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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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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독일이 보여준 ‘평화경제’의 신기루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2016년 2월 폐쇄되기 전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근로자들. photo 뉴시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후 1년도 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당시 서독의 영토는 35만6000㎢, 인구는 6260만명이었고, 동독의 영토는 10만8000㎢, 인구는 1640만명이었다. 서독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만558달러(2220만원), 동독은 9703달러(1038만원)였다. 서독이 동독보다 2.11배 높았다.
   
   독일은 통일 이후 경제위기에 빠졌다. 당시 동독 노동인구가 서독에 대거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제력 차이를 무시하고 동독 마르크화를 서독 마르크화 기준으로 평가하고, 임금과 연금 체계도 1 대 1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경제난은 동독 지역이 심각했다. 동독 상품은 경쟁력을 잃었고, 2년 만에 동독의 총생산이 3분의 1까지 줄었다. 동독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80%가 실직하거나 이직을 해야 했다. 독일의 실업률은 1990년 6.4%에서 2005년 11.3%까지 올랐다. 독일 정부는 막대한 재정 부담 때문에 1991년 ‘연대세’라는 이름의 세금을 신설했다. 소득세와 법인세에 추가로 붙는 세목으로 도입 당시엔 7.7%였다. 연대세는 1995년부터 5.5%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2005년까지 ‘유럽의 병자’로 불릴 정도로 장기 침체를 겪어야만 했다.
   
   
   통일 이후 경제위기에 빠진 독일
   
   동독은 통일 이전 동구권은 물론 전 세계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동독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비해 냉장고와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2배나 높을 정도로 생활수준도 훨씬 나았다. 동독의 1인당 GDP는 공산권의 전성기였던 1968년 1801달러였다. 이는 서독의 2206달러보다는 적지만 세계적인 기준으로는 잘사는 선진국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동독 경제는 국가계획경제 체제 때문에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독 경제는 1980년대 들어 침체를 거듭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소련의 경제난 때문이었다. 소련은 동독을 비롯한 공산주의 형제국가들에 무료로 제공하던 원유 공급을 대폭 줄였고, 원유 가격도 세계시장 가격으로 높이는 동시에 차관에 대한 이자도 높였다. 이에 따라 동독은 만성적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래도 동독은 주민들이 각 가정마다 트라반트라는 자가용 소형차 1대를 소유했던 나라였다. 동독 주민들은 또 식량난이나 물자 부족 등으로 고통을 겪지도 않았다. 풍요로운 건 아니지만 동독 주민들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독일이 통일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지만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동독 경제가 그나마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분단됐던 서독이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동독을 상당히 지원해주었다는 것이다.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적 지원은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간의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 등에 따른 것이다. 특히 서독이 동독에 대한 경제 지원을 할 때마다 일관성 있게 지킨 제1의 원칙은 상호주의였다. 서독은 지원 건수마다 동독의 제도나 동독인의 인권 개선, 인적교류 확대와 동독 정치범의 석방과 서독행 허용, 동독 주민의 서독 TV 방송 청취 허용 등의 조건을 달았다. 연평균 32억달러에 달하는 동독 지원은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인척과 교회에 제공한 물품이 77%를 차지했다. 또 서독의 동독 경제 지원은 동독의 요구가 먼저 있어야 하고, 반드시 대가를 받아야 하고, 동독 주민들에게 지원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3대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서독의 동독에 대한 경제 지원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동·서독은 남북한과 달리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데다 동독이 서독에 대한 무력 도발 등 군사적인 위협 등을 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독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도 개발한 적이 없다.
   
   독일 하원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서독이 1972년부터 통일을 이룬 1990년까지 18년간 동독에 지원한 자금은 총 1044억마르크(당시 환율로 70조원, 576억달러)였다. 그 내역을 보면 동·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철도 건설과 보수비용, 직접 차관, 지불보증 차관, 동독 정치범의 서독 이주 대가에 따른 물품 지원, 서독 주민 차원의 지원, 서독 교회 차원의 지원 등이었다. 전체 지원에서 정부 차원은 296억마르크로 28%였고, 나머지는 민간 차원이었다. 서독은 통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동독인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동독의 내부 변화를 유도했다. 그 결과 동독의 체제가 더 이상 내부 변화를 담을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자 통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독은 말 그대로 가성비 높게 돈을 사용한 셈이다.
   
   
▲ 김정은이 청진의 가방 공장에서 학생용 가방을 살펴보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독일 통일비용으로 2730조 사용
   
   독일은 통일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동독 지역에 경제 재건과 인프라 건설 및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통일비용으로 총 2조유로(2730조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동·서독 지역 간 경제적 격차는 여전하다. 임금 수준, 고용 지표, 생산성 등 주요 경제 지표에서 옛 동독 지역이 옛 서독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지난해 옛 동독 지역의 1인당 GDP는 옛 서독 지역의 73%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전국 평균은 3~4%대인데 동독 지역은 7~8%로 두 배가 넘는다. 이렇다 보니 동독 지역의 젊은층은 일자리를 찾아 대거 서독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이포(Ifo)경제연구소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베를린을 제외한 동독 지역의 인구가 1360만명으로 감소해 1905년 수준으로 퇴보했다고 밝혔다. 통일 이후 지난 30년간 순유출된 사람들이 34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 할레경제연구소(IWH)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매출 규모로 독일 500대 기업들 가운데 93%인 464개 기업이 본사를 서독에 두고 있고, 36개 기업만 동독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위 30대 기업은 동독 지역에 본사를 하나도 두지 않고 있다. 또 전체 기업들 가운데 250인 이상 기업의 비중은 서독 지역에서는 22.9%였지만, 동독에선 7.6%에 그쳤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젊은층이 동독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은 지금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4위의 경제강국이지만 옛 동독 지역은 예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독일 언론들은 동독 지역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 세대가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은 공산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주민들의 뿌리 깊은 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동독 지역에선 아직도 ‘오스탤지어(ostalgie)’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스탤지어는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향수(nostalgie)’의 합성어로 옛 동독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다”면서 평화경제를 북한에 제안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 원코리아(One Korea)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이 역량을 합칠 경우 8000만명의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고, 한반도가 통일되면 세계 6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경축사는 남북한 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기조로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한의 경제 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8월 16일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의 이름으로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등의 원색적인 막말과 조롱하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으면서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제의를 거부했다. 게다가 북한은 동해에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하며 또다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도발 행위를 자행했다.
   
   
▲ 러시아 블로거 알렉산데르 베렌크리가 촬영한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북한 마을 모습.

   한국의 26분의 1인 북한 1인당 소득
   
   북한의 이런 무도한 행태를 볼 때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은 말 그대로 백일몽(白日夢)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엇보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고 우여곡절 끝에 통일된 이후 3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완전하게 통합되지 않은 현실을 볼 때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은 허황된 몽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및 북한의 경제규모를 보면 지난해 기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706억달러, 한국은 1조6556억달러, 북한은 326억달러(추정)를 기록했다.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한국은 세계 12위이지만 GDP로 볼 때 일본의 3분이 1 수준이다. 북한의 경제규모를 더해도 이 격차를 좁힐 순 없다. 북한의 GDP는 한국의 1.8%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일본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을 세계 최빈국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평화경제에서 찾겠다는 문 대통령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문 대통령은 또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8000만명이 된다면서 규모의 경제를 언급했다. 8000만명이나 되는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면 일본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는 1억3000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인구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인구가 늘어난다고 시장이 저절로 확대되지는 않는다. 시장은 생산과 소비와 소득의 증대를 통해 육성돼야 한다. 또 북한 주민의 경제력이 한국의 수준은 돼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북한의 국민총소득(명목GNI)은 35조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1인당 소득으로 계산하면 142만8000원이다. 이는 한국의 1인당 소득 3678만7000원의 26분의 1(3.9%)에 불과하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을 달러로 환산하면 1205달러로, 이는 전 세계 1인당 소득 150위권인 미얀마(1310달러)와 키르기스스탄(1220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통일 직전 동·서독의 경제 규모는 지금의 한국과 북한을 합친 것보다 훨씬 컸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더욱 크다. 당시 서독의 GDP는 2조2452억달러, 동독 2837억달러였다. 경제 규모에서도 45배나 차이가 나는 북한을 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동독보다 8배 차이가 났던 서독이 쏟아부은 자금보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할지 계산하기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30년 전 동독 주민의 소득 수준은 현재의 북한 주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통일 이후 독일은 동독 지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상당기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독일은 아직도 통일 후유증으로 옛 동·서독 지역 간의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이 이런 갈등을 겪지 않으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한국 경제는 평화경제를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할 것이 분명하다. 통일 비용이 얼마나 될지 국내외 기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독일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남북한 인구수에 소득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해 5월 27일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후 서로 껴안고 있다. photo 청와대

   서·동독 경제 차 8배, 남북한은 45배
   
   평화경제를 위한 전 단계로 남북 경협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등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다.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김정은이 베트남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데릭 그로스먼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베트남은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하향식으로 개혁이 이뤄졌지만 북한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김정은이 통제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며 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로스먼 연구원은 “김정은은 기존의 ‘모기장식’ 경제특구를 유지한 채 점진적인 노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래리 닉시 미국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김정은과 북한 엘리트들은 베트남식의 경제 개혁에 착수할 경우 자신들의 정치권력이 위험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기장식 경제특구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언급한 것처럼 주민 감시와 단속이 용이하고 외부 정보유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개성공단 같은 단절형 모델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설사 성공하더라도 김정은은 한국이 생각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에는 ‘우리 민족끼리’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같은 민족인 북한과 잘해보자는 식으로 평화경제를 추진할 경우 자칫하면 비핵화도 하지 않고 북한 정권의 체제만 보장하는 셈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 및 통치자금으로 전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재가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 경제에 시급한 것은 개성공단 같은 북한의 저임금을 이용한 남북 경협이 아니라 일본, 중국 등과의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첨단기술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 군사 분야 외엔 기술도 전무한 실정이다.
   
   아무튼 경제학에는 소득주도성장이란 이론도 없지만 평화경제라는 용어도 없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평화경제를 좇지 말고 문 대통령은 지금 당장 총체적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 살리기부터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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