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크레모나병원에 설치된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야외 진료소. ⓒphoto 뉴시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크레모나병원에 설치된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야외 진료소. ⓒphoto 뉴시스

흔히들 ‘흑사병(黑死病·Black Death)’이라고 불리는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해 7500만~2억명을 죽인 전염병을 말한다. 흑사병이 유럽에 퍼지게 된 것은 실크로드(Silk Road·비단길)와 몽골제국 때문이다. 몽골제국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점령하고 흑해까지 진출했다. 몽골제국은 1347년 흑해 연안의 카파(Caffa·현재는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야)를 포위했다. 당시 몽골군은 이 도시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자 흑사병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성벽 너머로 던졌다. 카파는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들의 동방 무역 거점이었다. 흑사병이 퍼지자 이탈리아 상인들은 선박을 타고 카파를 빠져나왔다. 이 상선들 중 하나가 시칠리아의 메시나항에 도착했지만, 선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망하였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된 첫 계기였다. 제노바와 베네치아에도 흑사병이 만연하게 됐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후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베네치아공국은 감염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상선을 정박시키고 상인과 선원들을 40일간 강제로 격리시켰다. 이런 조치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방언으로 ‘콰란티나 조르니(quarantina giorni)’라고 불렀다. ‘40일’이란 뜻이다. ‘격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쿼런틴(quarantine)은 ‘콰란티나’에서 유래했다. 흑사병은 이에 앞서 1334년 중국 허베이에서 발생했는데, 이 때문에 인구의 90%가 사망했다. 당시는 몽골제국이 세운 원나라 때였다.

일대일로에 G7 중 처음 참여한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중국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중세의 흑역사(黑歷史)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산은 한국과 닮은꼴이다.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면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이탈리아는 지난 1월 31일 60대 중국인 관광객 2명이 첫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유럽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오는 4월까지 중국 본토와 홍콩·마카오·대만 등을 오가는 직항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들을 경유해 항공이나 육로 및 선박으로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막지 않았다. 결국 최대 경제 도시인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와 관광도시인 베네치아가 있는 베네토주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탈리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2월 18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이 환자가 어떻게 감염됐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 환자는 중국에 간 적도, 중국인과 접촉한 적도 없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코로나19를 전파했거나 정부가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하기 이전에 중국에 다녀온 자국민이 최초 전파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정부가 전면적인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 협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3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서방 선진 7개국(G7) 중에서 처음이자 유럽연합(EU) 창립 회원국들 가운데 최초로 참여를 결정했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해 일대일로 프로젝트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양해각서의 내용에는 중국과 이탈리아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자금 지원을 받아 공동 사업을 하고 도로와 철도, 교량, 민간항공, 항만, 에너지, 통신 등 이해를 공유하는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조항들이 들어갔다.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 회원국들 중에서 꼴찌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1%로, EU 회원국들 중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보답’으로 이탈리아에 대해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라는 선물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관광산업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이후 이탈리아를 방문한 유커가 300만명을 넘었다. 게다가 양국은 수교 50주년인 올해를 ‘중국-이탈리아 문화·관광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문화·관광 교류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또 중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항공편을 주당 56대에서 164대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EU 회원국들은 물론 G7국가들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해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경제난에 빠진 이탈리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를 참여시킬 경우 EU의 교두보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진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등 G7국가들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견제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이탈리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China Daily
지난해 3월 이탈리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이탈리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China Daily

지난해 3월 이후 이탈리아 방문 유커 300만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의 일대일로 참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볼 때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된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이탈리아 경제는 자칫하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핵심인 롬바르디아주 등 북부 지역이 쑥대밭이 됐기 때문이다. 또 관광산업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럽은 물론 세계 각국이 이탈리아 여행을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솅겐조약 때문에 유럽 각국이 이탈리아 국민들의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국가신인도가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다. 유럽 각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솅겐조약에는 EU 회원국들 가운데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국이 가입돼 있다.

이 같은 이탈리아 사례처럼 중국의 일대일로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코로나19 확산의 배경으로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꼽았다. 포린폴리시는 중국 정부가 2013년부터 아시아는 물론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에 있는 70여개국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면서 중국 정부는 그동안 공항과 항만, 철도 및 도로 등을 건설해 자국과 각국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확대해왔는데 이를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우한을 폐쇄하기 전까지 2주간 전체 인구 1100만여명인 우한에서 500만여명이 중국의 다른 지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면서 중국 이외 다른 국가들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대부분 우한을 방문했거나 우한 출신 중국인과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로리 개럿 전 미국외교협회 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조달러 규모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지역적 질병을 세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코로나 일대일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돼 2003년 7월 종결될 때까지 9개월간 37개국에서 8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775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우한에서 27명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이후 두 달 만인 2월 28일 기준으로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촌 6개 대륙의 50개국으로 확산됐으며, 환자는 8만3157명(중국 7만8824명), 사망자 2853명(중국 2788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이외의 국가들에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WHO 발표에 따르면 중국 이외 국가에서 하루 동안 나온 신규 환자(459명)가 중국의 신규 환자(412명)를 넘어선 지난 2월 25일 이후 중국 이외 국가의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이란이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 31일 중국행 직항 노선을 당분간 모두 중단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란에선 지난 2월 19일 이슬람 시아파의 성자이자 종교도시 콤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망자가 처음 나온 이후 전국적으로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마수메 엡테카르 부통령을 비롯해 보건부 차관 등 고위 관리들과 국회의원들까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첫 사망자는 최근 수주간 다른 나라를 거쳐 중국을 정기적으로 오간 무역업자로 추정된다. 이란 정부도 이탈리아 정부처럼 중국인들의 입국은 물론 자국인들의 중국행을 전면금지하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핵 문제로 대립해온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7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3주간 체류할 수 있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다니고 있다. ⓒphoto IRNA
이란 수도 테헤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다니고 있다. ⓒphoto IRNA

이란과 인적·무역 교류 확대해온 중국

중국 정부도 반미국가인 이란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시 주석은 2016년 1월 이란을 국빈 방문해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비롯해 양국의 정치·경제·군사 등 각 분야에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중국 정부는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란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의도는 이란을 교두보로 중동 지역에 적극 진출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과는 에너지를 비롯해 무역 등 교역과 인적 교류를 확대해왔다. 중국 수출입은행은 이란 수도 테헤란과 동북부의 제2 도시 마슈하드를 잇는 926㎞의 철로를 전철화하는 사업에 15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철로공정총공사(CREC)도 테헤란과 콤 및 이스파한을 잇는 18억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구도인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를 지나 테헤란에 이르는 신(新)실크로드 고속철도 건설을 이란에 제안한 바 있다.

이란은 뒤늦게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고 국내 여행 통제와 금요 대예배 취소 및 국회 무기 정회 등 고강도 방역 대책에 나서고 있지만 자칫하면 코로나19로 신정체제가 크게 흔들리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란 국민들 중 상당수는 집권세력이 2월 21일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은폐하고 방역 대책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총선 이전까지 코로나19에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의 보수파 정치인으로 콤이 지역구인 아마드 아미라바디 파라하니 의원은 “사망자 수가 50명에 달한 것은 지난 2월 13일이었다”면서 “콤에서만 25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격리 수용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미국 등의 제재조치로 의료장비와 약품의 부족 등 공공의료체계가 붕괴된 것도 이란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중국과의 교역과 관광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란에 코로나19가 유입된 경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이란 보건부 관리가 ‘중국에서 온 게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과 인접한 중동 국가들에서도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고 있다.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이라크,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레바논 등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대부분 이란을 다녀왔다.

이탈리아 대통령도 시진핑에 우정 메시지

이탈리아와 이란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와 중국과의 연관 관계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위기는 일시적이고 우정은 영원하다”는 메시지를 시 주석에게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중국은 우리의 최대 인적 교류국이면서 최대 교역국”이라며 중국인 입국 전면금지 조치를 거부해왔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와 우리의 신남방정책 및 신북방정책의 접점을 찾아서 함께하는 데 좀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WHO는 코로나19 2차 확산국가로 이탈리아·이란·한국을 지목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이들 3국에 대한 자국민의 여행금지와 함께 이들 3국 국민의 입국 금지와 제한 조치를 내리고 있다. 이들 3국이 이처럼 국제사회의 기피국가가 된 것은 중국 정부의 ‘코로나 일대일로’에 올라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탈리아·이란·한국이 유럽과 중동과 아시아의 ‘우한’이 된 셈이다. 이들 3국이 중국과 함께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인 판데믹(pandemic)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될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가 치르고 있는 친중(親中)의 엄청난 대가를 문 대통령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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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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