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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4호] 2020.02.10

美 민주당 연일 페이스북 공격하는 이유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photo 로이터·연합
‘영화배우’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 등장했다. 이곳은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곳. 36회 선댄스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1월 25일,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미 대통령선거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힐러리(Hillary)’의 주인공 자격으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페이스북은 그 강력한 힘을 트럼프 재선을 위해 쓰고 있다.”
   
   파크시티에서 미국 시사지 디애틀랜틱과 가진 인터뷰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막상 영화 얘기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저커버그는 때로 외국 세력과 협상하는 느낌이 든다” “페이스북은 표현의 자유와 검열 사이 논쟁에서 스스로를 왜곡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강력한 지도자지만 책임감이 없으며 페이스북과 대화를 나눴지만 비생산적인 결과만 맺고 끝났다”….
   
   힐러리가 영화 대신 페이스북을 걸고 넘어졌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영화에 관한 인터뷰나 다름없다. 영화가 다루는 2016년 미 대선은 힐러리가 트럼프에게 패했고 동시에 페이스북에도 진 게임이었다. 점점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페이스북은 2016년 대선부터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닌 플레이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자 미국 언론들은 진지한 반성과 이런 일이 왜 생긴 건지를 따져 물으며 범인 색출에 나섰다. 페이스북은 그 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앞으로도 팩트체크 하지 않겠다”
   
   이런 힐러리의 비판과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엉터리 웹사이트에서 나온 허위정보가 페이스북에서 확산되기 쉬운 형태로 기사화됐다”고 맞장구를 쳤다. 디애틀랜틱도 “미국인은 진짜 트럼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페이스북이 진실보다 독자의 시선을 끄는 걸 우선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뉴욕매거진은 ‘트럼프는 페이스북 때문에 승리했다’는 기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트럼프는 최근까지 공화당의 역대 대통령 후보들조차 지지를 표명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정치 시스템의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페이스북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이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다준 방법은 유언비어, 그리고 허위정보를 해결할 마음이 없는 의지의 부족이었다.”
   
   적지 않은 기존 미디어들은 페이스북이 가짜 정보를 확산시켜 정치에 위협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런 지적에 대해 저커버그는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 떠도는 가짜뉴스가 선거에 영향을 줬다는 생각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의혹, 즉 러시아 게이트가 불거졌는데 외국의 선거 개입 창구가 바로 페이스북이었다. 저커버그는 안팎에서 정책의 변화를 요구받았다. 가짜뉴스를 유통시킨 플랫폼으로 궁지에 몰렸고 뭔가를 책임져야 했다. 여러 차례의 청문회 출석과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낸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2020년 대선을 앞둔 2019년 10월, 정치광고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놨다. 핵심은 이랬다. “정치광고를 허용한다. 그리고 그 정보에 대한 팩트체크는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의 유해성 논란을 둘러싼 의제들을 비공개 장소에서 협의해왔다. 그런데 노력에 비해 나온 결과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저커버그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상업적 정치광고 게재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정치인 혹은 뉴스를 검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정치광고 내용이 허위일지라도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검열 없이 유료 정치광고를 받겠다는 얘기였다. 이때도 저격수로 클린턴이 등장했다. 페이스북의 정책이 발표된 뒤 공개석상에서 클린턴은 “저커버그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벌이고 있는 위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가깝다가 멀어진 민주당과 페이스북
   
   원래 실리콘밸리와 가까웠던 민주당이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실리콘밸리와 거리감을 느낀다. 페이스북과는 더욱 그렇다. 2016년의 악몽 탓인지 실리콘밸리의 ‘거인’에 대한 친근감은 당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분위기다. 페이스북이 내놓은 정책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자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측 인사들의 상당수가 저커버그 개인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중이다.
   
   갈등의 최신 버전은 민주당 서열 1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날 선 공세였다. 지난해 5월 펠로시 하원의장이 술에 취해 말하는 것처럼 편집돼 퍼진 동영상을 페이스북이 “삭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문제의 콘텐츠는 실제 연설 동영상의 재생속도를 75% 정도로 떨어뜨리고 목소리 톤을 조정한 것이었다. AI를 사용한 합성 등의 조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간단히 편집된 변조 동영상은 1주일 만에 63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펠로시 측은 명백한 허위라며 페이스북에 삭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은 “정교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조작된 이미지나 동영상은 게시를 금지하고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가짜뉴스가 퍼지는 걸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다만 예외조항이 문제가 됐다. ‘이 정책은 패러디나 풍자, 동영상 발언의 일부 삭제나 앞뒤 교체와 같은 편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책을 발표한 다음 날인 1월 8일, 미 하원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조작과 기만’이란 주제의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출석한 모니카 비커트 페이스북 글로벌정책관리부문 부사장에게 한 의원이 질문했다. “펠로시 동영상은 페이스북의 새로운 정책에서 삭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비커트가 답했다. “그 동영상은 해당되지 않는다.” 비커트의 답변에 대해 워싱턴포스트가 의견을 묻자 펠로시 측이 답했다. “페이스북은 이게 동영상 편집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페이스북이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펠로시가 지난 1월 16일 미 국회의사당 정례 기자회견에서 “페이스북은 미국인을 오도하는 부끄러운 회사”라고 직접 공격하는 게 낯선 상황은 아닌 셈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펠로시 외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도 페이스북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주요 인물들은 속에 담아뒀던 비판 의견을 끄집어내고 있다. 진보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의 니라 탠든 소장은 “진보주의자들은 페이스북이 잘못된 정보를 허용하고 증폭시키는 걸 보면서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고 여기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페이스북은 나름대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민주당은 거짓을 막으라고 요구하고 반대로 공화당은 보수적인 논의 자체가 부당하게 제한될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 페이스북은 샌드위치 신세가 돼버렸다. 실제로 페이스북이 겪는 갈등을 이런 줄타기의 실패로 보는 분석도 적지 않다.
   
   4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은 민주당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페이스북 직원들의 정치후원금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클린턴 캠프였다.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클린턴이 고려한 잠재적 재무부 장관 후보군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미 IT전문매체인 기즈모도의 보도 이후 기류가 변했다. 2016년 5월 기즈모도는 페이스북 익명 제보자의 보고서를 인용해 “페이스북이 뉴스 노출 과정에서 에디터들이 개입했고 보수적인 소식을 노출시키지 않는 대신 진보적인 내용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보수파, 특히 공화당이 과거부터 주장해오던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편향을 뒷받침하는 보도가 나오자 이내 정가가 어수선해졌다. 저커버그는 이후 보수 진영 인사들과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페이스북은 편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파에 여러 차례 헌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많은 민주당 인사들이 갖는 의심과 물음이 이때부터 태동했다는 얘기다.
   
   
   비난은 해도 광고는 집행한다
   
   저커버그 주변 인물도 부각됐다. 민주당과 갈등을 더욱 키운 정치광고 허용 조치가 피터 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페이스북의 경영진이 정치광고 허용을 두고 내부가 분열됐는데 그 중심에 억만장자 피터 틸이 있다”고 보도했다. 틸은 페이스북 초창기에 “수익보다는 사용자 기반을 키우는 데 집중하라”고 저커버그에게 조언하며 오늘날 페이스북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저커버그가 조언을 구하는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2016년 미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지지하면서 선거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정치광고 허용과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페이스북의 정책 역시 저커버그의 동맹군인 틸의 의견이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장이다.
   
   다만 적과의 동침을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피할 수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정치,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평소보다 더 오래 머물며 각종 콘텐츠와 접한다. 게다가 지금 미국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온라인 광고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해체를 주장하는 엘리자베스 워렌 캠프가 2019년 이후 페이스북에 집행한 광고비만 약 680만달러에 달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공룡을 견제하자’는 공약을 내걸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2019년 이후 페이스북에 700만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물론 페이스북을 가장 열심히 활용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 진영이다. 트럼프 캠프는 같은 기간 동안 페이스북 광고에 2200만달러 이상을 썼다.
   
   비난하면서 동시에 광고비를 쓸 수밖에 없는 건 뉴스 소비에서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너무 큰 탓이다. 지난해 10월 미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5107명 중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는 미국 시민이 약 55%로 절반을 넘었다. 이들 중에서도 절반가량인 52%가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고 답했다. 조작된 정치광고가 판을 친다는 곳에 자신들의 광고를 밀어넣을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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