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미국에선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프레지던트데이(President Day·대통령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당초 프레지던트데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1732년 2월 22일)을 기념하기 위해 1885년부터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었다. 명칭도 조지워싱턴데이였다. 그러다 1971년 토요일과 일요일, 월요일을 묶어 사흘을 쉴 수 있도록 공휴일을 월요일로 정하자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워싱턴의 생일인 2월 22일이 아니라 2월 셋째 주 월요일로 바뀌었다. 또 워싱턴뿐만 아니라 2월에 태어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함께 기념하자는 의미에서 프레지던트데이로 명칭도 변경했다.

현직 대통령으로 역대 최악의 점수

지난해 프레지던트데이(2월 19일)를 맞아 미국 정치학회의 ‘대통령 및 행정학 분과’ 소속 학자 170명이 역대 대통령 44명을 평가한 결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0점 만점에 평균 12.34점을 얻어 꼴찌인 44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학자들이 꼽은 순위에서도 40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만 열면 비판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조사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을 때 18위였지만 2018년 조사에선 8위로 순위가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운영 전반, 입법 성과, 외교 리더십, 제도 규범 구현, 대중 소통 등 5대 분야에 대한 A~F 학점 방식의 평가에서 3개 분야에서 F(낙제), 2개 분야에서 D를 받았다. 정치학자들이 꼽은 ‘톱7’ 대통령의 순위는 4년 전과 동일했다. 링컨이 1위를, 워싱턴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어 시어도어 루스벨트, 토머스 제퍼슨,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순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최악의 점수를 받은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었다.

미국 국민들은 그동안 정파가 다르더라도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해왔다. 미국 국민들은 특히 현직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지지와 신뢰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40년간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등 3명뿐이었다. ‘역사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으로서 4번째 낙선하는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역사적인 성과를 내려고 지나친 국내외적 행보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요즘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독립기념일(7월 4일)을 맞아 트럼프가 벌인 군사퍼레이드를 들 수 있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독립기념일 행사가 치러졌지만 동시에 역대 최악으로 분열된 미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243번째 독립기념일을 맞아 워싱턴에서는 탱크와 전투기 등이 동원된 군사 퍼레이드가 거행됐다. 트럼프는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까지 했다.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한 것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68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비롯해 B-2 전략폭격기, F-35, F-22 스텔스 전투기 등 20여대가 워싱턴 상공을 날며 축하비행을 했다. 군사 퍼레이드가 독립기념일에 거행된 것은 1991년 걸프전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8000여명의 군인들이 행진한 이후 28년 만이다. 트럼프의 연설 이후엔 콘서트가 열렸고,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펼쳐졌다. ‘미국에 대한 경례’라는 이름이 붙은 이번 행사는 ‘트럼프 연출과 주연’의 리얼리티쇼와 같았다.

분열 일으킨 독립기념일 리얼리티쇼

이번 독립기념일 행사에선 트럼프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서로 편을 가르는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 구호인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가 적힌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휘날리며 ‘트럼프’와 ‘USA’를 연호했다. 반면 반대자들은 반(反)트럼프의 상징이 된 기저귀를 찬 ‘베이비 트럼프’ 풍선을 띄우고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지자를 열광시키고 비판자를 열받게 만든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같은 장소에서 두 가지 버전으로 각자 독립기념일을 축하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들은 이번 행사를 트럼프의 2020년 대선 재선을 위한 쇼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역대 독립기념일 행사는 그동안 당파성 없이 미국인 모두의 축제로 치러져왔고 현직 대통령이 연설에 나선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번 행사는 미국의 이상을 기념하기보다 트럼프의 자아를 어루만지는 쪽으로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이날이 자신의 생일이 아니라 미국의 생일이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런 행사는 독재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대통령은 탱크 등으로 자신을 빛내려 하고 공화당 기부자들은 납세자들이 낸 돈으로 VIP 좌석을 얻었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이번 행사를 비판하는 소리가 나왔다. 저스틴 어마시 하원의원은 “오늘 나는 나의 독립을 선언하며 공화당을 떠난다”고 탈당을 선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가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회동한 것도 독립기념일 행사처럼 철저하게 재선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애초 김정은과의 만남을 아이디어로 생각했던 것은 북한 정권이 바이든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바이든은 지난 5월 18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유세에서 “우리가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와 폭군을 포용하는 국민이냐”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지만 트럼프는 그렇다”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인간의 초보적인 품격도 갖추지 못한 속물의 부질없는 추태’라는 제목의 논평 기사(5월 21일자)에서 “바이든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을 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며 “미국에서 그의 출마를 두고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멍청이라는 조소와 함께 지나친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는 평가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는 등 민주당에서 타 경선 주자들에 비해 독보적인 국정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바이든의 도전이 자신의 재선에서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해왔다.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F-35 스텔스 전투기들이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F-35 스텔스 전투기들이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민주당 경선이 판문점 이벤트 불렀나

트럼프는 지난 5월 27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을 비난한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북한 정권의 비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정은이 바이든의 지능이 낮다고 발언한 것은 아마도 기록에 근거해서 했을 것”이라며 “그 내용에 대해 김정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미국 조야와 언론들은 자신의 정적을 비판하기 위해 북한 정권과 김정은의 편을 든 트럼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미국 조야와 언론들은 트럼프가 그동안 대북 정책에서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이든은 지난 6월 11일 아이오와주 대번포트에서 열린 유세 연설에서 “트럼프가 폭력배이자 살인자인 김정은을 감싸안으려 한다”고 비난하는 등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내년 대선의 주요 이슈로 삼으려는 의도까지 보였다. 그러자 트럼프로선 자신의 대북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를 경우 불리할 것으로 보고 이를 만회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6월 28·29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김정은과의 만남이라는 이벤트를 추진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오사카에서 트위터로 김정은에게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시각은 6월 29일 오전 7시51분으로, 미국에선 6월 26~27일 저녁 이틀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의 TV 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은 바이든과 샌더스 상원의원 등 유력 주자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면서 1810만여명이 시청해 TV 토론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국내 뉴스가 민주당 토론에 집중되자,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동’ 카드로 맞대응한 셈이다.

트럼프는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고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김정은과 53분간 단독 회담을 가졌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 미국 언론들은 물론 각국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봤을 때 김정은과의 회동은 자신의 대선 전략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의 무역전쟁, 이란 핵 합의 탈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퇴진 등을 추진해왔지만 성과를 제대로 거둔 것은 하나도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외교적 경험이 풍부한 바이든이 유력한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 대선 레이스에서 트럼프에게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을 재선용 카드로 십분 활용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오바마와 바이든을 한데 묶어 ‘오바마-바이든이 만든 엉망진창(Obama-Biden Mess)’이라면서 비판 공세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을 발사했다”면서 “지금 북한과의 관계는 아주 좋고, 북한과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오바마가 재임 중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했다는 ‘가짜 뉴스’까지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북한 문제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주자들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을 한목소리로 비판하며 견제에 나섰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와 이익을 희생하면서 독재자를 애지중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단지 사진 촬영 기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훌리안 카스트로 전 주택도시개발 장관도 “모두 쇼다. 실체가 없다”고 폄훼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사진 촬영 기회에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며 무자비한 독재자와 러브레터를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고 비꼬았다.

지난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photo 트럼프 트위터
지난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photo 트럼프 트위터

제동 거는 미 의회

미국의 외교·안보 및 한반도 전문가들은 10명 중 8명 꼴로 트럼프와 김정은과의 만남을 비판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아·태담당 부차관보는 “TV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한 오락거리였겠지만 비핵화에 진지한 관심을 갖는 사람에겐 실질적 알맹이나 진전 없는 이벤트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가 유난을 떨지만 짧은 만남이 비핵화의 많은 돌파구를 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가짜 외교로 미국과 남북한이 사소한 영광을 누리는 동안 인권침해와 핵 정권은 정당화된다”고 꼬집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을 위한 무대였다”고 지적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사진 찍기를 위한 자리였으며 1년 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상황과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다. 조슈아 폴락 미들버리국제연구소 연구원도 “어젠다도 없고, TV용으로 만들어진 만남은 부풀려진 기대와 실망의 1년을 원 상태로 되돌리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켄 고스 미 해군 분석센터(CNA) 선임국장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난 것은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의 관계에서 업적을 낸 역사상 첫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트럼프가 앞으로도 북한 카드를 재선용으로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최우선 과제는 어디까지나 재선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김정은과의 만남은 재선 가도에서 활용가치가 크고 오래 쓸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트럼프의 이런 행보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상원은 대북 금융거래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추가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에는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업무 제재 법안(BRINK Act·일명 웜비어법)’이 포함됐다. 하원에서도 내년도 국방수권법안이 군사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절차를 앞두고 있다. 상원에선 또 원유를 비롯한 대북 에너지 공급 차단에 초점을 맞춘 ‘효과적 외교 증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LEED Act)’이 재발의됐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쇼를 막기 위해 의회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한국의 입장에선 트럼프의 ‘재선 쇼’ 때문에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