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런던 통신] 합창단 봉사로 본 영국인의 소확행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세계
[2581호] 2019.11.04
관련 연재물

[런던 통신]합창단 봉사로 본 영국인의 소확행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지난 6월 필자가 참가한 아마추어 합창단 공연 모습. 공연이 열린 런던 교외의 윔블던 성심성당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분명 어렵다. 영국인들은 뭐라고 답할까. 모든 영국인을 일반화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내가 본 영국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도 자기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을 통해 행복을 찾는, 요즘 말로 하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말이다. 최근 경험한 일 때문에 더욱 그런 확신이 굳어졌다.
   
   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런던 교외 윔블던 지역 합창단에 들게 되었다. 합창단은 3개월 뒤 공연을 목표로 아마추어들끼리 급조한 모임이었다. 50여명이 일주일에 한 번 저녁 7시에 모여 3시간을 연속으로 연습했다. 합창단에 들려고 결심한 이유는 영국인들이 만든 단체에 들어가 그들의 삶의 속살을 엿보려는 욕심이 컸다. 이와 함께 합창단 연주곡이 평소에 즐겨 듣던 ‘바흐 미사곡 B단조(BVW232)’였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합창단에 합류할 때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정규 합창단도 시도를 못 하는 1시간50분짜리 대곡을 공연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호기심도 아주 컸었다. 그것도 단 12번, 도합 36시간을 연습해서 말이다. 미사곡 B단조는 바흐의 마태수난곡(BVW244), 요한수난곡(BVW245)’과 함께 바흐 종교음악의 최정상에 있는 3대 걸작 아닌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마추어들이 바흐 미사곡 B단조 공연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무모함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내 클래식 음악 청취, 특히 성악곡 청취는 이 합창 경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이다. 성악곡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게 되는 감동적인 수확을 얻게 되었다. 영국인들이 이런 활동을 통해 어떻게 소확행을 누리는지 확실한 속살을 보게 된 것은 보너스였다.
   
   엄격하게 따지면 39시간(3시간×12주+마지막 리허설 3시간)의 시간 투자에 비해 몇 배 되는 수확을 확실하게 챙겼다. 영국인들이 어떻게 즐겁고 보람된 삶을 살면서 행복을 찾는지를 ‘인싸(인사이더·내부자)’로서 직접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첫 번째 수확이었다. 두 번째 수확은 바흐 B단조를 이제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완전하게 만들어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음미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문 음악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듣고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음 하나하나가 살아서 생생하게 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합창 연습을 처음 시작할 때 받은 전곡 악보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혀 질릴 정도였다. 246쪽짜리 악보는 정말 콩나물 대가리로만 꽉 차 있었다. 까만 건 글씨, 하얀 건 종이라는 농담이 실감 나듯이 까만 건 콩나물 대가리, 하얀 건 종이였다. 악보 없이 청취만 할 때는 잘 몰랐던 바흐곡의 복잡함이란 정말 바흐가 얼마나 천재인가 하는 경이로움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
   
   내가 맡은 파트인 베이스 악보를 음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일은 그나마 악보를 조금은 읽어본 경험 때문에 그럭저럭 해냈지만 그래도 전곡을 계속해서 노래해야 하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 곡은 서양 고전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가 39살인 1724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65세로 죽기 1년 전인 1749년에 완성한, 무려 25년에 걸친 대작이다. 이 곡을 완성할 때 이미 바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흥미로운 일은 바흐를 실명하게 만든 영국의 돌팔이 안과의사 존 테일러가 게오르크 프레드리히 헨델도 실명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바흐의 미사곡 B단조는 ‘무인도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갈 디스크(desert island discs)’로 자주 꼽히는, 선율도 아름다운 대중적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이다. 바흐 생전에 한번도 전곡이 연주된 적이 없고 1859년에야 전곡이 연주되었다.
   
   
   아주 영국적인 조직이란?
   
   필자가 참가한 이번 합창단은 아주 영국적인 조직이었다. 형식과 절차를 정말 중하게 여기는 영국인들도 개인 파티 같은 비공식적인 모임을 할 때는 의외로 가볍게 사람들을 대한다. 보통 파티에서 만나도 서로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다. 출신학교나 고향을 묻는 일도 거의 없다. 합창단도 비슷했다. 어찌 보면 아주 이상한 단체였다. 우선 합창단은 이름이 없었고 상설 단체도 아니었다. 공연이 있을 때 알음알음으로 모여서 연습하고 공연했다. 그러니 정규 소속 단원도 없었고 단장도, 부단장도 없었다. 그냥 지휘자와 반주자, 그리고 돈을 걷고 일정을 알려주는 총무 비슷한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새 단원이 들어와도 누구 하나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없고 전체 단원에게 소개하는 법도 없었다.
   
   이렇게 없는 것 투성이였다. 연습하다가 안 나와도 누구 한 사람 ‘왜 안 나오느냐’고 전화 오는 일도 없다. 정말 오는 사람 말리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도 않는 이상한 모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습 인원도 들쑥날쑥 대중이 없었다. 연습하다가 중간에 10분 정도의 다과 시간에도 그냥 노래 관련 대화만 오고 갈 뿐 서로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연습이 끝나면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그냥 뿔뿔이 헤어졌다. 흡사 일부러 말을 섞지 않고 개인적으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 같았다.
   
   어찌 보면 냉랭한 모습이 흡사 강제로 끌려 나온 사람들 같았다. 평소 모르는 사람과 복도에서 지나쳐도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영국인들 같지 않았다. 오히려 모임에서는 이렇게 서로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서인지 조직활동을 같이해도 뒷말이나 헐뜯는 험담이 오가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차갑게 유지하면서 같은 목적만을 추구할 뿐이다. 노래 연습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공연 수입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뿐 구성원 사이 유대나 친목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영국인들의 태도였다.
   
   더 놀라운 일은 대단원의 공연을 마치고 헤어질 때도 박수 몇 번으로 끝이 났다는 사실이다. 공연 후 뒤풀이는커녕 전체 기념촬영도 없었다. 단원들만 따로 모아놓고 지휘자나 단장이 하는 의례적인 치하 말도 없었다. 지휘자와 반주자도 그냥 단원의 한 명일 뿐이라는 의미 같았다.
   
   
▲ 2017년 5월 런던 템스강가에서 열린 자선 걷기대회. photo charitywalkforpeace.org

   대화는 전무, 쿨한 헤어짐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 단원들은 사람들이 앉았던 의자를 하나하나 접어서 차곡차곡 쌓고 서로 인사도 없이 쿨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누가 누구를 위해 한 합창이 아니니 누가 누구를 치하할 자격도 없고,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으니 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3개월 동안 연습을 같이 해도 중간 휴식 시간에 차 마시며 아주 가벼운 대화만 나눴을 뿐 이름도 서로 모르고 악수도 하지 않고 헤어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이상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음악회를 위한 모든 경비는 단원들이 부담했다. 첫날 총무가 넘겨주는 명단에 이름 적고 낸 참가비 30파운드(4만5000원)는 중간 휴식 시간에 다과를 준비하고 공연포스터, 안내장, 공연프로그램 인쇄비 등으로 쓰였다. 공연일에 연주를 해준 40여명의 프로 교향악단 초청 경비로도 사용되었다. 4만5000원짜리 악보와, 각 파트별 연습곡을 성악가가 녹음한 CD도 단원들 각자가 사서 사용했다. 결국 내 부담은 10여만원이었다.
   
   단원들은 입장권 판매도 해야 했다. 자신의 시간을 내서 공연을 해주는 단원에게 사례는 못할망정 이런 자비 부담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단원들은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도 관객들과 같이 자신의 음료수를 사서 마셔야 했다. 공연장 입구에서는 동네 업체들로부터 기부받은 물품을 걸고 경품권 판매를 해서 추가 수익을 올렸는데 이때도 단원들은 모두 경품권을 샀다. 이렇게 모은 수익금 전액은 공연장을 제공해준 유서 깊은 성당 수리비로 기부했다. 공연장으로 쓰인 성당은 영국왕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과 결별 후 요한 바오로 2세가 첫 방문했던 곳이다.
   
   
   단원들이 시간·돈 투자해 봉사
   
   결국 합창단원에게 돌아온 건 각자 마음속에 남는 성취욕과 행복감뿐이었다. 개인적인 시간 투자와 경제적인 부담을 통해 행복을 얻으면 그건 수익자 부담이 원칙이라고 여기는 것이 영국인들이었다. 주말이면 런던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나 자전거 경주 같은 모든 행사가 다 이런 소확행의 일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합창단 공연이 열린 성당에서도 일 년 내내 이런 형식의 자선 공연이 이어졌다. 성당은 그냥 종교 행사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공연과 봉사 장소로 더 중하게 쓰였다. 특히 성당은 음향 효과가 좋아서 음악 공연에는 안성맞춤이다. 종교 음악은 물론 팝 음악, 심지어는 록 콘서트까지 열린다. 런던 시내에서 제일 큰 세인트폴 대성당의 경우 중세 때는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미사를 하러 오는 신도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았으니 요즘 록 콘서트가 성당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합창 연습도 정말 이상했다. 한번도 악보 순서대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 24곡 전곡을 중구난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했다. 결국 공연 전 단 한 번도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연습해보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연습 중간에 언젠가 한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불러보리라고 기대를 했지만 결국 전곡은 무대에서만 불렀다. 전원이 아마추어인 단원들을 데리고 한 번의 전곡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올리는 지휘자의 배짱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유가 다 있었다. 단원들 중에는 거의 전문 성악가 수준의 단원이 몇 명 있었다. 이들은 타고난 목소리와 함께 전곡을 외우다시피 하는 준전문가였다. 각 파트별로 이런 준전문가가 두세 명씩 있었던 덕분에 이들의 선도로 해당 파트는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들 준전문가 단원들의 삶은 이런 활동으로 일 년 내내 바쁜 듯했다. 여기서 합창하고 저기서 합창하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동시에 자선활동에도 참가하느라 바빴다.
   
   지휘자와 반주자도 비록 전문 음악인은 아니더라도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공연 성당이 위치한 윔블던 지역에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를 하다가 은퇴한 노인들이었는데 거의 3시간을 쉬지 않고 목청을 높여 정열적으로 지휘하고 건반을 두드렸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대단한 성취욕 때문이라기보다는 평생 이런 일을 해온 나머지 이제는 일상생활처럼 소화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이 둘의 실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1시간50분짜리 곡 전체를 암보해서 지휘하고 반주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당일 합창단 공연은 정규 교향악단이 반주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한번도 같이 연습해보지 않은 교향악단이 당일 함께 공연했다. 교향악단에는 수고비가 지불되니 여러 번 부를 수도 없었지만 이들에게 주는 수고비가 고작 5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정말 한 명의 교통비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단원들 모두 인근 동네 주민들이라 먼 거리를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고비가 너무 짰다.
   
   
   전문 봉사 음악인들의 삶
   
   지휘자와 반주자 약력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둘은 이런 종류의 봉사를 하는 ‘전문 봉사 음악인’이었다. 우리 공연 다음 달에는 다른 정규 합창단과 함께 같은 성당에서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우리 단원 중에는 아주 실력이 뛰어난 전문 소프라노 성악가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여성 소프라노도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연습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 합창단까지 갖고 있는 이 소프라노의 성실함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프라노 역시 같은 성당에서 다음 달 자선모금 공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10년 전 암 투병을 한 이후 이런 식의 봉사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성당에서는 평일에 이런 자선공연이 끝도 없이 열리고 있었다. 입장료도 저렴해서 동네 관객들로 항상 꽉 찼다.
   
   결국 이 공연을 통해 4000여파운드(6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전액을 연습장과 공연장을 제공한 성당 수리비로 기부했다.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바도 없다. 하긴 첫날 명단 작성할 때도 이름만 적었을 뿐 이메일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도 적은 바 없으니 전달할 방법도 없다. 물론 단원들도 알려고 하지 않고 모금액의 용처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그냥 주동자들의 선의를 믿고 참여할 뿐이다. 자신의 행동을 봉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냥 본인이 좋아서 참석했고 연습과 공연을 즐겼으니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돈에 대한 반대급부는 이미 얻었다고 여긴다.
   
   사실 연습과 공연을 통해 남은 건 합창단원 명단이 들어간 공연프로그램이 전부였다. 공연 촬영도 없고 녹음도 없었다. 지인에게 부탁해 객석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이 전부다. 공연 중 단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는 없다.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난 뒤 수초간의 침묵 때 성당 안을 돌아서 오는 잔향만 겨우 잠깐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연장의 음향 효과가 워낙 좋아서 홀을 돌아서 오는 소리는 정말 순간적인 황홀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런 맛에 합창을 하는구나 하는 즐거움도 동시에 누렸다.
   
   이런저런 즐거움을 통해 결국 단원 모두는 타인을 위한 자선공연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공연을 했다. 자신이 해낸 일을 통해 타인에게 보다 더 큰 걸 줬다고 느낀다. 모두가 합심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 때의 즐거움이나 합창을 듣고 청중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보람은 홀을 돌아서 오는 잔향에서 누리는 황홀감 못지않았다. 결국 ‘자선은 이기적인 일이다(Giving to charity is selfish)’라는 말은 결코 말장난이 아닌 셈이다.
   
   영국인들의 소확행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새로 산 정결한 냄새가 나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 아니다.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사람을 위한 일에 참여해 뭔가를 해내고 느끼는 뿌듯함과 즐거움이 본질이다. 하긴 무심한 영국인들은 그런 기분마저도 뻐기는 일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냥 이런 일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