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0일 도쿄 카퍼레이드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일왕비. ⓒphoto뉴시스
지난 11월 10일 도쿄 카퍼레이드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일왕비. ⓒphoto뉴시스

지난 11월 10일 도쿄 한복판에서 나루히토(徳仁) 일왕 즉위 기념 카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올해 이어진 일왕 즉위 관련 6개 행사 중 마지막이었다. 이날 나루히토 일왕 부부는 오픈카에 탄 채 왕실 앞 광장에서부터 아카사카(赤坂)에 이르는 4.6㎞의 길을 지나면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날 카퍼레이드 중계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일왕과 일본 국민과는 아직 신뢰와 존경으로 뭉쳐져 있다. 총리에 이어 일본을 뭉치게 만드는 또 다른 리더십의 중심에 일왕이 있다.

이날 카퍼레이드 행사 도중 색다른 장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 아내 마사코(雅子)를 배려하는 나루히토의 자상함이다. 나루히토는 좁은 연도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연신 마사코를 배려하는 듯 말을 걸었다. TV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나루히토가 마사코에게 얼굴을 돌릴 때마다 ‘인자한’ ‘자상한’ ‘친절한’이란 형용사를 쏟아냈다. 일본인에게 나루히토는 부인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팽개칠 수 있는 공처가로 통한다.

결혼 후 마사코는 ‘불임 태자비’로 통했다. 뒤늦게 딸 아이코(愛子)를 출산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은 더더욱 심해졌다. 우울증으로 장기 칩거에 들어간 사이, 온갖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4년 나루히토는 기자회견을 열고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부인 마사코를 적극 변호했다.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부인에 대한 비난과 음해를 적극 막았다. 일본 왕실 역사상 부인을 위해 기자회견을 연 첫 사례였다.

나루히토는 1960년생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386세대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386 세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버블경제의 혜택 속에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다. 오타쿠(オタク)라 불리는 자기 나름의 취미에 빠져 자기 식대로 살아온 세대가 일본의 386들이다.

여성 일왕 등극도 시간 문제

나루히토는 나이로 보든 세계관으로 보든 전후(戦後)세대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2차 세계대전과 ‘전혀’ 무관하다는 말이다. 가정을 중시하는 외조 남편의 이미지도 당연하다. 따라서 아버지 아키히토(明人)가 중시했던 태평양전쟁 전몰자 순례도 하지 않을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신 환경·기후·여성·교육 문제가 나루히토의 주된 과제가 될 듯하다. 언젠가 나루히토가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지만 명목은 식민지 역사에 대한 사죄가 아닌, 한·일 문화교류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카퍼레이드에서 주목한 두 번째 장면은 마사코의 눈물이다. 일왕 가족은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하지만 카퍼레이드가 시작된 지 15분 뒤쯤, 아오야마(青山)거리를 지나칠 때 마사코가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마사코의 눈물은 소셜미디어의 화제로 떠올랐다. 마사코의 눈물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일본인들의 소감이 줄을 이었다.

나루히토 등장과 함께 새롭게 떠오른 이슈가 여성 일왕 등극 문제다. 현행 왕실법에 따르면, 일왕 후계자는 직계 남성만이 가능하다. 나루히토 딸 아이코는 일왕 후계 순위 밖에 있다. 여성 일왕 등극 문제는 바로 아이코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다. 일본인 대부분은 딸만 둔 시련이 마사코의 눈물을 자아냈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교도통신 10월 27일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인의 81.9%가 나루히토 후임으로 ‘아이코 일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13.5%에 불과했다. 아베는 2012년 집권 초기부터 여성인력 활용을 정책 우선과제로 내걸었다. 2020년까지 상장회사 임원의 10%를 여성으로 임명하라는 ‘사실상의 명령’도 기업에 전달했다. 일본에선 이를 아이코 일왕 등극을 염두에 둔 아베의 ‘선수(先手)’로 풀이했는데, 외조 일왕에 이어 여성 일왕 등장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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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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