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시마는 미국의 불침항모(不沈航母)가 될까.’

지난 12월 8일 미국의 CNN방송은 일본 가고시마현 남단 8㎢의 작은 섬 마게시마(馬毛島)에 주목해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중국해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마게시마가 아시아에서 유사시 미 해군의 불침항모로 사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최근 주일미군 항공모함 함재기의 이착륙 훈련(FCLP·Field Carrier Landing Practice) 부지로 제공하기 위해 마게시마를 160억엔(약 1760억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자 이렇게 분석한 것이다.

CNN이 주목할 정도로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의 FCLP를 위해 섬 하나를 통째로 매입한 것은 미·일 동맹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세계의 군대 중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훈련을 중시하는 나라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인 항공모함 함재기의 이착륙 훈련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있다. 주일미군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준 아베 내각이 내년부터 시작될 미·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다른 현안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규모의 마게시마 매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부터다. 그동안 주일미군 항모 함재기는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의 아쓰기(厚木)기지를 거점으로 해왔다. 함재기가 아쓰기기지에서 FCLP를 할 때 나는 소음 때문에 민원이 많이 발생했다. 특히 야간훈련(NLP·Night Landing Practice)이 문제였다.

그러자 FCLP는 약 1000㎞ 이상 떨어진 남태평양의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의 유황도(硫黃島)를 오가며 실시해왔다.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물론 함재기에 이상이 생길 경우 비상착륙할 수 있는 공항 시설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규슈에서 30㎞ 떨어진 무인도

그러던 중 함재기의 거점이 지난해 일본 서부의 야마구치현의 이와쿠니(岩國)기지로 옮겨가면서 더 이상 오가사와라제도에서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일본이 마게시마를 FCLP 후보지로 확정한 것은 2011년. 당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회의(2+2)에서 마게시마를 FCLP의 이전 후보지로 제시했다.

마게시마는 원래 무인도가 아니었다. 메이지 정부 때는 주로 목장(牧場)으로 운영되다가 2차 세계대전 때는 방공(防空) 기지로 활용됐었다. 1960년대 초까지는 인구가 증가, 한때는 500여명이 살기도 했다. 초등학교 분교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됐다. 일본인 기업가가 이곳에 화물공항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사들인 후, 현재 십자 모양의 활주로를 완공했다.

이 같은 역사를 지닌 마게시마는 최적의 함재기 훈련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게시마는 규슈(九州) 본섬으로부터 약 30㎞ 떨어져 있다. 이와쿠니 기지에서 불과 30분도 안 돼 마게시마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현재 십자 모양의 활주로는 콘크리트 포장을 하지 않아도 훈련이 가능한 수준이다.

무인도이다 보니 지역의 반발도 작은 편이다. 이 섬을 관할하는 니시노오모테시(市)의 의회는 지난 2월 훈련장 이전을 전제로 한 섬의 매매에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훈련장 이전을 계기로 젊은이의 고용 확대 등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그동안 마게시마 매입 협상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이 섬을 소유한 태스톤에어포트사는 처음엔 400억엔을 요구했다. 일본 방위성이 원래 예상했던 45억엔과는 무려 10배나 차이가 났다. 마게시마 매입이 어렵자 방위성은 기타큐슈(北九州)공항 주변에 훈련 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일본 방위성이 꾸준히 이 회사를 설득, 올 초 약 160억엔에 기본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들 간의 내분이 생겨 매입이 지체됐다. 상황이 바뀐 것은 지난 11월이다. 이 회사의 채권자들이 신속한 채무변제를 요구함에 따라 매입 협상이 급진전됐다. 이 회사가 약 13만㎡(약 4만평)만은 계속 갖고 싶다고 해 일정 기간 동안 부분 소유가 가능하다는 조건에 타결됐다.

상하이까지 900㎞, 중국 겨냥할 비수?

아사히신문은 마게시마 구입에 미국의 압력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마게시마 구입이 늦어지는 데 대해 각종 회의에서 불만을 표시했다. 2017년에는 미군이 5년 만에 민가가 많은 아쓰기기지에서 FCLP를 전격 실시하기도 했다. 일본 방위성 내에서는 이를 ‘무언의 압력’으로 인식했다.

일본 정부가 마게시마를 구입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앞으로 미국과 일본이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상징처럼 될 전망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마게시마 구입에 대해 “미·일 동맹의 억지력 유지나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CNN방송은 일본 정부의 마게시마 구입이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주장, 일본은 동중국해에서의 입지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적절한 시설이 완성되면 마게시마는 일본 자위대의 항구적인 기지로서의 역할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게시마에서 중국 상하이까지는 불과 900㎞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이 앞으로 미국에서 도입하는 F35 스텔스 전투기를 이곳에 배치, 중국을 겨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일 양국은 유사시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배치된 미 전투기를 마게시마로 옮기는 방안에 대한 연구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에는 일본이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기 위한 사드(THAAD) 시스템을 이곳에 설치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조만간 미군은 중국의 코앞에서 항공모함 함재기의 ‘터치 다운’ 훈련을 자유자재로 하며 전투능력을 증강시키게 된다. 장기적으로 마게시마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일부를 대체한다면 오키나와의 ‘미군 피로감’을 줄일 수도 있다. 일본이 마게시마 구입으로 미·일 동맹을 굳건하게 하는 것은 물론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뒀다는 분석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키워드

#도쿄 통신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