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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7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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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통신]인공운하와 洑 덕분에… 상하이 治水의 교훈

글·사진 백춘미  통신원 

▲ 상하이 쑤저우허와 황푸강 사이에 설치된 가동보. 아래가 쑤저우허, 위가 황푸강이다.
상하이 쑤저우허(蘇州河)의 원래 이름은 우쏭강(吳淞江)이다. 상하이를 차지한 서양인들이 쑤저우까지 이어지는 우쏭강을 ‘쑤저우허’라고 부르면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우쏭강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황푸강의 지류로 전락했지만 사실 쑤저우허는 지난 수백 년간 상하이의 가장 중요한 하천이었다. ‘상하이의 어머니강’이란 칭호는 황푸강이 아닌 쑤저우허에 선사하는 경우가 많다.
   
   쑤저우허 인근에는 약 700여년 전 원(元)나라 때 조성한 수리시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1년 아파트 터파기 공사 도중 이 수리 유적을 발견했을 때 중국 고고학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갑문(閘門) 등 수리시설과 함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발굴된 원나라 수리 유적 중 최대 규모였다. 이후 수년간 발굴이 이어졌고 ‘2006년 중국 10대 고고학 발견’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적 위에 박물관을 세워 2012년부터 일반에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몽골족의 원나라가 상하이에 대규모 수리시설을 축조한 사정은 이랬다. 지금의 베이징인 대도(大都)에 수도를 둔 원나라는 이민족 정복정권이었다. 거대한 세계 제국을 유지하고 폭증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한 쑤저우, 항저우 등 강남지방으로부터 안정적 식량조달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강남의 양곡을 베이징으로 올려보내는 주요 통로인 수양제 때 만든 경항(京杭)대운하는 거듭된 가뭄에 하천이 메마르고 준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조운선의 운항이 원활하지 못했다. 양곡을 탈취하려는 비적 떼도 운하 주위에서 출몰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한 길이 쑤저우허였다. 강남의 양곡을 쑤저우허를 통해 지금의 상하이까지 보낸 뒤 다시 바닷길로 베이징까지 올려 보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쑤저우 일대에서 생산된 양곡을 상하이로 보내는 통로인 쑤저우허 역시 발원지인 태호(太湖)에서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옛 문헌에 따르면, 당나라 때 당시 단위로 약 20리(里)에 달했다는 하천 폭은 거듭된 퇴적과 관리부실로 1리가량으로 좁혀졌다. 결국 원나라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착수해 강바닥을 준설하고 선박 통행이 가능하도록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주는 갑문을 설치했다. 갑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선박 통행 시 수동으로 문을 들어올리는 일종의 가동보 형태였다. 좁은 수문에 집중되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기 위해 갑문 주위로는 3000개의 통나무 기둥을 촘촘히 박았다.
   
   쑤저우허의 이 같은 하천관리 방식은 7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쑤저우허와 황푸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길이 100m가량의 보(洑)가 설치돼 있다. 원래 다리 겸 갑문 역할을 했던 갑교(閘橋)가 있었는데 2010년 상하이엑스포 직전 미관상 이유로 철거하고 대신 설치한 전도식 가동보이다. 평소에는 육중한 철판이 강물을 가로막고 있다가, 수문을 열면 철판이 수면 아래로 드러누우면서 물길이 열리는 방식이다.
   
   하구의 보 덕분에 쑤저우허는 늘 호수처럼 찰랑거리는 수위를 유지할 수 있다. 선박 통행이나 수위에 따라 보를 열고 닫을 수 있는데 여름철 태풍이나 집중호우 때는 불어난 강물에 상하이 도심이 침수되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찰랑이는 물길을 따라서 고급아파트와 특급호텔도 최근 많이 들어섰다. 강물이 보 위를 통과할 때 만들어내는 작은 폭포는 와이탄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작은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황푸강과 그 지류를 따라서는 갑문과 보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푸둥에만 이런 갑문이 16곳에 달한다. 더불어 오래전부터 인공운하를 뚫어서 물길이 사통팔달 이어지게 하고 있다. 1979년에는 30만명의 인력을 동원해 황푸강이 기역자로 물굽이 지는 지점에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길이 39㎞의 다즈허(大治河)란 인공운하를 뚫었다. 관개수로, 생활용수 공급용으로 뚫었는데, 폭이 100m로 넉넉해서 300톤급 선박 운항도 가능하다.
   
   다즈허 북쪽으로도 촨양허(川楊河), 자오자거우(趙家溝) 등 동서 방향의 인공수로가 놓여 있고, 다시 남북 방향의 푸둥운하로 바둑판처럼 이어진다. 특히 황푸강에서 다즈허, 촨양허, 자오자거우 등 인공운하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대형선박이 교차통행할 수 있는 선박용 갑문이 설치돼 있다. 이 갑문을 통과하면 황푸강에서 장강(長江)을 거치지 않고 동중국해로 곧장 나아갈 수 있다.
   
   하천준설선이 주기적으로 오가며 물길을 유지하는데 주민들은 그 옆에서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한다. 이들 인공운하는 여름철 태풍이나 집중호우 시 불어난 황푸강의 물을 바다로 분산 배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만약 황푸강 물굽이마다 바다로 곧장 이어지는 인공수로가 없었다면 집중호우 시 원활한 배수가 힘들어 상하이 도심은 침수를 반복했을 것이다. 중국 경제 중심인 상하이 도심의 침수는 곧 세계 경제 마비로 이어진다.
   
   곳곳에 조성한 인공수로와 갑문 덕분에 황푸강 수위는 늘 찰랑찰랑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그 위로는 대형화물선과 유람선, 도강(渡江)선 등 각종 선박들이 쉴 새 없이 다닌다. 선박 통행이 원활하도록 황푸강 양안을 통과하는 도로와 지하철은 대부분 하저(河底)터널로 연결했다. 1990년대 푸둥개발 초기에 만든 양푸대교, 난푸대교 등 다리들은 대형선박이 원활히 통행할 수 있도록 교각을 최소화하고 수면 위로 높게 지었다.
   
   
▲ 쑤저우허에 있었던 원나라 수리시설과 갑문의 축소 모형.

   황푸강에 7만t급 크루즈선까지
   
   덕분에 상하이 푸둥 동방명주탑 바로 맞은편까지 높이 46m, 7만톤급 크루즈선이 곧장 진입할 수 있다. 황푸강은 그 너비만 놓고 보면 한강의 절반도 채 안 되지만, 이용률은 고작 유람선과 수상택시 정도가 오가는 한강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황푸강을 오가는 대형화물선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강은 덩치만 큰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중국에서 치수(治水)는 요순(堯舜) 이래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이었다. 치수에 성공한 사람이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다. 황허(黃河) 치수에 성공해 순(舜)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아 하나라를 창시한 우(禹)가 대표적이다. 최근 사례로는 칭화대 수리공정과 출신으로 댐 건설 현장을 누볐던 후진타오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도 있다. 반대로 장제스는 중일전쟁 때 황허 제방을 터트려 일본군의 진격을 막으려는 무모한 작전을 감행했다가 초대형 수재를 초래한 끝에 대만으로 쫓겨났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금강, 영산강 등에 설치한 보를 철거한다고 한다. 보를 철거하면 모래톱을 드러낸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여름철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는 연례행사가 반복될 것이다. 특히 가뭄 때는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확보는 물론이고, 바닥을 드러낸 강 위로는 돛단배는커녕 오리배조차 띄우기 힘들어질 것이다. 700여년 전 세계 제국을 경영했던 몽골족의 원나라가 상하이에 수리시설을 축조한 까닭을 잘 되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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