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런던 통신] 존슨 새총리의 바가지머리엔 치밀한 계산이 있다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세계
[2568호] 2019.07.29
관련 연재물

[런던 통신]존슨 새총리의 바가지머리엔 치밀한 계산이 있다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그는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 photo 뉴시스
같은 종족은 뭔가 통하는 점이 있는가 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나 대서양을 중간에 두고 앵글로색슨족인 미국과 영국에 비슷한 지도자가 들어섰다. 지난 7월 24일(현지시각) 영국 총리에 취임한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사점을 비교해보면 쓴웃음이 나올 정도다. 우선 헤어스타일부터 보자. 존슨과 트럼프의 머리칼 색깔은 놀랄 정도로 똑같다. 스타일은 좀 다르긴 해도 괴상한 점에서는 같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똑같다. 존슨이 ‘영국 운명은 영국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논지로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브렉시트는 결국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고립주의로 가는 트럼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과 미국에 똑같은 지도자 등장
   
   거기다가 두 사람의 인종차별, 성차별 식의 망언이나 실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특히 트럼프처럼 존슨도 다른 영국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말을 돌려 하지 않는다. 그가 직설을 해서 속이 시원하다는 영국 국민들도 많다. 고급 영어일수록 같은 표현도 길게 하고 돌려서 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는 실례이다. 여자 관련 스캔들은 존슨이나 트럼프가 누가 더 심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라 아예 양국 국민들은 그러려니 할 정도이다. 존슨은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신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트럼프처럼 이단아로 행동한다. 이렇게 양국에는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정치인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요즘 영국에선 전직 보수당 하원의원이 쓴 ‘왜 지각 있는 보수당 당원들은 보리스 존슨을 지지하나?’라는 예리한 칼럼이 화제가 되고 있다. 보수당 밖 영국인들은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존슨은 한 나라 지도자이기에는 부적격의 허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보수당원들이 왜 그를 당수로 뽑았느냐는 의문이다. 영국 근대 역사 정치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보수당이다. 1874년 벤저민 디즈레일리 정부로 시작해서 1997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에 정권을 넘겨줄 때까지 보수당은 123년 동안 무려 84년을 집권했다. 20세기 들어서도 현재까지 120년 동안 67년간을 집권한 당이기도 하다.
   
   
   그는 철저히 준비된 총리다
   
   그런 전통의 정당이 왜 ‘영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존슨을 당수로 뽑았을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든다. 그러나 보통은 존슨과 트럼프의 같은 점만 알지 그가 트럼프와 도저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준비된 지도자라는 점은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TV 프로그램 하나로 대중적 인기를 끌다가 정치 경력 하나 없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벼락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인 반면 존슨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총리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정치 여정을 착실하고 꾸준히 일구어온 잘 준비된 총리라는 점을 간과한다.
   
   우선 존슨의 성장 과정부터 살펴보자. 존슨은 영국의 전형적인 중상층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존슨 아버지 스텐리는 옥스퍼드대를 나온 작가이자 정치가였다. 특히 유럽연합 의회의원을 역임해 본래 브렉시트 반대파였다. 물론 나중에는 탈퇴로 의견을 바꾸었지만 브렉시트 투표 때까지만 해도 아들과는 달리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브렉시트안이 통과되던 순간의 존슨 표정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존슨의 문제의 표정은 ‘내가 도대체 뭘 한 거지?(What bloody have I done?)’였다고 한다. 결국 그 말은 브렉시트 통과를 앞에서 끌고 가던 존슨조차 브렉시트안이 통과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통과라는 의외의 결과를 듣는 순간의 당혹감을 아버지가 예리하게 캐치해낸 셈이다. 물론 나중에 존슨은 부정했지만 브렉시트에 대한 확신 없이 자신의 정치적 장래만을 위해 브렉시트를 추진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어차피 브렉시트는 통과되지 않을 터이니 이 참에 보수 국민들의 인기나 얻겠다는 기회주의적인 동기가 발동했다는 비판이다.
   
   존슨의 어머니 역시 옥스퍼드대를 나온 화가인 데다 그의 5남매 모두 성공한 인물들이다. 맏아들 오빠와는 달리 브렉시트에 반대해 보수당에서 자민당으로 옮긴 작가 겸 기자인 여동생 레이첼, 회계사 레오, 기자 출신의 현직 하원의원이자 전직 내각요원이었던 조, 자작 가수이자 작가인 여동생 줄리아, 세계 유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중역인 맥스 등이 존슨의 동생들이다.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금수저는 몰라도 최소한 은수저급의 중상층 집안이다.
   
   
   존슨이 옥스퍼드에서 겪은 3가지 굴욕
   
   존슨 자신도 나무랄 데 없는 학력을 갖추고 있다. 어딘가 빈틈이 많고 좀 모자라는 듯한 모습과는 달리 영국 최고의 학력을 갖춘 수재다.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는데 이런 명문도 평범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튼스쿨 입학 시 최우수 학생에게만 주는 킹스스콜라 장학금을 받았고, 옥스퍼드대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그러나 존슨은 옥스퍼드대에서 세 번의 좌절을 맛봤다. 첫 번째는 전공이다. 옥스퍼드대 입학을 신청할 때 가장 합격 조건이 까다롭고 높은 성적을 요구하는 전공 과목은 PPE(Philosophy, Politic & Economic), 즉 ‘철학, 정치, 경제 복합전공’이다. 영국 사회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엘리트가 되려면 PPE를 반드시 전공해야 하는 게 철칙이다. 특히 정치 쪽으로 꿈을 꾼다면 PPE 말고 다른 전공을 선택하면 일단 결격 사유이다. 하지만 존슨은 차선책으로 고전문학(Classic)을 전공했다. 정치에 일찍부터 꿈을 가졌던 존슨의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주었음이 분명하다.
   
   영국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옥스퍼드대 토론클럽 유니언 의장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도 그렇다. 존슨은 의장에 출마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유니언의 사무총장(secretary)을 하면서 의장 도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부터 공립학교 졸업생이자 자신의 집안에서 대학교라고는 처음 들어온 서민 출신에게 고배를 마셨다. 존슨에게 패배를 안긴 인물은 당시 존슨이 자기를 출마하지 못하게 주저앉히려고 담판을 할 때 거들먹거리던 모습을 한 인터뷰에서 털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존슨은 재수 끝에 당선되었다. 옥스퍼드대 유니언 의장 출신 중에서 재수까지 해서 경력을 쌓은 경우는 존슨이 유일하다.
   
   발리올칼리지 졸업 성적이 존슨이 옥스퍼드대에서 받은 세 번째 굴욕이다. 졸업성적이 1등급(First-class honours)이 아닌 2등급(Upper second-class honours)이었다. 존슨은 항상 최고 성적을 받아왔는데 2등급을 주었다고 당시 교수들을 두고두고 악평하면서 욕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1등급을 충분히 받고도 남는 성적인데 유니언 회장을 하면서 교수들과 학교를 비판한 탓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다.
   
   존슨이 나온 고등학교 이튼스쿨은 보수당 지도자의 산실이다. 지난 500년 동안 20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이튼 출신의 거의 모든 총리가 보수당 출신이다. 이튼은 런던 서쪽 히드로공항을 조금 지난 윈저성 바로 밑에 있다. 왕의 성 밑에서 왕에게 충성하는 왕당파 신하를 만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런던 템스강가의 웨스트민스터 의회의사당 옆에 있는 또 다른 최고 명문 웨스트민스터스쿨은 영국 시민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 같은 의회파 정치인을 배출한 산실이다. 해서 좌파 정치인이 많은 편이다.
   
   평소의 우스꽝스러운 행동, 실언, 망언 등으로 인해 존슨에 대한 언론의 평은 상당히 박한 편이다. 특히 지식인들은 악평 일색이다. 영국 언론의 글에 언급된 존슨의 악평을 모아보자. 광대(clown), 건달(scoundrel), 자잘한 협잡꾼(mere rogue), 후안무치한 인종차별주의자(unapologetic racist), 야비한 기회주의자(sordid opportunist), 까불고 뛰어다니는 허풍쟁이(cavorting charlatan), 진실을 모독할 의도의 도덕적인 파산자(moral bankruptcy, rooted in a contempt for truth) 등은 빙산의 일각일 정도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간과하는 점은 이런 악평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실언, 망언, 우스꽝스러운 언어나 행동 모두가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존슨 하면 떠오르는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부터 보자. 모든 머리를 아래로 내린 뒤 어머니가 집에서 막 자른 듯한 바가지머리형의 봉두난발은 그에 대한 소년 같은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준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영국 언론은 존슨의 이런 헤어스타일을 ‘길고 말갈기 같은 금발 머리칼(long ruffled blonde hair)’ ‘삼단 같은 긴 머리(tresses)’라고 놀린다. 철없는 아이들이 튀게 보이려고 머리칼을 일부러 길게 늘어뜨리는 치기 같은 짓이라고 본다.
   
   
▲ 외무장관 시절인 2017년 9월 유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 photo 뉴시스

   바가지머리의 경쟁력
   
   그러나 올해 초 그의 단골 이발사가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 이발소에서 우연히 자른 머리 스타일을 보면 평소 헤어스타일이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존슨의 머리칼을 처음 자르게 된 동네 이발사가 당황해서 평소보다 짧게 잘라 머리카락이 단정해진 사진을 보면 평소와 완전히 다르다. 편안하고 장난스러운 이미지의 존슨이 아니라 심각하고 심술궂은 영국 노인(그의 나이는 55세에 불과하다) 같아 보인다. 아마 자신이 그렇게 보일 걸 알고 긴 금발 머리를 장난스럽게 휘날리고 다닌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이렇듯 존슨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주도면밀하고 세심하게 처리한다.
   
   존슨은 정말 기존의 어떤 영국 정치인과도 닮지 않았다. 최소한 영국에는 존슨을 닮은 정치인은 존슨밖에 없다. 그러나 존슨은 자신이 처칠과 비슷하다고 믿는다. 혹은 자신이 위대한 처칠과 같다는 걸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2015년 2월 ‘처칠 팩터(The Churchill Factor)’를 출간해서 지금까지 계속 베스트셀러로 팔아먹고 있다. 그 이외에도 기자 출신답게 11권의 책을 썼다. 한국에는 ‘처칠 팩터’와 ‘런던 위인전’ 번역판이 나와 있다. 사실 오랜 기간 기자를 하고 저서도 12권이나 낸 존슨이 멍청하다거나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아주 치밀하게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존슨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모든 영국 정치인은 심각하고 진지하다. 해서 존슨 자신은 이와는 다르게 보이면 훨씬 더 이미지 관리에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보수당 지도층 정치인은 모두 진지하고 심각했던 반면 존슨은 분명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기존 보수 정치인에 식상한 보수당 지지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유머감각을 가진 듯한 존슨으로부터 친근감을 느낀다. 말투, 행동, 농담, 심지어는 단점, 실수, 이혼, 혼외 스캔들까지 보통사람들과 같은 존슨에게 열광한다. 영국 유권자, 특히 보수 유권자들은 지금까지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신들과 같은 인간형의 지도자로 브렉시트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강력하게 끌고 갈 지도자를 원한다. 전체 유권자들도 보수 유권자들과 같은 걸 원하는지는 모르나 일단 보수 유권자들의 선택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허점투성이의 떠버리 존슨임에 틀림없다.
   
   
   ‘보리스니까 괜찮다’
   
   존슨의 발언과 기사가 여성비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고 해도 인기가 있는 이유는 영국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른 정치인들은 보통사람들로서는 너무 이상적이고 고루해서 밀착감을 못 느끼는 데 반해 존슨은 다른 기성정치인과 같은 중상층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몸을 낮추어 자신들에게 맞추려 한다고 좋아한다. 심지어는 잦은 이혼이나 여성 추문 같은 일도 다른 정치인이라면 정치생명이 끝날 정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보리스니까 괜찮다’는 식으로까지 특혜를 받는다. 바로 이 점이 존슨이 노리는 것이다. 즉 ‘나는 비록 너희들과는 출신이 다르지만 너희들과 비슷한 흠 많은 인간이어서 같이 놀고자 한다’라는 메시지를 그동안의 행동과 발언으로 보여주고 증명해서 보통사람들의 인증을 이미 받았다.
   
   이와 관련 필자는 작년 10월 주간조선 2526호에 이렇게 쓴 바 있다. ‘존슨은 다른 정치인 같았으면 정치생명이 끝났을 문제를 잘 헤엄쳐 이겨왔다. 이혼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혼율이 50%가 넘는 영국에서 이제 더 이상 총리라고 도덕을 칼같이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미 존슨은 알고 작년 9월 일찌감치 이혼을 발표하고 총리 준비를 시작했다.’
   
   존슨이 작년에 무슬림 여성이 부르카로 온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고 다니는 걸 두고 ‘우체통과 은행강도 같다’는 칼럼을 썼을 때도 유권자들은 존슨을 비난하지 않았다. 다른 정치인 같았으면 당장 당권 정지를 받을 만한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풍자라 여겨도 될 만한 일이었다고 넘어갔다. 보수당 당기위원회의 이런 결정 뒤에는 ‘인종 문제를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straight talking on race)’는 보수 영국인들의 환호와 함께 영국인 60%는 존슨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이지 않다고 봤고, 48%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는 여론조사도 한몫했다. 도발적이긴 했지만 풍자를 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영국 보수 지식인들이나 당 원로들은 보수당도 이젠 전통의 격조 높은 당이 아니라 표를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 가치까지 팔아넘긴다고 노발대발했으나 영국 대중들은 무슬림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존슨이라서 그런지 너그럽게 용서해주었다. 존슨은 또 한번 위기를 넘겼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보수 정서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확실한 자리매김까지 했다. 역설적이지만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존슨이 일부러 도발을 하는 도박을 했는데 멋지게 성공했다는 언론의 평가가 나왔다.
   
   
   “혼자서 버스모형 만드는 것이 취미”
   
   기자들은 항상 그에게서 폭탄 같은 실언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다른 정치인에게는 하지 않을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런 경우 존슨은 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듯 폭탄을 터뜨린다. 영어에서 실언을 ‘혀가 미끄러졌다(slip of the tongue)’로 표현하는데 존슨의 실언은 의도된, 고도로 계산된 일종의 정치 행위이다. 그런 도발적인 발언에는 당연히 대단한 물의가 일어날 걸 언론인 출신이자 현역 주요 정치인인 그가 모를 리가 없다. 다분히 계산된 망언을 해서 지지자들을 확실하게 자기 주위로 결집시키는 고도로 계산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에 ‘보리스 존슨의 가장 재미있는 사진들(Boris Johnson’s funniest pictures)’이라고 치면 웃음이 픽 나오는 수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템스강 위를 줄에 매달려 건너가서는 걸음마하는 아기가 넘어지는 듯한 사진이나, 우스운 헬멧을 쓰고 둔중한 몸으로 뒤뚱거리면서 ‘보리스 자전거’라 이름이 붙은 유료 공용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은 절대 그를 폄하하기 위한 사진들이 아니다.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찍고 노출한 사진들이다.
   
   존슨은 중요한 토론을 할 때 적수의 발언 핵심을 흐리려고 일부러 잘 못 들은 체(comically mishear)하면서 다시 묻는다. 그때 일부러 재미있는, 혹은 비슷한 발음의 웃기는 단어를 말해 청중들을 웃긴다. 청중들의 웃음이 끝나고 나면 이미 적수의 발언이 뭐였는지 청중들은 잊어버리게 된다. 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자신에게 들어올 때도 같은 수법으로 청중들을 웃겨 대답할 시간을 벌거나 분위기를 봐가면서 ‘다음 질문?’ 하고 넘어가버린다. 혹은 자신의 실언이나 망언 혹은 적절하지 않은 언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들어올 때는 그냥 전적으로 풍자(wholly satirical)였다고 발뺌을 한다. 결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처럼 매끄러운 연설을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약간 더듬거리는 듯한 어설픈 연설이 훨씬 더 친근감이 간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에게 ‘뭘 하고 쉬느냐’는 질문을 기자들이 던지면 자기다운 대답을 한다. “혼자서 버스모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엄마가 집에서 대충 잘라준 듯한 봉두난발 바가지머리’의 다 큰 존슨이 쭈그리고 앉아 모형버스를 조립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보면 누구나 미소를 짓게 된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무책임하고, 그러나 순진한 듯한 소년 같은 이미지에 아주 부합되는 듯한 취미이다. 그러나 이것도 고도로 계산된 발언인 듯하다는 게 기자들의 논평이다.
   
   어찌 되었건 보수당은 2010년 5월 고든 브라운 노동당 총리로부터 정권을 되찾아 현재까지 10년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번의 존슨까지 그동안 3명의 총리가 선출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막바지’라는 말이 존슨이 취임하자마자 나온다. 보수당 당수이자 총리가 새로 선출된 날 가디언지는 ‘존슨에게 (협상 없이 유럽연합을 나가는) 노딜을 단념하거나 아니면 생존투쟁을 맞이하라고 보수당 반란세력이 경고했다(Tory rebels warn Johnson: ditch no deal or face fight for survival)’라는 표제 기사로 초를 쳤다. 노딜로도 브렉시트를 순조롭게 풀어갈 많은 방안이 있다고 존슨은 말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영국 언론은 존슨이 비틀스 멤버 존 레논의 ‘어떻게 잘 되겠지(everything will be ok in the end)’라는 요행수를 바란다고 한다.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10월 31일 무조건 유럽연합 탈퇴라는 사탕으로 영국민의 0.15%밖에 안 되는 9만2000명의 보수당원만을 구슬러 정권을 잡았지만 결국 영국 역사에서 가장 짧게 재임하는 총리가 되리라는 불길한 예측을 한다.
   
   
   그에게 진짜 브렉시트 묘수가 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정부 각 기관에 있는 온갖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은 테리사 메이 전 총리도 못 찾은 묘수를 그동안 내각 아웃사이더였던 존슨이 무슨 전문적인 두뇌가 있어 총리가 되기 전부터 갖고 있겠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이 큰 그림만 갖고 들어와서 실무적인 일은 정부 내 두뇌들과 같이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딱 100일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비판과 걱정이다. 물론 존슨이 오는 10월에 딜이든 노딜이든 무조건 탈퇴를 하겠다는 발언은 유럽연합과의 재협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두고 볼 일이다.
   
   필자는 이번 영국 총리 교체 과정에서 대통령제와 비교해 내각책임제가 갖는 확실한 장점을 보았다. 평소 재선출에 목숨을 거는 의원들에 의해 국정이 수시로 좌지우지되고 협상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의원내각제에 회의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 영국 총리 교체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치명적으로 잘못하게 되면 국가적인 비극 같은 교체 과정을 밟아야 한다. 거기에 비해 내각책임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교체 절차가 훨씬 유연하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할 수 있었다. 실제 영국은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모두가 평화로운 절차를 통해 물러나고 후임이 선출되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