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의 한 지하철역에서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이 QR코드를 확인하고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2월 2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의 한 지하철역에서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이 QR코드를 확인하고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3월 8일 서울 중구의 상급종합병원인 서울백병원이 폐쇄되는 사건이 터졌다. 대구에 거주하는 78세 여성 환자가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백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백병원 측에 따르면, 이 환자는 의료진이 대구·경북 방문 여부를 물었을 때 대구 거주 사실을 숨겼다. 입원 시 주소도 딸의 집이 있는 ‘서울 마포’로 기재했다. 그 결과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형병원의 응급실이 폐쇄되고 외래진료가 중단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중국 상하이에서는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해, 현재 상하이에서는 이런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이션마(隨申碼)’라는 개인별 휴대폰 QR코드를 통해 코로나19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武漢)과 같은 위험지역에 다녀온 사실이 자신의 휴대폰 QR코드에 자동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 상하이에서는 지난 3월 1일자로, 각 개인 휴대폰마다 ‘수이션마’라는 개인별 QR코드를 발급받게 한 뒤 이를 병원이나 공공기관 등 주요 장소에 출입할 때 출입증으로 대체하고 있다.

‘수이션마’는 개인별 진료기록, 위치정보 및 통신내역, 결제정보 등을 종합 반영해 자신의 휴대폰 QR코드 색깔로 위험여부를 표시해주는 장치다. 코로나19로 확진된 사람이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의 QR코드는 적색,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 등 위험지역에서 상하이로 들어온 지 14일 미만인 사람은 황색, 위험지역 방문기록이나 이상 증상이 없으면 녹색 QR코드로 나타난다.

자연히 병원 출입구에서는 QR코드 색깔만으로 환자의 위험도를 판별할 수 있다. 이 QR코드가 한국에서도 사용됐다면, 위험지역인 대구에서 온 고위험 환자가 선별진료소가 아닌 병원으로 직접 들어가 병원이 폐쇄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 코로나19 방어 1등 공신

QR코드가 중국에서 대도시 집단감염을 예방하고 의료체계 붕괴를 막은 ‘일등공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QR코드 위험도 식별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2월 11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다. 저장성은 후베이 출신들의 진출이 활발한 관계로, 코로나19 확산 초기 확진자가 후베이성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중국 전역의 소상공인들의 왕래가 잦은 저장성 원저우(溫州) 등지는 확산 추세가 심각했다. 지난 3월 12일 기준으로도 저장성의 누적 확진자 1215명 중 원저우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504명에 달한다.

자연히 저장성의 성도(省都)이자 중국 대표 관광도시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중국 최대 민영자동차 기업 지리차 등 기업들이 밀집한 항저우를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항저우에 본사를 둔 알리바바는 자사의 QR코드 결제플랫폼인 ‘즈푸바오(알리페이)’와 유사한 형태로 개인별 코로나19 위험도를 QR코드 색깔로 나타내주는 ‘젠캉마(健康碼)’라는 QR코드를 개발했다.

항저우에서 첫 도입된 ‘젠캉마’는 항저우 등 저장성 주요 도시는 물론 상하이, 충칭, 베이징 등 중국 전역의 주요 대도시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알리바바의 경쟁기업인 ‘웨이신(위챗)’ 역시 자사의 QR코드 결제플랫폼인 웨이신즈푸(위챗페이)를 기반으로 유사한 ‘젠캉마’ QR코드를 선보였다. 현재 ‘즈푸바오’ 기반의 ‘젠캉마’가 커버하는 중국 내 도시는 200개가 넘고, ‘웨이신즈푸’ 기반의 ‘젠캉마’가 커버하는 인구는 약 7억명에 달한다. ‘수이션마’는 항저우에서 처음 선보인 ‘젠캉마’ QR코드의 상하이판이다. ‘션(申)’은 상하이를 뜻하는 별칭이다.

상하이시는 지난 2월 24일부터 ‘수이션마’를 상하이 내 1500여곳의 공공기관 출입증으로 대체한 데 이어, 지난 3월 1일부터는 수이션마 사용 대상을 모든 영역으로 확대했다. 일례로,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택시기사나 음식배달원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 속 ‘수이션마’를 제시해야 한다. 상하이를 찾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도 발급 대상인데, 상하이에 거주했던 기자의 즈푸바오 계정으로 ‘수이션마’를 체크해 보니 확진 기록과 후베이성 방문 기록이 없는 까닭에 아직까지 녹색 QR코드로 표시되고 있었다.

구두 질문으로 걸러내는 한국

반면 서울의 주요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은 방호복을 입은 요원들이 출입구에서 환자들에게 위험지역 방문 여부를 구두로 묻는 식으로 코로나19 감염환자를 걸러내고 있다. ‘중국 방문 여부’ ‘대구·경북 방문 여부’ ‘청도 대남병원, 은평 성모병원 방문 여부’ ‘신천지 여부’ 등을 일일이 묻는 식이다. 원시적인 구두질문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감염자의 비말이 튈 염려가 있을 뿐더러 백병원 사태에서 보듯 응답자의 거짓말에 대형병원이 순식간에 뚫릴 수 있는 치명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도 진료기록과 GPS 위치정보, 결제정보 등을 종합 반영한 ‘QR코드’를 활용할 수 있다면, 위험지역 방문자들의 출입을 최대한 걸러내 코로나19의 확산속도를 늦출 수 있다. 환자의 거짓말로 인해 대형 의료기관이 일시 폐쇄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길도 열리는 셈이다.

중국에서 QR코드가 병원은 물론 공공기관, 사무실, 아파트 출입증으로 대체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QR코드 사용이 활성화된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즈푸바오’ ‘웨이신즈푸’ 같은 QR코드 결제플랫폼이 현금이나 신용카드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쓰인다. 이에 사람들이 QR코드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고, 즈푸바오와 웨이신즈푸 등도 ‘수이션마’를 부가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위치정보, 진료정보, 결제정보 등 개인정보를 별다른 규제 없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만 100%에 가까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중국과 같이 ‘QR코드’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방지와 주요 시설 보호는 시도조차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QR코드 결제플랫폼인 ‘제로페이’ 역시 관(官) 주도로 진행된 까닭에 아직까지 보급률이 미미하다. 개인정보 수집과 사용에도 첩첩산중의 규제가 가해지고 있어 QR코드 사용 활성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의 빅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는 이른바 ‘데이터 3법’도 지난 1월에야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3월 10일 코로나19 사태 후 후베이성 우한을 최초로 방문해 사실상 코로나19 사태 종식 시그널을 보냈다. 지난 1월 23일 우한 봉쇄 후 거의 2달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승자는 중국의 IT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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