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가 지난 9월 20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photo AP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가 지난 9월 20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photo AP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호주 다윈 폭격 등을 배경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다윈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성을 딴 항구도시다. 이 영화에서처럼 다윈은 1942년 2월 19일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던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다윈의 공군과 해군기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호주군을 비롯해 연합군 병사들과 민간인 300여명이 사망하고 미 해군 구축함 페어리호 등 함정 10척과 전투기 23대가 침몰하거나 파괴됐다. 일본군은 태평양에서 전략요충지였던 다윈 공습에 성공한 이후 호주를 100여차례나 폭격했다. 이른바 ‘호주판 진주만 공습’이라고 불리는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호주 국민들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호주는 다윈 공습 이전까지만 해도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보호를 받아왔다. 하지만 나치독일과의 전쟁만으로도 버거웠던 영국이 일본으로부터 호주를 방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호주는 미국에 안보 협력을 요청했다. 당시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영국을 대신해 호주와 뉴질랜드 등 남태평양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의 침공으로 필리핀에서 탈출한 더글러스 맥아더 미국 극동군 사령관은 새 사령부를 다윈에 차리고 일본군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호주는 군 지휘권을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양하고 나라의 운명을 맡겼다. 맥아더 사령관은 호주 방어를 대폭 강화하고 미군과 호주군 등 연합군을 투입해 과달카날과 뉴기니 등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섬들을 차례차례 탈환했다.

현재 다윈에는 미 해병원정대(MEU· Marine Expeditionary Unit) 병력 2600여명이 2012년부터 순환배치 형태로 주둔하고 있다. 미국이 이곳에 해병대를 배치한 것은 해양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에 맞서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다윈은 태평양과 인도양의 길목에 있는 데다 교역요충로인 말라카해협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특히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와는 2900㎞ 정도 떨어져 있다. 또 중국의 탄도미사일 위협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미국 정부는 병력 주둔 외에 다윈에서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글라이드 포인트 지역에 2억1100만달러(25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새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새 미군 기지는 와스프(Wasp)급 대형 강습상륙함이 기항할 수 있는 규모이다. 새 기지가 건설되면 남태평양 일대에서 미국의 작전반경이 더욱 넓어지게 된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미국 정부의 이런 계획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미국과 호주 해군 함정들이 연합 해상훈련을 벌이고 있다. ⓒphoto 호주 국방부
미국과 호주 해군 함정들이 연합 해상훈련을 벌이고 있다. ⓒphoto 호주 국방부

美와 정보 공유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

미국은 호주의 항구와 섬들을 군사기지로 이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서호주의 퍼스 스털링 해군기지에 항공모함, 구축함, 잠수함 등을 배치하고 이를 위해 스털링 기지를 확장한다는 것이다. 또 수마트라와 가까운 호주령 코코스제도에 무인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포함해 8대의 정찰기를 배치하고, 동쪽의 브리스번에 함정과 잠수함 등을 기항토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 호주와 일본이 함께하는 미사일방어(MD)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배치 후보지로 호주를 꼽고 있다.

호주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하고 있는 동맹국 중 하나이다. 호주는 무엇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걸쳐 있는 지역에서 법의 지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역내 항행의 자유 등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말한다. 호주는 일본, 인도 등과 함께 그동안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참여해왔다. 특히 호주는 미국의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FVEY)의 일원이기도 하다.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5개국으로 구성된 FVEY는 정보 공유 협정에 따라 상호 정보기관을 자국 기관처럼 이용할 수 있고, 위성사진 등 고급 기밀정보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제한 공유한다. 현재 호주 중부 사막지대인 앨리스 스프링스 인근에는, 미국의 비밀 군사시설인 파인 갭 기지가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국가정찰국(NRO) 등이 합동 운영하고 있는 이 기지는 전 세계의 모든 전파를 첩보위성으로 감시하고 있다. 미국은 이 기지에 탄도미사일을 조기 탐지할 수 있는 인공위성 감시시스템(SBIS)도 구축했다. 호주도 자체 개발한 진달리(Jindalee) 초지평선 레이더(Over-the-Horizon Radar)를 이 기지에 설치해 수집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고 있다.

호주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은 1951년 9월 호주와 뉴질랜드와 함께 태평양안전보장조약(Pacific Security Pact)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호주(A)·뉴질랜드(NZ)·미국(US)의 머리글자를 따서 앤저스조약(ANZUS Treaty)이라고도 불린다. 뉴질랜드가 1986년 핵무기를 보유한 미군 함정의 주둔을 거부하면서 앤저스조약에서 탈퇴한 이후 이 조약은 미국과 호주의 상호방위조약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당시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는 앤저스조약을 처음 발동해 미국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고 미국에 모든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호주는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 가장 먼저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물론 호주는 6·25전쟁 때도 미국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을 요청하자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군 병력을 파견했었다. 호주는 또 베트남전쟁 등 미국이 참전한 각종 전쟁이나 분쟁에 빠짐없이 참여해왔다.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혈맹(血盟)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주는 미국이 최근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을 항행하는 유조선과 상선에 대한 이란의 위협을 막기 위해 구성한 ‘호르무즈 연합 호위 함대’에도 함정을 파견했다. 호주는 동맹국으로서의 이런 자발적인 헌신과 적극적인 참여 및 기여 덕분에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된 셈이다.

호주와 한국 모두 미국과는 혈맹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도 앞으로 호주와 미국 간의 ‘동맹 관계’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고 무려 3만6000여명의 병사들이 희생됐다. 이후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로 발전했고 1954년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동맹국이 됐다. 미국은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해 막대한 지원까지 해주었다. 한·미동맹은 그동안 한국의 생존을 담보하는 ‘생명줄’이자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혈맹이라던 한·미동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 정책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및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을 해도, 핵을 포기하지 않아도 상관없이 오로지 북한만을 포용하겠다는 ‘북한 우선주의’라는 외통수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전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제재 해제와 완화만을 주장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왔다. 한국이 일대일로에 참여한다면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화경제권에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요청을 거부해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중국 정부가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에 보복조치를 가하자 중국 정부에 ‘3불(不)’을 약속했다. 3불은 추가 사드를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의 상징이자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공동 대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일방적으로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도 미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약속한 3불 중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 한·미동맹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일각에선 세계 패권 전략에 따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 한·미동맹을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자국의 국익만을 우선하는 협정이기 때문에 불평등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자주국방만을 내세워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군이 북핵에 대응할 수단과 방법조차 없는 등 전작권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작권을 가져올 경우 한·미동맹은 약화할 가능성이 높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 미군사령관은 “한국은 ‘동맹’과 ‘자주’의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며 “지금 문제는 자주국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버웰 벨 전 주한 미군사령관도 “북핵 대응은 미군만이 가능하다”며 “지금 상태에서 전작권 전환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9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 호주 국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이날 시드니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가 열렸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9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 호주 국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이날 시드니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가 열렸다. ⓒphoto 뉴시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노선

이처럼 최대 위기에 직면한 한·미동맹은 앞으로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으로 호주의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주 역시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낀 나라 중 하나다. 특히 호주의 입장에선 경제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중요하다. 호주가 전 세계에서 교역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양국의 교역 규모(2017~2018)는 1946억달러로 이는 호주와 미국 및 일본의 교역 규모를 합친 것(1478억달러)보다 많다. 호주는 전체 수출의 30.6%를 중국으로 수출한다. 반면 미국은 5.3%, 일본은 12.7%밖에 되지 않는다. 호주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호주는 서방국가로는 뉴질랜드 다음 두 번째로 중국에 시장경제 지위(MES)를 부여한 데 이어 선진국들 중 처음으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호주는 또 연간 100만여명의 중국 관광객과 유학생들을 유치해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경제 협력을 강조하면서 호주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의 ‘러브콜’을 외면하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2017년 11월 말 발표한 외교백서를 보면 미국을 선택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외교백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인정하지만 미국의 개입주의가 자국 이익에 더욱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호주 정부가 14년 만에 발간한 백서는 “중국의 2030년 국내총생산(GDP)은 42조4000억달러로, 미국(24조달러)을 크게 웃돌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인도·태평양의 일부 지역에선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백서는 “미국의 강력한 안보 개입이 없다면 역내 권력은 더 빠르게 이동할 것이고 호주의 안보와 안정을 이루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백서는 “호주의 미래 안보와 번영은 현재 룰(rule·규칙)에 기초한 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달렸고, 이를 위해 미국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또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자유민주주의, 정치·경제·종교 자유, 인권, 법치 등 호주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의 외교백서가 강조한 ‘룰에 기초한 국제질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성은 미국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가 분명하다. 반면 중국은 홍콩 시위사태에서 보듯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외면해온 공산당의 일당 독재국가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한·미동맹이 추진할 지향점은 ‘호주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1월 4일 공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미국의 역내 목표는 어떤 나라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국가들 사이에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은 모든 국가의 주권 존중,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준수 등이 새로운 위협으로 흔들리는 시기에 핵심적인 원칙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역내 안보가 직면한 위협으로 중국의 인권 유린과 사이버 공격, 남중국해 군사거점화 등을 열거하면서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대표적 협력 국가로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을 지목했다.

한·미동맹은 피와 목숨으로 이어진 동맹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라는 가치를 공유해왔다. 게리 세이모어 전 미국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미국이 중국을 염두에 둔 역내 전략에 동맹국들의 공조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더 이상 냉전 시절처럼 모든 지역에는 개입하지 않으면서 전략적 우선 순위를 정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역내 전략의 기여도에 따라 동맹에 대한 미국의 선호나 우선 순위가 바뀌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달라진 국력과 새로운 환경에 맞게 한·미동맹이 진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한·미동맹은 북한의 위협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미·중을 놓고 좌고우면 하지 말고 ‘호주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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