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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8호]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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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밀레투스 황혼이 떠올린 아테네 전염병의 비극

▲ 터키 동부 밀레투스에 있는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photo turkisharchaeonesw.net
고대 그리스 해양도시 밀레투스(Miletus)는 현재 터키 동부에 위치한 서방 문명의 발상지다. 철학·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Thales)를 비롯한 수많은 고대 학자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해양도시’라고 하지만 흥미롭게도 밀레투스에는 바다가 없다. 주변을 보면 목화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 고대 그리스 도시들이 접해 있던 투명한 에게해는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유사 이래 계속된 퇴적층이 이유다. 고대도시 밀레투스는 에게해와 멘데레스(Menderes)강을 배경으로 성장한 도시다. 터키 동부를 횡으로 가르는 멘데레스와 에게해로 이어진 수상 무역이 밀레투스가 번영한 배경이다. 그러나 탈레스 이래 2600여년이 지난 지금, 밀레투스 주변은 멘데레스강이 몰고 온 흙으로 뒤덮인 상태다. 진흙 성분의 퇴적층이 쌓이면서 에게해는 무려 10㎞ 밖으로 밀려났다. 고대도시 밀레투스 역시 퇴적층에 숨겨져 있다가 1873년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빛을 봤다.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돼 고대 그리스만이 아니라 로마, 비잔틴 시대의 부와 영광을 되새겨주고 있다.
   
   밀레투스의 최대 절경은 황혼 풍경이다. 완전히 복원된 반원형 극장(Theatre)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석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퇴적층으로 인해 저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 에게해지만, 2000여년 전 바다의 기억이 밴 석양이 극장 아래 목화 평원에 길게 드리워 있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대 극장에서 바라보는 혼자만의 황혼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주는 성스러운 의식일지 모른다. 신을 경배하고 주변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공간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올해 맞이한 밀레투스의 황혼은 예년과 조금 다르다.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유다. 지난호 주간조선 기고문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현재 ‘역병 여권’으로 추락한 한국 여권을 갖고 터키에 들어온 상태다. 도쿄 출발 비행기를 3일 앞당기느라 2500달러를 들여 마치 탈출하듯 터키로 떠밀려 왔다. 필자가 도착한 이틀 뒤 터키 정부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터키 입국을 막기 시작했다. 이미 92개국(3월 4일 기준)이 한국인 입국을 제한, 거부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밀레투스는 이 같은 준전시 상황에서 택한 ‘돌발적인’ 방문지다. 집이 뉴욕에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베네치아에도 짐이 있어 일단 이탈리아에 들러야만 한다. 그러나 터키가 이탈리아 항공편의 이스탄불 입국을 막았기 때문에 한 달 뒤로 예정된 베네치아행 비행기도 애매한 상태다. 이탈리아로 들어간다고 해도 미국이 입국제한을 할 경우 베네치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하나로 필자의 여정이 뒤죽박죽, 감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아테네를 멸망시킨 30가지의 전염병
   
   이번 밀레투스 방문은 7번째다. 고대 극장에서 바라보는 황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지만, 필자의 마음이 똑같을 수가 없다.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몰고 오는 바이러스와 세균의 ‘진짜 정체’다. 이들은 의학적·생리학적 차원의 병균만이 아닌 듯싶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파괴하고 지구촌 문명·문화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바꾸는 ‘악(惡)’일지 모른다. 무지와 죽음, 공포로 몰아가는 ‘악마의 전령사’가 바이러스와 세균의 진짜 정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악마의 전령사인 전염병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준 ‘최초의’ 역사적 본보기다. 이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염병이 돌기야 했겠지만, 글로써 그 참상을 자세하게 남긴 것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만 한 곳도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서방 문화· 문명의 시발점이자 정수로 풀이되는 아테네 역사는 전염병으로 한 방에 날아갔다. 아테네가 자랑하던 철학·건축·역사·드라마·음악·신학·수학·미학·수리학 모든 것이 형태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의해 사라졌다. 아테네를 종주국으로 하면서 번영했던 밀레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염병 창궐지에서 500㎞ 떨어진 에게해 건너 땅이었지만, 아테네 추락과 함께 해상무역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된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며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기사회생하지만, 전염병에 파괴된 아테네의 어두운 그림자는 에게해와 지중해 곳곳에 남게 된다.
   
   역사학자들도 고대 그리스 종말의 출발점을 전염병에 두고 있다. 학술 용어로도 통하는 ‘아테네 전염병(Plague of Athens)’은 그 같은 역사를 한마디로 압축한 키워드다. 기록에서 보면 기원전 430년에 시작돼 기원전 426년까지 4년간 약 30종류의 갖가지 전염병이 아테네 전역을 초토화시켰다. 대략 아테네 인구의 25%가 사라졌다. 중국발 코로나19에서 보듯 원래 바이러스와 세균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확산시키는 환경은 인재(人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전염병 창궐 후 거의 한 달이나 허송세월한 중국에서처럼, 전염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과정에서 무섭게 변해간다. 아테네 전염병은 그 같은 인간의 무지와 오만을 재확인시켜 주는 최초, 최고의 본보기다.
   
   아테네에 전염병을 일으킬 뭔가가 스며들어온 것은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전쟁 발발 1년 뒤다. 스파르타와 그리스 대부(代父)로 나선 아테네가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기원전 404년까지 27년간 계속됐다. 두 나라가 벌인 전쟁의 의미와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기원전 499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전쟁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2007년 개봉된 영화 ‘300’의 배경이 된 전쟁이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후 에게해 패권을 차지한 곳은 아테네다.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 전사 모두가 동방의 페르시아군에 맞서 사라지지만, 진짜 승리자는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주도한 아테네 해군이었다. 페르시아 해군을 궤멸한 뒤 에게해 제해권을 독차지했다. 당시 서방 민주주의 체제의 화신으로 통하는 페리클레스(Pericles)는 에게해 해양대국 아테네에 등장한 30년 장기집권 지도자다. 고대의 전쟁에서는 ‘승리=돈’이다. 명예나 애국심보다 전리품 획득이 전쟁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부(富)가 축적된다. 패전국 시민은 노예로 팔리면서 귀중한 재산으로 둔갑한다.
   
   
▲ 중세 유럽에서 전염병은 악마가 퍼뜨리는 것으로 묘사됐다.(좌) 전염병으로 사망한 그리스 지도자 페리클레스 흉상.(우)

   사람과 함께 아테네로 밀려온 병원균들
   
   에게해 대부로 나선 아테네는 에게해 작은 섬나라에 대한 ‘합법적인 약탈’에 들어간다. 페르시아의 재침을 막자는 명분하에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을 결성한다. 페르시아 대항 전함을 만들기 위한 군자금 조성이 명분이다. 동맹권 400여개의 크고 작은 폴리스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모인 돈은 전함이 아니라 아테네 신전 건축에 활용된다. 페리클레스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이 폴리스로부터 착취한 군자금의 사용처다.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신전 건립을 통한 건설 특수를 통해, 아테네 시민들로부터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간다. 델로스 군자금이 아테네 정치와 문화·문명의 종잣돈으로 활용된 셈이다.
   
   페리클레스가 군자금을 사용(私用)하는 동안 에게해 폴리스들 사이에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그리스 역사의 비극이지만, 페르시아전쟁 당시 아테네의 전우였던 스파르타가 반(反)아테네 전선의 대표주자로 나선다. 전쟁에 앞서 아테네는 육군 중심의 스파르타에 맞선 수성(守城) 작전을 구사했다. 평원에서 싸움을 할 경우 스파르타에 질 것이 뻔했다. 해양강국의 이점을 살려 스파르타 보급로를 차단하고 성안에서 싸우는 전략에 집중한다. 아테네 전체를 성으로 둘러쌓은 뒤, 시민과 노예들을 안으로 불러모아 장기전에 나선다. 군 전력과 작전이란 차원에서 당초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이길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쟁에 들어가기도 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전염병이었다. 델로스 동맹국을 포함해 아테네를 따르던 폴리스 시민들이 성으로 밀려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외래 병원균이 유입된다. 성안에 빽빽이 몰려든 수십만 명의 시민과 노예들이 한순간 전염병에 감염되면서 죽음에 이른다. 성 밖을 스파르타가 지키는 상황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당한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 세대 가까이 계속됐다. 최종 승자는 아테네를 공략한 스파르타로 결판이 났지만 아테네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다시 양자 간 전쟁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이후 뚜렷한 승자도 없는 상황에서 그리스 폴리스 전체가 분열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338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공멸로 끝나게 된다. 이후 그리스를 재통합한 건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 출신 필립 2세였고, 알렉산더의 정복이 가속화되면서 아테네 문화에 기초한 헬레니즘이 에게해, 지중해, 페르시아로 퍼져나갔다. 좋게 말하자면 통합·확산됐다고 볼 수 있지만 아테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알렉산더가 주인공으로 나선 것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를 공격하는 동안, 갑자기 북부의 마케도니아가 나타나 모두를 점령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아테네 전염병이 미친 정신적·심리적 영향이다. 아테네를 전염병으로 몰아간 시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 5년에 불과하다. 전염병을 극복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스파르타를 쫓아낼 수도 있는, 그렇게 길지 않은 시련기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전염병으로 인한 아테네의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가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이후의 역사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진짜 전염병이 ‘악마의 전령사’였던 셈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패전의식은 물론 아예 세상을 포기하는 듯한 풍조가 만연했고, 이것이 아테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된 주된 원인이 됐다. 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Tuchididdes)는 21세기 미·중 패권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부상하는 신흥강국이 기존의 세력판도를 뒤흔들고,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패권국과 신흥국 사이의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Trap)’이다. 투키디데스의 논리는 현실주의 정치에 기초한 명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를 통해 증명된다.
   
   
   투키디데스의 역병 체험기
   
   필자의 판단이지만 투키디데스가 쓴 책의 핵심 역시 역사적 교훈으로서의 ‘아테네 전염병’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전염병의 현황과 비극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 자신이 아테네 전염병에서 살아남은 시민으로서 공포의 기억에 기초한 ‘역병 체험기’가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투키디데스 저서에서 필자가 주목한 대목은 ‘왜 전염병 5년 기억이 아테네를 운명론적 패배자로 만들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왜 민주주의 원조국이 27년간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하고, 그 이후의 전쟁에서도 끝내 재기하지 못했는지’에 관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전염병이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돼 이집트와 리비아를 거쳐 에게해와 아테네에 들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염병은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퍼져나갔으며, 특히 환자를 다룬 의사들과 주변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됐다고 기록했다. 그리스 전체를 통틀어 10만명 정도가 죽어나갔으며, 시체가 넘쳐 집단 화장이 거의 매일 이뤄졌다고 한다. 시체가 불타는 동안 성 밖의 스파르타 군대는 연기조차 두려워 멀리 다른 곳으로 피해 갈 정도였다. 전염병 확산 과정에서 투키디데스가 주목한 것은 아테네 시민들의 정신적 붕괴다.
   
   “대재앙은 너무도 참혹했고 광범위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내일 무슨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테네의 법과 신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반복해서 보는 동안, 시민들 모두가 도시국가에서의 의무나 책임을 망각하고 신들을 저주하고 기피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는 것이 투키디데스의 관찰이다.
   
   전염병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가기 위해 전쟁 의무를 진 시민이 아닌 노예를 자처한 아테네인도 나타났다. 신이 스파르타 편에 서서 아테네를 질식시키는 것이라 보고, 전염병의 신인 아폴로를 저주하고 공격하는 일도 벌어진다. 전염병으로 죽은 친척 덕분에 재산을 물려받은 신흥부자도 출몰하고, 죽기 전에 돈을 전부 쓰려는 세기말적 ‘버블 경제’도 아테네에서 발생했다. 시민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최대의 위기는 전염병 창궐 1년 뒤 터진다. 기원전 429년,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전염병으로 죽게 된 것이다. 아테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 문명·문화의 최절정기 인물로 통하는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전염병에 굴복한 것이다. 철인(哲人) 지도자를 비롯해 민주주의 체제가 닦은 모든 가치가 전염병으로 쓰러지면서, 도시국가 아테네가 지켜온 훈(訓)과 영(令)도 전부 사라진다.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사수한 긍지의 아테네 시민들도 사라져버렸다. 전염병을 피하며 사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약하고도 비겁한 인간으로 추락한 셈이다. 스파르타에 맞서 싸워 간헐적으로 이기기도 하지만, 이미 아테네 시민들은 심리적·정신적으로 죽음의 낙인이 찍힌 패배자에 불과했다. 신이 버린 도시국가와 시민이란 좌절과 자학이 아테네 전체를 지배했다. 스파르타의 강력한 육군이나 전쟁의 전술·전략이 아니라 전염병이 바로 아테네 몰락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자긍심과 시민의식도 날려버린 전염병
   
   6·25전쟁을 흔히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역사로 표현한다. 2020년 3월 바이러스가 퍼지는 한국 상황을 보면 역시 동족상잔이란 단어부터 떠오른다. 제 나라 국민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정부, 감염지역 주민들을 찌르고 후벼 파는 사람들도 출몰한다. 방역은커녕 마스크 공급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도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린다. 바이러스 발원지 중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못 하면서 일본을 전염병 국가라 규정한 뒤 올림픽 중단까지 요구하는 권력집단도 등장한다. 아테네 역사에서 보듯 진짜 문제는 전염병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들을 운명론적 패배자로 몰아가는 자포자기가 더 큰 적이다. 무능·부패한 집단들의 혀와 머리가 주된 발원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투구를 쓴 채 일을 했다고 한다. 전쟁 준비와 방역에 나서다 전염병으로 쓰러질 때도 투구를 쓴 모습이었을 것이다. 죽음조차도 함께한 민주주의 화신 그 자체가 바로 페리클레스다. 몸은커녕 현란한 쇼와 입으로만 방역을 하는 곳이 2020년 3월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2500여년 전 페리클레스가 한국에 되살아난다면 어떤 행동과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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