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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552호] 2019.04.08

나루히토 일왕 아베의 브레이크 될까

▲ 지난해 1월 2일 새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키히토 일왕(오른쪽)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새 연호는 레이와(令和)입니다.”
   
   4월 1일 오전 11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입을 열자 기자회견장은 술렁였다. 극비리에 진행됐던 새 연호 작업의 결과물이 나오자 속보를 보내는 기자들의 손놀림은 빨라졌고 거리에는 호외가 뿌려졌다. 연호(年號)는 군주국가에서 군주의 통치 시기를 뜻한다. 군주가 곧 시간의 지배자란 의미인데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이 작동하는 일본은 여전히 연호에 의미를 두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군주의 시간을 결정한 게 왕실이 아니라 일본 행정부이며, 그 결정권자가 아베 총리란 점이 재밌는 부분이다.
   
   새 연호가 등장했다는 건 새로운 일왕이 등장한다는 얘기다. 레이와 1년이 통용되는 2019년 5월 1일은 왕세자인 나루히토(德仁)가 일왕이 되는 때다. 이번에는 근대 일왕제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생전 퇴위가 이뤄졌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이전에는 선대가 사망해야 후대로 이어졌다. 반면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살아있을 때 물러나길 원했고 그 희망이 이뤄졌다. 왕실 전문 저널리스트인 구노 야스시는 “일왕은 일본의 상징이다. 새로운 왕이 즉위해 연호가 새로 정해지면 국민의 마음도 새로워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새로운 황제의 성격이나 행동 등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나라의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고 말했다.
   
   2014년 일본 사회가 우경화로 한창 치닫던 때, 일본 현지를 취재했던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일본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왕실 제도를 반대하는 일본 공산당조차 아키히토 일왕에는 예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평화주의’였다. 그는 중국과 필리핀, 팔라우 등 일본이 전쟁을 치르며 침략했던 장소를 방문해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를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일본 국민과 공감하는 왕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의 헤이세이(平成) 시대는 기록적인 재난이 많았던 때다. 고베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등이 일본 사회를 할퀴고 지나갔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지역을 찾아 웅크리며 얘기를 듣는 일왕의 공감 능력은 작은 체구의 그를 더욱 큰 존재로 만들었다. 실질적 권력이 없는 존재지만, ‘일왕이 바뀌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왕세자
   
   곧 왕위에 오를 왕세자는 어떤 왕이 될까. 일본 북동부 해안선이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뒤 3개월이 지났을 때다. 2011년 6월 나루히토 일 왕세자와 마사코(雅子) 왕세자비는 재앙의 여파와 잔인함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미야기현을 방문했다. 충격과 절망, 그리고 슬픔에 사로잡힌 피난민들을 둘러보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그 후 여러 달 동안 후쿠시마, 이와테 등 인근 피해 지역을 돌았고 지금도 매년 도호쿠 지방을 방문하고 있다.
   
   나루히토는 아키히토 일왕과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부모님을 향한 존경심을 내비치곤 했다. 왕세자 부부의 여행은 마치 그의 부모의 여행과 닮았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대중과 강력하게 스킨십했고 공감해왔다. 왕세자는 2017년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도하길 바란다. 아버지가 그랬듯 항상 사람들의 생각과 가까워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왕세자로 지낸 지난 30년 동안 이상적인 왕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반복적으로 표명해왔는데 그 표본이 자신의 아버지다.
   
   아버지와 닮은 행보는 그의 성장 과정과 연계해봐야 한다. 나루히토는 30살까지 부모 형제들과 같은 집에서 지냈다. 일반인에겐 상식적인 이 모습이 왕실에서는 파격적이었다. 이전 일왕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분리돼 신하들이 양육을 맡았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따로 교육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아키히토 일왕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나’ 혹은 ‘가족’보다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며 직계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국가와 국민을 소중히 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루히토의 어머니인 미치코(美智子) 왕비는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다. 그녀는 이전과 다른 교육 방식을 관철했다. 미치코는 1960년대 ‘육아 혁명’을 불러온 미국인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폭이 쓴 ‘유아와 육아의 상식(The Common Sense Book of Baby and Child Care)’이라는 서적을 참고해 자녀교육에 반영했다. 당시만 해도 왕실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미래의 일왕이 가족과 함께 살며 일반 가정과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는 사실 자체가 전통과 다르다며 반감을 가진 이가 적지 않던 때였다. 반면 나루히토는 “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살아야 먼 곳에 있는 국민의 마음을 실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역시 현재는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 결혼 9년 만에 얻은 외동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학교에 바래다주며 적극적으로 육아를 돕는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이런 왕실의 모습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일본인들의 가치관과 맞물려 지지를 받았다.
   
   
▲ 지난 2월 24일 일본 도쿄국립극장에서 열린 아키히토 일왕 재위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세를 외치는 아베 신조 총리(뒷모습). photo AP·뉴시스

   조용하고 수줍은, 그러나 강단 있는
   
   나루히토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면 ‘조용하고 인내심 있는, 예의 바르며 수줍어하는 인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왕세자로서 유일하게 해외 유학을 했던 인물이다. 영국에 2년간 있었는데 누구나 자신을 알아보는 일본을 떠나 자유를 만끽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유학생 시절이던 1984년 영국 외교부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에게 보낸 인물평은 이랬다. “약간 수줍어하지만 괜찮은 사람이다. 테니스를 좋아하며 첼로와 비올라 연주를 좋아한다.”
   
   반면 외유내강형으로 의외로 강단 있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왕세자비인 마사코와의 결혼 과정이다. 1986년 스페인 공주의 영접식에서 마사코를 처음 만난 나루히토는 열렬하게 구애했지만 한 번 실패했다. 당시 마사코는 외교관 출신 아버지를 뒀고 그녀 역시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였다. 그녀는 왕실에 갇히는 삶을 거부했고 궁내청 역시 그녀를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영국 연수를 떠난 마사코가 1990년 돌아오자 나루히토는 주위의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재차 청혼했고 결국 1993년 결혼에 성공했다. 나루히토는 매번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며 마사코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줄곧 지켰다. 대표적인 경우가 왕실, 그리고 궁내청과의 갈등이다. 규격에 맞춰진 삶을 강요받았던 마사코는 나루히토보다 키가 크다는 점마저도 구설에 올라야 했다. 게다가 왕가를 이을 아들을 강요받았지만 9년 만에 힘들게 얻은 아이는 딸이었다. 후계가 불안정해지며 그녀는 왕실과 궁내청, 보수파의 공격 대상이 됐고 2004년 궁내청은 마사코가 정신질환의 일종인 ‘적응장애’를 앓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나루히토는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왕세자비의 인격과 경력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누구인지 밝히는 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공개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왕실 내부의 사정을 외부에 알리는 건 이례적인 일로 왕실 내 갈등설이 언론의 먹잇감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했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는 가족을 지켰다.
   
   이런 그의 강단을 가장 우려하는 쪽은 아베 정부와 일본 우익 세력이다. 나루히토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배외주의를 경계한다.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이나 할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을 겪어보지 못한 최초의 왕이다. 그렇지만 2015년 생일 직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루히토가 강조했던 건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었다. “나는 전쟁 후에 태어났고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겸손한 자세로 되돌아보고 비극적인 전쟁의 기억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 4월 1일 아베 총리가 다음달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 일왕의 새 연호를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차기 일왕을 불편해하는 일본의 보수
   
   그는 아키히토 일왕이 평화를 표명해왔던 것을 직접 봤다. 일본의 우경화 발걸음이 빨라지던 시기에 평화적 행보를 밟아갈수록 일왕의 존재감이 커지는 걸 목격했다. 그럴수록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과의 관계는 불편해진다. 2018년 11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의 수석 신관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일왕을 비난해서다. 일왕 부부와 나루히토 부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다. 신관은 “일왕이 야스쿠니를 망하게 하려고 한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신도(일본 토착신앙)를 증오한다”고 말한 게 알려지면서 물러나야 했다. 당시 영국의 BBC는 “일본의 보수들이 일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라고 설명했다.
   
   나루히토가 아버지의 노선을 따라갈수록 일본 집권 세력은 일왕이 불편해진다. 정치에 직접 개입할 순 없더라도 일왕이 호헌을 암시한다면 개헌을 원하는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된다. 2013년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적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왕위는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있는데 나루히토는 딸만 있고 후미히토는 아들이 있으니 왕세자가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나루히토를 향해 보수세력이 갖는 정치적 불편함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 입장에서 일왕은 엑셀러레이터가 될 수도, 브레이크가 될 수도 있는 존재다. 일왕이 동참하면 우경화에 가속도가 붙겠지만 반대하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 우경화의 중심에는 왕실제도가 있고 일부 우익세력이 이의 상징인 일왕을 우경화에 악용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레이와’라는 연호는 그 시작점이다. 제프 킹스턴 도쿄 템플대 교수는 “레이와라는 연호를 중국이 아닌 일본의 서적에서 따왔다는 건 분명 아베 총리가 자신의 보수적 정치 기반에 어필한 것이다. 새로운 연호는 일본 우경화를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연호로 먼저 일왕 압박에 나선 아베 총리의 선공에 나루히토는 어떻게 답할까. 5월 1일, 그의 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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