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판을 흔들어 혼란을 만들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지위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게임의 룰을 바꾸기 때문에 때로는 새로운 국면을 따라가고 이해하기도 버겁다.

지난 6월 말 판문점에서 있었던 트럼프-김정은 깜짝 만남이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정상회담의 룰을 바꿨다. 이전까지 정상회담은 몇 달의 사전 준비가 필요한 거창한 행사였다. 경호도 의전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이런 식의 느닷없는 정상 간 회동 가능성은 거의 거론되지도 않았다. 굳이 대통령의 안전이 걸린 상황을 만들어 위험부담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트위터를 통해 정책 방향도 알리고, 인사도 하고, 외교도 하는 마당이니 전통적으로 대통령이 일할 때 걸리는 시간과 절차의 개념은 사라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는 방향을 정하고 표현을 가다듬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그래도 사고가 나고 오해가 생겼다.

하지만 트럼프는 메시지 관리를 직접 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모호하거나 부정확한 메시지로 혼란이 가중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트위터를 통해 발산되는 트럼프의 메시지가 거칠기는 해도 상당히 일관성 있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6년 대선 유세 때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회의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항상 비용에 신경 쓰는 트럼프는 돈 많이 들어가는 국빈만찬이 아니라 햄버거를 먹으면서 회의를 하겠다고 했다. 당시엔 다들 재미있는 농담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을 보면 ‘햄버거 회동’의 반쯤은 실현된 셈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은 힘세고 잘사는 나라 20개국 지도자들이 모이는 회의이다. 행사는 화려하지만 대중들이 흥미를 갖는 행사는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이나 우방이 모여서 서로 잘해보자고 하는 국제회의에서 미국 최고지도자로서 멋있고 우아한 역할을 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악동 역할로 판을 깨거나 김을 빼서 다른 지도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일을 더 많이 했다.

이번 G20은 한창 무역전쟁 중인 미·중 지도자의 만남이 예정돼 있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으리라고 해서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았다. 그래도 이런 다자회의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G20을 마무리하면서 트럼프는 트위터에 김정은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느닷없는 제의에 김정은이 응하면서 세기적인 이벤트가 만들어졌다. 미국에선 “트럼프 리얼리티 쇼의 결정판”이란 얘기도 나왔다. 전 세계 언론이 이 급작스러운 만남을 생중계했고, G20으로 흩어졌던 관심은 남김없이 트럼프에게로 쏠렸다.

다들 G20을 했었는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갔는지도 잊을 정도로 얼이 빠졌다. 트럼프는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이 기습작전의 성과에 만족했을 것이다. ‘잘 보도됐다’는 평까지 내놓은 걸 보면.

더불어 트럼프가 김정은과 햄버거 회동을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는 반드시 그런 장면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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