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8일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18일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면서 북한 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블러핑(bluffing·허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대북정책이 형편없는 실패로 끝났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최대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히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제는 하나의 미사여구 정책(rhetorical policy)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물론 이란·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외교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가 지난해 9월 해임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지난해 12월 22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2001~2005)과 유엔 주재 미국대사(2005~2006) 등을 역임했고,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부소장과 유대국가안보연구소(JINSA) 이사 등을 지냈다. 2012년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의 참모도 지낸 자타공인 미국의 뛰어난 외교·안보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의 핵전략은 물론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꿰뚫어온 전문가인 존 볼턴 전 보좌관이 전직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이처럼 작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볼턴의 트럼프 작심 비판

무엇보다도 미국 조야에선 볼턴 전 보좌관이 지적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대선 최종 후보로 유력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를 단 한 개도 파기하지 못한 채 어떤 사찰관도 북한 땅을 밟지 못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더욱 강화됐으며, 김정은이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고립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원하는 모든 것, 합법성을 줬다”고 비판했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 등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6명도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 부과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유감”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상원 외교 동아태 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 마키 상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전략이 거의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동안 미국과 동맹국들은 핵무기를 발전시킨 북한과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코언 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보는 “트럼프 정부가 현재 이행하고 있는 대북제재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위협이 이제 없어졌고 미국의 대북정책이 성공했다고 선언하면서 최대의 압박 정책이 퇴색했다”고 강조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은 매우 일관성이 없다”면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은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내린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정 등은 명백히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본능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협상 테이블에서의 자신의 기량을 과대평가한다”고 비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문재인 한국 대통령 등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장해 대북 외교를 실패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대행도 “트럼프가 북한으로부터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동결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하지만, 북한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모든 종류의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익명의 전직 관리 저서 ‘경고’에 담긴 일화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독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동안 북한의 주민들은 고통받는다’라는 제목의 사설(2019년 12월 18일자)에서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극히 개인화된 외교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이 핵 개발을 향상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독재자를 다 받아줬고,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협상을 애원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무기 시스템 개발 진전을 자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WP는 “북한은 강제수용소를 가진 독재국가로, 핵실험을 하고 ICBM을 구축하며 해로운 사이버 공격을 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세 차례 만남을 통해 매력 공세를 시도했지만, 이는 분명한 전략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WP는 “트럼프의 ‘방향 없는 사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비록 늦긴 했지만, 북한을 억제하기 위한 심각한 전략을 고안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에서 일했던 익명의 전직 고위관리가 발간한 ‘경고(A Warning)’라는 저서(2019년 11월 19일출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뒷이야기를 상세하게 폭로했다. 저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 동의로 성사된 일화를 소개했다. 저자는 2018년 3월 8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 한국의 대북특사단이 백악관을 방문해 ‘김정은이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고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진과 상의 없이 즉각 수락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당시 백악관은 대외적으로는 미·북 정상회담 성사를 흥미로운 돌파구로 포장했지만 내부에서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수락한 직후부터 본질(substance)보다는 연출(theatrics)에 열중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성인식을 준비하는 것 같았고 모두의 기억에 남을 쇼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개인적인 친분(personal connection)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나도 확신했다면서, 때문에 회담의 전략이나 세부사항(details)이 아니라 케미(chemistry)가 중요하다고 믿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예상대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어떤 의미 있는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실패했는데도 이를 개의치 않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친분을 쌓은 것을 성공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저자는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흠모하는 10대 팬처럼 아양 떠는 모습”이라고 묘사하면서 재무부가 2018년 12월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북한 고위인사 3명을 제재하자 격노해 “누가 이렇게 했냐”며 참모진을 추궁하고 “김정은은 내 친구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밝혔다. 저자는 이런 사례들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은 최대 압박에서 유화책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익명의 저자는 뉴욕타임스(NYT)에 ‘나는 트럼프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저항군)의 일원’이라는 칼럼(2018년 9월 5일자)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성격 등을 고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와 최악의 성향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정부 고위관리들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바 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 3종 세트인 B-52H, B-1B, B-2가 비행하고 있다. ⓒphoto 미 공군
미국의 전략폭격기 3종 세트인 B-52H, B-1B, B-2가 비행하고 있다. ⓒphoto 미 공군

김정은의 ‘새로운 길’과 트럼프의 재선 전략

미국 조야와 싱크탱크, 언론, 저서 등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왔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밝힌 ‘새로운 길’과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어떤 전략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재선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상원에서 탄핵 재판을 받게 된 것도 재선을 위해 ‘무리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적인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차남 헌터의 부패 연루 혐의를 조사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트럼프 탄핵소추안은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가결됐지만 공화당이 과반이 넘는 상원에서는 ‘무죄’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앨런 리트먼 아메리칸대 교수가 “탄핵은 분명 현직 대통령의 재선에 부정적인 스캔들”이라면서 “올해 대선은 승패를 예측하기 힘든 접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문제를 덮고 자신의 대선 승리를 위한 방안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벌여온 중국과의 협상에서 1단계 합의에 도출한 것도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계속할 경우 자칫하면 경제 성적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표밭인 중서부의 ‘팜벨트(farm belt·농장지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이 대규모 농산물을 구입할 것을 압박해왔다. 중국이 이런 요구를 수용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를 승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평화 협정과 철군 추진, 한국과 나토 등에 방위비 인상 압박,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타결, EU 등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관세 추진 등 일련의 외교·안보 및 경제 정책들은 모두 재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동맹과의 협력이나 역대 정부가 내세워왔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등을 외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화당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하면 북한을 비롯해 이란, 베네수엘라 등 주요국 현안과 관련해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면서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가장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로는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 결정을 내림으로써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 소탕에 일등공신인 쿠르드족을 헌신짝 버리듯 배신한 것을 들 수 있다.

충동적 무력 응징 가능성도 리스크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트럼프 리스크 또한 커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를 놓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기 위해 외교 성과 과시용으로 김정은과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갖고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및 ICBM의 일부 핵탄두를 폐기하는 대신 미국은 단거리와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제재를 완화하는 절충안에 합의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허와 충동적인 성향으로 볼 때 평양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오는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대북 유화정책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길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정책 등으로 경제가 파탄난 데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등 각종 의혹들이 드러나고 있고, 누더기 선거법과 위헌 소지가 있는 공수처법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김정은과 북한 정권과의 관계개선만이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한국은 북한의 핵 인질이 되는 셈이다. ‘북한바라기’인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가짜 평화이자 한국이 북한의 노예가 되는 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등 도발에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무력 응징하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북한에 군사공격을 강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가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북한 정권에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당시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을 제한적으로 선제타격하는 ‘코피 작전’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제거와 북한 정권 붕괴가 아닌 엄포용 무력만을 동원할 경우 오히려 북한의 보복으로 한국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트럼프 리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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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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