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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호] 2020.03.16

‘중국판 WHO’에 숨은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지난 1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AP
지난 3월 9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과 통화를 했다. 그가 강조한 건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의 기여도였다. “각국의 방역을 위한 시간을 중국이 벌어줬다”는 얘기가 나왔다. 왕 국무위원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현재 코로나19는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발생해 확산 국면을 보이고 있다. 국제 공조를 강화해 함께 맞서는 것이 급선무다.”
   
   중국이 생각하는 국제 공조 강화 방식은 무엇일까. 한 아이디어가 해외 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흥미로운 기사를 전했다. 악시오스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 소유의 싱크탱크가 ‘중국판 WHO(세계보건기구)’의 설립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싱크탱크는 CNPC-ETRI(중국 석유가스집단공사 경제기술연구소)인데 중국에서는 정부가 후원하는 싱크탱크가 외교 채널의 비선라인으로 활용되곤 한다. 악시오스는 “이런 방식은 지도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뒤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수월한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소의 직원이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한 곳은 ‘SIGNAL’이란 곳이다. 이스라엘의 비영리단체인데 그간 중국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SIGNAL의 설립자이자 이사인 캐리스 위트는 WHO의 대체 기구를 베이징이 주도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중국이 이런 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세계 지배구조를 재편하려는 목적의 맥락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지원으로 당선된 WHO 사무총장
   
   갑작스러운 중국 주도의 국제보건기구 아이디어를 두고 미 잡지 내셔널리뷰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우한을 발생지로 하는 코로나19 피해를 억제하기 위해 고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거꾸로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중국의 대응을 참고하라고 말하며 자국의 이미지를 컨트롤하려고 나서는 중이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게 코로나19를 맞이하는 중국의 자세라는 얘기다.
   
   중국은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막상 중국 내 감염자 수가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자국이 아닌 외국 발원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고 있는 게 요즘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 3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코로나19를 ‘우한 코로나’라고 부르면서 중국 책임론을 꺼내든 일이 있었다. 당시 중국 주요 매체는 일제히 들고일어나며 워싱턴을 맹공격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코로나19 발원지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작업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무책임하며 편협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중국 정부도 예민하긴 마찬가지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월 9일 정례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을 직접 겨냥했다. “미국 정치인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중국과 우한에 낙인을 찍고 있다.”
   
   그의 말대로 WHO는 중국의 우군이다. 세계는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이라고 생각하지만 WHO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들으려고 할 때마다 입을 닫고 있다. 게다가 초기에 은폐하면서 글로벌 전염병 확산에 영향을 준 중국을 오히려 칭찬하는 사람이 지금의 WHO 수장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사태 동안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예를 들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IEC)를 선포했던 지난 2월 3일 그가 한 얘기는 이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싸우고 있는 중국의 노력과 통제를 높이 평가한다.” 중국에 대한 여행과 교역 제한 권고도 하지 않았고 너무 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시기에도 총알받이가 됐다.
   
   2017년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WHO 수장이 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선거에서 이겼다. 선거 당시 중국은 그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지원책을 펼쳤다. 10년간 600억위안(약 10조원)을 WHO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중국 외교관들은 선거전에 직접 뛰어들어 개발도상국 선거인단의 표를 끌어왔다. 조직의 신뢰도가 무너지는 위험을 껴안으면서도 거브러여수스가 지금 중국 측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미국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에서 현재 퇴진을 요구받고 있다. 퇴진 요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45만명이 넘는다.
   
   
   WHO 자금 줄이는 트럼프발 공백 노려
   
   이런 WHO를 놔두고 중국은 왜 별도의 ‘중국판 WHO’ 아이디어를 낸 걸까. CNPC의 싱크탱크에서 나온 메시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WHO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같이 코로나19와 싸우는 모든 국가들을 조정하는 지도력 갖춘 국가나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중국과 가까운 WHO지만 오랫동안 이 조직을 주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UN 산하 여러 국제기구를 창설하고 지탱해왔던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이들 조직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지원을 줄이거나 스스로 탈퇴도 했는데 중국은 이렇게 생긴 권력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갔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WHO도 그런 곳 중 하나다. CNN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와중에도 2021회계연도 예산안에서 트럼프 정부는 WHO 예산을 6500만달러(약 770억원) 가까이 삭감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전년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삭감하자는 얘기였다. 미국이 WHO 지원을 축소하는 와중에 자금줄인 중국 입장을 사무총장이 대변하는 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국제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선진국의 무대였다는 건 중국의 고민거리다. 그래서 나온 게 ‘중국판 WHO’다.
   
   중국이 오랫동안 소프트파워를 갈망해온 것도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 배경이다. 내셔널리뷰는 ‘중국판 WHO’가 “세계적인 리더십을 보여 국외에서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소프트파워(soft power)는 하드파워(hard power)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무력을 쓰지 않고도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힘인데, 중국은 이걸 키우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해왔지만 들인 공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그동안도 크지 못했던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중국판 WHO를 활용해 커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국수주의, 다른 하나는 국가의 소프트파워가 민간이 아닌 정부에서 나온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중국판 WHO가 출범한다 한들 제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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