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캐나다 퀘벡주 라콜에서 미국으로 통하는 국경이 봉쇄돼 있다. 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국경봉쇄에 합의한 상태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8일 캐나다 퀘벡주 라콜에서 미국으로 통하는 국경이 봉쇄돼 있다. 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국경봉쇄에 합의한 상태다. ⓒphoto 뉴시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78억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어떤 무기도, 이동수단도 없는 이 바이러스는 불과 2~3개월 만에 전 세계 198개국으로 번져 43만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약 2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 내륙의 우한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고, 국가 간의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며, 수십 년간 구축해온 생산과 공급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 21세기 첨단기술 시대를 사는 인류지만, 아직도 이 적을 물리칠 수단은 개발하지 못했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 중세의 몰락을 재촉했듯이, 2020년 코로나19 역시 기존의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충격이 잠잠해질 즈음, 우리는 이전과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스트 코로나19(post-corona19) 시대의 국제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세계화 후퇴 불가피하다”

먼저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문명과 국제질서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에서 여러 차례 전염병이 창궐하여 큰 재앙을 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번 코로나19처럼 빠른 시간에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적은 없었다. 이번 위기는 지난 20여년간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와 그로 인한 국가 간의 밀접한 상호연결성이 초래한 재난이다.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는 고속열차를 타고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항공기 편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초국경 ‘공급사슬(Supply Chain)’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이동 통로가 됐다. 이러한 비(非)전통적 신안보 위협에 대한 각국 정부의 경각심은 부족했고 행동은 굼떴다. 미·중은 물론 한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의 대응수준마저 흑사병이 휩쓸 당시 유럽의 대응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환자를 격리하고, 가족을 연금시켰으며, 도시 간 이동을 금지하고, 나중에는 국경까지 닫았다. ‘세계화’가 초래한 이번 재난에 대한 인류의 대응법은 ‘반(反)세계화’였다.

코로나19 위기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국제질서를 얼마나 바꿀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세계화의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이 공통된 견해다.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 교수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3월 20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앞으로 과도한 세계화로부터의 후퇴를 보게 될 것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하는지 보게 될 것이며, 정부와 기업은 미래의 취약성을 줄이는 쪽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레트(Robin Niblett) 소장 역시 “코로나19는 정부와 기업과 사회가 더욱 길어진 경제적 자가격리 기간에 견디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세계가 21세기 초와 같이 ‘서로 이익이 되는 글로벌화’라는 개념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국제경제의 통합에서 함께 누리는 이익을 보호할 인센티브가 없다면, 20세기에 확립된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의 구조는 급격히 위축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후퇴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미 외교협회 새넌 오닐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는 글로벌 제조의 기본 교리를 허물고 있다. 국제적 공급사슬은 중국의 임금 상승, 트럼프의 무역전쟁, 로봇과 자동화, 3D프린트의 기술 진전,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으로 인해 이미 경제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이 연결고리의 많은 것을 파괴했다. 따라서 기업들은 오늘날 상품생산을 지배하는 다단계, 다국적 공급체인을 재고하고 그것을 줄이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국경 밖보다 국경 안 일에 더 집중하게 될 것”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 과학기자이자 전 외교협회 보건부문 고위 자문관인 로리 개럿(Laurie Garrett)은 “글로벌화는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제조하고 그 제품을 창고비용 없이 즉시에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게 했지만, 코로나19는 사람뿐만 아니라 즉시공급(Just-in-time)시스템까지 감염시켰다”면서 “앞으로 공급체인은 집에서 가까워질 것이다. 그로 인해 기업의 단기 순익은 줄겠지만, 전체 시스템은 보다 탄력 있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인이 소비할 물건은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란 예측이다.

코로나19는 보건의료 문제로 시작했지만, 그 파급 효과는 경제와 사회, 군사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장의 공급과 수요 사슬이 끊기면서 실물경제의 위기가 일어나고, 이는 주식시장 등 금융위기로 번지고 있으며,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국가경제를 파괴하고 국가기능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각국 정부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미 외교협회장은 “코로나19 위기는 적어도 수년 내에 대부분의 나라들을 내부지향(turn inward)적으로 이끌 것이며, 각국 정부는 국경 밖보다 국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선택적으로 자급자족 체제로 가는 큰 움직임이 예상되며, 그 결과 국가 간 디커플링(decoupling·결별, 분리)이 일어날 것이다. 대규모 이민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고, 지역 문제나 국제 문제에 대한 대응 혹은 약속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로 망가진 국내 경제를 재건하는 데 국가 자원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3월 20일 블룸버그통신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글로벌화 1.0과 2.0을 가르는 역사적 표지판(marker)”으로 규정하고, “글로벌 2.0은 지구촌을 강대국 블록으로 분리하고, 군사력을 급속히 증대하며, 공급체인이 분리되고, 독재체제가 부상하며, 사회적 분화로 자국보호주의와 포퓰리즘이 생성되고,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의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이다. 요약하면 새롭게 부상하는 지구촌 분열의 시대를 말한다”고 진단했다. 미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을 지낸 니컬러스 번스(Nicholas Burns)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코로나19는 이번 세기의 가장 큰 글로벌 위기다. 그 깊이와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금융과 경제에 대한 충격은 2008~2009년의 금융위기를 능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위기를 저지하는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능력이 도마에 올랐으며, 유럽연합(EU)은 5억명의 국민들에게 보다 집중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각각의 정부는 장래에 EU(브뤼셀)에 준 권한을 철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미·중 결별하고, 대결 격화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했다. 국제질서의 위협에 양국이 손을 잡은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어쩌면 미·중에 협력의 기회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양국이 바이러스 극복에 힘을 합쳤더라면,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패권전쟁에 화해의 기운이 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그 기회를 놓쳤다. 양국 지도자는 먼저 국내에서 신뢰를 잃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초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입을 틀어막아 코로나19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 위험성을 널리 알리지도 못했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춘절(春節·설날)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가 초기 통제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초 중국인 입국을 막는 조치를 취했으나, 그 후 내국인 방역을 소홀히 하여 3월 25일 현재 확진자 5만3000명, 사망자는 700명에 달했다.

게다가 양국은 코로나19의 초기 정보공유 문제와 발원지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코로나19 발원지는 미국”이라고 공세를 편 데 이어, 시진핑 주석은 지난 3월 13일 구테흐스 UN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며 미국을 대신해 ‘세계의 구원자’ 행세를 하고 나섰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에 트럼프 대통령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 3월 2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나는 중국에 대해 좀 마음이 상했다(upset). 나는 우리 쪽 전문가를 중국에 보낼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그들은 공식적인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향후 미·중 관계에 대해 아산정책연구원 차두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3월 25일 발표한 글에서 “코로나19를 통해 미·중은 양립하기보다 무한 경쟁이 불가피한 체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으며, 상대방에 대한 적의(敵意)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인 조치로 나타나는 경쟁의 재개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전의 미·중 경쟁이 주로 무역 분야에서 돌출되었다면, 앞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모델’과 중국이 주창하는 ‘아시아모델’ 간의 충돌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실용적·보호적 국제주의 등장하나

미·중이 국내 혼란과 양자대결로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마저 친중국적 행보로 신뢰를 잃자,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각국은 의료용품 수출금지에 이어 ‘국경차단’과 ‘입국제한’으로 폐쇄적 국가주의로 치닫는 모습이다. 존 알렌(John Allen) 브루킹스재단 이사장은 이번 위기가 국제사회의 틀을 뒤흔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이번 위기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국제사회의 힘의 구조를 뒤흔들 것이다. 생산능력의 저하와 경제활동 위축은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심각할 것이며, 이는 국제사회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국가 간에 광범위한 갈등을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서방에서 중국인과 한국인 등 특정 국민을 혐오하는 등 인종차별이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저급하고 단순한 생명체인 바이러스 앞에서 가장 지적이고 복잡한 생명체인 인류가 분열, 갈등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또한 세계 각국 지도자의 다양한 리더십도 들춰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시진핑의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인 입국을 활짝 열어놓았다가 확진자 대량 발생의 상황을 맞은 반면, 대만·베트남·싱가포르 정부는 초기에 중국인을 차단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국가로 꼽힌다. 유럽에선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가장 협력적인 이탈리아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국가가 휘청대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의 차이가 향후 각국의 정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이와 함께 중국과 한국 등에서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기업들이 보여준 헌신의 모습은 두 나라 시민사회의 건강성과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암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위기 초기에는 반세계화의 정서가 강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프린스턴대학 석좌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민족주의자나 반국제화주의자들이 자기의 입장을 강화하는 새로운 증거들을 찾을 것이다. 또 미국과 서방 민주국가에서 사회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정부는 이를 헤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대응은 처음에는 더 민족주의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껍데기에서 나와 새로운 형태의 실용적이고 보호적인 국제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시브샨카르 메넌(Shivshankar Menon) 전 인도 만모한 싱 총리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큰 글로벌 이슈에 대해 상호 협력하도록 인식하게 된다면, 이 유행병은 유용한 목적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인류는 과연 부작용이 많은 ‘과도한 국제화’ 대신 이익과 안정성, 현대문화와 토착문화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협력모델을 찾을 수 있을까. 인류의 이성에 희망을 걸어도 되는 것일까.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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