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3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photo 연합·AP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3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photo 연합·AP

‘조 바이든의 역사적이고 믿을 수 없는 복귀’.

CNN은 기사 제목처럼 “조 바이든이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빠르고 예상치 못한 복귀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CNN 평론가인 반 존스는 “우리는 72시간 동안 바이든이 우스운 사람에서 비대한 인물로 변해가는 걸 목격했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게 지난 3월 3일 수퍼화요일, 단 하루 동안 이루어졌다.

3월 3일을 기준으로 72시간 전에 벌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경선에서 처음 1위가 되기 전까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요란한 빈 깡통 취급을 받았다. 첫 번째 결전지였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는 4위, 두 번째 전장이었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5위를 기록했고 그나마 세 번째 네바다에서 2위를 차지하고서는 ‘선전’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국 여론조사 1위 후보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운 결과였다.

사실 앞선 세 번의 경선 결과는 바이든 진영에 부작용을 가져왔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미 연방 선거위원회(FEC) 자료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바이든 캠프의 보유자금은 710만달러였다. 초반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캠프는 약 1700만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는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바이든 부활의 서막은 지난 2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이었다. 배수진을 치고 나선 바이든은 5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38명의 대의원을 확보, 15명의 대의원만 확보한 샌더스를 눌렀다. 그리고 3월 3일 수퍼화요일 경선은 부활의 본무대였다. 수퍼화요일 경선은 14개 주에서 민주당 전체 대의원(3979명)의 약 3분의 1인 1344명을 선출한다. 특히 캘리포니아(415명), 텍사스(228명), 노스캐롤라이나(110명), 버지니아(99명), 매사추세츠(91명), 미네소타(75명), 콜로라도(67명), 테네시(64명), 앨라배마(52명) 등 50명이 넘는 대의원을 보유한 곳들이 몰려 있는 날이다. 경선 판세를 좌우할 중대한 승부처라서 과거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수퍼화요일 승패에 따라 대선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곤 했다.

바이든의 구심력에 몰려든 표심

3월 3일 ‘수퍼화요일’ 경선을 되짚어보자. 바이든은 14곳 중 10개 주에서 승리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금 부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선거인단이 50명이 넘는 주에서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를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 초반 기세 좋게 선두를 지켜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4개 주(캘리포니아·버몬트·콜로라도·유타)에서 승리했다.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이겼으니 체면치레는 했지만 사실상 바이든이 날아오르면서 제동이 걸렸고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가가 많다.

바이든은 흑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남부를 평정했고 동부와 중부에서도 깃발을 꽂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샌더스는 확장에서 실패한 셈이었다. ‘강성 진보인 샌더스는 본선에서 안 된다’는 2016년 대선의 비토 악몽이 다시 떠오르며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거꾸로 수퍼화요일에 바이든이 받은 표심이 샌더스가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꺾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날 선거 결과 중 일부는 샌더스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비판해오며 히스패닉의 지지를 얻어왔던 샌더스였지만 히스패닉 인구가 30%가 넘는 텍사스에서 바이든에게 패했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승리했던 오클라호마와 미네소타조차도 이번에는 바이든에게 넘겨줬다.

CNN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출구조사를 보면 62%가 “트럼프에게 승리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응답했다. “정책을 보고 후보를 골랐다”는 사람은 36%였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덕목이 본선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CNN의 버지니아주 출구조사에서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꽤 유동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수퍼화요일 당일이 돼서야 후보자를 결정했다는 사람이 17%였다. ‘며칠 전에 결정했다’는 응답자도 30%였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미리 지지 후보를 결정한 게 아니라 비교적 최근 들어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인데 여기에는 후보들의 잇단 사퇴와 지지 선언이 변수가 됐다.

“바이든이 러스트벨트 되찾아올 것”

바이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고 수퍼화요일을 기다리고 있던 때, 중도 진영 후보들이 잇달아 사퇴하고 바이든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지난 3월 1일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사퇴를 선언했고 다음 날인 2일에는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중도 퇴장을 결정했다. 이들은 모두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보좌관이었던 수전 라이스, 해리 리드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3월 2일 바이든 후보 지지에 동참했다. 바이든이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여기에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이 동참하면서 표심이 바이든 쪽으로 쏠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정치인들이 몰려드는 건 그 어떤 선거 캠페인보다 효과적이었다. AP통신은 바이든 캠프가 버지니아주에서는 고작 20만달러 미만을,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29만달러 정도를 지출했다고 밝혔는데, 이 두 곳 모두 바이든이 승리했다. 심지어 바이든 캠프가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지나간 미네소타와 매사추세츠가 선택한 후보도 바이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틈틈이 바이든을 비판하거나 힐난해왔다. 지난해 벌어졌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그가 바이든 부자의 이권 개입으로 프레임을 짜자 바이든은 재선을 위해 외국까지 끌어들인 대통령이라고 맞섰다. 트럼프의 입은 트위터나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바이든을 저격해왔다. 최근에는 여러 차례 민주당 경선 조작설을 제기했던 그다. 공화당 경선을 위해 노스캐롤라이나 유세를 떠나기 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주류가 “샌더스를 상대로 경선을 조작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샌더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바이든은 공격하되 샌더스는 놔두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보여온 패턴이다. 강성진보에다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샌더스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수월한 상대라는 평가가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바이든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하는 쟁탈전이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은 306명을 획득해 당선됐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키를 쥐고 있는 곳은 ‘3’으로 불리는 러스트벨트 지역이다. 여기서 3은 위스콘신주(선거인단 10명)와 미시간주(16명),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주(20명) 세 곳을 말한다. 이들 세 개 주의 선거인단 합계는 46명인데 박빙의 승부에서 이 숫자가 큰 힘을 발휘해왔다. 세 곳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6차례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를 택했던 곳이다. 하지만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곳 모두에서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1%포인트 이내의 근소한 차로 승리했고 선거인단을 독식했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민주당은 이 세 곳을 탈환하면 트럼프의 재선을 막을 확률이 높아진다. 4년 전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던 이곳의 표심도 요즘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가장 마지막 선거인 2018년 11월 중간선거 때 하원의원 선거에는 양당이 팽팽했지만 3개 주 모두에서 주지사 자리를 얻어낸 건 민주당 후보였다. 민주당이 2020년 7월 대선후보자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개최하는 이유도 이 지역 표심을 다지기 위해서다.

트럼프 지지기반과 겹치는 게 장점

이 스윙스테이트에서 가장 선호하는 민주당 후보는 바이든이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는 내년 미국 대선의 승부처로 꼽히는 6개 경합 지역 민주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격전지 6개 주에서 보여준 흥미로운 대목은 중도지향성이다. 여론조사에서 62%가 “공화당과 공통분모를 찾는 후보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선명한 진보 정책을 가진 후보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는 “격전지의 민주당 지지층은 온건 성향의 대선주자를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곳들을 대상으로 ‘트럼프 vs 민주당 후보’ 양자대결을 붙여보니 비슷한 흐름이 보였다.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플로리다·애리조나주까지 4곳에서 2~5%포인트 격차로 트럼프 대통령을 눌렀고 미시간주에서는 동률을 이뤘다. 트럼프 재선 저지의 유력한 후보라는 과거의 평가는 이번 수퍼화요일에서도 유효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바이든이 자신의 지지 세력을 침범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여성, 청소년, 히스패닉, 흑인, LGBT(성적소수자)로 구성된 ‘다문화 연합군’을 지지 세력으로 규합해 재선에 성공했다. 2016년 클린턴이 실패한 건 이 연합군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인데, 당시 샌더스를 지지하던 청년층의 투표 열기가 식었고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의 충성도가 이전 오바마 때보다 덜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백인 노동자, 재향군인, 기독교 우파 등 백인 중심으로 구성된 ‘단일 문화 연합군’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백인 노동자 부분이다. 바이든은 스스로를 ‘유니언맨(노조원)’이라고 부르는 백인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의 한 축인 중서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되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내 전국 단위 노조인 IAFF는 이미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노조의 지지에 격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샌더스는 수퍼화요일 투표가 끝난 뒤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 연단에 서서 “낡은 정치로는 트럼프를 이기지 못한다”며 바이든을 트럼프와 싸잡아 겨냥했다. 하지만 수퍼화요일은 샌더스의 바람과 달리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의 경쟁력을 증명한 날이 돼버렸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이날을 기점으로 사퇴를 선언했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경선 중단을 고민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바이든과 샌더스, 두 후보를 통해 당의 진로에 관해 명쾌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본선에 오르기 위해 획득해야 할 매직 넘버는 1991명이다. 아직은 갈 길이 남았지만 “민주당원 절반 이상이 본선에서 트럼프에게 이길 가능성을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 때문에 바이든이 약간 유리할 것으로 본다”(토머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정치학 교수)는 전망이 슬슬 나오고 있다. 수퍼화요일에 완벽히 부활한 수퍼 바이든이었다.

김회권 국제·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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