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후베이성 우한의 진인탄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는 리커창 총리.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1월 27일 후베이성 우한의 진인탄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는 리커창 총리. ⓒphoto 신화·뉴시스

“도시가 폐쇄되기 전인 1월 22일까지도 우한의 대로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둘러앉아 마작(麻雀)을 하고 시장 노점상들은 모여서 장사를 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싶다. 우한시장이나 당 서기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그들은 우한 행정의 1인자로서 폐렴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단 말인가? 가장 먼저 정보를 알았다면, 왜 TV연설 같은 걸로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고 경각심을 높이지 않았는가? 만약 그들이 정보가 없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행정 관리자를 맡아서도 안 되고 일찌감치 쫓겨났어야 했다. 1월 23일 우한 봉쇄 이후 사람들은 공고문에 따라 곧바로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은 게 아니다. 문제는 지방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우한(武漢) 20대 청년의 호소

설날인 지난 1월 25일 유튜브의 한 동영상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의 20대 청년. 신원을 밝히지 않은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에 산다고 했다. 털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지인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했다. 그의 방송은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에 대한 청년들의 시각도 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한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모든 교통수단이 끊기고 주유소도 문을 닫았다. 자가용으로 병원을 가려 해도 기름을 넣을 수 없다. 병원은 의료체계가 마비되고 극도의 혼란 속에 있어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고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또 의심사례가 분명한데도 수용시설이 부족해 환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지구상에 이런 짓을 하는 정부가 중국 말고 또 있을까? 지금 우한은 지옥과 같다. 내가 잘 아는 거리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다. 오늘은 춘절(중국 설)이다. 본래 즐거워야 할 이날 중국인은 즐거울 수가 없다. 중국의 20~30대 청년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안다. 우리는 목소리를 낼 통로와 방법과 능력이 없다. 우리의 피와 살(血肉)은 총알과 탱크를 이길 수 없다.(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 당시 무력진압을 암시) 해외에 사는 화교 동포들께 당부 드린다. 이 영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달라. 우리도 민주·자유·개방의 사회를 원한다. 우리를 도와달라. 우리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 청년의 폭로처럼, 중국 전역에서 폐렴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우한은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1100만 인구 중 500만 이상이 빠져나가 아파트 단지의 절반이 불이 꺼졌고, 거리는 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에 싸여 있다. 거대한 조직의 중국공산당이 작디작은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이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중국 정부는 이런 식의 대응밖에 할 수 없었을까? 이번 우한 폐렴의 확산 과정을 살펴보면, 사태 악화의 중심에 ‘공산당’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진실의 은폐였다. 지난해 12월 1일 최초의 환자가 나타난 뒤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까지 40일의 시간이 있었다. 지난 1월 10일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 우한 시정부는 이 정보를 숨겼다. 인터넷에서 이 사실을 퍼뜨린 네티즌 8명을 ‘유언비어 날조’ 혐의로 처벌했다. 만약 이때 정부가 사실대로 발표하고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본격적인 대처에 나섰더라면,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월 5일에는 화난(華南)수산물시장에 한번도 간 적 없는 의료진이 폐렴 증상을 보였고, 닷새 후 우한폐렴전용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사람 간 전파로 감염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우한시는 1월 10일경 이번 폐렴이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할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월 19일 우한 시정부는 ‘만가연(萬家宴)’이란 음식축제를 예정대로 개최해 춘절 명절 분위기를 한껏 높였다. 축제에 참가한 4만여 가정의 주민들은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줄도 모른 채 1만3986개의 요리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사태 악화의 중심에 ‘중국공산당’이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공산당 우선주의’였다. 1월 16~17일 이틀간 열린 후베이성 제13기 인민대표대회(人大) 3차 회의는 우한 폐렴에 대한 정부의 감시 기능을 놓아버린 기간이었다. 중국에서 통상 양회(兩會·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 기간은 ‘정치의 계절’이 된다. 행사 전에 인대(人大)의 상무위원회 주임과 부주임, 위원 등을 선출한다. 모든 공무원들의 관심이 이 권력의 향배에 쏠리기 마련이며, 질병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후베이성 당정(黨政) 간부들이 총출동하여 치른 이 행사가 끝나면서 채택한 6개의 결의문은 어디에도 ‘우한 폐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가령 인대 상무위원회 공작보고 결의문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指導)로 삼아 19차 당대회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당의 영도(領導)와 인민의 주인됨, 의법치국을 유기적으로 통일하고…”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 대한 충성심과 공산당 우선주의만 강조했을 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한 폐렴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지방 당정 간부들의 폐렴에 대한 경각심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인대의 준비와 진행에 최소 1주일을 허비하는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맹렬히 확산되고 있었다.

세 번째 문제는 앞의 요인들이 합쳐져 바이러스 확산 방지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올해 중국의 공식 설 연휴는 1월 24일부터 30일까지였다.(이후 2월 2일까지 3일간 연장)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1월 상순부터 일찌감치 해외 여행을 떠났다. 일본 나라(奈良)현의 버스 운전기사가 ‘사람 대 사람’ 전염방식으로 우한 폐렴에 감염된 것도 1월 8~11일, 12~16일 두 차례 우한에서 온 여행객 60명을 태운 탓이었다. 또 우한의 민간 기업 직원들은 고향이 먼 사람부터 지난 1월 18~19일경 귀향을 시작했다. 설 연휴가 시작된 1월 넷째 주까지 1100만 우한 인구 중 거의 절반인 500만명이 도시를 빠져나갔다. 이들 대부분은 베이징·상하이·광저우·청두 등 국내 대도시로 떠났지만, 태국·싱가포르·일본·한국(6430명) 등 해외로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만약 후베이성과 우한시 정부가 1월 20일 시진핑의 지시가 있기 전, 1월 10~17일 사이 주민들의 춘절 대이동을 막고,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최대한 분리하여, 이웃 도시들의 의료기관과 함께 합동작전을 폈더라면, 사태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되었을 것이다. 우한 시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질병을 확실히 잡아라”는 지시를 받고도 이튿날 문화예술축제를 열어 수만 명을 전염 위험에 노출시켰다. 요컨대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었던 지방정부 영도자들의 무능력과 업무태만이 이번 사태를 키웠던 것이다.

네 번째 문제는, 국민의 생명보다 당의 위신과 사회안정을 중시하는 공산당 체제의 속성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네티즌(중은우시)이 전한 중국인의 하소연을 보면,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속성을 엿볼 수 있다. 청샤오롱(程曉容)이라는 중국인은 춘절 연휴기간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당당한 우한이 몇 개의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다니…. 세계2위 경제대국이 전염병이 발생하자 왜 이렇게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가? 답은 명쾌하다. 중국 정부의 눈에 우한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천만 명의 목숨도 아무것도 아니다. 우한 사건은 전 세계의 초점이 되었지만, 인민일보의 1면에 오르지 못한다. 대기근(1950년대 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사(餓死)했던가. 문혁(文革·1966~1976)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6·4천안문사태(1989)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살당했던가. 지금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성 안에 갇혀 있는 수천만 후베이성 민중들이다. 그들은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의료 인원은 체력이 고갈되었다. 봉쇄는 기한이 없고, 물자공급은 중단되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국수주의 애국청년들(小粉紅)’은 모두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을 말하면 소란야기죄가 된다. 일당독재는 이렇다. 인민은 알 권리도 없다.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곳에서 생활하면, 인민들은 그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실로 가련하고 비참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세계에 ‘인류운명공동체’를 선전한다.” (출처 : 다음 블로그·‘중국, 베이징, 장안가에서’)

현재 우한은 철저한 고립 속에서 주민과 의료진이 바이러스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병원의 복도에 시신이 있어도 아무도 치우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의 절반이 불이 꺼져 있는 적막함 속에서 주민들이 “우한 힘내라(武漢加油)”를 외치는 광경이 유튜브를 타고 세계로 퍼졌다. SF영화에나 나옴 직한 기괴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처절하다. 목숨을 건 주민들의 탈출도 벌어지고 있다. 후난성으로 가기 위해 작은 보트로 강을 건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우한 봉쇄(封城)’는 ‘죽든 살든 우한 안에서 끝장을 보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공산당은 ‘큰 것은 취하고 작은 것은 버리는(抓大放小)’ 전략에 능하다. 중국 전역의 안전을 위해 우한이란 도시 하나쯤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중국공산당이다.

이제 중국인 상당수는 공산당과 정부를 믿지 못하는 듯하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투가 시작된다. 사재기가 출발점이다. 지난 1월 26일 오전, 광둥성 샨터우(汕頭)시가 도시 봉쇄를 선포한 이후 한 슈퍼마켓 식품코너에서 시민들이 쌀을 경쟁적으로 퍼담는(抢購) 모습이 동영상으로 퍼졌다. 샨터우시는 그날 오후 이 결정을 철회했지만, 정부를 믿지 못하는 시민들의 사재기는 그치지 않았다.

우한 폐렴이 권력투쟁의 불씨 될까?

우한이 아닌 타 도시의 공포감도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들도 후베이성 출신 주민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고, 몰래 들어온 후베이 사람들을 색출하는 작업까지 벌인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버리는 현상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우한 폐렴의 확산과 대응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가중될수록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일게 된다. 2003년 사스에 이어 우한 폐렴 사태에서도 중국공산당은 무능과 비효율을 드러냈다. 세계를 돌아본 청년세대는 자문할 것이다.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공산당 체제 자체의 문제는 아닐까?”라고. 우한 유튜브 청년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개방된 나라’를 더 소망할지도 모른다.

또 이번 사태의 전개에 따라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한 폐렴의 방역(防疫)공작영도소조의 조장은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맡았다. 리커창 총리가 이번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다면 그의 권력은 더욱 탄탄해지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시진핑이 성난 여론에 바칠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다. 우한 폐렴은 순탄할 것으로 보였던 2020년 중국공산당의 항로(航路)에 큰 암초처럼 불쑥 솟아올라 배 옆구리에 박혔다. 이 암초를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중국공산당의 미래에 큰 의미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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