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미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1일 필라델피아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마이클 블룸버그 미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1일 필라델피아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발표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여론조사의 주인공은 단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뒤처지는 듯했던 그가 2월 경선을 앞두고 치고 올라오면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격차를 좁혔기 때문이다. 퀴니피악대학교 여론조사 연구소가 지난 1월 28일 발표한 조사를 보면 선두는 26%를 얻은 바이든이지만, 샌더스가 21%로 2위에 올라 그 뒤를 바짝 붙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인물은 4위에 오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다. 지난해 11월 가장 늦게 출마를 선언한 그가 8%를 얻으며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다음에 이름을 올렸다. 이틀 전 1월 26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WP)와 A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했다. 블룸버그는 바이든-샌더스-워런의 빅3에 이어 네 번째에 자리 잡았다. 안정적 4위가 된 셈이다.

민주당은 2월 3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리는 첫 경선을 시작으로 2월에만 뉴햄프셔주, 네바다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 작업을 시작한다. 빅3가 현지에서 열심히 뛰는 이 시점에 블룸버그는 그곳에 없다. 2월 중에 실시되는 4개 주 경선에 그는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3월 3일 열리는 수퍼화요일부터 뛰어든다는 게 그의 선거 전략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2월을 ‘패스’하는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얘기일까. 블룸버그 캠프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근거는 뭘까. 민주당 경선은 7월 열리는 전당대회까지 각 주의 대의원을 쟁취하는 과정이다. 2월 4개 주에서 얻게 되는 대의원 수는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반면 3월3일 수퍼화요일 하루에만 전체 대의원 중 35%가 걸려 있다. 2월을 패스하더라도 충분히 만회 가능하다는 게 블룸버그 측의 판단이다.

자신만만 블룸버그의 전략

그가 2월을 넘기는 이유는 출마 선언이 늦어서다. 출발이 늦었다는 건 준비가 그만큼 부족했다는 뜻이다. 다른 유력 후보들은 오래전부터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 등 2월의 전장을 누비면서 전력을 쏟아왔다. 2월의 투표는 지는 싸움이 뻔했다. 맥없이 하위권으로 밀려나 ‘블룸버그=약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건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다. 2월을 버리고 3월의 전장부터 뛰는 걸 택한 이유다. 2월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후보들은 아직 그 뒤의 전장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많지 않다. 블룸버그는 오히려 한 발자국 앞에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 다른 후보들이 아이오와주 등지에서 캠페인을 펼치는 동안 그는 텍사스 같은 대의원이 많은 곳에서 차근차근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대의원 수는 228명으로 2월에 펼쳐지는 4개 주 대의원을 다 합친 수(155명)보다 많다.

2월을 패스하는 전략을 써서 이긴 민주당 후보가 있었을까. 그간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선은 기본적으로 서바이벌 게임이다. 이번 민주당 경선은 한때 28명이 출마의사를 밝힐 정도로 후보가 난립했다. 경선 시작일이 다가오면서 중도 포기한 이들을 정리하고도 12명이 남았다. 후보가 많다 보니 여론조사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후원금을 모으는 데 애를 먹게 된다. 만약 2월의 시작부터 밀릴 경우 경선을 치를 실탄이 부족해지게 되니 초반 싸움에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이는 게 지금의 선거 분위기다. 결국 ‘자금’ 때문에라도 2월의 선거를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룸버그는 상식을 깨는 후보다. 그는 정치후원금은 사절하고 오로지 개인 자금으로만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1월 29일 포브스 기준으로 그는 세계 9위의 억만장자이며 보유자산이 무려 555억달러에 달한다. 두둑한 지갑을 갖고 있으니 선거 자금에서 걱정이 없고 다른 후보들과 달리 자신만의 전략을 짤 수 있었다. 2월은 버리고 3월부터 전력질주하는 건 오로지 블룸버그이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부자가 출마하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도 그랬다. 블룸버그는 그런 트럼프를 가볍게 누를 정도의 수퍼리치니 더욱 주목받는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이끈 숀 킹이 대표적 비판론자다. 그는 블룸버그의 출마를 두고 “자기 만족의 재미를 위해 수억달러의 돈을 낭비하는 걸 온 나라가 보게 될 것이다”고 공격했다. 킹이 블룸버그를 비판한 건 뉴욕시장 시절의 블룸버그 정책과 종종 맞섰던 악연 때문이다. 킹은 블룸버그가 뉴욕의 수장이었을 때 인종 차별과 편협한 이슬람 공포증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비난해왔다.

블룸버그 돈 폭탄의 효과

블룸버그는 단순한 부자라고 볼 순 없다. 그는 블룸버그통신 등을 포함한 대형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창립자로 유명하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에 금융 정보와 전용 단말기를 금융기관에 판매해 혁신적인 경제 뉴스 전문미디어인 블룸버그통신을 만들어낸 기업인이다. 그 성공을 발판으로 2001년 뉴욕시장에 도전해 당선됐고 3선 시장이 됐다. 미국 경제의 핵심 도시이자 인구 800만명을 안고 있는 뉴욕시를 9·11테러로부터 복구하고 10여년을 쭉 관리했던 경력은 대통령직을 노릴 만한 포트폴리오다.

게다가 그는 대표적인 친환경 정치인이기도 했다. 뉴욕시장 시절부터 지구온난화 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절실한 정책과제로 파악했고 정부에 의지하기보다는 뉴욕과 같은 도시 정부 간의 연계를 통해 대처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뉴욕시장을 물러난 뒤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맡기도 했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뉴욕시장이 됐지만 총기 규제에도 목소리를 높인 정치인이었다. 그냥 정치적 수사로만 끝난 게 아니다. 뉴스위크는 “블룸버그가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책과 총기 규제 등의 문제에 기부한 액수가 약 8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그는 부자에 성공한 기업인이고 게다가 실적 있는 정치인이다.

숀 킹의 말처럼 과연 자기만족의 재미를 위해서 도전하는 걸까. 그는 대통령을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대학 시절 자신이 유대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해왔던 블룸버그다. “악수만 하고 다녀서는 3억3000만의 미국 국민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3월 수퍼화요일 데뷔를 위해 엄청난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워싱턴포스트는 블룸버그가 TV와 디지털 광고에 총 2억1700만달러(약 2558억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다른 후보들이 지금까지 쓴 선거운동 자금을 모두 합한 액수의 75%에 달하는 액수다. 블룸버그 캠프가 지난해 11월 100만달러의 광고비를 집행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그 덕에 TV광고 단가가 45%나 올랐다. 텍사스주는 수퍼화요일의 메인 무대 중 하나다. CNN은 “블룸버그 캠프의 직원이 800명 이상이다”고 보도했다. 대선에 공식 출마 표명을 한 지 2개월 남짓에 불과한데 본부 격인 뉴욕 맨해튼 캠프에 모여 있는 300명 외에도 30여개 주에 500여명의 직원을 배치해 전국 규모의 조직을 갖췄다. 바이든 진영이 400명가량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봐도 블룸버그가 이번 선거에 임하는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블룸버그가 7월 전당대회의 승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민주당 입장에서 그의 존재는 소중하다. 조용한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 경선은 블룸버그가 깔아준 돈 잔치로 꽤 시끌벅적해졌다. 게다가 경선에서 변수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그가 승리할 수도 있다. 만약 패하더라도 블룸버그가 얻은 표는 또 다른 결과를 도출할지 모른다. 그는 온건 중도 성향에 경력까지 갖춘 정치 거물이다. 뉴욕타임스는 “막대한 재력과 중도 성향 등을 갖춘 블룸버그는 바이든을 위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치열한 선두 경쟁 속에 한 표 한 표가 소중한 바이든이 블룸버그 변수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건 체크포인트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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