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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577호] 2019.10.07

트럼프 탄핵 양날의 칼로, 닉슨 아닌 클린턴의 길?

김회권  국제·IT 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지난 10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게이트와 관련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AP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전 세계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게 유일한 정치 경력인 코미디언이 대선에 나오자마자 진짜 대통령이 됐으니 전 세계 미디어가 그를 주목할 만했다.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던 젤렌스키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의회 선거에 신당을 만들어 도전했고 압승을 거뒀다.
   
   선거 승리 직후인 7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흔하게 오갈 법한 이 축복의 통화는 이내 내용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에게 악몽이 됐다. 둘만의 사적인 대화가 세상에 나오게 된 단초는 8월 12일(현지시각)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미 정보기관감찰관실(ICIG)에 보낸 투서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나눈 전화 통화에서 무언가에 관한 협조를 원했으며 다음 대선의 라이벌로 유력한 민주당 후보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를 우크라이나에 요구하기 위해 압력을 가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바이든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있다. 바이든이 기소를 그만두게 했다는 이야기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법무장관과 함께 당신이 할 수 있으면 뭐든지 좋다. 바이든은 기소 중지됐다고 자랑하고 퍼트리고 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을 확인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 중)
   
   고발을 접수한 마이클 앳킨스 감찰관은 지난 8월 26일 미 국가정보국(DNI)에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내부고발을 전달했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DNI는 이 내용을 일주일 내에 의회에 통보해야 했지만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 대행은 그러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조치가 없자 지난 9월 9일 앳킨스 감찰관은 직접 상·하원 정보위원회에 내부고발의 존재를 알렸다. 바로 다음 날인 10일, 아담 시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DNI에 “고발 내용을 의회에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17일 DNI 측은 “고발자가 정보국 내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의회에 알릴 의무가 없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DNI가 제출을 거부한 다음 날인 18일,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부적절한 약속을 했다”고 보도했다. 19일에는 뉴욕타임스가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와 관련한 외국 정상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고 전했다. 고발 내용이 서서히 알려지고 통화 내용의 전모가 드러나자 이 사건에는 ‘스캔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리고선 점점 덩치를 불리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끝장낼지도 모를 정도로 워싱턴을 진흙탕 정쟁으로 내몰고 있다.
   
   

   바이든 父子가 활동하던 우크라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노린 76세의 고령 정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금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는 거물 정치인이다. 30살에 처음 연방 상원의원이 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파트너로 부통령을 지냈다. 민주당 주류에서 존중받는 정치인이자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노동자 계층과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문에서 물려받은 게 없으니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사다. 여전히 민주당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대통령이 ‘확인’ 운운하며 나눈 대화의 표적이 ‘트럼프 대항마’로 가장 유력한 사람이었다.
   
   왜 미국 대선판에 갑자기 우크라이나가 껴들게 된 걸까. 바이든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 바이든,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2014년 오바마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던 바이든 전 부통령은 당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도록 앞장섰다. 친러시아 정권이 실각하고 친서방을 표방한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이 되면서 우크라이나와 바이든 전 부통령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그러던 과정에서 2014년 4월 아들인 헌터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회사인 ‘부리스마홀딩스’의 사외이사가 됐다. 월 5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는데 이사회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이해충돌 우려가 있다”며 비난 여론이 일었다. 게다가 부리스마홀딩스 설립자는 실각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부리스마홀딩스는 돈세탁과 횡령 등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 전 부통령은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빅토르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해라. 그러지 않으면 10억달러 대출 보증을 중단할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실제로 바이든 본인은 2018년 1월 워싱턴에서 열린 외교관계위원회 행사에서 이런 내용을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이때의 압박이 아들의 거취와 관련된 일인지는 불분명하다. 결과적으로 2016년 3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쇼킨을 해임했고, 부리스마홀딩스에 대한 수사는 중단됐으며, 헌터는 5년간 사외이사 임기를 채웠다. 반면 쇼킨이 이전 친러 정권의 인물이었고,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부패 척결에서 쇼킨의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측면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쇼킨의 해임 요구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르게 설명했다, “아들을 수사 중이었기 때문에 바이든 전 부통령이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는 게 트럼프식 해석이었다.
   
   
▲ 2017년 1월 볼로디미르 그로이스만 우크라이나 총리(오른쪽)와 만난 조 바이든 전 미 부통령. photo 뉴시스·AP

   탄핵 조사에는 ‘찬성’, 탄핵에는 ‘글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게이트’ 때도 탄핵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 결과 보고서는 결국 헛방으로 끝났고 사실상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순식간에 판이 뒤집혔다. 실제 이번에 터진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과거의 탄핵 위기와 양상이 다르다. 미국 연방하원은 지난 9월 24일 대통령 탄핵 조사를 시작하면서 진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검이 아닌 의회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정황만 가득했던 러시아 때와 달리 우크라이나 사건은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게 다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진보파들로부터 숱하게 탄핵 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받았지만 매번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결과적으로 펠로시 의장의 스탠스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는데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트럼프 탄핵’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격전지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벌어지자 펠로시 의장은 지난 9월 24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선서와 헌법, 국가 안보를 배신했다.” 펠로시의 태도가 변한 건 민주당 온건파 내에서도 러시아 게이트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대통령의 개입 방식이 확연하게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펠로시 의장의 정치적 후각이 작동한 측면도 있다. 펠로시 의장은 탄핵 조사를 개시할 조건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 △상원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지지할 것 등을 들었다.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탄핵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데, 이번 사건은 그런 조건을 일정 부분 만족시켰고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단 의회가 통과시킨 4억달러의 군사원조를 외국 정부에 협박 수단으로 삼아 개인적인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인 지난 9월 24일 로이터·입소스의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에 대한 탄핵 찬성은 37%에 불과했다. 그런데 26일 같은 조사에서는 탄핵 찬성이 45%까지 오르면서 여론이 변하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문제는 세 번째,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다.
   
   탄핵 조사를 지지하는 하원의원은 225명으로 과반수를 넘었다. 민주당 의원 223명, 무소속 의원 1명, 공화당 의원 1명이 여기에 찬성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탄핵 조사’에 대한 지지다. ‘탄핵’ 그 자체에 대한 지지는 탄핵의 내용이 확정될 때까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개입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점점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탄핵이 성립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아들을 노리는 까닭
   
   하원에서 탄핵이 성립해도 다음 단계인 상원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다르다. 민주당 45석, 공화당 53석, 무소속 2석으로 이뤄진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탄핵 찬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의 문턱을 넘는 건 현재 상황에서 확률이 극히 낮다. 온건한 공화당 의원 중 일부가 탄핵을 지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0명 정도가 등을 돌려야 성공할 수 있다. 게다가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공화당)가 민주당의 비판을 무시하고 상원에서 탄핵안 심의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매코널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결정을 검토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도 상원의 기본권이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승인을 차단한 전례가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탄핵을 ‘부결되더라도 잃을 게 없는 게임’으로 여길 수 있다. 탄핵 정국을 끌고 가면서 트럼프의 부도덕함과 위법성을 부각해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게 민주당의 제1 시나리오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내에서는 탄핵 이슈에서 물러설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고 보고 있으며 탄핵절차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수주 안에 민주당 지도부가 하원에서 탄핵 표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트럼프의 탄핵이 언급될수록 바이든 부자가 언급되는 건 민주당에 위험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로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공화당 그리고 보수 언론에서 공격할 때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바이든 부통령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입게 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아들인 헌터의 존재 때문에 생겼다. 헌터는 우크라이나 이전 중국에서도 비슷한 의혹을 받았다. 2014년 바이든 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때 헌터는 중국에서 투자회사 ‘보하이 하베스트’를 통해 국영은행인 중국은행 등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 지난 9월 24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공식조사 개시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AP

   덜 어려운 상대가 떠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워싱턴에 있는 부패한 기존 지배층을 쫓아내자”고 호소했고 먹혀들었다. 기성제도(establishment)의 꼭대기에 위치한 엘리트 정치에 대한 반감을 자극했고 이 전략은 여전히 효과가 있다. 트럼프 진영은 대선을 앞두고 부패 딱지를 붙이고 2016년의 반복 효과를 얻기 위해 가장 적당한 타깃으로 바이든 부자를 찍었다. 탄핵 관련 기사에 묻혔을 뿐, 바이든 부자와 우크라이나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며 기사를 하나둘 내보내기 시작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올해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민주당 주요 후보들을 제치고 압도적으로 선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겪으며 판세가 점차 바뀌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의 경합주이자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해 첫 당원대회를 여는 아이오와주에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2월 치러지는 민주당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 참가 의향이 있는 성인 602명 중 22%가 워런 의원을 지지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20%)을 오차범위(±4%포인트) 내에서 앞서는 작은 이변이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껄끄러운 후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트럼프 진영은 종종 “워런이 가장 수월한 상대”라고 말해왔다. 너무 진보적이라 대선 승리에 반드시 필요한 중도층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20세기 들어 탄핵 위기에 몰린 미국 대통령은 두 명이 있었다. 1974년 ‘워터게이트’를 촉발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켰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두고 “닉슨 전 대통령의 사례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닉슨 전 대통령은 하원 내 탄핵 표결안 직전 스스로 물러났다. 반면 1998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는 탄핵 여론이 압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이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실패했다.
   
   만약 상하 양원에서 탄핵의 조사 및 심의가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결국 부결된다면 대중은 오히려 대통령을 승리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나를 부당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나는 승자가 됐다”는 인상은 트럼프 지지층을 결속시키고 중도층으로까지 지지를 확장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탄핵에 실패한 공화당은 이후 열린 선거에서 국민들의 비판을 받으며 민주당에 패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를 겪은 클린턴의 길을 따라 걷는다면 민주당 역시 2020년 대선에서 이전 공화당처럼 정치적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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