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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565호] 2019.07.08

美 민주당 경선은 해리스·워런의 ‘입’ 대결?

▲ 민주당 경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최근 3위를 차지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왼쪽) 민주당 경선 TV토론서 가장 잘한 후보로 꼽힌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오른쪽) photo 뉴시스·AP
1810만명. 지난 6월 27일 열린 ‘2020 미국 민주당 경선 토론회’의 시청자 수는 역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전 기록은 2015년 10월의 1580만명이었다. 아쉽게도 공화당이 가진 기록은 깨질 못했다. 공화당의 최고 기록은 2015년 8월 폭스뉴스가 주관한 토론회 때 세운 2400만여명이다. 이 토론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후보로 처음 참가한 자리였다.
   
   1810만명이 보여준 관심은 이번 대선이 엄청 뜨거울 거라는 신호다. 직전 대선에서는 정치판에서 신인이자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다. “지금의 정치시스템은 파탄 났다”는 메시지가 먹혔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전해야 하는 민주당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갖는 이런 의문과 불만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인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등장했다. 출사표를 던진 사람만 무려 20명이었고 여성,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성소수자 등 다양함도 갖췄다.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폭넓고 후보들의 정치 기반도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블루스테이트(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주)를 벗어나 인디애나와 미네소타 등 중서부 지역과 텍사스, 플로리다 등 남부 지역까지 포함됐다.
   
   20명은 1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6월 27~28일 각각 컷오프를 위한 TV토론을 치렀다. 토론은 지지율을 재빨리 변화시켰다. 지난 7월 2일(현지시각) CNN이 TV토론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1위는 22%를 기록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었다. 바이든은 그동안 줄곧 선두권을 유지해왔다. 다만 5월 CNN의 조사보다 10%포인트나 떨어진 게 눈에 띄었다. 바이든과 투톱을 이루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5월 조사보다 4%포인트 떨어진 14%를 기록해 4위에 그쳤다.
   
   이들 70대 백인 남성 후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이들은 모두 여성 정치인이다.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17%를 얻어 2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15%를 얻어 3위에 올랐다. 5월 조사와 비교해 해리스는 9%포인트, 워런은 8%포인트가 올랐다. TV토론을 훌륭하게 치른 효과였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6월 29일~7월 1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TV토론에서 가장 잘한 후보는 29%를 얻은 해리스였다. 두 번째로 잘한 후보는 23%를 얻은 워런이었다.
   
   
   “민주당 토론, 해리스가 1등이었다”
   
   해리스는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마이너리티에 가깝다. 아버지는 자메이카인이고 어머니는 인도인이다. 부모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민권운동을 하면서 만났는데, 지금도 해리스는 버클리대 근처에 살고 있다. 2016년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 됐다. 해리스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날은 지난 1월 21일이었다. 이날은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서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일이다. 해리스가 스스로를 ‘흑인’으로 규정하기에 잡은 날이었다. 출마를 선언하며 ABC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한 해리스는 “나는 싸우는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 역시 ‘싸움’이었다. 해리스는 중산층을 위해 싸울 것이며 트럼프와 싸우겠다고 했다.
   
   그녀는 프로필이 독특하다. 흑인이지만 아시아인이고 여성이기도 하다. 비록 어린 시절 이혼했지만 그의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스탠퍼드대학의 첫 흑인 경제학 교수다.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인도 외교관의 딸로 버클리대를 졸업한 뒤 캐나다 맥길대학 교수를 지낸 저명한 유방암 연구자다.
   
   해리스는 흑인들이 선호하는 명문대인 하워드대와 UC 헤이스팅스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지방검사가 됐다. 2003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첫 여성 검사장에 도전해 당선되고 재선까지 성공해 8년간 일했다. 지역 검사장 첫 임기 동안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유죄 판결은 52%에서 67%로 상승했다. 이후 2010년 캘리포니아주의 첫 여성 검찰총장에 도전해 이 역시 성공했다. 상원의원으로는 이제 초선에 불과하지만 생각해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을 때도 역시 초선 때였다. 오바마는 일찌감치 해리스의 이력과 스피치 능력을 눈여겨보면서 “민주당의 미래”라고 평가해왔다.
   
   해리스가 주목받은 건 공격적인 ‘말’이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가 돋보이는 자리는 청문회였다. 출석한 증인의 발언에서 모순점을 철저하게 찾기 위해 과거 발언을 수집하고, 그것을 읽고, 현재의 발언과 약간이라도 모순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발견해 그때가 거짓인지 지금이 거짓인지 물으며 증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게 해리스의 방식이다.
   
   2018년 4월,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문제 등으로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난하게 넘겼지만 해리스의 질문만은 그러지 못했다. 2015년 영국 데이터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에서 얻은 개인정보를 트럼프 캠프에 제공한 사건을 두고 “당신(저커버그)은 (정보 제공을) 사용자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결정이 내려질 때 (애널리티카의) 어떤 경영진들이 대화에 참여했는지 알고 있나? 아니면 그런 대화가 전혀 없었다고 믿는 건가?”라고 묻자 저커버그는 “그런 대화가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며 궁색한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트럼프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해리스의 입은 매번 주목받았다. 지금은 사임한 커스텐 닐슨 전 국토안보부 장관도 불법 이민 부모들로부터 자녀들을 분리시키는 조치 때문에 2018년 5월 상원에 출석해 해리스로부터 매서운 추궁을 받아야 했다.
   
   
   “제겐 계획이 있습니다” 워런의 내공
   
   해리스와 함께 떠오르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지금이야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매사추세츠주에서 정치 활동을 하고 있지만 태어난 곳은 아득히 먼 서쪽의 오클라호마주다. 워런은 하버드대 교수를 지냈지만 막상 자신은 하버드대 졸업생이 아니다. 변호사 출신이지만 예일대나 컬럼비아대 등 미국 법조계에 영향력을 가진 로스쿨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는 붕괴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스로가 1949년생 베이비부머 세대 중 한 사람이며, 중산층의 아이로 자랐지만 아버지가 12살 때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바뀐 성장 시기를 보냈다. ‘싸움’이라는 단어를 해리스가 자주 쓰듯 워런은 ‘투쟁’이란 단어를 즐겨 쓴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내겐 한 가지 재능이 있었다. 주먹 대신 말로 싸울 수 있다”고 써내려갔다.
   
   장학금을 받아 조지워싱턴대에 입학했지만 결혼을 하면서 자퇴했고 남편 근무지인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휴스턴대학에 다시 입학해 학사 학위를 얻은 뒤 다시 남편의 직장을 따라 뉴저지주로 이사했다. 출산 후 이곳에서 러트거스대 로스쿨을 졸업했고 변호사가 됐다. 이후 이혼과 재혼을 겪었고 몇몇 대학에서 경력직으로 교편을 잡은 뒤 하버드대 교수로 채용됐다. 짧은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워런의 삶은 결혼과 출산, 이혼과 육아, 재혼 등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단계가 뒤섞인 채 경력을 쌓아온 고난의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제안하는 정책의 대부분은 로스쿨 교수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겪었던 경험을 반영하는 편이다. 2019년 2월 9일, 워런은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히며 “이것은 우리 삶에 대한 투쟁이다. 부자와 권력자, 타인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지지하도록 부정하게 짜인 시스템에 나는 반대한다”고 지지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워런은 투쟁을 통해 시스템에 취약한 수백만의 가족들을 구하는 게 자신의 정치적 목표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 워런의 가장 큰 투쟁 상대는 월스트리트였다. 2005년 통과한 파산남용방지 및 소비자보호법(BAPCA)은 개인 파산 신청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서민들을 더 힘들게 하고 신용카드사만 유리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은 악법이었다. 워런의 전문 분야가 바로 파산법이다. 그녀는 교수일 때도, 그리고 2012년 처음 상원의원에 당선돼 의회에 입성한 뒤로도 이 법안을 바로잡으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반면 워런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현재 민주당 지지율 1위 후보인 바이든이다. 그는 2005년에 이 법안을 지지한 전력이 있다.
   
   워런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 하나가 “I have a plan(나에게 계획이 있다)”이다. 그녀는 ‘계획’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계획은 내공이 깊다. 수십 년간 학계에 있으면서 다져진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지 근거도 뚜렷한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주택 개발, 육아 지원, 기업 사내이사의 책임 강화, 학생 대출 상환 면제, 공립대학의 학비 무료화 등 여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워런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민주당 후보자들 역시 정책이나 입장을 내놓아야 했기에 ‘어젠다 세터’의 역할도 맡은 셈이다. 워런이 내놓는 진보적인 정책을 두고 유력 후보 중 하나인 버니 샌더스와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스스로를 자본주의자로 규정하고 시장을 믿는다는 입장을 밝힌 게 샌더스와 다르다.
   
   
   해리스와 워런의 결선 이뤄질까
   
   워런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시장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고치길 원하는 쪽이다. 최근 공약으로 내세우는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해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내에서 전체 인터넷 정보량 중 70%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국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절반을 아마존이 차지하고 있다. 워런은 이런 상황을 근거로 “IT 대기업은 경제, 사회, 민주주의에 과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쟁을 방해하고 우리의 개인정보를 사용해 이익을 얻으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해체를 약속하고 있다. “규칙이 없는 자본주의는 도둑질이다”라는 말은 워런의 또 다른 입버릇 중 하나로 GAFA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행이 확실해 보이는 2020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후보의 자격 요건은 단 하나, 트럼프 재선을 막을 수 있느냐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으스대는 트럼프 대통령을 브라운관 앞에서 짓눌러버릴 수 있는 강렬하고 공격적인 토론 능력 보유자를 찾고 있다. 때마침 토론회에서 지지자들의 바람에 부응한 두 여성 후보가 지지율 상승이라는 선물을 받은 건 너무 당연해 보인다. “민주당 경선이 해리스와 워런의 결선 대결로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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