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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0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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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프랑스를 스타트업 성지로 ‘디지털공화국법’이 뭐기에…

▲ 프랑스 파리 13구의 산업단지 ‘스타시옹 에프’에서 스타트업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photo 손진석 조선일보 기자
세계 최대 전자쇼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9’ 행사장에는 유망 스타트업들이 한데 모인 ‘유레카파크(Eureka park)’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의 유레카파크에는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CES를 주최한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올해 유레카파크에 참여한 프랑스 기업 수는 375개로 참가국 중 숫자가 가장 많았다. CES 개최 국가인 미국(365개)을 앞섰다.
   
   유레카파크의 프랑스 스타트업은 2014년 38개에서, 2015년 66개, 2016년 128개, 2017년 178개, 2018년 274개로 4년 만에 7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30개 프랑스 스타트업이 CES 혁신상을 42개나 받았다. 이번 ‘CES 2019’ 행사는 프랑스가 세계 스타트업 성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프랑스는 몇 해 전만 해도 미국은 물론이고 이웃 국가인 독일, 영국 등에 비해서도 스타트업의 활동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2016년 10월 디지털 혁신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디지털공화국법’을 공포하면서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디지털공화국법이 발효된 2017년부터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르네상스를 맞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랑스는 2016년 2년여의 논의 끝에 디지털공화국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데이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법 제정을 준비한 프랑스 정부는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정부였고,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당시 경제부 장관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디지털공화국법은 프랑스혁명의 자유·평등·박애정신을 담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공공 데이터의 자유로운 활용, 모든 국민의 인터넷 접근권 보장, 정부 투자 프로젝트의 지식재산권 1년 이후 일반 공개, 사후(死後) 디지털 세상에서 ‘사라질’ 권리인 디지털장례권 등 개인정보 보호 강화 조항들이 명문화됐다.
   
   디지털공화국법의 핵심 내용은 ‘데이터 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이를 경제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프랑스를 ‘디지털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법 제정 초기부터 정부 및 공공기관이 생성하는 데이터는 예외 없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더 나아가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이 의뢰하거나 이들과 관련된 사업을 통해 민간기업들이 생성하게 되는 데이터까지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민간기업 가운데에는 금융기관, 의료기관 등이 포함돼 있어 개인의 신상정보가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디지털공화국법은 개인정보 개방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권리침해 문제를 꼼꼼히 검토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까지 담았다. 데이터를 한데 모아 이른바 ‘공익 데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공익 데이터의 공개 문제를 담당할 공공기관도 설립됐다. ‘공익 데이터’인데 민간이 생성한 데이터의 경우, 공익에 부합하면 정부가 이를 공개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에 부합한다는 것은 정부의 각 분야 공공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국민들에게 더 나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과학적인 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를 이른다.
   
   
   프랑스판 실리콘밸리 ‘스타시옹 에프’
   
   디지털공화국법을 제정하게 된 목적은 프랑스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데이터 사용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다 보니 법이 제정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프랑스 디지털공화국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시점은 2014년 말이다. 당시 집권당은 사회당이었지만 디지털공화국법의 입법 취지에는 거의 모든 정당과 국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프랑스 사람들 역시 프랑스가 사회경제적으로 디지털 전환 대비에 미흡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법안을 제안·수정·개선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이라면 누구나 직접 의견을 개진하면서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우선 법안을 만들기 이전에 프랑스 정부가 2011년에 설치한 국가디지털위원회 내에 ‘디지털 야망’이라는 특별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에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해 그 결과를 모아 법안을 만들었다.
   
   물론 디지털공화국법의 제정만으로 프랑스의 스타트업 환경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시기 프랑스 정부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2017년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프랑스판 실리콘밸리를 지향하는 ‘스타시옹 에프(Station F)’가 조성됐다. 프랑스의 이동통신회사인 프리 모바일(Free Mobile)의 자비에르 니엘(Xavier Niel) 회장이 2억5000만유로를 투자해 만들어졌다. 현재 스타시옹 에프에는 1000여개의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는데 혁신경쟁을 위해 외국계 기업에도 문을 활짝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2017년 100억유로(약 12조8594억원)에 이르는 지원 펀드를 조성했다. 세금 부담도 줄였다. 프랑스 최고 법인세율은 33.3%이지만 일정 규모 이하의 스타트업에는 15.0%를 적용하고 있다. 해외 기업인에게도 프랑스에서 4년간 거주할 수 있는 프렌치 테크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디지털공화국법 제정 이후 수많은 하위법들이 개정을 거치며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덕분에 프랑스 스타트업 가운데에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도 많다. 가령 온라인 헬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프랑스 기업 ‘닥터립(Doctolib)’이 글로벌 유니콘 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유니콘 기업이란 기업가치가 10억달러(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뜻하는데 닥터립의 기업가치는 1조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닥터립은 온라인 병원 예약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매달 이용료를 내고 환자와 의료진 연결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환자는 특정 지역의 의사와 병원을 선택해 예약할 수 있다. 닥터립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의료기관이나 금융기관이 만든 정보라 하더라도 ‘공익 데이터’라면 공개할 수 있도록 한 디지털공화국법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규제 샌드박스’ 시행 두 달째
   
   이와 비교해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지원 정책 역시 외관상 프랑스 못지않다. 특히 스타트업을 위한 재정 지원은 프랑스와 견주어 크게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지난 3월 6일 정부는 제2 벤처 붐 확산을 위한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신규 벤처투자 규모를 2022년 연 5조원으로 늘리고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 20개 창출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오는 2022년까지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12조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스타트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도 더해졌다. 지난 1월 일정 기간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되면서 규제 개혁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지난 1월 첫 시행됐고 이후 현재까지 실증특례와 임시허가 신속처리와 관련해 40여건의 안건이 접수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 심의회를 열어 총 15건을 처리했다.
   
   임시허가와 실증특례를 부여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규제를 개선하기도 했다. 가령 ‘올리브헬스케어’의 스마트폰 앱을 통한 참여자·기관 간 연결 서비스의 경우, 실증특례 대신 식약처를 통해 전 임상시험실시기관에 온라인으로 참여자 모집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문서로 공지하도록 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오는 4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에 더해 금융위원회와 중기벤처기업부도 관련법을 실행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금융혁신지원 특별법’과 중기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이 각각 4월 1일과 17일에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 시행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일단 규제 샌드박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의 수가 많지 않다. 심의 대상에 오르기까지 최소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문제가 되는 규제와 관련해 임시허가나 실증특례를 받아도 규제 유예기간(최장 4년)이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전과자 된 스타트업 대표
   
   “나는 전과 2범 헬스케어 대표이다.” 국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꾸려 6년째 운영해온 박종일 엠트리케어 대표의 자조 섞인 말이다. 박 대표는 스마트 체온계와 앱을 기반으로 한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해 2013년 창업에 나섰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아왔지만 최근 회사를 처분하기로 하고 인수자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의료기기를 개발하려는 과정에서 광고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어야 했다. 본인 소유의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투자해 스마트 체온계와 앱을 개발했지만 이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다시 ‘규제의 벽’에 부딪혔다. 박 대표가 개발한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의사가 환자에게 대처법을 알려줘야 하는 구조인데 이는 의료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차례 어려움을 딛고 6년 가까이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키워왔지만 그는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규제만이 사업을 접는 이유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박 대표는 “규제가 심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둘씩 개선해나가면서 극복하고자 했다”면서 “하지만 법률에 관한 부분은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 노력해볼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박 대표의 사례는 여전히 규제의 덫에 갇혀 있는 한국 스타트업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정부가 지원금을 쏟아부어도 스타트업들이 당장 뛰어들 만한 사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함정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비즈니스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생각지도 못한 규제가 계속 발목을 잡는 게 현실이다. IT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이 여전히 스타트업 불모지로 불리는 이유를 짚어봐야 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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