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두브나(Dubna)시에는 두브나 합동핵연구소(JINR)라는 곳이 있다. 두브나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옛 소련이 독일 과학자들을 강제로 끌고 와 건설한 비밀 과학도시였다. 두브나 합동핵연구소는 옛 소련이 공산권 국가들의 원자력 연구를 위해 설립한 종합 연구소였다. 이 연구소에는 소련 최대 핵실험실이 있었다.

북한은 1954년 인민군을 재편성하면서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부문’을 설치했으며, 1955년 핵물리학 연구소도 만들었다. 특히 북한 정권은 1956년 2월 소련과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기술협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조·소(朝蘇)연합 핵연구 조직 협정’을 체결했다. 북한은 이 협정에 따라 30여명의 물리학자를 두브나 합동핵연구소에 파견했다. 북한은 1959년 9월 소련과 추가로 ‘원자력의 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인 1990년까지 두브나 핵연구소에서 공부한 북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250명이나 됐다. 이들은 국방과학원 핵전략연구실과 제2국방과학원 핵기술실, 원자력총국 산하 제38호 연구소 등에 집중 배치됐다. 소련 유학생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은 리명하 전 영변물리대학 학장, 최학근 전 원자력공업부장, 서상국 전 김일성종합대 물리학부 강좌장 등을 들 수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photo 뉴시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photo 뉴시스

러시아와 북한의 핵 밀월 역사

북한은 1965년 8월 소련이 제공한 IRT-2000 연구용 핵 반응로를 건설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핵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련에서 제공한 10% 농축우라늄을 핵연료로, 경수를 냉각재로 사용하는 IRT-2000은 처음에는 2㎿급이었으나 북한 연구진의 기술로 8㎿까지 개량됐다. 북한은 1979년 자체 기술로 연구용 핵 반응로 건설에 착수해서 1986년 정식 운전을 시작했다. 북한은 1985년 영변 핵시설에 이용된 핵 연료봉을 사용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도 건설했다. 북한은 1986년 1월 영변에 5㎿ 실험용 흑연 원자로를 만들었고, 1987년 영변에서 방사화학실험실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는 나중에 ‘사용 후 핵연료’ 가공공장으로 활용했다.

영변 핵시설은 소련의 지하 핵개발 단지인 크라스노야르스크-26과 매우 흡사하다. 지하 180m에 건설된 크라스노야르스크-26은 플루토늄 원자로 3기와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방사화학시설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공장 등을 갖추었다. 북한 과학자들은 이곳에서도 훈련을 받았다. 당시 소련은 북한 과학자들에게 핵무기 개발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고 한다.

북한은 1985년 12월 강성산 내각총리를 모스크바에 파견해 소련으로부터 440㎿급(VVER-440형) 원자력 발전소 4기를 지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며 버텼다. NPT 가입국은 누구라도 18개월 이내에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고 핵사찰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블라디미르 크루치코프 의장은 1990년 공산당 중앙위 정치국보고서(No. 363-K)에서 “영변에서 최초의 기폭장치 개발이 완료됐지만 북한은 핵무기 제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현재로서는 실험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외정보국(SVR·KGB의 후신)은 1993년 ‘냉전 이후 새로운 도전:대량살상 무기 확산’이라는 제목의 백서에서 “북한은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있다. 다만 상당 기간이 지나면 핵분야에서 군사용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적시했다.

이처럼 북한의 핵 개발은 러시아(소련)와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 정권 초기부터 핵 개발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자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김정은 정권 역시 2014년 1월부터 핵 과학자 6명을 두브나 합동핵연구소에 보내 ‘핵변환(Nuclear Transmutation)’ 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있다.

2013년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개통식 모습. ⓒphoto 러시아 철도공사
2013년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개통식 모습. ⓒphoto 러시아 철도공사

푸틴, 북한 핵 보유 17년이나 숨겨

특히 북한이 핵탄두 탑재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은 러시아 과학자들의 도움 덕분이다. 북한은 1990년대 러시아가 정국 혼란과 경제난 등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러시아 미사일 관련 분야의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했다. 1993년 8월 모스크바의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60여명의 러시아 과학자들과 가족이 평양으로 가려다 체포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북한의 미사일 제작을 돕기 위해 평양으로 가려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적발됐다. 이들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이후 많은 러시아 과학자들이 북한에 고용돼 마케예프 로켓설계국의 미사일 설계도와 기술 도안, 청사진 등을 북한에 넘겼다. 마케예프 설계국은 소련에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해온 곳이다. 북한은 이들에게 월 1200달러를 지급했다. 북한이 2017년 6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화성-10형)은 소련의 SLBM인 R-27 Zyb와 같은 엔진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비슷하다. 북한이 2017년 8월 시험 발사한 SLBM인 북극성-1호도 마케예프 설계국이 만든 R-27 미사일을 변형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는 북한이 핵과 ICBM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국 등 국제사회에 알리지 않았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7년 10월 4일 모스크바 국제 에너지포럼에서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무려 17년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밝혔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내가 2000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북한을 방문해 현 지도자(김정은)의 부친(김정일)과 만났다”면서 “김정일은 그때 내게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한 때는 김정일이 푸틴 대통령에게 핵 보유를 언급한 지 6년이나 지난 2006년 10월 9일이었다. 만약 당시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공유했다면 북한 핵 문제가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됐을 수도 있었다.

푸틴 대통령이 김정일의 핵 보유 언급에 침묵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첫 방문이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용의,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양국 우호협력 증진 등 11개 항이 담긴 ‘조·러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보리스 옐친에 이어 러시아의 두 번째 최고지도자가 된 푸틴 대통령은 G8 정상회의에서 북한과의 합의를 성과로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G8 정상회의에 처음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지렛대로 자신과 러시아의 중요성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 이후 소원했던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발언권을 높이고,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정일도 2001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23박24일의 일정으로 특별열차를 타고 평양과 모스크바를 왕복하면서 푸틴 대통령과의 밀월 관계를 구축했다. 당시 김정일은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 권리를 인정하고,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등 북한의 입장에 동의하는 내용의 모스크바 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정제유와 석탄의 러시아 밀수 루트

김정은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라는 ‘러시아 카드’를 꺼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국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북·러 정상회담이 올봄이나 여름에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3월 25일자) 김정은이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줄 ‘우군’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일각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시 주석으로선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방북 가능성이 낮다. 특히 시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방북 행보를 중국 정부가 자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시 주석과 중국 정부에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이행할 것을 경고해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이 중국과 이뤄진다”면서 “우리는 중국이 모든 대북제재를 이행하도록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볼 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미국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시한 ‘일괄 타결 비핵화 해법’에 강력한 견제구를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그동안 비핵화의 단계적·점진적 해법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제재 완화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왔다. 북한은 또 나선(나진·선봉) 특구와 러시아의 하산을 중심으로 북·러 접경지역에서 경제교류와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북한은 미국의 제재를 돌파할 수 있는 틈새를 어느 정도 만들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국경선이 39.1㎞로 북·중 국경선 1360㎞에 비하면 매우 짧지만, 정제유와 석탄 등 북한의 밀수 등을 눈감아줄 경우 북한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의 나선 특구-러시아 하산-중국 훈춘 루트는 대표적인 밀수 통로라는 말을 듣고 있다. 북한은 나선 특구와 훈춘 직거래 통로를 이용한 밀수에 대해 단속이 심해지자 러시아 하산을 거치는 우회 방식으로 밀거래 루트를 바꾸었다.

러시아는 또 유엔 기구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계속해오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와 올해 이미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800만달러(90억원)를 북한에 지원했다. 러시아는 3월 4일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구호물자로 밀을 전달했는데, 이는 북한이 요청한 밀 5만t 무상 제공의 일부분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으로 노후화된 중공업 시설을 개보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산업의 근간은 소련의 지원 아래 건설된 70여개의 중공업 시설이다. 이 시설들은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으로선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은 지금까지 중국과는 4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은 아직까지 없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북한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김정은을 초청했었고, 올해는 북·러 경제문화협력협정 체결 7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에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러시아 외무부
김정은이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러시아 외무부

푸틴, 북한 지렛대로 신동방정책 도모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무엇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 조치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제재 무용론’을 입증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푸틴은 “김정은 정권은 체제 안정을 보장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풀을 뜯어먹을지언정 제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푸틴은 리비아와 이라크를 예로 들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비판해왔다. 리비아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을 체제 방어수단으로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 푸틴의 주장이다.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북한을 지렛대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20여년간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할 의지와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는 등 극동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적극 진출하면서 지정학적으로 전략요충지인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신동방정책이란 자원이 풍부한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개발해 러시아의 경제발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진출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푸틴이 2015년부터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매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보스토크(동방) 2018’이라는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러시아는 또 이 일대에 최신예 핵 잠수함을 배치하는 등 태평양 함대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고, 극동 지역에 전략 폭격기도 증강 배치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이미 탈퇴를 선언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오는 8월 공식 폐기되면 러시아는 아·태 지역에서도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푸틴의 야심은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아·태 지역에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복원해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김정은과 푸틴의 밀월 관계는 자칫하면 북한 비핵화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북한 핵 보유를 눈감아주었던 푸틴이 북한 비핵화를 묵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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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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