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photo 뉴시스

과거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내용의 한 대목이다.

“2010년 초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과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이란 내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를 혁명수비대가 유혈 진압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 언쟁은 결국 폭력으로 끝났다. 자파리가 아마디네자드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고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후에도 자파리가 10년이나 더 사령관 자리를 유지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주먹을 날려도 처벌받지 않을 정도로 이란혁명수비대(IRGC·The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의 위세는 대단하다. 위 사건은 혁명수비대의 위세가 선출된 권력조차 눌러버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수비대 산하 조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쿠드스군’이다. 특수전 및 해외 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로 내전이 벌어진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친정부 민병대를 지원하거나 이라크에서 IS 격퇴전에 나선 시아파 민병대를 도운 조직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이 중동 지역 이슬람 테러조직들을 돕는 데 활용한다”고 비난한 조직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지난 1월 3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바로 쿠드스군의 책임자였고 이란 내 2인자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망으로 2020년이 시작하자마자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일단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이란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에 독일까지 더해 6개국과 핵합의에 동의할 수 있도록 했고 이란이 경제제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반면 2017년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1년 뒤인 2018년부터 강경 일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18년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의 합의를 ‘실수’라고 규정하며 핵합의를 탈퇴했다. 2019년에는 군사적 움직임도 보였다. 2019년 5월만 해도 지중해에 있던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이 중동으로 항로를 잡았고 수송상륙함인 알링턴호도 페르시아만 쪽으로 향했다. 중동 지역에 이미 배치돼 있던 패트리엇미사일을 더 늘리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게 이번에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일이었다.

군사적 긴장감이 커져가기 전인 2019년 4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목적이 대화냐, 정권교체냐”는 질문을 받자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사고를 획책하는 B팀을 경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굴복시켜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B팀’이란 존재가 이란의 정권교체를 원하며 강경책을 펼친다는 얘기였다. 그가 말한 ‘B팀’이란 이름에 B가 들어가는 네 명을 뜻한다. 베냐민(Benjamin)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모하메드 빈(Bin)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Bin)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그리고 존 볼턴(Bolton)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자리프는 B팀이 이란과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며 그의 트위터에 ‘#B_team’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곤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스라엘과 중동이 힘을 합치는 모습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적이 없다.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현실적으로는 받아들이더라도 유대인 선조 땅에 돌아왔다는 이스라엘의 ‘권리’를 인정하는 건 넘지 말아야 할 선처럼 여겨왔다. 그 선을 사우디의 차기 권력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넘었다. 2018년 4월 방미 중 가진 미국 잡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이 그들 자신의 땅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네타냐후와 MBS

이스라엘 입장에서 사우디를 활용하는 건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사우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건 적과의 동침이다. 이는 공동의 적인 ‘이란’이 있어서 가능한 얘기다. 네타냐후는 극우적 성향을 띠는 지도자다. 그에게 이란은 주적이다. 그는 이란과의 주전론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과도 싸운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때인 2015년, 미국을 방문해 가진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이란 핵협상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주 나쁜 협상이다”라고 상대국 면전에서 비판을 날렸다.

사우디는 국제정치에 종파까지 겹쳐 이란과 대립하고 있다. 중동의 양강인 사우디와 이란은 이 지역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 치열히 싸워온 역사를 갖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려고 필사적이다. 입지가 탄탄해진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역시 군사적 행동을 피하진 않는다. 대표적인 게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이다. 2800만명의 예멘 인구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됐는데, 이곳에서 사우디는 시아파 무장조직인 후티 반군에 대항하는 수니파 동맹군을 도우며 수없이 공습을 감행했다.

美 파트너이자 사우디 미래권력의 멘토

또 다른 ‘B’인 빈 자이드 왕세제는 빈 살만 왕세자에 비하면 대중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다. 그는 실질적인 UAE의 리더지만 해외를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일이 드물며 다보스포럼이나 유엔 총회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그를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약 1조3000억달러의 국부펀드 책임자이며 첨단을 달리는 UAE군 부총사령관이 그의 위치다. 그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워싱턴에 내뿜는 영향력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중동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여기에는 그가 미국과 맺어온 시간,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맡았던 벤 로데스는 “빈 자이드 왕세제는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이익에 관해 알리면서도 중동 지역에 관한 좋은 조언을 제공하는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그는 좋은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게끔 했다. 아랍의 왕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대기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그는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며 회의에 늦지 않는다. 스스로 커피를 따라 마시며 거만함을 벗었고 미국 관료들을 상하 직급 관계없이 친근하게 대한다. 보수적인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가 등장하면서 좀 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탈바꿈하려 노력 중인데, 이웃한 작은 나라 UAE와 여러 면에서 닮은꼴 시도를 하고 있다. 영국 매체 ‘더 타임스’는 “사우디 정책 전환의 핵심은 빈 살만과 빈 자이드,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분석했다. 빈 살만이 사우디의 실권자로 부상한 이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미국의 동의(?)를 구하는 걸 도운 사람도 빈 자이드 왕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2017년 5월 트럼프가 취임 후 첫 국빈 방문지를 사우디 리야드로 잡도록 밥상을 차린 이가 UAE의 왕세제였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유대인들보다 더 친이스라엘적이다”

두 왕족은 이스라엘과 협력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나라는 이란이 자신들에게 위협이라는 데 동의하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종교적·이념적 차이를 배제시켰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수니 동맹’으로 알려진 일부 아랍 국가들과 반이란 연합을 형성해왔다”고 종종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이스라엘의 밀월법은 빈 살만과 빈 자이드의 국가에 군사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감시장비를 사우디나 UAE에 판매해왔다. 아랍의 왕족들은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장비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대표적인 게 이스라엘 NSO그룹이 생산하는 페가수스라는 스파이웨어다. 이 장치는 사우디에도, UAE에도 판매됐다. 모든 종류의 스마트폰에 은밀하게 침투해 데이터를 훔치고 원격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민간 장비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용인이 있어야 판매도 가능한데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에 활용됐다고 의심받는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미 백악관은 두 왕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원래 중동 정책을 관장해왔던 건 또 다른 ‘B’인 볼턴 전 보좌관이다.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주장처럼 트럼프의 의중과 달리 볼턴은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통해 정권을 바꾸는 방법을 신뢰했다. 그런데 볼턴은 이미 사임해 백악관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쿠슈너는 현재 중동 문제를 담당하고 있고, 백악관이 공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해결 등 중동평화를 위한 경제계획 역시 그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렉스 틸러슨 전 장관은 “쿠슈너가 내가 모르는 회동이나 협상을 해서 놀란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깊이 개입했다.

쿠슈너는 유대계로 네타냐후 총리와도 가족 간 교류를 하는 사이다. 그리고 빈 살만 왕세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다. 둘 다 30대이고 야망이 넘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은 사적으로 문자메시지와 통화를 하는 사이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사우디 국빈 방문을 백악관 내에서 밀어붙인 사람도 쿠슈너였다. 동시에 쿠슈너는 빈 자이드 왕세제의 통로 역할도 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당시 후보와 닿기 위해 UAE 측이 접촉해 회담을 가진 인물이 쿠슈너였다. 당선이 결정된 2016년 12월 빈 자이드 왕세제는 직접 미국에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 쿠슈너 등 측근들과 트럼프타워 펜트하우스에서 회의를 가졌다. 뉴요커는 “처음 한 시간 동안 빈 자이드와 트럼프 보좌관들은 중동 정책에 대한 전통적인 논의를 가졌다. 그리고 양측은 이란에 대해 같은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는 트럼프의 백악관이 이란의 대응법을 결정하는 기점이 됐다.

미국 내 유대계가 두 아랍의 권력자에게 보이는 호의도 예사롭지 않다. 매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예루살렘포스트 연례 콘퍼런스’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 지도자, 이스라엘 중진 국회의원과 정부 대표, 초당적으로 참가한 미 의회 의원들과 기업, 지역사회 및 미디어 유력 인사 십수명이 모인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콘퍼런스에서 연설에 나선 마이크 에반스 박사는 기독교 시온주의의 리더 격이다. 그는 “나는 UAE에서 빈 자이드를 만나봤고 사우디에서는 빈 살만을 만나봤다. 정말 믿기 힘든 말이겠지만 이 아랍의 지도자들은 대다수의 많은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더 친(親)이스라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란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는 B팀은 해묵은 종교적 차이도 극복하고 있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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