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허난성 정저우역에서 업무복귀를 위해 특별편성된 저장성행 열차에 탄 농민공들.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2월 22일 허난성 정저우역에서 업무복귀를 위해 특별편성된 저장성행 열차에 탄 농민공들. ⓒphoto 신화·뉴시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과 함께 중국 허난성(河南省)이 새로운 판도라 상자로 떠오르고 있다. 후베이성 북부에 있는 허난성은 당초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후베이성 출신들의 진출이 활발한 남부 광둥성이나 동부 저장성보다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확진자가 늘면서 저장성을 추월해 광둥성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9시 기준 허난성의 누적 확진환자 수는 1272명으로 저장성(1205명)을 추월한 상태다. 2위인 광둥성(1347명)을 바짝 뒤따르고 있다.

특히 인구 9600만명에 달하는 허난성의 경우 소득수준이 낮고 의료시설이 열악한 까닭에 사망자 수가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의 31개 성시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허난성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지난 2월 27일 기준 20명으로, 의료진 감염 등으로 의료체계가 붕괴해 사망자가 급증한 후베이성(2641명)을 제외한 성시 가운데 가장 많다. 확진자 수가 비슷한 광둥성과 저장성의 사망자가 각각 7명과 1명에 그치는 것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허난성, 에이즈 파동 때 4891명 사망

실제로 2018년 기준 허난성의 1인당GDP는 7577달러로, 중국 전체 평균(9769달러)은 물론 후베이성(1만79달러)보다도 떨어진다. 저장성(1만4097달러)이나 광둥성(1만3058달러)에 비해서는 절반 정도에 그친다. 허난성으로 유입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후베이성 우한(武漢) 등지로 일하러 떠난 허난 출신 농민공을 매개로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공장 등 산업시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후베이성에서 허난성으로 유입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대로 후베이성과 인접한 허난성의 농촌지역에서는 우한 등 후베이에 있는 산업시설로 떠난 농민공 숫자가 상당하다. 이에 따라 허난성에서는 대도시가 아닌 후베이성과 인접한 신양, 난양, 주마뎬 등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허난성의 성도(省都)이자 1012만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정저우(鄭州)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경향이다. 마스크 착용 등 위생관념이 약하고 의료시설이 취약한 외곽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것은 중국 위생당국의 또 다른 고민이다.

허난성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2000년대 초반 에이즈(AIDS)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허난성에서는 매혈(賣血)로 인한 에이즈가 급속히 확산돼, 허난성과 인근 후베이성 등을 중심으로 대략 30만명에서 60만명가량이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6년 허난성 위생당국이 공식발표한 통계에 따르더라도 3만1578명이 양성반응을 보였고, 1만9488명이 에이즈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중 사망자는 4891명에 달한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1980년대부터 혈액공급이 부족해지는 ‘혈황(血荒)’ 사태가 오자 헌혈은 중국 당국 차원에서 장려됐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허난성에서는 피를 판매해 농가소득을 올리는 ‘매혈’이 허난성 당국 차원에서 적극 권장됐다. 이때 채혈 빈도와 채혈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헌혈자의 몸에서 뽑아낸 혈액에서 ‘혈장(血漿)’을 분리한 뒤 헌혈자의 몸속에 재주입하는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이렇게 하면 채혈 주기를 더 빈번히 할 수 있어 피를 더 많이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자연히 피를 뽑은 만큼 농가소득도 더 올라간다. 소위 중국 당국에서 장려한 ‘혈장 경제’의 출발이다. 이 같은 매혈 과정은 중국의 유명 소설가 위화(余華)가 쓰고 한국에서 영화로도 리메이크된 ‘허삼관 매혈기’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피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삿바늘 재활용 등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이로 인해 허난성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에이즈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인 ‘영도소조 조장’을 맡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에이즈 사태 당시 허난성 최고책임자였다는 사실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허난성 성장, 당 서기로 있으면서 에이즈 사태를 수습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에 중국에서는 ‘에이즈’ 하면 자동으로 리커창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허난성 한국 출입 자유로운 상태

허난성 에이즈 사태 당시 리커창 총리의 지도력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초 당 총서기감으로 시진핑 현 총서기와 경쟁하던 리커창이 2인자인 국무원 총리에 머무른 것도 에이즈 사태의 여파라는 지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 역시 리커창 총리가 사태수습 지휘를 맡으면서 이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초기보다 주춤해졌다지만, 중국 위생당국도 허난성으로 코로나19가 유입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중원(中原)’이라고 불리는 허난성은 후베이성이 속한 화중(華中)지방과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華北)지방을 잇는 연결고리다. 허난성이 넘어갈 경우 코로나19가 상대적으로 주춤한 북방으로 확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수도 베이징이나 톈진의 경우, 2월 27일 오전 9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가 각각 400명, 135명에 그쳐 한국(1595명)보다 훨씬 안전한 편이다.

이로 인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허난성 출신자들을 후베이성 출신들과 동격에 놓고 출입에 적지 않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 소림사(少林寺), 용문석굴 등이 있는 허난성은 중국에서도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불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등의 목적으로 소림사가 있는 허난성 등지를 많이 찾아 대한항공과 이스타항공이 인천~정저우 구간에 각각 주 4회 취항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적항공사들이 자발적으로 허난성 운항을 중단했다고 하지만, 출입국이 차단된 후베이성과 달리 허난성 방문자의 국내 입국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확진자만 1200명 이상 나온 허난성 출신자들이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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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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