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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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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통신]‘손혜원의 목포’가 참고해야 할 상하이 둬룬루

글·사진 백춘미  통신원 

▲ 상하이 둬룬루 입구의 패방.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진 상하이 훙커우구(區)의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 인근에는 인민해방군이 주둔하는 거대한 건물이 있다. 밖에서 보면 거대한 성곽처럼 생겼고, 하늘에서 보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군함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일본 해군 특별육전대(해병대) 사령부였다.
   
   1932년 1차 상하이사변으로 상하이 일대를 점령한 일본 해군은 이곳을 대륙과 남방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상하이를 완전 접수(2차 상하이사변)한 일본은 한때 일제의 최대 해외 해군기지였던 이 건물을 상하이 통치의 중심으로 삼았다. 인근 훙커우공원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때 폭사한 일본군 고관들을 비롯해 중일전쟁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상하이신사(神社)까지 설치했다.
   
   일제 패망 후인 1945년 이 건물을 넘겨받은 장제스의 국민당 역시 이곳에 상하이 일대를 지키는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상하이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국공(國共)내전 후에는 공산당이 사령부를 접수해 지금은 건물 안마당에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하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자연히 이 일대에는 일본군 장교 숙소를 비롯해 국민당 고위 장성들이 사용했던 소위 ‘적산(敵産)가옥’들도 즐비하다. 또한 적진 한가운데서 비밀공작을 벌이면서 결국 내전에서 승리해 대륙을 손아귀에 넣는 공산당 주요 인사들의 비밀 안가(安家)를 비롯해 주요 활동거점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역사를 품은 이 동네는 현재 상하이 최대의 역사문화거리로 탈바꿈했다. 일본 해군 특별육전대 사령부 바로 앞길에 ‘둬룬루(多倫路) 문화명인가’라고 새겨진 석조 패방 안으로 들어가면 창밖으로 빨랫대가 삐죽삐죽 뻗어나온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500m 남짓한 거리를 따라 고서적상을 비롯해 골동품상, 차관,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주말이면 둬룬루 일대는 관광객들과 데이트 나온 연인들로 늘 북적인다. 한때 재(在)상하이 일본인 최대 거류지였던 이곳을 찾아 추억을 더듬는 나이 지긋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보이는 것도 이 거리의 특징이다.
   
   옛 국민당 고관들이 차지했던 멋들어진 주택들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것도 이 거리의 매력이다. 국민당 통치 시절 ‘4대 가족’으로 불리면서 중국의 부(富)를 장악했던 쿵샹시의 주택인 ‘공(孔)공관’을 비롯해, 장제스가 일으킨 4·12상하이쿠데타 때 계엄사령관이었던 바이충시의 ‘백(白)공관’, 장제스의 심복 장수로 상하이 경비사령관을 지낸 탕언보의 ‘탕(湯)공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저우언라이가 중국공산당 스파이 조직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중앙특과’를 조직해 비밀공작을 벌이던 거점 ‘영안리(永安里)’도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노후 불량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영안리’는 서울 같으면 일찌감치 재개발에 들어갔을 만한 곳이지만, ‘저우언라이 동지 초기 혁명활동지’란 간판까지 달고 어엿이 보존돼 있다.
   
   또 둬룬루에는 이 거리에서 결성된 중국좌익작가연맹(좌련)의 발기인이자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루쉰을 비롯해, 좌련의 결성과 활동을 배후조종한 중국공산당 초기 지도자 취추바이, 유명 문인인 궈모뤄, 마오둔, 딩링 등의 동상이 길거리 곳곳에 서 있다. 주말이면 이 동상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다. 일제와 국민당, 공산당, 역사와 문학이 한데 어우러지는 보기 드문 근대역사문화공간인 셈이다.
   
   사실 둬룬루가 있는 훙커우 일대가 주거지나 상업지로 그리 선호되는 지역은 아니다. 훙커우는 과거 서구 열강들의 치외법권 지역인 ‘공공조계(租界)’의 일부였으나 전통 열강인 영국, 프랑스의 세력권이었던 상하이 도심과 달리 신흥 열강인 일본의 세력권이었다.
   
   일본 거류민 집중 거주지로 중일전쟁 와중에는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한때 유럽에서 중국까지 피란 온 유대인들을 집단 수용하는 유대인 게토가 있었던 곳도 훙커우이고, ‘원동(遠東) 제일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정치범수용소 티란차오감옥이 지금도 높은 담장과 철조망을 드리우고 있다. 옛 일본 해군의 탄약창이 있던 화평공원 일대에는 상하이 최대 불량주택군이 형성돼 있었고, 싸구려 사창들도 즐비했다. 훙커우의 쇠락은 1990년대 황푸강 건너편의 허허벌판이었던 푸둥(浦東)이 본격 개발되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1998년 훙커우구청이 둬룬루 일대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재정비하면서 독창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1년에는 상하이시 문화특색거리로 지정됐고, 2010년에는 중국 10대 역사문화 명가(名街)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살아 있는 노천박물관이란 명성에 상하이를 비롯해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옛것을 수선하되 옛것과 비슷하게 만든다’는 ‘수구여구(修舊如舊)’의 원칙에 따라 기존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거리를 꾸몄다. 덕분에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도리어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둬룬루 일대에는 실제 원주민들이 생활하는 주택들이 빼곡하다. 유명 주택들에도 기존 주민들이 밥 짓고 빨래하면서 그대로 살고 있다. 바로 앞 공원인 루쉰공원(옛 훙커우공원)에는 산책 나온 인근 원주민 노인들로 늘 북적인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남편 명의의 재단, 친척과 측근 이름으로 전남 목포의 적산가옥 수십여 채를 집중 매입한 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본인은 목포의 옛 가옥을 매입해 나전칠기박물관을 조성하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해명했으나, 현역 국회의원 신분으로 하기에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관련 개발정보를 미리 취득하고 향후 개발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집권당 간사직에 있었기에 더욱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실제 손 의원이 집중 매입한 해당 지역은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선정돼 각종 명목의 나랏돈 지원대상이 됐다. 비록 민주당에서 탈당하고 상임위 간사에서 사퇴했다고 하나 손혜원 의원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목포는 도리어 ‘손혜원 타운’이란 오명만 뒤집어쓰게 됐다.
   
   목포와 상하이는 열강의 조계지로 출범한 항구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 상하이에 둬룬루와 같은 길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상하이시나 중앙의 유력 인사가 부동산을 수십 채씩 매입해 시세차익을 봤다거나 운영에 관여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둬룬루만 해도 장쩌민 전 주석의 후견인이었던 왕다오한(汪道涵) 전 상하이시장이 친필로 쓴 ‘둬룬루 문화명인가’라는 석조 패방만 남아 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는 손혜원 의원이 왕다오한 정도의 브랜딩만 했다면 두고두고 미명(美名)으로 남았을 것이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에 상하이 둬룬루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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