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민족당(SNP) 당수.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민족당(SNP) 당수. ⓒphoto 뉴시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향방을 결정지을 12월 12일 영국 조기 총선이 숨가쁘게 진행 중이다. 2015년, 2017년 총선을 거쳐 벌써 세 번째 총선을 치르는 셈인데 과거 총선에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별별 상황이 다 벌어지고 있다. 사자성어를 동원해 현 상황을 설명하면 이 정도쯤 된다. ‘각자도생하던 각종 정치 세력이 합종연횡, 이합집산, 이전투구, 백가쟁명하는 춘추전국이 만들어져 전대미문의 소용돌이가 오리무중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태.’

영국은 양당 제도의 대표적 국가이다. 지난 100여년간의 영국 정치는 보수·노동 두 당이 주거니 받거니 점유해왔다. 그런데 그런 통념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군소 정당이 힘을 얻어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노동 양당 내에서도 브렉시트 잔류(remain)와 탈퇴(leave)로 갈라져 탈당하고 이당(移黨)한다. 한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당끼리의 연합 후보 선출도 벌어지고 있다. 영국 정치가 2019년 총선 이전과 이후로 갈릴 정도로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 정치는 각 당이 견지하는 정책과 신념이 유권자들의 투표 기준이었는데 이번 총선은 브렉시트 이외의 이슈는 거의 묻혀버렸다.

보수당 의원 항명 사태

영국 정치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사태 몇 개를 살펴보자. 우선 보수당 의원들의 항명 사건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EU와 협상해서 10월 말 탈퇴를 목표로 의회에 상정한 브렉시트안을 전직 장관 8명을 포함한 보수당 의원 21명이 항명, 반대한 결과 의회에서 부결됐다. 존슨 총리는 이들 전원을 출당시키는 초유의 강수를 두었다. 출당 의원 중에는 존슨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외손자인 니컬러스 솜스 경, 직전 내각 장관인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과 ‘하원의 아버지(Father of the House)’라 불리는 케네스 클라크 전 재무장관, 데이비드 고크 전 법무장관, 도미닉 그리브 전 검찰총장, 그리고 떠오르는 스타 의원이자 차세대 총리 후보 1순위인 로리 스튜어트 등 원로 및 중량급 의원들이 망라돼 있다. 과거에도 당명에 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식의 중량급 의원들이 뭉친 경우는 없었다. 또 이 정도의 항명으로 출당시킨 예도 보수당 역사에는 없었다.

존슨은 과반수를 희생하는 위험을 안더라도 당을 완벽하게 틀어잡아야 브렉시트를 밀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국 보수당은 21명 중 10명의 의원들로부터 당명을 따르겠다는 항복을 받고 복당을 허락했다. 나머지 11명 의원 중 5명은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 등으로 바꿔 출마하고 3명은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결국 이번 총선의 보수당 후보는 모두 당 방침에 협조해서 브렉시트 안에 동의할 의원들로 채워진 셈이다. 만일 보수당이 하원의석 650석 중 과반수인 325석을 넘어서기만 하면 존슨은 브렉시트를 밀어붙일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굳이 EU와 합의한 1월 말 시한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급행으로 통과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12월 19일로 예정된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정 시정연설 예식 절차마저 간소화한 후 ‘완벽하고 신속하게 집중해서(perfectly, rapidly, intensely)’ EU탈퇴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사표 막자! 합종연횡·이합집산

이런 존슨의 계획을 아는 야당들은 무슨 수를 쓰든 보수당의 과반수를 막으려고 전략투표(tactical voting)에 집중하고 있다. 사표(死票)를 막으려고 서로 합종연횡, 이합집산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민당, 녹색당, 웨일스당이 ‘잔류를 위한 연합(United to Remain)’을 결성해 60개(자민 43석, 녹색 10석, 웨일스 7석) 선거구에서 연합해서 단일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 60개 선거구는 지지자들이 당의 방침을 따라 단일후보에게 투표를 한다면 승산이 아주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보수·노동 양당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원래는 노동당도 합류를 원했으나 자민당의 새 당수 조 스윈슨이 ‘노동당과의 어떠한 형태로의 협조도 거부한다’는 방침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제 이 연합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지는 선거공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까지 관심거리이다. 이렇게 연합을 하면 평소 투표를 안 하던 유권자도 분위기에 휩쓸려 더 투표장에 나오고 심지어는 노동당 지지자까지 합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용어인 이른바 ‘상가연합(相加聯合·additive coalition)’ 효과가 나타나 투표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물론 이때는 반대편도 마찬가지로 늘어난다.

후보 개인의 결심으로 타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자진 사퇴한 경우도 생겼다. 이 또한 영국 정치에서는 전대미문의 일이다. 잉글랜드 남쪽 지방 캔터베리 지역의 자민당 팀 워커 후보는 당 방침을 거역하고 잔류파 노동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고 자진 사퇴했다.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 후보가 187표로 신승을 한 지역이라 자신이 나가면 분명 보수 후보가 당선된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자민당 당수는 즉각 워커 후보를 당기 위원회에 회부한 후 다른 후보를 내겠다고 했으나 캔터베리 자민당 당원들이 당수 방침에 따르지 않고 누구도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캔터베리 자민당원들은 ‘만일 중앙당에서 내려보내는 타지 후보가 오면 전혀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했다. 워커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를 못 믿지만 그렇다고 강성 탈퇴파 보수당 후보에게 지역구를 넘겨줄 수는 없다”고 했다. 전직 기자 출신인 워커는 “정치가 언제나 지저분하고 속 좁을 필요는 없다. 때로 정말 중요한 일이 걸려 있을 때는 당 정치 노선보다는 옳은 일을 따라야 한다는 걸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정치적 생명 건 전쟁

선거가 조금 더 진행되면 더 많은 후보들이 당 차원이 아니라 개인 결정으로 사퇴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예상한다. 여론조사 등을 보고 당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면 방해효과(spoiler effect)나 분산표(split votes)를 괜히 만들지 않으려고 잔류파는 더 유리한 잔류파에게, 탈퇴파는 더 유리한 탈퇴파 후보에게 양보하기 위해 사퇴한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정식으로 협약을 맺지는 않았으나 자민당은 보수당에서 출당당한 도미닉 그리브 전 검찰총장 지역구에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잔류를 위한 연합’ 측에서는 지지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자신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번리 콜체스터 지역 같은 곳에서는 노동당을 지지하라고 언질을 주고 있다. 물론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브렉시트당도 2017년 보수당이 승리한 317지역구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부 언론에는 패라지가 보수당으로부터 여왕 서훈을 약속받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기사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브렉시트당 때문에 잔류파가 과반수를 차지할 위험이 더 커졌다고 비난한다.

만일 보수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지금의 의석 수 298석도 건지지 못하면 존슨 총리는 영국 의원내각제 300년 역사상 78번의 총리 재직(처칠같이 동일인물 복수 재임 포함) 중 2~3위권의 짧은 재임 기록을 세우는 수치를 당하고 물러나게 된다. 만일 노동당이 선전해서 현재 243석보다 의석 수가 늘어나더라도 보수당에 과반수를 넘겨주게 되면 현 코빈 당수는 물러나야 한다.

현재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의 46%는 존슨을 지지하고, 15%만 코빈을 지지한다. 지난 11월 24일 발표된 선데이타임스와 유거브(YouGov)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보수당이 의회 과반수 325석에서 48석이나 넘어서는 373석의 대승을 거둔다는 예측이었다. 옵서버지와 오피니움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도 보수당 47%, 노동당 28% 등 무려 19%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사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보수·노동당의 차이는 미미했다. 1~6%포인트 정도의 보수 우세였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이 보수당 지도자가 되고 나서 이 격차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5월만 해도 노동당이 거의 5%포인트 이상의 우위를 유지해 다음 총선 승리를 점칠 정도였는데 존슨 취임 이후 노동당 지지도는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근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예상 의석 수는 보수 365~345석, 노동 211~203석, SNP(스코틀랜드민족당) 51~46석, 자민 25~18석 등의 분포다. 심지어 보수당이 과반수에서 76석을 넘어서는 401석까지 갈 수 있다는 예측 조사도 나온다.

이런 조사를 보면 보수당 앞에는 장밋빛 꽃길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예상이 어려운 총선이라는 점에 모든 영국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동의한다. 보수당이 과반에서 76석을 넘긴다는 예상과 함께 과반수 당이 없는 소수 집권 의회(hung parliament)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역사상 가장 예상이 어려운 총선

여론조사 기관들이 결과 추정에 소극적이고 보수당도 조심스러운 이유는 바로 직전 총선인 2017년의 악몽 때문이다. 당시 메이 총리는 여론조사를 철석같이 믿고 과반 325석에서 5석이 많던 보수당 의석 330석을 더 늘려보겠다면서 예정보다 거의 3년 일찍 조기총선을 결정했다. 메이가 총선을 선언한 시점에 각 여론조사는 보수 최대 414석에서 최소 391석까지 기존 330석에서 최소 50석 이상은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보수당이 13석이나 잃고 노동당이 30석을 더 얻어 예상과 달리 보수당의 참패였다.

물론 보수당이 정권을 잃은 건 아니지만 의석을 더 늘려 강력하게 브렉시트를 밀고 가자는 메이의 조기총선 의도가 완벽하게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결국 북아일랜드의 극우정당인 민주연합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려버렸다. 이렇게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동력을 잃어버리고 진퇴양난의 수렁을 헤매다가 취임 딱 3년11일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메이 총리가 조기총선을 결심하게 만든 여론조사가 결국 메이 총리를 속여서 울린 셈이다. 영국 정가에서는 이를 ‘메이의 거대한 기대(May’s The Greatest Expectation)’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메이 총리가 이렇게 여론조사만 믿고 벌인 조기총선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청년지진(youthquake)’ 때문이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2017년 총선 한 해 전인 2016년 6월 브렉시트 투표도 사실 여론조사로는 브렉시트안 부결이었는데 통과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가 탈퇴 반대를 하는 젊은층이 여론조사에서는 의사 표시를 하고 정작 투표를 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분석이었다. 거꾸로 지난 총선에서는 책임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결과 ‘청년(youth)들에 의해 생긴 지진(quake)’으로 보수당이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참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2019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의 압승(landslide win)을 저지할 수 없다는 여론조사 전망에도 불구하고 잔류파들은 똑같은 기적을 고대하고 있다. 노동당이 자신들에게 대단히 불리한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조기총선에 동의한 이유도 자신들이 집권하리라는 무망한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보수당 의석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체 예상 때문인데 이 역시 최근 불고 있는 젊은층의 총선 참여 욕구를 간파한 것이 배경이다.

이번에도 ‘청년 지진’ 일어날까

실제 2017년 총선에 비해 이번 총선에는 유권자 등록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것도 청년층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유권자 등록 마감일인 지난 11월 26일 자정까지 거의 385만860명의 새 유권자가 등록했는데 이는 2017년 총선 새 등록자 231만5893명에 비하면 무려 66%가 늘어난 수치다. 특히 마감일 하루에만 무려 65만9666명이 등록했는데 이 중 70%인 45만9668명이 바로 34세 이하의 젊은 유권자들이었다. 특히 34세 이하 젊은이의 75%가 잔류파로 분류되고 있어 잔류파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실 영국 총선에서 투표 전 각 당 지지자들의 비율로는 의석 수 차이를 점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지난 2017년 총선에서 득표율 42.4%인 보수당은 317석을 얻은 반면, 득표율 40.0%인 노동당은 244석밖에 못 얻었다. 득표율 2.4% 차이가 73석의 차이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번에도 총선 전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한다면 노동당이 실제 의석 수 싸움에서는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안 남은 영국 총선은 아직도 오리무중을 걷고 있다. 과거 어느 총선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점은 2019년 12월 12일 총선 이전과 이후로 영국 정치 지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 총선에서 보수·노동 양당 득표율이 84.5%였는데 이번에는 보수 41%, 노동 24%로 65%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양당 시대는 이미 갔다는 말이다. 더 충격적인 예상은 보수·노동 양당 체제의 영국 정치에서, 양당에 소속되지 않은 의원군이 전체 의원의 20%에 해당하는 120명 정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SNP의 50석과 자민당의 30~40석 외에도 30~40석의 무소속과 소수당 의원이 나온다는 말이다. 2017년 총선에서는 무소속 당선자가 단 1명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가장 놀라운 가능성은 자민당이 의석 수로는 노동당을 이길 수 없지만 전국적인 득표율로는 이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동당은 끝까지 브렉시트의 잔류·탈퇴를 밝히지 않아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 중 잔류파가 대거 자민당으로 몰려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총선에서도 자민당이 23%로 57석을 얻어 노동당의 의석 258석에는 절대적으로 못 미쳤지만 득표율로는 29%여서 겨우 6%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이는 득표 총수로 비교하면 노동 860만9527명 대 자민 683만8824명으로 겨우 177만2703명 차이다. 전국 650개 선거구로 따지면 1개 선거구에서 2700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셈이다.

결국 이번 2019년 영국 총선에서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영국 정당 역사상 후보가 소속당을 바꾼 예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과연 영국 유권자가 당을 지지해 투표하느냐, 아니면 후보 혹은 후보의 정치적 신념(잔류·탈퇴)을 보고 투표하느냐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노동 양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온 후보의 당락 여부, 당을 바꾼 후보들의 당락 여부, 합종연횡을 한 후보의 당락 여부, 군소 정당의 득표율 등도 눈여겨볼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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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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