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켄싱턴궁에 있는 ‘다이애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정원사는 영국에서 최고의 직업으로 꼽힌다. ⓒphoto 뉴시스
런던 켄싱턴궁에 있는 ‘다이애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정원사는 영국에서 최고의 직업으로 꼽힌다. ⓒphoto 뉴시스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공시족의 그늘, 일 안 하는 대졸 인력 400만명 육박’ 기사를 보고 정말 놀랐다. 해당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니 400만명에 육박하는 대졸 인력이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이들이 원하는 전문직이나 사무직 등 양질의 일자리가 한정적’이어서 ‘일을 안 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놀란 이유는 바로 ‘일을 안 하는 400만명’이라는 숫자와 ‘전문직이나 사무직 등 양질의 일자리’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해당 기사에는 ‘15세 이상 인구 중 대졸 이상 학력을 보유한 인구 1700만명’이라는 통계가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단지 ‘양질의 일자리’를 못 가져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4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단지 ‘양질의 전문직, 사무직’이 없어서 취직을 안 하는 것일까. 400만명 중 100%는 아니더라도 놀라운 비율이 ‘양질의 직업’ 중에서도 특히 ‘서열이 앞서는 직업’을 갖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선망의 직업 중 하나가 고시를 봐야 하는 공무원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직업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아직 사회적인 신분의 상징이다. 공무원이 되려고 공시생들이 몇 년을 투자하는 이유는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을 꿰차려는 목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관존민비가 엄연히 살아있는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사회적 신분으로서 선망의 대상이다. 대기업 취업을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는 이유도 단지 대기업의 월급이 더 많아서가 아닐 것이다. 대기업의 직업적 서열이 알찬 중소기업 자리에서 보면 아득히 앞서 있어서일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는 모든 직업이 ‘한 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고 분명한 서열이 있다. 그러니 모두 앞 서열의 직종에 속하려고 안달을 할 수밖에 없다. ‘앞 서열 사람이 뒤 서열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 한국을 지배하는 사회적 관념인데 거기에 따라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일은 일일 뿐, 직업 간 서열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30년 이상 살고 있는 영국의 직업관은 한국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 영국인에게 직업은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해서 직업 간 서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입이 좀 더 많거나 인기가 있는 직업이어서 선망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누가 더 훌륭하고 저급하다는 차원의 직업적 신분 서열은 없다. ‘내 직업은 너의 직업보다 서열이 더 높으니 내가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라는 개념은 정말 현대 영국에서 사라진 지 아주 오래다. 영국에서 오래 살면서 그런 직업적 서열이 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영국인들은 직업 간에 서열을 세워놓지도 않고, 직업으로 인간의 서열을 나누지도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만일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면 정말 행운이고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직업이 단순 반복적인 노동일이라고 해서 자학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대형 슈퍼마켓의 계산대 직원이라고 해서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저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물론 매니저도 자신이 계산원보다 더 존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계산대 앞에서 돈을 내고 있는 고객도 계산원이 자신보다 낮은 인간이라고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계산대 직원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객도 매니저도 이른바 ‘갑질’을 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갑질을 본 적이 없고, 언론에서도 갑질 논란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본 일이 없다.

영국 인구 6600만명 중 대학 졸업자는 1200만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18%에 해당한다. 영국인들이 대학을 굳이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우선 머리 아픈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가방끈이 길다고 더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안 나와도 취직하는 데 큰 문제도 없다. 대학을 안 가는 다른 큰 이유는 대학을 나와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영국인들이 특별히 더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책상에 앉아서 서류와 씨름해야 하는 전문직이나 사무직보다는 단순한 직업을 더 좋아 한다. 특히 전문직의 경우 공부를 해야 자격증을 얻으니 공부하기 싫어하는 대다수의 영국인은 부러워하지도 않고 자신과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직업이 수입이 더 좋다고는 하나 다른 대가(힘든 공부, 개인생활, 스트레스)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공무원은 무기 계약직일 뿐

영국에서는 한국의 인기 직업이 선망의 직업이 아니다.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영국 공무원은 한국처럼 공개 자격시험을 치르고 되는 직업도 아니다. 중앙정부 직종 몇 개는 그나마 공개채용을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식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기관·지방정부별로 제각각 채용절차를 거치는데 고용계약이 기업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특별히 정년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쉽게 얘기하면 ‘무기한 계약직’일 뿐이다. 기관끼리, 혹은 중앙부서끼리의 전근 같은 공식적인 교류도 없다. 그냥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직원일 뿐이다. 따라서 ‘공무원 몇 급’이니 하는 제도 자체도 없다.

사실 영국에는 정년이 있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평생 근무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다. 영국에는 나이가 기준인 정년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고 그렇다 보니 연금제도도 없다. 예외가 있다면 경찰과 군인 정도다. 이들은 어느 정도 직업 보장이 되고 정년도 있고 연금도 있다. 그 이외의 직업은 일반 기업의 직원들과 같은 단순 월급쟁이일 뿐이다.

한국에서 인기 직종의 하나인 교사도 마찬가지다. 영국에는 대학교에 사범대학이나 사범학과가 없다. 각자 알아서 교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교사가 될 수 있다. 교사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학교별로 채용공고를 낸다. 교장이 주도해서 채용하면 그만이다. 교사의 경우도 정년이나 전근, 연금이 없다. 영국 학교는 평교사들이 교장을 하려 하지 않아 교장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교장 봉급이 많긴 하지만 업무와 책임도 그에 따라 훨씬 더 많다. 물론 교장이 평교사들의 해임면권을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교장이 평교사들보다 지위가 더 높다는 인식이 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 교사들은 평생 평교사로 지내길 원한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업무가 복잡하거나 책임이 많은 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영국인 사이에서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같은 ‘사’ 자 직업이 좋은 직업으로 취급된다. 전문직이나 대기업 임원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부모의 후원으로 사립중고등학교와 명문대학을 나와 부모와 같은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영국은 사립학교를 나온 단 5%의 중산층 출신 고등교육자들이 끌고 가는 사회이다. 그렇다고 95%의 영국인들이 5%를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영국인은 별다른 야심이나 신분상승, 신분이동의 욕구 없이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우리의 선조들이 하루하루 밭과 논을 묵묵히 갈면서 평생을 산 것과 별 다를 게 없다. 이를 일러 ‘삶의 평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인이 삶을 ‘살아가는’ 평정심은 일본인 누구나 갖고 있다는 ‘이키가이(生き甲斐)’, 즉 ‘삶의 보람’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념무상의 일상을 반복하는 영국인의 삶은 ‘애써 무심하게’ 혹은 ‘짐짓 초연하게’ 보인다. 뭔가를 애써서 이뤄봐도 더 행복하지 않더라는 지혜를 영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를 친한 영국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 역시 “우리들 유전자 속에 아마 그런 지혜가 있는가 보다”라고 멋쩍게 말하며 웃는 걸 본 적이 있다.

수십억 포기하고 자전거 가게 차린 젊은이

영국인이 무심하고 초연하게 사는 사례는 필자 주위에도 수없이 많다. 영국인 아버지는 버킹엄궁에서 시종장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한국인인 젊은이가 있다. 옥스퍼드대학을 나와 런던 시내 투자은행에서 연봉만 수십억원을 벌던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가 어느 날 갑자기 은행을 그만두고 런던 근교에서 자전거 판매와 수리를 하는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얼굴에 기름을 묻힌 젊은이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런던대학교를 나와 창고 책임자로 일하던 아일랜드 젊은이도 같은 경우이다. 사립학교를 나와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도 호텔 야간근무 매니저로 일하면서 조용하게 살아가는 친지도 있다. 이들 모두 ‘단순한 삶이 좋다’고 말한다. 영국 언론에는 ‘워라밸(Walk-Life Balance)’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데 아마 삶을 침해하는 일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인은 정말 사무실 근무를 싫어한다. 영국 구인광고에는 뭐 큰 특혜나 되는 것처럼 ‘야외 직업(outdoor work)’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등장한다. 실제 야외 직업이 사무실 직업보다 인기가 더 있으니 구인하는 입장에서는 광고를 할 수밖에 없다. 가장 인기 있는 야외 직업은 정원사다. 정원사가 되기 위한 전문학교 입학은 정말 어렵다. 그 다음 인기 직종이 야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기관의 직원, 공원이나 고적 관리요원 같은 것들이다. 영국인은 답답한 사무실에서 매일 동일한 일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야외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변화무쌍하고 다양하고 흥미롭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인기 야외 직업으로는 경찰관, 군인이 꼽히지만 집집마다 다니면서 보일러나 전기를 고쳐주는 기술자, 자동차 수리센터 기술자, 농장 작업인, 어부들까지 다 인기 직업에 포함된다. 영국인들은 사무실 일보다는 별다른 두뇌 작업 없이 육체노동에 가까운 직업을 더 선호한다.

단순한 일상 속 행복, 수도사 같은 사람들

영국인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결코 열정을 따라 일생을 변화시킬 결정을 하지 않는다. 대신 능력이나 상황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직업을 가질 때도 열정보다는 냉정이 앞선다.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걸 직업으로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대신 하고 싶은 건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삼는다. 영국인은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일을 먹고사는 일과 연결하면 인생이 비루해진다고 주장한다. 영국인 중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했다는 경우는 극소수인 반면 자신이 잘하는 일을 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국인은 남들이 좋다는 삶보다는 자신이 선택하고 주도하는 삶을 더 원한다. 그래서 좀 가난하게 살아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 행복하게 살기를 선택한다. 영국인은 자신과 남을 잘 비교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 아니면 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 밖이면 넘보지 않는다. 이렇게 영국인은 행복을 누리는 유전자를 분명 잘 갖고 태어난 듯하다. 한꺼번에 여러 개를 가지려 할 때 고통이 따르고 불만이 싹트는 법이라는 걸 영국인은 잘 안다. 자신의 시간을 가지려면 많은 걸 포기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영국인들을 보면 수도원의 수도사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진 것도 없는 수도사들이 매일 단순한 작업을 하면서 기도하고 살아도 행복해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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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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