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은 탄핵정국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트럼프는 탄핵 위험에서 빠져나온 지 몇 달 되지도 않는다. 취임 직후부터 뮬러 특검이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동안 탄핵 가능성에 시달렸다. 조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가까스로 진정되는 듯했다.

우크라이나 의혹은 좀 더 구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규모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2020년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아예 당시 통화 녹취록을 공개해버렸다. 그러자 그 내용이 탄핵할 만한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워싱턴이 전쟁터가 된 분위기이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로 전화토론을 들었는데, 토론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멱살 잡고 싸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두 격앙돼 있었다.

지난 봄 뮬러 특검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하도 탄핵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놨다. 제목을 보면 ‘트럼프를 탄핵하는 것은 왜 가치가 있는가’ ‘지금 탄핵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탄핵은 민주당에 덫일 수도 있다’ ‘탄핵할 것인가, 말 것인가’ ‘트럼프가 뭘 더하면 탄핵될까’ 등등이다. 탄핵에 관한 책도 나오고,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들에 대한 분석도 여러 번 나왔다.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또다시 탄핵 가능성이 거론되자, 보수 성향의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문제가 된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록을 의회에 제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차라리 공개해 버리라고 주장했다. 그 통화록을 보고 나서 이참에 민주당이 정말 탄핵을 밀고 갈 배짱이 있는지도 보자는 식이었다. 통화 내용을 보면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통화는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긴 했지만 명시적으로 대가를 요구했는지는 명확지 않다. 그러자 여기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또 격렬하게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선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약이 충분치도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무리한 싸움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또 한편에선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탄핵안을 통과시키면 공화당 우위의 상원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내년 미 대선 후보들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은 빠지기 시작했고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등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트럼프 선거 캠프에는 후원금이 밀려들고 있다. 민주당이 우려했던 대로 탄핵 가능성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원에서 탄핵조사를 공식적으로 시작하면 의회는 절차를 밟아나가게 돼 있다.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자신처럼 박대를 받은 대통령은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대통령 괴롭히기’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닉슨 대통령 때도, 클린턴 대통령 때도 경험했지만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나라가 산산조각이 날 것처럼 분열과 몸살을 겪는다. 대선 결과라는 국민의 선택을 뒤집는 엄청난 과정이기 때문에 그 여파는 클 수밖에 없다. 예측불허의 대통령 트럼프의 시대가 더 예측하기 어려운 격랑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멀고 험한 길이 될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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