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잡지도 자신의 사진이 표지에 나온 것 말고는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 자신은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트럼프 자신이 직접 글을 쓰기보다는 늘 공동저자나 대필자가 있지만 어쨌든 그가 인기 있는 책을 써낼 수 있는 콘텐츠의 소유자인 것은 맞는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트럼프가 썼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쓴 책을 수도 없이 사들였다. 트럼프의 시대를 워싱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중에 책을 쓸 생각으로 사들였으나 너무 많아서 이젠 포기했다. 그래도 트럼프를 직접 겪어본 사람들의 책은 유심히 들여다본다.

최근엔 트럼프의 큰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책을 냈다. 제목은 ‘분노폭발: 좌파는 어떻게 증오를 즐기며 미국을 침묵시키길 원하는가’이다. 트럼프의 아들들은 아버지 사업을 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정치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지키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

최근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책은 전직 보훈부 장관인 데이비드 셜킨의 책이다. 제목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아야 한다(It shouldn’t be this hard to serve your country)’이다. 제목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을 다치는 일인지 알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 내 많은 장관과 참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셜킨은 어느날 TV를 보다가 자신이 장관에 지명된 것을 알았고, 역시 어느날 갑자기 트위터를 통해서 자신이 해임됐다는 것을 알았다. 트럼프 정부에서 13개월간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그가 본 워싱턴은 유독성 물질로 가득 차 있고 혼돈에 빠져 있으며 기존의 체제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고 증언한다. 정부 밖에서 트럼프와의 친분을 이용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정부 조직 곳곳에 정치꾼들이 심어져 있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셜킨은 오바마 대통령 때 보훈부 차관이었다. 전임 대통령 때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물러났는데 셜킨은 예외적으로 장관 지명을 받았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셜킨은 대통령의 절친인 마블 코믹스 회장 아이크 펄머터를 만나보라는 전갈을 받았다. 펄머터는 백악관 밖에 있는 20인의 조언자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다. 셜킨은 플로리다로 날아가서 펄머터를 만났고 며칠 후 뉴욕의 트럼프타워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셜킨이 트럼프타워에 가보니 트럼프가 책상 위에 자신이 ‘올해의 인물’로 표지에 등장한 주간지 타임을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며칠 후 그는 장관 지명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이 책에 기록했다.

전직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장관의 연설문 담당도, 백악관에서 잠시 일했던 사람들도 트럼프에 대한 책을 쓴다. 대통령의 유명세에 올라타 보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다들 나름대로 트럼프의 시대를 증언하고 고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덕분에 책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 시대에도 트럼프 관련 책만은 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희한하게도 책 안 읽는 트럼프가 사람들에게 책을 쓰게 하고 또 읽게 한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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