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폭우가 쏟아진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노인들이 구조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7월 폭우가 쏟아진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노인들이 구조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시의 71세 여성 기시모토 마사코가 3명을 목졸라 죽인 살인범이 된 것은 지난 11월 17일이다. 기시모토씨는 이날 90대의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70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시부모와 남편, 3명을 간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기시모토씨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93세의 시아버지와 95세의 시어머니를 보살펴왔다. 70대에 접어든 여성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남편마저 뇌경색 판정을 받아 걸어다니는 것이 불편해졌다. 하루아침에 시부모는 물론 남편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낮에는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도 나가 근무해야 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가족 세 명을 간병하는 일….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행(苦行)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을 하고 시부모와 남편의 목을 차례로 졸랐다.

지난 3월엔 구마모토(熊本)현에서 91세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64세의 딸 미야자키 가즈요씨가 어머니를 살해했다. 미야자키씨는 어머니가 10년 전 대장암을 앓고 치매 증상까지 보이면서 지금까지 간병을 해왔다. 매일 인공항문을 갈아주며 어머니를 돌보다가 지쳐 버렸다. 어머니가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지자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엄마, 오늘을 (내가 돌보는) 마지막 날로 해요”라며 목을 졸랐다. 이어서 그는 “(나이 든 환자와) 함께 사는 가족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재판을 받았다.

일본에서 ‘간병살인(介護殺人)’이라고 부르는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이 든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를 간병하다가 지친 나머지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이 연발하고 있다. 간병살인은 ‘인생 100세 시대’ 부작용의 결정판이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까지 지난 10년간 발생한 ‘간병살인’ 사건은 408건에 이른다. 일본 법무성은 간병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들이 장래 비관, 분노, 생활 곤란 등의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분석한다.

간병 피로로 인한 자살도 만연

간병살인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일본 내각부(內閣府) 통계에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간병 피로를 이유로 한 자살이 2515명으로 나와 있다. 이 중 60세 이상 자살자는 1506명으로 전체의 60% 수준이다. 2016년에는 도쿄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를 간호하던 여성이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 방화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같은 해 도쿄 인근의 요양원 직원이 체력이 약해진 노인 3명을 살해, 일본 사회를 경악시킨 사건도 있었다.

일본이 간병살인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이때부터 매년 살인 원인 분석에 ‘간병살인’ 항목을 포함시키고 있다. 2011년에는 간병살인이 전체 살인 사건의 5.7%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는 간병과 관련한 이런 사건에 이미 만성이 된 듯한 분위기다. 앞에 언급한 ‘70세 여성의 가족 3명 살인’ 사건 기사를 읽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렇게 중요한 사건을 왜 이렇게 작게 다뤘을까’였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건이 연간 20~30건씩 발생하다 보니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재판부도 간병살인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하다는 인상을 준다. 2016년 치매에 걸린 86세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여성에 대해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이 여성은 재판정에서 “어머니를 숨지게 했지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며 울먹였고, 방청객은 물론 판사도 눈물을 흘렸다. 올 초 부인을 간병하다가 살해해 재판을 받은 70대 남성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간병살인은 일본에서 아이들은 줄고 노인이 늘어나는 ‘소시고레이카(少子高齡化)’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은 국민 5명 중 1명이 70세 이상인 초고령화 국가다. 이미 지난해 70세 이상 고령자가 2618만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20% 선을 넘어섰다. 특히 심각한 것은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간병’이다. 이미 2016년에 65세 이상의 노노간병이 54.7%를 차지했다. 75세 이상의 ‘초(超)노노간병’도 30%를 넘었다. 일본 정부의 ‘고령사회 백서’는 75세 이상 4명 중 1명꼴로 동거 가족이 간병하거나 요양을 도운다고 했다. 또 간병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동거하는 가족이 담당하는 비율이 60%였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간병살인

마이니치신문은 ‘간병살인’을 기획기사로 수차례에 걸쳐서 다룬 후, 올해 이와 관련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간병살인 44건을 정밀 분석한 결과 간병인의 수면 부족에 의한 간병살인이 많았다. 가족들이 피간병인을 돌볼 때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족을 간병하는 730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55%가 “살인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93%는 간병인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야간이나 비상시 제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했다.

유하라 에츠코(湯原悦子) 일본 복지대학 교수는 간병살인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피해자는 여성이 많고 가해자는 남성이 많다”고 분석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동거가족의 간병이나 간호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간병살인을 저지르기 쉽다”는 것이다.

일본의 복지 전문가들은 간병살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간병인과 피간병인이라는 1 대 1의 관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루 종일 간병만 하다 보면 좋지 않은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가 책임을 분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서로 위로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키워드

#도쿄 통신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