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태국 방콕의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한 아베 총리(왼쪽).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4일 태국 방콕의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한 아베 총리(왼쪽). ⓒphoto 뉴시스

2019년 11월 20일, 일본 정치사에 커다란 신기록 하나가 등장한다.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의 탄생이다. 주인공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다. 총리 재임 기간은 2886일. 지금까지의 신기록 보유자는 1901년부터 1908년까지 총리로 재임한 가쓰라 다로(桂太郎)였다. 1905년 체결된 가쓰라-태프트밀약의 당사자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가쓰라-태프트밀약은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승인 아래 한반도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대한제국은 가쓰라-태프트밀약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었다. 바깥 정세에 그만큼 무지했다. 그런 무지의 위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왜 아베가 일본의 최장수 총리에 올랐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와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적 인물이 아베이기 때문이다.

가쓰라 다로 기록 갈아치운 아베

왜 아베가 일본 최장수 총리가 됐는지 의문을 갖는 한국인이 많을 듯하다. 한국 신문·방송만 본다면 아베는 이미 예전에 끝났어야 할 정치가다. 아베는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선거구(시모노세키가 포함된 야마구치 4구)를 물려받은 3대 세습 의원 출신이다. 대표적인 금수저 집안인 데다가 극우세력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인 대부분이 ‘반대한다’는 헌법 개정에 손을 대고, 3개의 화살로 명명된 ‘아베노믹스(アベノミクス)’도 실패로 끝났다고들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베가 메이지유신 이후 근현대 일본 헌정사 134년을 통틀어 최장수 총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최근에는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신임내각 장관들이 연거푸 사직했다고 하는데, 왜 아베는 꿈쩍도 안 할까?

한국에 비쳐지는 아베의 이미지는 야누스(Janus)의 얼굴 그 자체다. 한때는 박근혜 대통령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한류 찬미 정치가였지만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반한(反韓)의 상징이 돼버렸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화신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는 아베와 일본 안에서 보는 아베는 많이 다르다.

일단 아베의 신기록은 2886이란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최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총리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정치가란 점에서 남다르다. 간단히 말해 ‘레임덕이 없는 정치가’다. 지난 10월 21일 요미우리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자. 아베 내각 지지자가 55%, 비(非)지지자가 34%다. 요미우리를 우익신문으로 보면서 폄하할지 모르겠다. 이념이나 친(親)아베 논란과는 무관한 교도통신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지난 10월 27일자 기준 아베 내각 지지자가 54.1%에 달한다. 10월 일본 신문·방송이 잇달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베 내각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50%대로 나타난다. 매달 발표된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굴곡이 별로 없이 50%대다.

줄곧 50% 지지, 레임덕 없는 아베

일본에서 내각 지지율 50%대는 한국의 대통령 지지율 80%대와 비슷하다. 일본은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의원내각제 국가다. 표가 여러 당으로 갈린다. 양당 중심의 대통령제인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지지율이 80%대 이상을 자랑한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 40%대, 집권 말기에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허덕인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새 희망과 함께 새 총리가 취임한다 해도 최고 50%대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친다. 70~80%대의 지지율은 일본 정치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2886일의 기록적인 집권에도 불구하고, 초기 지지율과 비슷한 인기를 계속 누리고 있는 총리가 아베다. 일본에서는 지지 않는 아베의 지지율을 두고 ‘80대 노인의 10대 회춘’으로까지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이 나갈 때쯤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미디어가 최장수 총리 아베의 리더십을 분석 평가할 것이다. ‘극우 전쟁광=아베’라는 극단적인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바깥 흐름을 도외시하는 한국에서만 통하는 얘기다. 서방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전쟁, 이민, 테러, 경제난, 세대차, 환경 등 21세기의 난제에서 벗어난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일본은 비교적 예외적인 나라로 평가받는다. 안팎으로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선진국들과 달리, 국민 대부분이 ‘번영, 안정,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공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로 나라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것이 불과 8년 전이다. 당시 점퍼 차림으로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한 아키히토(明人) 일왕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裕仁)의 패전 담화에 비견되던 비장한 상황이었다. 아베는 그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선진국들도 부러워하는 ‘번영, 안정, 평화’의 레일을 다시 깐 정치가로 안에서는 평가받는다. 특히 일하기를 원한다면 120% 일자리가 보장되는 완전고용 상태를 이룩한 것은 일본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아베의 업적이다.

아베는 어떻게 성공적인 길을 걸었을까. 최장수 총리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낸 아베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 답은 문예춘추(文芸春秋) 2019년 12월호 단독 인터뷰에 나타나 있다.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아베는 스스로 자신의 리더십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물론 자화자찬식 리더십이라면 거부감이 들지 모르지만 인터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보통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상식 차원의 일반론을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는데 핵심적인 키워드는 ‘실패로부터의 교훈’이다.

문예춘추에서 밝힌 리더십의 비밀

아베의 최장수 총리 기록은 1차 정권, 즉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당시 아베는 국정 구상을 밝히기 직전 갑자기 사임을 발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상 이유였다. 그러나 진짜 배경은 다르다. 자신감 상실이다. 방위청의 ‘성(省)’ 승격, 헌법 개정 국민투표와 같은 급격한 정책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부딪히면서 스스로 사퇴한 것이다. 12월호 문예춘추 인터뷰를 통해 아베는 당시의 상황과 마음 자세를 솔직히 밝히고 있다.

“(당시의) 좌절을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트에다 당시의 반성과 회한을 적어나갔습니다.… 그 노트는 지금도 계속해서 읽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정책이 옳다고 해도 우선 순위가 틀릴 경우 올바른 정책으로 실행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적 지지도 잃게 됩니다.… (1차 정권 당시에는) 전후(戦後)체제에 정면 도전하는 개혁노선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단기간에 상당한 정치적 자산을 전부 사용했다고(그래서 실패로 끝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인 2012년 12월 26일, 아베 2차 정권이 탄생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정확히 1주일 뒤다. 아베 2차 정권의 출발점은 정책 수순, 전략, 인사에서부터 시작됐다. 1차 정권 당시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뒤 내려진 교훈이 2차 아베 정권을 가이드했다. 아베는 문예춘추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역시 1년간 지속됐던 1차 정권 이후 (2차 정권까지의) 5년간은, 마치 와신상담(臥薪嘗胆)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전부 이유가 있는 (귀에 새길 만한) 비판이었습니다. 실패의 경험에서 얻은 것은 다음 도전에 적극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한 번 실패한 기업가가 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월트디즈니도 네댓 차례 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 지금의 디즈니 왕국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1차 정권의 실패가 2차 정권의 큰 기반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최장수 총리를 배출해낸 이웃 나라를 보면서 한국 상황, 정확히는 한국 대통령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필자는 2017년 6월, 한 국내 월간지를 통해 아베 리더십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 분석해본 적이 있다. 시기적으로 문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다. 당시 필자는 아베와 문재인 대통령의 공통점이 ‘좌절에서 배우는 실패의 성공학’에 있다고 봤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공언하듯 노무현 대통령의 후계자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는 각도는 여러 측면에서 달라질 수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책 면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이 이를 말해준다.

장기나 바둑이 그러하듯, 객관적 제3자 입장에서 보면 한층 더 실력이 올라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실장·민정수석 등 요직을 거친 인물로서, 노무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바로 ‘실패의 성공학’으로 재기한 아베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사실 두 사람은 실패라는 공통 분모를 안고 출발했고, 성공에 이르는 답안도 이미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집권 29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실패를 복기해서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았는지 묻는다면 두 사람의 궤적은 전혀 다르다고 본다. 스스로 인정한 노무현의 실패는 무엇이었고, 그 깨달음이 문재인 정권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문 대통령에게 진짜 묻고 싶다. 50%대 지지율의 최장수 총리 아베가 스스로 밝힌 실패의 교훈과 비교 분석해 보고 싶다.

아베 총리와의 단독 인터뷰가 실린 문예춘추 12월호.
아베 총리와의 단독 인터뷰가 실린 문예춘추 12월호.

실패에서 시작한 아베와 문재인의 29개월

문예춘추 12월호는 일본 여기자가 기고한 ‘아베와 문 대통령과의 격돌 900일’이라는 글도 화제가 됐다. 한국에도 이미 보도된 내용으로, 왜 아베가 문 대통령을 불신하고 멀리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가 ‘아베 담당’ 정치부 여기자의 눈으로 자세히 묘사돼 있다. 일본의 정치부 기자와 정치가의 관계는 거의 가족처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이어지는 것은 물론, 아침 식사부터 저녁 일정이 전부 끝날 때까지 휴일도 없이 따라붙는, 이른바 ‘반기샤(番記者)’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한국 3김시대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방식은 일본 반기샤 시스템의 재판(再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베 담당 반기샤인 NHK 논설위원 이와타 아키코(岩田明子)가 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기사의 내용이나 신뢰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을 불신의 대상으로 대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베와 트럼프와의 ‘짝짜꿍’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아베에게 문 대통령 문제를 상의하는 대목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에 보도된 이와타 아키코 위원의 글은 ‘문통vs아베’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NHK 아베 반기샤의 논점은 다르다. ‘문통에 대한 아베’가 아니다. 그보다는 큰 그림 속에서 이뤄지는 아베와 트럼프 간의 밀담이나 우정이 글의 진짜 중심이다. 문 대통령과 비교되는 아베가 아니라, 문 대통령을 소재로 한 아베와 트럼프의 ‘짝짜꿍’이 글의 진짜 의도라고 읽혔다. 극단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과 같은 골칫덩어리’를 상대하려면 ‘트럼프와 죽이 잘 맞는 아베가 최적격’이란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보통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제가 아닌 오늘, 오늘이 아닌 내일이다.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아베의 신기록 행진은 11월 20일을 넘기는 순간 ‘과거’가 될 것이다. 2886일만이 아니라 그 이후 펼쳐질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아베에게 밀어닥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아베 리더십과 관련해 일본인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은 아베의 운명, 즉 총리직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이냐다. 아베의 신기록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즉 총리 4연임 여부가 핵심이다. 내각 총사퇴와 같은 극적인 상황이 없는 한, 아베의 총리 임기는 2021년 9월로 완료된다. 국민들의 관심에 대응하듯, 아베는 “4연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해왔다. 최근 NHK도 보도했지만, 아베는 스스로 “총리로서의 4연임은 있을 수 없다. 총재 임기는 3선까지로 당 규약이 정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민당은 총재를 3연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나카 뒤를 이어 상왕 총리로?

정치가가 은퇴한다거나, 자리를 마다하는 것만큼 뻔한 거짓말도 없다. 아베의 얘기는 당 규약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당 규약이 바뀔 경우 4연임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이 전례가 없는 시련에 부딪힐 경우, 당 규약 정도는 간단히 개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동맹 부분파기를 선언하거나,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센카쿠열도를 군사점령하는 식의 국가적 위기다. 결국 아베의 운명은 규정이 아니라 2021년 9월 상황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판단이자 일본 정치평론가들의 평균 상식이지만, 아베가 4연임 총리로 나서는 일은 실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멀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전략상 총리직에 있지 않더라도 최고권력자로 나설 공간이나 무대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왕(上王) 총리’다. 따로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퇴임한 뒤에도 영향력 차원에서 총리를 넘어선 존재로 남는다는 의미다.

이미 두 가지 전례(前例)가 있다. 지난 4월 30일부터 상황(上皇)에 오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이다. 일왕은 원래 종신직이다. 아키히토는 생존 시 스스로 퇴임하면서 현재의 나루히토(徳仁)에게 일왕 자리를 물려줬다. 2700여년 일본 왕실 역사상 극히 드문 이양 방식이다. 고령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강한 리더십’을 가진 아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아베는 일왕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정치가다. 일본 정치가 중에는 존경은커녕 일왕을 무시하고 범죄자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베 직전 총리인 민주당 간 나오토(菅直人)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왕가에 우호적인 총리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왕 등극이 이뤄진 것이다. 아베가 있기에 일왕 조기퇴진도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일왕이든 현 일왕의 상왕이든 일본 정치에는 ‘절대로’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상징적 의미는 엄청나다. 가까운 시일 내 닥칠 상황이지만, 아키히토 일왕이 세상을 떠날 때의 일본 분위기는 한국인의 상상 밖에 있을 것이다. 정치와는 무관하지만, 또 하나의 절대적 권위자로서 상왕이란 존재가 이미 일본인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상왕이 나오는 판인데, 상왕 총리가 등장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둘째는,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의 그림자다. 다나카가 총리로 재직한 것은 1972년 7월부터 1974년 12월까지 2년5개월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나카의 파워와 영향력은 사퇴 후 무려 10여년,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다. 다나카의 영향력이라고 하면 흔히들 금권(金権)정치부터 떠올린다. 돈을 통한 흑막정계(黒幕政界)의 실력자였다는 얘기다. 맞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일본인이 다나카를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나카=이마다이코(今太閤)’로 통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학력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을 지칭하는, 우리 식으로 하면 ‘개천의 용(龍)’에 해당하는 말이 이마다이코다. 돈만이 아니라 흙수저의 대변인으로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정치가가 다나카다. 그런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다나카는 총리 퇴임 후 일본 정치를 사실상 주도하는 상왕 총리로 활동했다. 1982년 11월 발족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康弘) 내각의 별명은 ‘다나카소네(田中曽根)’ 내각이었다. 다나카 휘하의 정치가들이 도와줘서 나카소네를 총리로 밀었다는 얘기다. 나카소네 총리는 다나카가 내세운 괴뢰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있었다.

지난 9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자민당 중앙당의 ‘개헌 집회’ 지시의 의미

아베가 최장수 총리에 이어, 실제 막후 상왕 총리 역할까지 할 경우 과연 아베는 어떤 일에 주목할 것인가? 어떤 정책이 아베의 ‘역사적 사명’으로 자리 잡게 될까? 지난 11월 11일 일본 신문 정치면에 등장한 3단짜리 기사가 답이 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나루히토 즉위 기념 퍼레이드와 함께 6개의 새 일왕 즉위 관련 행사가 전부 끝난 이틀 뒤 나온 기사다. 기사의 제목은 ‘자민, 선거구 단위로 개헌집회’다. 자민당 중앙당이 지방지부에 명령한 내용으로, 지역구 당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개헌집회가 핵심이다. 개헌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부분의 개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자민당이 풀뿌리민주주의 차원에서 벌여나간다는 의미다. 국회의원이 직접 참가하는 것은 물론, 강사도 불러 30~40명 단위의 개헌집회를 계속해서 벌여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자민당 안에는 개헌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정치가들도 적지 않다. 아무리 1강 아베 체제라 해도 독재자가 될 수는 없다. 국민의 찬성을 바탕으로 국회 내 3분의 2 찬성을 필요로 한다.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 전, 자민당 내부 단결부터 굳건히 하자는 것이 아베의 생각이다. 아베가 상왕 총리로 남으면서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지 여부는 바로 ‘개헌의 속도’에 달려 있다. 권력을 즐기려는 ‘목적’으로서의 상왕 총리가 아닌, 개헌을 성공시키려는 ‘수단’으로서의 최장수 총리를 아베가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부분적으로 시작됐지만, 해가 바뀌는 순간 일본 열도 전체가 올림픽 무드로 달아오를 것이다. 개헌 논의도 덩달아 달아오를 것이다. 본격적인 개헌의 점화는 올림픽 성화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시작될 듯하다. 2019년 신임 일왕 즉위식 행사, 2020년 도쿄올림픽, 2021년 개헌의 수순을 밟는 셈이다. ‘21세기형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의 대변신이 전부 아베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개헌은 신기록 보유 총리가 추진할, 아베 정치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개헌과 동시에, 방어와 자위 수준에서 벗어나 첨단무기로 무장한 공격형 일본이 등장할 것이다.

아베 1강 체제는 2012년 12월 총리 취임 이래 지금까지 계속돼온 아베 리더십의 핵심이다. 그 어디에도 아베에 맞설 만한 2인자는 없다. 트럼프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트럼프와 웃으면서 통화가 가능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정상이라는 평가도 일본 안에서는 나온다. 큰 스캔들이 없는 한, 아베 1강은 2021년 9월까지는 물론 이후 상왕 총리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아베의 리더십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일본인의 정서가 더 큰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짊어졌던 역사적 멍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베의 일본, 일본의 아베다. ‘노(No)’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예스(Yes)’라고 말하지도 않는 일본이다. 이미 시작됐지만, 한국은 그런 일본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나라다. 아베 관련 뉴스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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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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