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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호]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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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우린 다르다” 브렉시트 택한 영국인들의 불안감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브렉시트 찬반 시위를 벌이는 영국인들. photo 뉴시스
오동잎 낙엽 하나로 가을이 온 걸 안다는 말처럼 오늘 아침 들어온 메일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메일은 영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도버해협 지하 ‘유로터널’을 다니는 ‘유로스타’ 열차회사에서 왔다. 출발일 7일 전까지만 통보하면 유로스타 예약 취소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1994년 11월 14일 개통 이후 보여온 유로스타의 횡포에 비하면 놀라운 내용이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유로스타 사전에는 ‘예약 취소’나 ‘환불’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한번 예약하면 끝이라는 태도였다. 그렇게 콧대 높던 유로스타가 전대미문의 사태인 브렉시트를 앞두고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는 선언인 셈이니 놀라운 소식이었다. 브렉시트 발효일인 3월 29일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만큼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 영국인들
   
   브렉시트 발효 이후 벌어질 ‘깜깜이 사태’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인과 유럽인들이 도버해협을 오고 가면서 비자를 받아야 할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지만 브렉시트 발효가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지금도 답이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누가 유로스타 예약을 하겠는가. 예약이 평소의 3분의 1로 줄어들어 유로스타로서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약 무료 취소도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으로 봐야 한다. 그나마 승객들은 유로스타 말고도 항공이나 페리선 같은 다른 수송 수단이 있지만 유로스타로 생필품을 실어나르는 화물운송은 대체 수단도 없으니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지금처럼 브렉시트 협상이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매일 수천 대의 대형트럭이 물자를 실어나를 도버해협 양측 항구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정말 신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 식품이 일주일만 안 들어 오면 슈퍼마켓 진열대가 거의 텅 빈다는 사실을 아는 영국인들은 요즘 슬슬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영국인의 51.89%가 찬성해서 통과된 브렉시트는 결국 영국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유럽대륙으로부터 받는 영국인들의 피해의식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는 사회학자들의 분석은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영국인의 대종은 잘 알려져 있듯이 게르만족 대이동 때 유럽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이다. 도버해협을 건너와 원주민인 켈트족을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밀어내고 본토를 차지했다. 하지만 앵글로색슨족들도 유럽으로부터 올지 모르는 침공에 대한 피해의식을 감출 수 없었는지 심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유럽의 일원임을 애써 부정하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왔다. 원래는 자신들도 유럽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럽을 향한 오랜 피해의식
   
   그래서인지 영국의 대(對)유럽 외교의 제일 중요한 정책도 ‘균형과 견제(check and balance)’였다. 유럽대륙 국가들끼리 분란이 일어나 소란스러워야 그들이 영국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자신들이 편해진다는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다. 영국인들은 유럽에 강자가 등장해 주변국가를 제압하고 나면 반드시 영국을 넘본다는 교훈을 잊지 않았다. 해서 영국은 유럽대륙 국가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도록 조장을 했다. 대륙을 시끄럽게 해서 자신들을 넘볼 여력이 없게 만들려고 부단하게 노력해왔다. 시대에 따라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심지어는 러시아까지 번갈아 합종연횡 대상으로 삼으면서 유럽을 경영했다.
   
   이런 식으로 유럽을 갖고 노는 바탕에는 유럽 전체와 자신들을 동등시하는 영국인들은 근거 없는 자만심도 깔려 있다. 원래 영국인은 ‘과격하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라는 말을 유럽으로부터 들어왔다. 영국인을 길들이려고 만들어낸 놀이가 축구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인격이 유럽 어느 국가 국민보다 높다고 여긴다. 어디서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왔는지 외국인들이 궁금해하지만 영국인들 나름대로는 근거가 있다.
   
   우선 영국인은 자신들의 언행과 생활태도,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유럽 어느 나라 국민보다 진지하고 신중하다고 여긴다. 특히 인성 면에서는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언행도 유럽인들보다 신중하고 부드럽다고 자부한다. 과거 식민지 국민에 대한 영국인의 만행을 보면 논란이 있겠지만 일단 인정하고 보면 영국인의 주장도 그럴듯하긴 하다. 우선 영국인들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의사표시를 절대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항상 진중하게 돌려서 말하고 거절도 잘 새겨봐야 할 정도로 숨겨서 한다. 당사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물어도 절대 호불호를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의견을 묻는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부터 파악한 후 거기에 맞추어 대답을 하기에 영국인으로부터 솔직한 대답을 듣기가 정말 어렵다. 예를 들면 영국 친구를 한식당에 초대해 저녁을 산 후 한식에 대한 정직한 의견을 듣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솔직하게 소감을 말해 달라고 빌다시피 해도 그냥 “아주 좋았고 맛있다”고만 얘기한다. 진짜 한식을 좋아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 사람이 자기네들끼리 나중에 그 한식당을 다시 갔는지 안 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인들의 근거 없는 자부심
   
   특히 독일인과 프랑스인에 대한 영국인들의 평가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만하는지 알 수 있다. 일단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의 진지함과 정확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을 ‘융통성 없는 시골뜨기’라고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 코미디에서 도로 신호등 앞에서 차가 안 오는데도 불구하고 빨간불이라고 마냥 기다리는 관광객은 무조건 독일인이라고 취급하는 식이다. 음악 말고는 잘하는 예술이 없다고도 치부해 버린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인에 대해서는 예술적이고 창조의 능력은 있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경솔하고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친다고 여긴다. 거기다가 남자들이 모여앉아 음식이 맛이 있네 없네 하는 식으로 인간의 욕망을 너무 솔직하게 내보여 점잖지 못하다고 무시한다. 그리고는 프랑스인은 지능이 없고 재능만 있어도 할 수 있는 미술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이탈리아인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말만 많고 혼잡스럽고 일은 제대로 하는 법이 없고 핑계만 많다는 식으로 무시한다. 이탈리아인들이 잘하는 일은 자신들의 옛 역사와 예술품 자랑밖에 없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알고 보면 영국인들도 문학 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을 향해 ‘예술성이 없다’고 놀리면 헨리 퍼셀·에드워드 엘가·벤저민 브리튼 같은 음악가나, 윌리엄 호가스·조셉 윌리엄 터너·토머스 게인스버러 같은 미술가들을 들먹이면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영국인들밖에 모르는 예술가 이름을 대면서 말이다.
   
   물론 영국에는 실제 영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적인 일들이 많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이젠 정말 역사적인 일이라 영국인들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으니 다른 걸 예로 들어보자. 우선 영국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대헌장과 인권선언을 한 나라다. 그걸 바탕으로 제대로 된 대의민주주의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잘 유지해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존심은 입으로 드러내놓고 자랑은 안 하지만 사실 보통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로 퍼져나간 복지의 개념을 제일 먼저 세우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처음 만든 것도 영국이다. 세계인이 영국인에 빚을 진 셈이라면서 영국인들이 얼마든지 자랑할 만한 일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제도를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자.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민권이 앞선다는 스웨덴도 국민 통제 제도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를 운영하면서 규제와 제도로 통제하는 일을 유럽 다른 나라들은 필요악으로 여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제도의 미비로 인한 불편과 허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일괄적인 규제와 제도로 통제당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다. 그런 규제와 통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실 이것은 유럽 어떤 나라도 못 따라오는 영국만의 전통이자 자부심이다. 지난 글에서 필자가 소개한 ‘주민등록도 없는 나라’도 그런 ‘빛나는 제도’와 자부심의 소산이다.
   
   
   유럽이 이해 못하는 이상한 제도들
   
   실제 영국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제도와 절차가 많다. 학교 입시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영국에서는 초·중·고 입학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일반 공립학교는 물론 명문 사립학교마저도 특별한 공개경쟁이나 시험 없이 교장의 인터뷰만으로 입학생을 최종 결정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대학은 이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결정하긴 하지만 여기에도 필기시험 같은 건 없다. 특급 명문 대학들은 해당 학과 교수들의 공동 인터뷰가 최종 시험이다. 그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무도 모르고 따지지도 않는다.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제도의 허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이를 보완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어도 별 문제없이 사회가 유지되었다는 자부심 때문에 불필요한 제도나 규제를 도입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유럽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고 한 수 위라고 자부한다.
   
   그런 영국인들도 자신들의 삶이 외국인의 유입으로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그런 위기감이 쌓여 결국 브렉시트가 통과된 것이다. 유럽연합 3대 주요 정신은 ‘주거이전의 자유, 물자이동의 자유, 재화이동의 자유’다. 영국인들은 특히 이 중에서도 주거이전의 자유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특히 과거 사회주의권이었던 동구 국가들로부터 인구가 유입되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민주주의 훈련도 안 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빈곤한 이주민들이 무자비한 생존의지만 앞세워 사회제도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더 이상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인들의 속내다. 규제와 통제 없이 잘 돌아가던 사회제도가 망가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조바심을 내게 된 것이다.
   
   요즘 영국 언론, 특히 보수 언론을 보면 ‘더 이상은 안 돼!(No More!)’라는 투의 기사를 거의 사흘 간격으로 내보내고 있다. 자기네들끼리면 문제가 좀 있더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이주민들이 와서 개판을 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전통의 가치와 상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사회를 망친다는 위기감이다. 우리끼리 살 때는 신분증이 없어도 되고, 주민등록이 없어도 되고, 투표할 때 신분증 확인을 안 해도 됐는데 전혀 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되면서 엉성하고 구멍 났지만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들의 오랜 제도를 바꾸느니 차라리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것이 브렉시트의 실체다. 유럽을 다니기 불편하고 경제적으로 좀 손해가 난다 하더라도 엉성하고 구멍 난 제도 속에서 통제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살겠다는 뜻이다.
   
   
   불편하고 엉성해도 우리끼리 살겠다
   
   옛날부터 영국인들은 운전 중 옆 차가 질서나 예의를 지키지 않고 영국식 운전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분명 저건 외국인일 것’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에서 오래 살아본 결과 그런 영국인의 선입견이 열에 아홉은 틀리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진짜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별일 아닌데도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를 보면 거의 외국인들이다. 영국인은 경적을 울리는 일을 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일이라고 여긴다. 영국인은 그런 배짱이 없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영국식 운전 관습은 두 줄의 차선이 한 줄로 합쳐질 때 왼쪽 차선(영국은 오른쪽이 운전석임을 고려하기 바란다)에 줄을 죽 서서 간다. 이때 잽싸게 오른쪽 빈 차선으로 달려와 합선이 되는 지점 바로 앞에서 왼쪽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는 차들이 있다. 대개의 영국인들은 ‘정말 급한 일이 있나 보다’라고 여기면서 속도 좋게 얌체 차량에 잘 양보한다. 그런 얌체 차량 운전자도 알고 보면 대부분 외국인이다. 영국인들의 간으로는 뒤통수가 뜨거워서 그런 얌체 운전을 감히 하지 못한다. 최근 런던에서는 개념 없이 운전하는 얌체 운전자가 많이 늘었는데 토박이 영국인들은 이들 얌체족이 외국인, 특히 동구 유럽인일 것이라고 대개 치부한다. 이런 식으로 영국인들 사이에서 외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커져갔고, 이를 데일리메일이나 데일리텔레그라프 같은 극우언론이 특정 사례만 부각시켜 국민 감정에 불을 지른 끝에 특히 지방의 노년층 인구를 브렉시트 찬성으로 몰아간 것이다.
   
   브렉시트를 단행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하고 불편할 것이라는 걸 익히 예상하면서도 이를 통과시킨 영국인과, 주민등록과 신분증을 가지지 않는 사회제도가 엉성하고 구멍이 많고 불편한 걸 알면서도 보완하지 않는 영국인은 분명 같은 영국인이다. 그런 영국인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가면서 자신들끼리 오손도손 살아가기 위해 다시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영국인은 자신들이 선출한 권력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에서 살기를 원한다. 자신들을 잘 모르는 유럽연합 집행위원들에 의해 일괄적으로 통제되는 삶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영국인의 자부심과 자만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영국인은 참 특이하고 어려운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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