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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5호] 2019.07.08

폭염 비상 유럽의 진풍경들

파리= 손진석  조선일보 특파원 aura@chosun.com

▲ 지난 6월 28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의 모습.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고, 사람들은 벌거벗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AP
프랑스 파리의 폭염이 절정에 달한 6월 29일은 토요일이었다. 이날 점심때 프랑스인 남녀의 약혼식 파티에 초대받았다. 파리 중심부 1구의 5층 건물 꼭대기층에 50여명이 모여 샴페인과 간단한 요리를 먹었다. 분위기는 흥겨웠지만 문제는 무더위였다.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 몇 대에 의지해 더위를 쫓았지만 다들 땀을 뻘뻘 흘렸다. 남성들은 셔츠 단추를 풀어헤쳤다. 취기가 오른 일부는 더위에 얼굴이 벌게졌다.
   
   점심을 마치고 밖에 나와 보니 오후 3시. 강한 햇볕이 목덜미를 때릴 듯 내리쬐었다. 센강변을 지나다 에펠탑 건너편의 트로카데로 분수대를 바라봤더니 마치 거대한 수영장 같았다. 분수가 뿜어대는 물줄기에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연신 손과 발을 갖다 대며 더위를 식혔다.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들과 웃통을 벗어던진 젊은 남성들은 물장구를 쳤다. 신발을 벗고 분수대 안에 발을 담근 관광객들은 더위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날 파리의 낮 최고기온은 34도에 달했다. 프랑스 기상청 기록을 찾아 예년 같은 날 파리의 기온을 비교해봤다. 꽤 더웠다는 아우성이 나왔던 지난해에도 6월 29일 최고기온은 27도에 그쳤다. 2017년 6월 29일은 20도에 그쳤다. 같은 날인데도 작년보다 7도, 재작년보다 14도나 높았던 것이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TV에 나와 “해마다 조금씩 더워지면서 예전에 비정상이던 온도가 점점 정상 온도가 되어가고 있다”며 “더위가 큰 스트레스가 되고 익사자가 속출하니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했다.
   
   파리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위도가 낮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인접 지역은 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지난 6월 28일 프랑스 남부 소도시 갈라르귀-르-몽튀외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45.9도였다. 6월 프랑스 기온으로는 2003년 측정된 44.1도를 단숨에 1.8도 뛰어넘는 신기록이었다. 갈라르귀-르-몽튀외의 프레디 세르다 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 남부는 열대지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남부 4개도(道·데파르트망)에 프랑스 기상청은 적색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4단계의 프랑스 폭염경보 중 경고 수위가 가장 높은 적색 경보를 발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뿐 아니라 서유럽 각국에서 6월 최고기온 신기록이 터져나왔다. 6월 26일 독일에서는 동부 코셴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38.6도를 기록해 1947년 측정된 독일의 역대 6월 최고기온(38.5도)을 갈아치웠다. 이날 나란히 폴란드(38.2도)와 체코(38.9도)도 역대 6월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썼다. 72년 만에 경신된 독일의 6월 최고기온 기록은 불과 나흘밖에 가지 못했다. 6월 30일 프랑크푸르트 서남쪽 크로이츠나흐에서 39.3도가 측정된 것이다. 6월 28일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이에 있는 도시 사라고사가 42도에 이르는 등 40도를 넘나드는 지독한 더위가 이어졌다.
   
   
   에어컨 드문 파리의 고역
   
   파리의 무더위가 견디기 힘든 건 어딜가도 에어컨이 드물기 때문이다. 여름이 선선한 편이었던 2000년 이전까지는 에어컨이 필수 아이템은 아니었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 에어컨을 설치하기도 까다롭다. 기자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 역시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를 방마다 틀어놓고 겨우 땀을 식히고 있다.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도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땀으로 인한 체취가 진동해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다.
   
   상점들은 가정집보다는 에어컨을 갖춘 곳이 많은 편이지만 체감상 그 비율이 높지는 않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출입구에 ‘에어컨 가동 중’이라고 써붙여놓은 식당들을 볼 수 있다. 6월 마지막주 극한 더위가 몰려왔을 때 프랑스 일부 시청·구청은 청사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인근 주민들이 와서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서유럽은 여름에 낮이 길다. 6~7월 파리는 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서향 집에 살고 있는 50대 한국 교민은 “저녁 8시 넘어서까지 직사광선이 들어오니 밤에도 거실이 사우나 같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유럽에서는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졌다.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경찰은 더위를 못 이겨 나체로 헬멧만 쓰고 스쿠터를 타고 가던 남성을 적발했다. 독일 작센안할트주는 평소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고속도로) 최고속도를 시속 120㎞로 제한했다. 무더위에 달궈진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도로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아파트 발코니에 대형 튜브를 불어 만든 미니풀장에서 성인 6명이 한꺼번에 더위를 식히다가 하중을 못 이긴 발코니가 무너져 부상을 입은 일이 생겼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독일의 동물원들이 더위 먹지 말라며 북극곰 등 동물들에게 얼음과 과일을 나눠줬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6월 27~28일 전국적으로 치를 예정이었던 중학교 졸업시험을 7월 초로 연기해 치렀다. 프랑스 전역에서 6월 말 임시휴교한 초·중·고는 4000여곳에 달했다. 파리 시내 수영장들은 시청의 권유로 심야시간까지 문을 열고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을 받았다.
   
   좀처럼 더위를 겪지 않던 지역들조차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다. 예년 여름 기온이 20도 안팎인 북유럽의 스웨덴·덴마크도 6월 말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이상고온을 겪었다. 스위스에서는 다보스포럼으로 유명한 해발 1594m의 고지대 다보스에서 6월 26일 낮 기온이 29.8도까지 올라갔다.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지난 6월 28일 프랑스 남부 보클뤼즈 지역에서는 무더위에 산악지대에서 사이클을 타던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같은날 스페인에서는 중부도시 바야돌리드에서 93세 노인이 일사병으로 쓰러져 숨졌고, 남부 코르도바의 교외에서도 수영을 하던 17세 소년이 익사체로 발견됐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산불로 여의도 5.5배에 달하는 1600㏊ 넓이의 산림이 불탔다. 최근 20년 사이 카탈루냐 지방 최대 규모 산불이었다.
   
   
   사하라사막 바람 북상이 원인
   
   유럽에 때이른 6월 무더위가 찾아온 건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위에서 달궈진 바람이 북상한 것이 원인이다. 낮 기온이 48도에 달하는 사하라사막 상공에서 달궈진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제트기류(지상 1만m 안팎의 높이에서 수평으로 부는 공기 흐름)를 타고 북상한 뒤 유럽에서 넓게 퍼졌다고 기상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올해만 반짝 더운 게 아니다. 화석연료 등이 뿜어져 나오는 온실효과로 점점 더 지구가 데워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15년 이후 5년 연속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지며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무더위가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온실가스가 늘어나는 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독일 포츠담대 기후연구소는 서기 1500년 이후 가장 더운 1~5위의 해가 모두 2000년 이후에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는 “최근 경험한 폭염이 이번 세기 중반에는 흔한 일이 될 수 있다”며 “기후변화를 막는 조치가 조속히 시행되지 않는다면 금세기 말에는 50도 이상으로 기온이 치솟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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