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25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4~25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4일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Ahmedabad)의 세계 최대 크리켓 경기장인 ‘사르다르 파텔 스타디움’은 마치 미국 어느 도시의 대선(大選) 유세장 같았다. 10만 군중이 운집한 이 경기장에는 미국 성조기와 ‘TRUMP’ 글씨가 크게 새겨진 대형 플래카드가 관중석 중앙에 걸리고, ‘위대한 국가들, 더 위대한 우정(GREAT COUNTRIES, GREATER FRIENDSHIP)’이란 문구가 스타디움 중간 벽면을 가득 채웠다. ‘나마스테(당신을 존중합니다) 트럼프’라 명명된 이날 환영행사는 지난해 9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미 때 미국이 텍사스에서 5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진행한 ‘하우디 모디(Howdy Modi·안녕 모디)’ 행사의 답례였지만, 그 규모는 훨씬 컸다. 연단 위에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뜨겁게 포옹하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어 그는 “인도가 번영된 국가로 부상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모범이며 이번 세기의 뛰어난 업적이다. 여러분들은 민주적 국가로서, 그리고 평화적인 국가로서 그것을 해냈으며, 관용적인 국가이자 위대하고 자유로운 국가로서 그것을 해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다”라고 인도를 한껏 추켜세웠다. 트럼프는 이어 “억압과 협박으로 강대국이 된 나라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인도의 ‘민주주의’로 중국의 ‘전체주의’를 공격했다.

트럼프의 연설에서 보듯이, 그의 이번 방문은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무엇보다 양국은 군사협력에서 ‘통 큰’ 거래를 성사시켰다. 트럼프는 2월 24일 연설에서 “우리가 군사적 협력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가는 가운데,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군사 장비를 인도에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항공기, 미사일, 로켓, 함정 등 이제까지 만들어진 무기 중 최고를 만든다. 여기에는 첨단 방공(防空)시스템과 무장 혹은 비무장의 항공기도 포함된다. 나는 내일 우리 대표단이 최첨단 군사용 헬기와 다른 장비 등 30억달러 이상의 무기를 인도군에 판매하는 계약에 사인할 것이란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인도가 구매키로 한 미국산 군사장비 중에는 첨단 해상작전 헬기 MH-60R 시호크 24대(26억달러)와 세계 최강의 공격 헬기로 평가받는 아파치 6대(8억달러), 통합방공망시스템(IADWS)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가 맞부딪치다

양국 간 군사협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인도의 중국 견제전략이 맞아떨어지는 접점이 군사 부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전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 전략에 인도가 추가된 개념이다. 이 전략 개념의 지적재산권은 사실상 일본 아베에게 있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기 전인 2006년부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로 아베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하면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Power)’를 내세우고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대신 ‘인도-태평양전략’을 내걸었다. 트럼프 정부는 그해 12월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데 이어, 2018년 1월 국가국방전략(NDS), 2019년 6월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IPSR·Indo-Pacific Strategy Report)’를 차례로 공표하여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구상을 밝혔다. 이 안보 구상에서 미국이 제시한 기본 원칙은 ‘국가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의 억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권을 행사하고, 편안하고(safe), 안전하며(secure), 번영하며(prosperous),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법치와 시민사회의 발전, 투명한 통치, 공정한 경쟁을 제시하고, 어느 한 국가가 이 지역을 통제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원칙과 수단이 겨냥하는 위협 국가는 바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로 간주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의 군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인공섬을 건설해 이 약속을 어겼고, 대만에 대한 무력 불사용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군사력 사용을 준비 중인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의 인공섬은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를 건설하여 사실상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 되었다. 또 2018년에는 대함 순항미사일(YJ-12B)까지 배치하여 이 해역에서 미군의 우세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546㎞ 반경의 미 항모와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2013년 시작된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중 해상 실크로드(一路) 계획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로’는 중국 해안에서부터 동남아와 서남아를 지나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해상 물류교통망 건설 계획이다. 총 1000여개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가운데는 34개 국가에 76개 항만을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들 항만의 건설은 중국의 국영 건설업체가 중국의 자금과 자재, 노동자를 써서 진행하는 것으로 국내 건설자재의 재고 소진을 통한 내수 진작으로 경제성장률 6% 달성에 기여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항구 건설 과정에서 현지 정권을 친(親)중국화하고 중국 해군함정의 입출항을 보장받음으로써 사실상 군사기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76개 항만이 완공되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부터 인도양까지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다. 결국 ‘일대일로’는 중국의 군사력을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진출시켜 미국의 봉쇄망을 무력화하고 미국의 해상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미·일·호주·인도의 다이아몬드 협력체제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응하여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4자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만약 이들 국가 중 인도가 중국과 손을 잡아 해상교통로 보호를 명분으로 중국 해군의 인도양 진출을 허용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전방위적인 해양진출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끊어져 흩어지고 만다. 이는 미국이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러한 군사적 역학관계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인도에 공을 들여왔다. 그는 임기 첫해인 2017년 10월 인도의 디왈리(Diwali)축제 때 백악관의 인도계 직원과 교민 대표를 초청해 축하행사를 벌였다. 디왈리축제는 매년 가을 힌두교와 자인교, 시크교의 교도들이 ‘빛이 어둠을 이겨낸다’는 의미를 담아 전통 촛대에 촛불을 켜는 의식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인도계인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와 시마 베르마 복지부 의료서비스센터장 등을 초대해 등잔에 불을 붙이고 디왈리를 축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인도계 미국인들은 예술·과학·의약·교육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하고 있다. 특히 군과 긴급구조대에서 용감하게 활동하고 있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디왈리축제 참여는 2018년과 2019년에도 이어졌다. 이는 약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인도계 미국인의 지지를 얻고, 나아가 미·인도 관계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2017년부터 인도양 군사훈련에 일본까지 가담시켜 미·일·인도 3개국 합동군사훈련(Malabar Naval exercise)을 실시하고 있다. 이 훈련에는 미 해군의 니미츠 항공모함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헬기 항모인 이즈모호가 참가해 관심을 끌었다. 미국 주도의 ‘말라바르 해상훈련’은 중국이 스리랑카에 잠수함을 기항시키고 파키스탄에서 항만 개발에 개입하는 등 인도양에 군사력을 적극 진출시키는 것에 대응하면서,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원유 수송로(sea lane)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여기에 필리핀까지 가담해 4개국 해군함정이 남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벌였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맞불을 놓았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말 러시아, 이란과 함께 호르무즈해협에서 최초의 3국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에는 중국의 유도 미사일 장착 구축함 시닝(西寧)과 러시아의 소형 구축함, 급유함, 구조용 예인선 등이 동원됐다. 이 훈련의 의미에 대해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조너선 이얄 부소장은 “이번 훈련은 참가한 3개국 모두가 승자이다. 이란은 이 지역 실력자임을 선언한 셈이고, 러시아는 중동 지역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중국은 글로벌 해군력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지난 1월 3일(현지시각) 이란 군부의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 공격으로 살해하였는데, 여기에는 이란의 중·러 밀착을 경고하는 뜻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중국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초 미얀마를 방문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만나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건설의 적극적 추진을 요청했다. 이는 미·중 군사 충돌 시 남중국해를 거치지 않고 인도양에서 곧바로 중동산 원유를 공급받기 위한 통로이다. 중국이 이 통로를 보호하려면 인도양에서 러시아·이란·미얀마와의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시진핑 흔들릴 때 인도 등 두들겨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2월 말 인도 방문은 남중국해-인도양-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일·호주·인도의 남방연합과 중·러·이란 대륙연합 간의 신(新)냉전 구도 속에서 이루어졌다. 미국과 인도 간에 갈등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역갈등이 양국 관계 균열의 불씨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인도에 부여하던 개발도상국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중단하자, 인도는 미국산 아몬드와 사과·호두 등 28개 농산품에 대해 관세를 인상했다. 이에 트럼프는 “인도는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오랫동안 피크닉을 즐겼다.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발끈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인도 모디 총리 환영집회(Howdy Modi)에서 트럼프는 “오늘 미국의 가장 훌륭하고 충직한 친구의 하나인 모디 총리와 함께 텍사스에 와서 기쁘다”며 인도를 끌어안았다. 이번 인도 방문에서도 그는 인도와 ‘미니 무역협정’을 체결하려 했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포괄적 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선에서 타협했다. 트럼프로서는 최근 몇 년간 인도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10배가량 늘어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인도에 동행한 댄 브루예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뉴델리 비즈니스 회의에서 “몇 년 전 하루 2만5000배럴 수준이던 인도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이제 25만배럴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인도는 미국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량을 늘릴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인도의 원유 주수입국인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 타격이 될 수 있다.

거친 말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외국 정상까지도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끼리의 나라 인도에서는 불 같은 성격을 억누르고 ‘착한 아저씨’로 변신했다. 그 목적이 중국 견제에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그의 인도 방문은 중국이 코로나19로 국가적 위기를 맞은 시점에 이루어졌다. 시진핑 일인독재 리더십이 흔들리고, 중국 경제마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점에, 트럼프는 인도를 찾아 등을 두들기고 무기를 손에 쥐여주었다. 중국과의 경제전쟁과 관세전쟁, 미래기술전쟁에 이어, 라이벌 인도를 키움으로써 중국의 숨통을 더욱 조이겠다는 전략이다. 코끼리를 조련시켜 용의 옆구리를 짓누르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주저앉히려는 트럼프의 전방위 공세는 2020년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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