순간이다.

이로부터 1년5개월이 지난 2006년 8월 골드는 국방부 장관을 찾아갔다. MD 개발 건을 보고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해 7월 14일 발발한 2차 레바논전쟁이 한 달 만인 8월 14일 끝난 직후였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에 큰 피해를 봤다. 이스라엘인 44명이 사망했다. 로켓 공격을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골드는 장관을 찾아갔던 것이다.

골드는 운이 좋았다. 당시 장관 아미르 페레츠는 가자지구 바로 옆 도시 스데롯 출신이었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많이 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나중에 스데롯 시장이 됐다. 누구보다 MD의 필요성을 잘 알았다.

페레츠는 골드의 보고를 받고는 “당장 총리에게 보고해 최종 승인을 받아내자”고 했다. 얼마 뒤 페레츠는 골드를 데리고 총리와 군 전문가 앞에 세웠다. MD 개발안 발표를 시킨 것이다. 하지만 발표 후 분위기는 싸늘했다.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나왔다. 이어 “개발비가 너무 비싸다” “완성하는 데 10년 넘게 걸리는데 그 사이에 헤즈볼라가 또 공격하면 어떡하느냐” “당장 미 MD를 들여오면 바로 실전 투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개발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골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석 달 뒤인 11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라파엘에 연락해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에게 이런 지시를 할 권한은 없었다. 라파엘도 이를 따를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일단 골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페레츠도 골드의 손을 잡아줬다.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페레츠는 사절단을 미국에 급파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 측에 접촉해 개발비 지원을 따낼 요량이었다. 부시 행정부와는 어느 미 행정부보다도 돈독한 관계였기 때문에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됐다. 현실은 달랐다. 미국은 사절단을 찬밥 취급했다. 환영하기보다는 지극히 의례적인 수준의 말만 했다고 한다.

당시 미 국방부 차관보는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 출신으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메리 베스 롱이었다. 그녀는 MD 전문가들을 이스라엘에 보내 골드 팀과 라파엘의 성과물을 살펴보도록 했다. 며칠 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미 전문가들은 롱에게 “개발 수준이 형편없었다” “개발비를 줄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 후 펜타곤은 이스라엘에 미국의 근접 MD인 불칸 팰렁스 시스템 도입을 권유했다. 당시 미국은 팰렁스를 이라크에 실전 배치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스라엘에 배치하기도 쉬웠다. ‘하는 거 그만두고 그냥 우리 것 쓰라’는 식의 미국 태도에 골드와 페레츠는 모욕감을 느꼈다.

미국의 반대를 뚫다

그 얘기를 들은 올메르트 총리는 고심 끝에 2007년 말 MD 개발을 국가사업으로 격상하고 전면 지원에 나섰다. 골드의 개발팀에 커다란 돛이 달렸다. 2008년 한 해 골드는 팀원과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올스타 팀’이라고 불렀다. 방산업체를 정년퇴직한 지 한참 지난 할아버지 기술자부터 테크니온공대를 막 졸업한 20대 기술자 등 팀원은 다양했다. 순전히 능력과 열정을 보고 선발된 이들이었다.

‘아이언돔’이란 이름은 이 무렵 지어졌다. 한 팀원(대령)이 주말에 집에 가서 아내와 이름을 뭐로 할지 대화를 나누다가 지었다. 대령은 처음에 ‘안티 카삼(Anti-Qassam)’으로 하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 이름이 ‘카삼(Qassam)’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anti) MD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아내는 반대했다. “하마스가 카삼 말고 다른 로켓을 개발해 새로운 이름의 로켓을 쏘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아내는 대신 ‘골든돔(황금지붕)’을 제안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체로부터 집안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지붕’을 연상한 것이다. 여기에 멋있는 느낌을 더하기 위해 ‘황금’을 붙였다고 한다.

남편은 황금의 이미지가 군과 어울리지 않고 장비가 자칫 너무 비싼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부부는 결국 ‘아이언돔(강철지붕)’으로 합의를 봤다. 대령 부부의 ‘작품’은 그대로 최종 승인을 받았고, 지금 우리가 아는 이스라엘 단거리 MD 시스템의 이름이 됐다.

‘아이언돔’ 초기 모델은 2009년 완성됐다. 첫 요격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그해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아이언돔’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오바마는 대선 후보이던 2008년 스데롯을 방문해 이스라엘의 MD 개발을 돕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에 오바마는 실제로 백악관에 입성하고 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만약 이스라엘이 ‘아이언돔’ 개발을 중도 포기했었더라면, 나중에 오바마가 도와주고 싶었다 하더라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힘들어도, 뚝심을 갖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

아이언돔은 2011년 3월 최종 완성돼 실전 배치됐다. 신고식을 치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 만에 ‘새내기’ 아이언돔은 하마스 로켓을 정확히 격추했다. 골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면서 전역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4년 ‘아이언돔’은 가자 전쟁에서 요격률 90%를 기록하며 다시금 능력을 인정받았다. 가자 전쟁 당시 골드는 본인의 작품인 ‘아이언돔’ 덕분에 로켓에 공격받을 걱정 없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텔아비브 시내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레몬민트 음료를 마셨다고 한다.

골드는 ‘스타’가 됐지만, 아이언돔 개발 과정에서 감사원의 조사를 받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가 조직 내 반발이 예상돼 이를 피하고자 상관의 결재를 받지 않고 방산업체 라파엘에 직접 접촉해 개발에 착수했던 것이 문제였다. 골드가 올메르트 총리로부터 퇴짜를 맞고 나서, 라파엘에 ‘아이언돔’ 개발을 더욱 확대하라고 지시한 것도 규정 위반이라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후 총리까지 나서서 ‘아이언돔’을 지지하고 골드의 기여도도 참작돼, 결과적으로 그는 감사원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절차 무시 행위는 언론의 강한 비판을 받았고 정치권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흔히 이스라엘군은 매우 유연한 조직이라고 알고 있다. 아이언돔 개발도 일사천리로 이뤄졌겠지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들은 상관 앞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거나 대화를 편하게 한다. 최대한 문서 결재 단계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다른 나라 군과 마찬가지로 조직문화와 관료주의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튀는 아이디어를 내면 설사 그것이 일견 맞는다고 하더라도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허가를 받으려면 보고의 보고를 거쳐야 하고 자신을 견제하는 다른 인사들의 날 선 비판과 방해를 견뎌내야 한다. 동시에 장관 등 정책 결정권자를 어떻게든 설득하는 등 일종의 로비 작업도 해야 한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어느 나라 어느 조직에나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이들 대부분의 조직이, 상관이 자기 생각을 몰라준다,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등 여러 이유로 뜻을 접는다는 것이다. 골드는 환경이 어떻든 주위 사람이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했고, 결국 나라에 꼭 필요한 무기를 만들어냈다.

노석조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