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대학의 에릭 사리스 교수. 핀란드 최고의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가로 꼽힌다.
헬싱키대학의 에릭 사리스 교수. 핀란드 최고의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 사람 중 건강 기능식품을 한 가지라도 매일 복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많이 소비되는 건강 기능식품 중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단연코 프로바이오틱스다. 2019년 건강 기능식품 판매액만 봐도 프로바이오틱스는 어느새 비타민을 누르고 1위인 홍삼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필자도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얼떨결에 프로바이오틱스 물결에 동참하게 됐다. 결과는 기대보다 좋았다. 몇 년간 고생하던 소화기 계통 문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리 사 놓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다 먹고 나서 다른 제품을 복용하니 그 효과가 좀 달랐다. 핀란드에 돌아온 후 약국에 가서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살펴보니 종류도 많고 용량도 다양하다. 먹는 제품, 마시는 제품, 심지어 바르는 제품, 씻는 제품 등 없는 게 없다. 어떤 것은 냉장 보관, 또 어떤 것은 상온 보관 등 보관법도 제각각이다. 왠지 더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유산균이 언제부터 프로바이오틱스로 이름이 바뀐 걸까?’

이런 막연한 의문을 품고 헬싱키대학 미생물학과 에릭 사리스(Per Erik Saris) 교수를 만났다. 사리스 교수는 핀란드에서 프로바이오틱스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학자로, 연구실에는 자신이 개발에 직접 참여한 다양한 프로바이오틱스 관련 제품이 쭉 놓여 있었다. 장 건강 관련 제품뿐 아니라 치아 미백제부터 프로바이오틱스 맥주와 여성 질 세정제까지 생전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아서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였다. 핀란드는 덴마크와 함께 유럽에서 프로바이오틱스 연구와 생산이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의 차이는 무엇인가. “유산균은 젖산을 형성하는 모든 균주를 지칭한다. 이 중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증명된 유산균만을 프로바이오틱스라고 부른다. 유산균 중에서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도 있어서 충치를 유발하기도 한다. 아토피 피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내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바꿔 보니 효과가 다른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뭔가. 어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가장 좋은 건가. “프로바이오틱스는 젖산을 생성, pH 수치를 낮춰 장내 환경을 산성으로 만든다. 산성 환경에서 견디지 못하는 유해균들은 그 수가 감소하게 되고 산성에서 생육이 잘되는 유익균들이 증식해서 장내 환경이 건강하게 바뀌는 것이다. 장내 환경을 전문용어로 세균총(叢) 혹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장내 환경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아직 프로바이오틱스 연구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에 가장 효과적인 프로바이오틱스까지 맞춤형으로 처방해주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소비자들은 여러 제품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합 균주로 만들어진 프로바이오틱스가 단일 균주로 만들어진 프로바이오틱스 제품보다 복용하는 사람들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맞을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장과 상성(相性·서로 맞는 성질)이 맞는 균이 아니면 아무리 비싼 제품을 먹어도 그 균들이 장에 머물 수 없어서 효과가 없는 것이다.”

- 약국에서 보니 용량도 제각각이고 과립형, 알약형, 캡슐형, 냉장 보관, 혹은 상온 보관 등 여러 가지가 있던데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혼동된다. “장까지 살아서 잘 도달할 수 있도록 캡슐 등으로 특수 코팅 처리된 제품이 과립형보다 안전하다. 아무래도 냉장 보관용 제품은 상온에 있던 제품보다 몸속에 들어가 활성화되기 쉽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생균이기에 외부 환경, 특히 온도나 습도에 따라 죽는다. 유효 기간이 다 돼도 죽기 쉽다. 그래서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상온에서 파는 제품이라도 개봉한 후에는 반드시 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습기가 차면 균이 죽기 쉬워짐) 뚜껑을 잘 덮어 냉장 보관을 권한다. 개봉 후 오랫동안 상온에서 보관했던 프로바이오틱스가 있다면 버릴 필요는 없다. 생균만큼은 아니지만, 사균 프로바이오틱스도 유해균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용량은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더 좋다. 단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할 경우 굳이 많은 양이 필요하지는 않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직접 면역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면역을 높여주는 백혈구의 활동에 신호를 보내며 독려하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요즘은 프로바이오틱스의 체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프리바이오틱스를 같이 복용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맞는 얘기인가.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를 프리바이오틱스라고 한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살아서 장까지 간다고 해도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가 없으면 힘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프리바이오틱스는 단순히 말하면 식이섬유소(파이버)다. 이 섬유소는 유해균들이 가장 싫어하는 먹이기 때문에, 보통 그대로 남아 있어 유익균의 차지가 된다. 이런 섬유소는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식이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새 장내 세균총(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하게 바뀌어 프로바이오틱스를 따로 섭취하지 않아도 되는 몸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 발효식품 등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과 프로바이오틱스 정을 따로 챙겨 먹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가. “물론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더 좋다. 그렇지만 사정상 프로바이오틱스를 따로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핀란드에서는 보통 항생제를 복용할 때 의사가 프로바이오틱스를 같이 처방해준다. 내 경우 항생제 복용 기간 내내 (비록 항생제의 여파로 대부분 프로바이오틱스는 곧 죽지만 사균으로 남아 있는 것도 몸에 유익하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고 항생제 복용이 끝난 후 1주일간 또 복용한다. 특히 임산부나 수유모, 갓 태어난 아기는 프로바이오틱스를 따로 복용하기를 권한다.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모유에 녹여서 프로바이오틱스를 열심히 챙겨 먹였다.

특히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꼭 복용하는 것이 좋다. 아이는 태어날 때 엄마의 세균을 물려받는데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질과 피부에 있는 세균을 받아 장내 세균총을 이루게 된다. 엄마가 좋은 프로바이오틱스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로또 당첨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는 건강한 세균총을 선사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세균과 접촉할 일이 없기에 장내 세균총도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바이오틱스를 따로 먹여 건강한 장내 세균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가 자연분만한 아이보다 천식·아토피 등 면역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조사도 있는데 이 역시 건강한 장내 세균총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리스 교수는 예전에 아내의 모유를 포함해 핀란드 산모의 모유 성분을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약 30%의 모유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발견되었고, 나머지 70%의 모유는 프로바이오틱스 성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아기에게 건강한 장내 세균총을 만들어주려면 수유모들이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식사를 하고, 불안하다면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는 것도 좋다는 조언은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 임산부도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는 게 좋나. “가족 중 아토피나 알레르기 증상자가 많을 경우 임신부와 산모는 프로바이오틱스를 꼭 챙겨 먹을 필요가 있다. 임신 기간 중 프로바이오틱스를 상복한 임산부는 출산 후 살이 더 쉽게 빠진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 특히 아이의 평생 건강은 처음 1년이 좌우한다. 이때 형성된 장내 세균총은 평생 쉽게 바뀌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1년 동안 프로바이오틱스를 모유를 통해 혹은 다른 식으로 공급받고 도심이 아닌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그 아이는 평생 건강할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안타깝지만, 평생 크고 작은 여러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어려서 장내 세균총이 형성되면 알레르기나 콜릭(신생아 배앓이)에 걸릴 확률이 낮으며 나중에 성인으로 자라서도 비만,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아스퍼거증후군 발생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이유로 1년이 안 된 아기들은 가능하다면 항생제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 항생제 복용으로 인해 전체 장내 세균총이 무너지고 면역체계도 바뀌기 때문이다.”

-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을 주의해야 하는 사람도 있나. “면역력이 너무 떨어진 사람이나 병중에 있는 사람은 의사와 상의한 후 복용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유익균이지만 프로바이오틱스도 엄연히 살아 있는 생균이기 때문에 신체가 약할 때 다량 복용하게 되면 병원균으로 변해 신체를 공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핀란드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를 다량 복용해서 간에 염증이 생긴 경우가 보고되기도 했다. 장이나 위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해를 일으킬 수 있다.”

- 피부 크림 제품, 세정제 등 프로바이오틱스가 장 건강 외에 다른 곳에도 좋은가. “프로바이오틱스 유익균은 소화기 계통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피부와 여성의 질 등 우리 신체 곳곳에도 있다. 피부와 생식기의 pH 균형이 깨지면 염증이 쉽게 생기고 상태가 나빠진다. 이때 프로바이오틱스를 바르면 피부의 pH 밸런스가 낮아지고 약산성으로 변하며 이상적인 피부 상태를 이루게 된다. 약산성 피부는 피부에 기생하는 여러 유해균을 죽이고 유익균을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피부 건강을 위해서는 프로바이오틱스 정을 복용하는 것이 좋은데 내장 박테리아의 세균총이 피부의 상태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프로바이오틱스는 면역력을 높여주고 비만 치료에 도움을 주며, 암과 파킨슨병, 치매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는 치아 미백 효과도 있다.”

- 치아 미백제의 원리는 무엇인가. “특정한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은 치아에 붙어서 적은 양의 과산화수소를 발생시킨다. 과산화수소의 표백작용 원리를 이용해서 프로바이오틱스 치아 미백제가 개발된 것이다. 치아 미백뿐만 아니라 치아에 치석이 쌓이는 것도 막아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사리스 교수가 몇 년 전 개발에 참여한 프로바이오틱스 맥주를 따라 줬다. 맥주에 사용하는 프로바이오틱스 효모는 보통 완전히 발효되지 않아 단맛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는 쓴맛이 좀 더 강한 호프를 사용하면 맛의 균형이 맞는다고 한다. 맥주가 기분만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내 건강까지도 책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리스 교수는 치아 미백 기능을 추가한 맥주도 앞으로 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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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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