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9일자 미국 신문 1면을 꽉 채운 톱기사의 제목은 ‘트럼프가 탄핵됐다(Trump Impeached)’였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음을 알린 것이다. 하원에서 통과돼도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유죄판결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를 강행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날 아침 신문을 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트럼프는 제17대 앤드루 존슨, 제42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하원이 탄핵을 가결한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트럼프에겐 치욕적인 기록이다. 양극화된 미국 정치에서 트럼프 탄핵은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켜 재선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원 탄핵의 기록은 남는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트럼프 탄핵 때문에 바쁘게 돌아가던 워싱턴은 하원에서 소추안이 가결되자마자 크리스마스 휴가를 향해 무너져내렸다. 워싱턴은 이미 12월 초부터 시내 식당이 어찌나 붐비는지 저녁식사 예약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러 가거나 휴가여행을 떠났다. 트럼프가 이걸 놓칠 리가 없다. 페이스북에 새로운 대선 유세용 웹사이트를 소개했다. 자신의 지지자들이 연말연시 휴가 때 ‘진보적인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 논쟁해서 이기는 법을 도와주는 사이트이다.

어차피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기 때문에 하원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트럼프가 입은 타격이 그리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구들은 분명 대선, 탄핵 그리고 트럼프를 화제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그때 활용할 논리와 자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웹사이트엔 글과 동영상으로 설명을 붙여 놓았다.

주로 이런 내용이다. 첫째는 트럼프 경제는 지난 50년래 가장 뜨겁고 가장 강력하다. 트럼프 취임 이후 일자리가 700만개 늘어났다. 둘째 멕시코 국경 지역에 장벽을 설치해 불법이민을 막고 있어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 셋째 다른 나라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는 등 제 몫을 다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 이외에도 무역, 건강보험, 감세 등에 대한 트럼프 입장을 정리하고, 민주당이 탄핵에 집착한다는 비난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추석 민심, 설 민심이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선 추수감사절 민심과 크리스마스 민심에 신경 쓴다. 의원들도 지역구에 돌아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트럼프는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지지자들을 자기 논리로 무장시켜 고향에 돌아가게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과의 논쟁에서 지지 말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새해 1월 초 경합주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에서 재선 유세를 시작할 예정이다. 유세를 일찍 시작하는 것은 새해 초에 있을 상원의 탄핵심판과 민주당 경선을 의식한 계획일 것이다.

민주당은 새해 2월 초 아이오와주 당원대회를 시작으로 경선과정에 들어간다. 언론의 모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무엇이든 해서 민주당으로 가는 시선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건 역대 다른 재선 도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새해 초부터 불이 붙을 미국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같은 대결이 될 것 같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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