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홍콩 시민들이 미국 영사관 앞에서 트럼프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일 홍콩 시민들이 미국 영사관 앞에서 트럼프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베이징 정부의 압박과 홍콩 경찰의 거친 폭력에 눈물짓던 740만 홍콩 주민들이 지난 11월 28일, 때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쁨의 환호성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11월 27일 ‘홍콩인권민주주의법안(Hong Kong Human Rights and Democrcy Act of 2019·약칭 홍콩인권법)’에 마침내 서명한 것이다. 이 법은 미국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48) 공화당 상원의원(플로리다)이 지난 6월 13일 발의하여, 11월 19일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20일 417(찬성) 대 1로 하원 문턱도 가뿐히 넘은 뒤, 대통령 서명만 남겨두고 있었다. 법안이 백악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일주일 동안 홍콩 주민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스몰딜(small deal)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혹시나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배려해 ‘홍콩인권법’에 서명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워싱턴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사람은 홍콩 주민만이 아니다.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840만 위구르족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루비오 상원의원이 올 1월 17일 발의하고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한 ‘위구르인권정책법(Uyghur Human Rights Policy Act of 2019)’에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인구 8명당 한 명꼴(총 100만명)로 정부 노동교화소에 갇혀 있는 가족이 석방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홍콩을 지탱하는 3개의 기둥이 흔들린다

홍콩 주민과 위구르족에게 생명의 빛과도 같은 두 법은,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깊은 궁궐에 앉아 있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겐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전이다. ‘시 황제’ 입장에서 두 법은 엄연히 중국 내정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이기 때문이다. 영토의 일부분인 홍콩과 신장자치구에서 중국공산당 정부가 어떻게 통치하든, 외국은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황제의 코털’을 건드리는 두 법안을 중국은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법안의 내용이 중국 정부의 구성원을 직접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홍콩인권법’은 미·중 무역전쟁과 맞물려 시 황제를 권투장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홍콩이 지난 6월 9일부터 반년 넘게 민주화 시위로 몸살을 앓는 까닭은, 홍콩을 지탱하는 3개의 기둥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홍콩을 구성하는 3개의 기둥이란 △영국 식민지의 유산인 정치와 법률체계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쓰인 홍콩기본법과 중국 헌법 △1992년 제정되어 최근까지 적용돼온 미국의 홍콩정책법(Hong Kong Policy Act)이다. 먼저 영국 식민지가 남겨준 정치와 법률체계는 완벽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대표인 행정장관을 자기들 손으로 뽑지 못하고(간선제), 의회 선거제도는 친중국 인사에게 유리하며, 시위와 집회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번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급작스레 제정 발표된 복면금지법은 영국 식민지 시대가 남겨준 긴급법의 산물이었다. 홍콩인들은 그동안 영국식 자유와 인권을 누린 듯했지만, 그것은 ‘민주 없는 자유’에 불과했다는 것이 홍콩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장정아 인천대 교수의 진단이다. 그만큼 홍콩의 정치적 자유는 취약했다는 것이다.

그 취약성은 홍콩을 구성하는 두 번째 기둥, 즉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약칭 홍콩기본법)과 ‘중국 헌법’의 부조화 과정에서 드러났다. 홍콩기본법은 중국 반환 이후 50년간(2047년까지) 홍콩의 고도자치와 정치사법체제를 보장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명문화하였으나, 그 효력은 사회주의 헌법의 압도적 힘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2000년대 초반 벌어진 ‘홍콩기본법의 해석권’ 논쟁은, 그 권한이 ‘홍콩 법원’이 아니라 베이징의 ‘전인대(全人大·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원회’에 있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또 영국 식민지가 남겨준 정치체제도 사회주의 헌법의 ‘위협’을 막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공산당 정부에 의한 홍콩 인권침해와 언론출판자유 제한이 가속화되었다. 2015년 베이징의 권력투쟁을 다룬 책들을 팔던 홍콩 서점 주인들이 대낮에 납치되어 가족도 모른 채 6개월이나 중국 본토에서 고문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홍콩 주민들은 경악했다.

“홍콩을 살려둘래, 죽일래?”

‘자유 홍콩의 급격한 중국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홍콩인들은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벌였고, 올해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계기로 최대 200만명이 장기 민주화 시위에 나선 것이다. 사회주의 헌법이 홍콩을 지배한다는 베이징 지도부의 생각은 주(駐)홍콩연락판공실 왕즈민(王志民) 주임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4일 ‘헌법의 날’ 좌담회에서 “홍콩 특구의 특수한 법률적 지위와 우월성은 중국 헌법이 부여한 것이다. 헌법은 홍콩 일국양제의 성공적 실행의 뿌리(根)이자 원천(源)이다. 홍콩이 중국에 귀속된 그날부터 홍콩 동포들은 헌법이 확립한 국가헌정질서 안에서 살고 있다. 사회주의 제도를 실행하는 내지(중국 대륙)나, 자본주의 제도를 실행하는 홍콩이나 모두 ‘일국일헌(一國一憲)’ 가운데 통일돼 있다”고 말했다. ‘일국양제’보다 ‘헌법’이 우위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 역시 “우리는 반드시 헌법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헌법과 기본법의 관계에 대해 이해해야만 홍콩 특구의 우월성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홍콩 시민의 편이 아니라 베이징 정부 입장에서 행동하는 배경에 ‘헌법’이 있었던 것이다.

홍콩을 지탱하는 세 번째 기둥인 미국의 ‘홍콩정책법’은, 그동안 앞에서 언급한 두 기둥의 충돌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다. 1992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제정된 홍콩정책법은, 반환 후에도 홍콩의 독특한 투자와 무역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중국과 다른 특별대우를 부여하고,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그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률 덕분에 미국 등 서방 투자가들은 홍콩을 통해 중국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었고, 중국은 홍콩을 매개로 외국 자본을 유치해 경제발전을 도모했다. 이 법률이야말로 홍콩에 ‘금융허브’ 지위를 부여한 특별한 모자였다. 홍콩 반환 이후 중국의 사회주의 헌법이 영국식 정치법률 체제를 약화시키는 동안에도, 이 법률 덕분에 홍콩은 금융 중심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난 11월 27일 트럼프가 서명한 ‘홍콩인권법’이 바로 이 법률의 수정안이란 점이다. 수정 법률은 이전 법률보다 홍콩 시민의 자유와 자치권 침해(약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홍콩 내에서 미국 시민과 기업 활동에 대한 보호도 강화했으며, 사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범죄인 송환과 홍콩인에 대한 고문 등 인권침해 행위에 책임 있는 홍콩과 중국인에게 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홍콩 민주화 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중국은 즉각 ‘내정간섭’이라며 발끈했다. 트럼프의 ‘홍콩인권법’은 그 효력 면에서 시진핑에게 ‘홍콩을 지금처럼 살려둘래, 아니면 죽일래’ 하고 묻는 것과 같다. ‘자유 홍콩을 죽이면, 즉 홍콩을 중국화하면 중국도 큰 타격을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이다.

이에 시진핑은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금처럼 방치하면서 저절로 사그라들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홍콩 정부를 강력히 압박하여 시위를 제압하고 주도세력을 차단·처벌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 입장에서 우선 ‘반중(反中)’ ‘반공산당’ 구호가 난무하는 홍콩 시위를 방치할 경우 홍콩의 ‘탈(脫)중국화’와 ‘친서방화’가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또 이것이 ‘위구르인권법’과 맞물리면, 분노로 가득찬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민주화나 독립운동이 발생할 수 있고 이웃한 티베트의 독립세력을 자극할 수도 있다. 홍콩 시위를 계속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홍콩을 강력 진압하자니, 미국의 ‘홍콩인권법’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중국이 홍콩 민주화 시위대를 짓밟으면, 미국과의 충돌은 물론 홍콩의 특별한 지위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지어 중국 지도부가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르는 상황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중국의 패권 도전 견제하는 수단

시진핑으로선 홍콩 문제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추락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2018년 3월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은 올해 성장률 6%대가 위협받고, 그로 인해 연간 800만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대졸자를 포함한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다. 국유기업의 인원감축과 금융권의 도산, 부동산 업계의 부실화도 심상치 않다. 이런 마당에 만약 중국이 홍콩 문제에 강경대응하여 미국과 대립하고 이로 인해 해외자본 투자가 위축되고 이미 들어온 기업마저 중국을 떠나게 되면 중국 경제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만약 내년 성장률이 5%대나 그 이하로 떨어져 일자리 축소가 가속화되면 청년층의 사회불만이 폭발하여 공산당 리더십을 위협할 수 있다. 시진핑에겐 200만명이 참가하는 ‘홍콩의 큰 혼란’보다 수천 명 중국 도시청년이 주도하는 ‘대륙의 작은 혼란’이 휘발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홍콩의 금융중심 기능이 중국의 다른 도시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중국이 광저우나 선전을 금융허브로 키우려 해도, 국제자본은 중국 법의 지배를 받는 도시에 대한 금융거래의 안전성을 믿지 못한다.

시진핑은 일단 ‘장기전’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황제 체면’을 좀 상하더라도 홍콩 특구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통제·관리하도록 압박하면서,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살려두고 해외자본 유치에 총력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조용하던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지난 10월 갑자기 시안(西安)의 삼성전자에 나타나 “중국 대외개방의 문은 열면 열수록 커진다. 중국 시장은 넓고 거대한 기회가 놓여 있다”고 말한 것도 시진핑을 대신해 해외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시위 참여층인 홍콩 청년들에게 대륙의 일자리나 유학 기회를 꾸준히 제공해 서서히 친중화(親中化)하면서 시위 주도자들을 고립, 차단하는 작업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관세전쟁’이 시진핑 정부의 복부를 강타한 ‘어퍼컷’이었다면, 홍콩·위구르 인권법은 시진핑의 뺨을 때리는 ‘잽’과 같다. 두 수단은 미국이 중국의 패권 도전을 견제하는 강력한 무기다. 코너로 몰린 시진핑 정부는 어떤 반격을 준비할 것인가.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